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8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18화
자동차가 남해대교에 진입하자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엄마 아빠가 소리를 질렀다.
“바다다. 하하. 이 맛이지.”
“와~ 바다다! 우진아, 일어나. 바다야!”
나는 어젯밤 쫑파티를 끝내고 돌아와, 이른 새벽 부모님과 함께 남해로 출발했다.
피곤에 절어 차 안에서 4시간 내리 잠만 잤다.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더니 탁 트인 바다가 사방으로 펼쳐졌다.
“와~~~~!!”
환상적인 풍경에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숨 쉬는 것 같다.”
“새벽부터 열심히 달려온 보람이 있구만.”
우리 가족은 여행의 설렘에 빠져들었다.
“숙소부터 갈까?”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물었다.
“아니. 바다 먼저 보고··· 은빛 해변부터 가자. 우진이 괜찮지?”
엄마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네, 바다 먼저 실컷 보고 싶어요.”
***
은빛 해변의 고운 모래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겨울 바다의 낭만 앞에 추위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머머. 바다다 바다. 겨울 바다래도 푸르구나.”
엄마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소녀처럼 기뻐했다.
“속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냄새도 좋고.”
아빠도 눈을 감고 바다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저렇게 행복해하시는데···.’
전생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 여행은커녕 두 분과 밥 한 끼 제대로 먹은 적 없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하고, 가족이라면 뭐든 귀찮아하고, 함부로 대하고.··· 세상 혼자 잘나서 살았었다.
어떻게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비참하게 돌아가셨던 것까지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 난 예전의 내가 아니야. 이생에선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바빠지더라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런 시간을 희생하진 않을 거야.’
엄마 아빠는 데이트 시절로 돌아간 듯, 파도를 따라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며 즐거워했다.
이럴 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지.
나도 엄마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손으로 바닷물을 담아 엄마한테 끼얹었다.
“야! 배우진. 겨울 바다야. 춥다. 차가워.”
“하하하.”
우리는 바닷물을 튀기며 은빛 해변을 즐겼다.
그때, 서너 명의 여학생들이 다가왔다.
“저기요. 사진 좀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주세요.”
나는 디카를 건네받았다.
“자,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서는데, 여학생들이 나를 알아봤다.
“저···혹시···페···어리.”
“배.. 우진.”
“네. 맞습니다.”
나는 뒤돌아서며 정중히 인사를 했다.
“어머머.”
“맞잖아. 봐. 맞아.”
“웬일.”
여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 나도 어쩔 줄 모르긴 마찬가지.
저렇게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음 어찌해야 할지···
“우리 아들이에요.”
엄마가 능숙하게 끼어들었다.
“뭐해요. 학생들. 빨리, 같이 사진 찍어야지. 우진아 뭐해? 포즈 좀 잡아봐.”
엄마는 상냥하게 교통정리를 했다.
나는 그녀들 사이로 들어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 이리 줘요.”
아빠가 여학생들에게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여학생들은 싱글벙글 거리며 내 팔짱을 꽉 꼈다.
“찍어요. 하나, 둘, 셋.”
아빠가 셔터를 눌렀다.
“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여학생들은 엄마 아빠에게 몇 번이나 감사를 표했다.
엄마는 그녀들의 등을 토닥이며 ‘우진이 오빠만 좋아하지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해’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녀들은 엄마의 잔소리도 좋은지 계속 까르륵 웃었다.
엄마 아빠는 무척 뿌듯해 보였다.
윙~ 윙~
핸드폰 진동이 왔다. 나는 전화받기 편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보세요.”
-겨울바다 보러 간다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좋냐?
오해일이었다.
“좋다.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야. 다음에 너랑도 한번 와야겠다.
-좋지. 나도 요즘 스트레스 장난 아니야. 면허 딴다고.
“참, 어떻게 됐어? 합격했어?
오해일은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 당연히 땄지. 합격이다.
