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6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16화
“여기, 녹차 좀 드세요.”
김동국 실장이 녹차를 배우진과 오해일 앞에 갖다 놓았다.
“감사합니다.”
‘진짜 올 줄 몰랐는데. 그것도 이렇게 빨리···.’
김동국은 아직 정리가 안 된 어수선한 사무실이 걱정되었다.
장성태 대표가 들어왔다.
“폴 엔터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극제에서 처음 보고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장성태 대표가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배우진과 오해일은 차례로 그와 악수했다.
‘대표님, 정말 오랜만이네.’
배우진은 장성태를 보자 전생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장성태는 배우진을 길거리 캐스팅했었다.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배우진의 가능성을 높이 사고 과감히 투자했었다.
‘연기 선생 민상기’를 붙여줬던 것 만 봐도 그가 배우진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배우진의 장점을 정확히 판단했고, 순식간에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 후로, 배우진이 인기에 취해 방탕한 삶을 살았을 때도 장성태는 포기하지 않았다. 배우진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옆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그땐, 내가 정말 답이 없었어.’
마약 폭력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도 장성태는 배우진을 믿고 지켜 주었다. 1년간의 재판에도 그는 언제나 배우진 곁에 있었다.
“폴 엔터에서 우리 배우님께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해일이 녹차를 입에 갖다 대며 장성태 대표에게 물었다.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배우진 님이 원하는 걸 지켜 줄 생각입니다.”
“··· 우리 배우님이 정말 원하는 거요?”
장 대표의 추상적인 대답에 오해일이 되물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배우진 님을 연극제에서 봤을 때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아, 이 사람은 연기에 미친 사람이구나. 속에서 열정이 끓어 넘치고 있구나. 천상 배우다.’ 저는 그 열정을 지키고 키워 줄 생각입니다.”
마약 폭력 스캔들로 배우진의 커리어가 끝장났을 때도, 장성태는 ‘배우는 연기로 일어서야 한다’며 배우진의 배역을 따내려 사방팔방 뛰어다녔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겨우 따냈던 ‘아침 드라마 조연’ 자리도 장성태가 지문이 닳도록 빌고 발로 뛴 결과물이었다.
물론 한 컷도 못 찍고 잘리긴 했지만···
그 후로, 배우진의 인생은 진짜 나락이었고, 폴 엔터도 조용히 끝이 났었다.
‘후~.’
예전의 일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대표님께 끼친 손해가 얼마인지 계산도 안 나왔다.
“그럼 좀 민감한 부분이지만 가장 중요한 얘기가 남았네요.”
오해일이 진지하게 말했다.
“수익 배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세부적 조율은 해야겠지만, 저희는 6:4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배우진 님이 6, 저희가 4입니다. 기본 신인 수익배분이 업계 관례상 3:7인데, 배우진 님은 이미 광고계의 블루칩이시고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으니, 이 정도가 적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흠.”
오해일은 딱히 답을 하지 않고 생각을 길게 가져갔다.
“혹시 따로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장성태 대표의 정중한 목소리에 긴장이 묻어났다.
“우선 잘 들었습니다. 저희가 상의를 좀 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오해일은 미팅을 마무리했다. 6:4든 3:7이든, 일단 서두르는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기획사 서너 군데 더 만나 보면 감이 잡힐 것 같았다.
그 순간 장성태 대표의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이대로 보내면 다음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에서는 훨씬 좋은 조건을 내걸게 뻔하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고 담백하게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시고 전화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회의 내내 묵묵히 듣고만 있던 배우진이 입을 열었다.
“오늘 계약하고 가겠습니다.”
배우진은 간단히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네??”
장성태 대표는 너무나 놀라 말문이 막혔다.
“야! 우진아!”
오해일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내 마음이 여기가 좋아. 여기로 정했어.”
배우진이 오해일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
페어리 후속편 촬영하는 날.
오해일과 함께 B세트장으로 가고 있었다.
“야. 이거 한참 걸어가네. 지난번보다 더 커.”
“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대기업이랑 길게 가면 좋은 거 아냐? 그쪽에선 3편 4편 얘기도 하던데···”
“안 돼. 이미지 굳어져. 사람들 머릿속에 한 번 박힌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배우에겐 독이지.”
해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잠시 망설이더니 우물쭈물 아무렇지 않게 박은하 말을 꺼냈다.
“그런데 박은하 이틀이나 요가를 빠지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그러게···”
크리스마스 이후 박은하는 새벽 요가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일이는 아니었나 보다.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번호라도 알아둘 걸···.”
혼자서 구시렁거리더니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박은하한테 왜 이리 신경 쓰지?
“내일은 나오겠지.”
나의 위로의 말에도 해일이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우리는 B세트장으로 들어갔다.
“와우.”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저번에 촬영했던 세트장의 세 배 정도 넓이에, 높이는 5층 정도 됐다. 와이어 액션을 위한 커다란 크레인까지 준비 돼 있었다.
촬영장은 활기찼다.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 담당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덕분에 나는 금세 눈부신 요정으로 변신했다.
분장이 끝나자 여운진 감독이 내게로 왔다.
“감독님. 오늘 엄청난데요.”
“돈 좀 썼다. 이번엔 좀 더 스펙타클할 거다.”
“네. 각오는 단단히 했습니다.”
“좋았어. 멋진 그림이 나올 거야.”
여 감독이 콘티북을 넘기며 촬영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다.
“거인 왕국에 잡혀있는 공주를 구하고, 폰을 사용해 현실로 빠져나온다.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혹시 대역 필요하면 말하고.”
와이어 액션이 많아 여 감독이 안전을 걱정했다.
“눈썰미 좋은 시청자들은 대역 금방 알아봅니다. 제가 끝까지 하겠습니다.”
“좋았어. 마지막으로 공주를 바라보는 눈빛 한번 체크할까?”
나는 아련하게 감독을 바라봤다.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는 그 눈빛. 좋았어.”
여 감독은 무척이나 흡족해했다.
나는 와이어를 달고 공중에 매달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찍는 일만 남았다.
여 감독이 시작을 알렸다.
“자 준비됐나요?”
“네. 다 됐습니다.”
“그럼 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나는 와이어를 타고 공간을 가르며 거인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피하듯 실감 나는 연기 선보였다. 두세 번 다른 방향에서도 찍었다.
“컷. 좋습니다. 배우진 님 분장 다시 손봐주시고, 공주 모델 준비 다 됐나요?”
“네. 다 됐습니다.”
“그럼 탑으로 올라갑시다.”
공주 역할을 할 여자 모델이 대기실에서 나왔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쪽으로 쏠렸다.
어깨선이 드러나는 하늘색 긴 드레스, 반짝반짝 다이아몬드 왕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는 모델은 여신 그 자체였다.
헉.
하지만 공주를 확인한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박은하!!”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야, 네가 어떻게 여기서 나와?”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할 틈이 없었어. 너희 연락처도 모르고.”
박은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오해일 또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달려왔다. 이틀이나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박은하가 공주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으니···
오해일은 다짜고짜 질문을 쏟아냈다.
“이거 찍느라 요가도 빠졌던 거야?”
“응, 준비할게 많았거든.”
“그래도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너무 한 거 아냐?”
“나도 이틀 전에 연락받은 거야. 너희 번호도 모르고, 그러니깐 미리미리 번호도 좀 알려주고 하지!!”
박은하는 조금 짜증을 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촬영만 생각하자.”
오해일이 차분하게 말했다. 촬영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서 있을 신인 모델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때 한 스태프가 박은하에게 다가왔다.
“박은하 씨 저기 꼭대기에서, 구원자 요정을 기다리면 됩니다.”
“네.”
“딱 한 컷이고, 카메라는 주로 배우진 님을 잡을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박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 드레스를 칭칭 감아쥐고 박은하가 사다리차를 타고 탑으로 올라갔다.
놀라움도 잠시, 나도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배우진 님 와이어를 타고 발판 끝에 올라서세요. 그리고 박은하 님과 눈을 마주치면 됩니다. 준비됐나요?”