“축하한다. 이제 운전 연수만 남았네.”
-장 대표님이 나 면허만 따면 차 한 대 내려주신대.
“너무 감사한대.”
-나 처음에 네가 ‘폴 엔터’ 들어간다고 했을 때 사실 이해 못했거든. 사무실도 허름하고 뭔가 좀 후져 보였잖아. 근데 지내보니 네가 옳았다는 걸 알겠어. 장 대표님, 김 실장님 너무 좋으셔. 배울게 많아.
“그분들 연예계에 잔뼈 꽤나 굵으시지.”
-넌 모르는 게 없구나. 여행 잘하고 오면 보자.
“응.”
전화를 끊었다.
“우진아, 멸치 쌈밥 먹으러 가자. 여긴 그게 유명해.”
“네,”
멀리서 엄마가 나를 불렀다.
***
새벽, 요가 강의실이 썰렁해 보였다.
‘불빛이 약한가?’
박은하는 천장의 조명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름없었다.
‘얘들은 왜 아직도 안 오지?’
수업 시작 시간이 다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배우진과 오해일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 이렇게까지 늦은 적은 없었는데···’
박은하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시선은 출입문에 꽂아 두고 있었다.
“자,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난이도를 조금 높이겠습니다.”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배우진과 오해일이 나타나지 않자 박은하는 힘이 쭉 빠졌다.
“엉덩이 교차해서 움직여 잘 앉아 주세요. 손깍지 끼고 머리 뒤로. 숨 들이마시면서 가슴을 쭉 내밀어 주세요. 호흡 조금씩 이어가면서 가슴을 천장 쪽으로 올려 봅니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에 얼른 돌아봤다.
오해일이다!
박은하의 표정이 밝아졌다.
해일이는 은하랑 눈이 마주치자 살짝 손을 흔들었다. 은하도 살짝 손을 흔들었다.
‘어? 그런데 우진이는? 안 보이네··· 뒤에··· 도 없네···’
반가웠던 마음도 잠시, 박은하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손끝으로 바닥을 밀어내면서 척추를 위로 끌어올려 주세요. 천천히. 천천히. 골반은 바닥으로 꾹 내려 줍니다. 후~ 내시면서 발을 뒤로 보내 산 모양 만들어 봅니다.
은하 씨, 복부에 힘을 주세요. 뒷발은 앞으로 가져와서 상체와 다리를 최대한 가깝게 밀착시킵니다. 더, 더, 더, 더.”
으으으
아아아
박은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질렀다.
***
요가 수업이 끝나고,
박은하는 오해일과 함께 요가 학원을 나왔다.
“우진이 오늘 왜 안 나왔어? 무슨 일 있는 거야?”
박은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우진이? 가족 여행으로 남해에 갔어. 걔도 좀 쉬어야지.”
“아~.”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 그냥 안 보이니까.”
박은하는 요즘 들어 배우진만 생각하면 가슴에 찬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뭘까? 이런 느낌.
처음엔 배우진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호기심이 당겼다.
버스 안에서 고백을 했을 때, 거절당할 건 상상도 못 했다. 남자에게 홀대를 받아본 적 없는 박은하였기에. 차라리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뒤로 배우진이 자기를 이상한 애로 오해할까 봐 겁이 났고, 기회가 된다면 풀고 싶었다. 한편으론 자기를 망신 준 것에 대한 사과도 받고 싶었고.
요가 광고에 나온 배우진을 봤을 때, 오해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우진을 다시 만나게 됐고, 친구가 되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
배우진과 함께 광고를 찍고 난 후부턴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됐다.
배우진이 박은하를 향해 보냈던 그 눈빛.
아련하면서 따뜻하면서 사랑스러운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연기라는 것을 알지만, 박은하는 그 순간 그 눈빛만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야, 근데 오해일. 단짝이 없으니까 좀 허전하지 않아?” 박은하가 물었다.
“뭐 별로. 녀석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이미 다 꿰뚫고 있으니까.”
“엥?”
“어제는 은빛 해변에 갔고, 점심은 멸치쌈밥 먹고,
그다음엔 다랭이 마을. 거기선 굴을 먹었지. 아~ 굴은 조심 해야 하는데··· 잘못 먹으면 배탈 나거든.
지금쯤이면 블루 오션 호텔에서 자고 있겠다.
아니다. 그놈은 거기서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운동부터 하고 있겠지.
자기 관리가 철저하거든.”
박은하가 오해일을 빤히 쳐다봤다.
“그걸 어떻게 다 알아? 분신이 함께 가기라도 했냐?”
“그게 아니라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사진과 목격담이 올라오고 있어.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사진 찍고 사인해주고 그러나 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헤어져야 할 갈림길이 나왔다.
“그럼 나 간다.”
박은하가 먼저 인사하며 길을 틀었다.
오해일은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배우진이 없는 요가 수업, 그에게도 오늘 새벽은 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오래간만에 실컷 늦잠이나 자려했는데··· 혼자 있을 박은하가 자꾸 신경 쓰여 그럴 수 없었다.
“어··· 저기. 은하야. 맥도날리아에서 뭐 좀 먹을래?”
해일이 은하를 불러 세웠다.
“응? 아침에?”
“뭐. 간단하게. 저기 맥머핀 맛있다고 소문났어.”
박은하는 잠깐 생각하더니,
“그래. 안 그래도 물어볼 것도 좀 있고··· 가자.”
흔쾌히 승낙을 했다.
***
오해일이 아메리카노 두 잔과 맥머핀 두 개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우진이는 이제 뭐 할 거야? cf? 영화? 방송도 엄청 들어오지?”
박은하는 입만 열면 자기도 모르게 배우진 소리만 나왔다.
“숨이나 좀 돌리고 말해.”
“어. 어. 그럴까.”
박은하는 설탕 봉지를 쭉 찢어 아메리카노에 때려 넣고 휘휘 저었다.
따뜻한 종이컵에 손을 대자 몸이 쫙 풀렸다.
오해일이 먹기 좋게 머핀을 반으로 잘라 박은하 앞에 놓았다.
“여기 머핀 맛있어. 먹어봐.”
박은하는 머핀에 손도 대지 않고 다시 질문을 했다.
“배우진 이제 뭐 할 건데?”
“아직 몰라. 방송국, 광고사, 잡지사, 영화··· 연락은 많이 오는데 구체적으론 모르겠어.”
“야! 네가 매니전데,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그거야 대표님이 알겠지. 이제부터 큰 스케줄 관리는 대표님이 하실 거야.”
“응? 소속사 구했어? 언제?”
“한 일주일 됐나?”
“야! 그런데 나한테 왜 말 안 했어?”
박은하가 토라졌다.
“···”
“거긴 어떤 회산데?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은데.”
그것도 잠시 박은하의 질문이 다시 시작됐다.
“생긴 지 몇 달 안 됐어. 소속 연예인도 우진이랑··· 가수 지망생 한 명 정도고.”
“거기 번호 줘봐. 나도 소속사 알아보고 있단 말이야. 다른 데서 연락도 오고 있고. 나도 필요할 것 같아.”
오해일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박은하에게 내밀었다.
“대표님 명함 줄게.”
[폴 엔터테인먼트. 대표 장성태]“앗, 뜨거.”
박은하는 명함을 보면서 커피를 홀짝이다 뜨거운 커피를 쏟았다.
“괜찮아?”
오해일이 지체 없이 다가와 박은하 손에 묻은 커피를 닦아냈다.
“잠깐만, 티슈 좀 더 가져올게.”
티슈를 더 가져온 오해일은 박은하의 옷에 묻은 커피와 테이블 위에 쏟은 커피까지 깔끔하게 치웠다.
박은하가 오해일을 빤히 보았다.
“···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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