“네.”
“액션!”
구원자 요정이 멋들어지게 꼭대기 발판에 착지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공주를 향해 걷는다.
잔뜩 기대하는 공주.
요정이 애틋한 눈빛으로 공주를 촉촉이 바라본다.
두근.
두근..
두근…!!
박은하의 심장이 찌릿하다.
그냥 연기라는 걸 아는 데도 찌릿하다.
심장이 심하게 뛴다.
박은하의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간다.
“컷!”
여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졌다.
완벽한 그림이었다.
NG 없이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
오랜만에 가족이 모였다. 엄마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스케줄을 다 비웠다. 바쁘다고 계속 소홀하면, 그 인생은 소홀함으로 끝난다는 것을 전생에서 배웠다.
엄마는 시금치를 씻어 채반에 넣고, 당근은 깨끗하게 씻어 껍질을 벗겼다.
“엄마 물 끓어요.”
나는 식탁에 앉아 맛살을 얇게 찢었다.
“응, 알았어. 아들이랑 요리하니까 얼마나 좋아.”
엄마는 방금 씻은 시금치를 끓는 물에 넣었다.
“엄마, 그렇게 좋아?”
“그럼. 당연하지. 요즘 네가 얼마나 바빴니?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이고··· 이제 영화 다 찍었어?”
“마지막 촬영만 남았어요.”
“그래? 아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잠도 잘 못 자고.”
엄마는 내 걱정을 했다.
“촬영장 밥차 맛있어. 거기 계란 프라이는 진짜 끝내줘.”
“아무리 그래도 집밥만 하겠니?”
엄마는 조금 섭섭한지 집밥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하긴, 밥차가 아무리 맛있어도 엄마가 해주는 집밥과는 비교 불가지.
엄마는 시금치를 꺼내 물기를 꽉 짜서 커다란 볼에 넣었다.
“여보 이 만큼 찧으면 됐어?”
아빠가 눈물을 찔끔 거리며 절구 한 가득 찧은 마늘을 들고 왔다.
“그 정도면 됐어요. 저기 가서 당근 좀 썰어요.”
“써는 건 내 전문이지.”
아빠는 내가 갈라놓은 맛살 하나를 집어 먹었다.
“아빠 동창 놈들 난리 났다. 자기 아들, 딸들이 너 팬이란다. 싸인 하나 해달라고 난리야. 허허.”
아빠는 신나는지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이 핸드폰 쓸수록 좋아. 뭐, 여자들이 좋아한다는데··· 남자가 써도 더 좋아. 하하.”
아빠는 아들이 광고한 핸드폰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빠, 요즘은 무슨 건물 짓고 계세요?”
나는 아빠에게 최근 근황을 물었다.
아빠는 건축 회사 현장 설계사였다.
“아, 지난번 계약한 건물은 다 지었어. 한옥으로 지었는데 멋져. 시간 나면 한 번 보러 와.”
“네··· 그러면 시간 좀 비울 수 있어요?”
“응, 시간은 왜?”
“우리 가족 여행가요.”
“여행?”
엄마는 프라이팬에 당면을 볶다가 뒤를 돌아봤다.
“네. 우리 가족 여행 안 간지 너무 오래됐잖아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갔었나? 이번 영화 끝나면 가요.”
나는 가족 여행을 제안했다. 효도는 틈틈이 할 것이다.
“좋지. 하하. 아들이 가자는데 가야지.”
“호호, 나 안 그래도 남해 한번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엄마의 당면 볶는 손이 경쾌했다. 얼굴까지 상기되었다.
“다 됐다. 우진아, 이거 한 번 먹어 봐.”
엄마가 볶던 당면을 조금 떼어내 내 입에 쏙 넣었다.
“아니. 남편 먼저 줘야지. 남편보다 아들이 더 좋아?”
“네, 저는 아들이 더 좋습니다.”
엄마는 단호하게 말하며 내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어때? 맛있어?”
“끝내줍니다.”
나는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