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9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19화
탕 탕 탕!
드림 연기 학원 앞이 망치질 소리로 시끄러웠다.
‘무슨 일이지?’
나는 얼른 뛰어갔다. 현관 앞, 민상기 선생님이 학원 간판을 떼어내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우진이 왔구나.”
“근데 지금 뭐 하세요?”
“이제 학원 안 한다.”
“네?”
놀란 내 표정에 옆에 있던 김도한이 웃었다.
“오늘부터 여기 극단이야. 선생님이 며칠 전에 결심하셨대.”
선생님은 학원 간판을 떼어낸 자리에 이라고 적힌 간판을 새로 달았다.
“이제 극단 할 거야. 옛날부터 생각해 왔던 건데 더 늦으면 영영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드디어 결심이 섰어. 큰 맘먹고 질렀다.”
나는 너무 빠른 전개에 어리둥절했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민상기 선생님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
우리는 안으로 들어와 강당 바닥에 앉았다. 학원에서 극단으로 바뀐 첫날이지만, 사실 바뀐 건 간판 하나뿐이었다.
작은 사무실.
통으로 쓰는 강의실 겸 강당.
먼지 폴폴 나는 낡은 소파.
내가 처음 봤던 허름한 창고 그대로였다.
“남해에 멸치가 유명하더라고요. 엄마가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해서 가져왔어요.”
나는 남해에서 사 온 멸치 두 상자를 내밀었다.
“그럼, 멸치는 남해지. 고맙다.”
선생님은 멸치 한 박스를 개봉했다. 가지런히 누워있는 은빛 멸치들이 싱싱해 보였다.
“이런 건 그냥 먹어도 맛있어.”
선생님이 새우깡 먹듯 멸치를 입으로 가져갔다.
와사삭 와사삭
“너희들도 먹어, 먹어.”
선생님이 멸치 상자를 우리 쪽으로 쭉 밀었다. 짭쪼름하면서도 고소한 그 맛에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멸치만 씹어댔다.
“그럼 이제, 연기 지도는 안 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극단 단원들 가르쳐야지··· 그리고 네 덕분에 시간제로 지도해 달라는 곳이 많아. 일자리는 충분해. 제자가 뜨니까 선생까지 잘 풀리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학원의 학원생도 김도한과 나, 겨우 둘 뿐이었다.
간판이 바뀌었다고 특별히 달라질 건 없었다.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두꺼운 대본 하나를 들고 왔다.
“자, 이게 우리 극단의 첫 번째 작품이다. 한 번 봐봐.”
“베니스의 상인요?”
“그래, 셰익스피어의 희곡 이다. 첫 작품인데 셰익스피어 정도는 돼야지.”
선생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에 대해 설명했다.
“‘포샤’에게 구혼하려는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안토니오’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자신의 살 1파운드를 저당 잡히지. 그렇게 돈을 구해 준 ‘안토니오’는 기한이 되어도 그 돈을 갚지 못하고, 살을 베어 달라는 ‘샤일록’의 요구에 시달리지만, 법률가로 변장한 ‘포샤’가 기지로써 그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을 떼라던 그 이야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전생에선 한 번도 못해 봤던 연극. 그것도 정극이다.
열정이 끓어올랐다.
“때가 되면 꼭 하려고 했던 작품이야. 지금부터 준비하면 오월쯤 올릴 수 있을 거다.”
“단원은 얼마나 모으셨어요?”
오해일이 물었다.
“간판을 오늘 달았으니까, 지금부터 모아야겠지.”
선생님이 태평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연기를 할 때는 매섭고 예리하지만, 세상 물정은 잘 모르셔. 그런 부분은 조금 도와드려야겠다.’
“그럼 현재 단원은 저랑 김도한 둘 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응? 너도?”
선생님은 뜻밖에 놀란 것 같았다.
“당연하죠. 을 연기할 기회를 놓칠 순 없습니다. 배우로서 욕심이 나거든요.”
“너 요즘 엄청 바쁘잖아.”
김도한까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우가 연기하는 거 말고 바쁠 일이 뭐가 있어?”
“연기가 연극만 있는 건 아닌데···”
선생님은 생각에 잠겼다. 제자의 앞길이 걸린 문제니 신중해지는 것이다.
“아직 선생님한테 배워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해일아,”
나는 매니저 오해일을 불렀다.
“응?”
“우리 시간 뺄 수 있지?”
“어··· 그게 먼저 대표님과 상의해야겠지만, 뭐 그래도··· 어떻게든 스케줄은 조정할 수 있을 거야.”
오해일의 대답에 선생님의 표정이 환해졌다.
“나야 네가 들어오면 대 환영이지. 그럼 보자. 단원이 두 명이 됐네.”
선생님은 은근히 기뻐하셨다.
“다른 단원은 어떻게 모집하실 거예요?”
김도한이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전단지 붙여야지. 사무실 안에 있어.”
사무실에 들어가 선생님이 아침에 만들어 둔 전단지를 들고 나왔다.
극단 「꿈」
– 오디션
– 00명
– 오디션 0월 0일 0요일
– 전화 xxxxxxx
– 제작 및 연출 스텝 항시 모집
배역 오디션은 이 주 뒤였다. 시간이 촉박했다.
김도한, 오해일과 극단 밖에 나와 긴급 토론을 벌였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허술한 게 너무 많아.”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천재들의 특징 중의 하나지.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지만, 다른 건 영 젬병이야.”
선생님의 현실 감각에 오해일이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김도한이 물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우선 전단지를 따로 만들어서 각 대학교 게시판하고 대학로, 을지로, 홍대 등에 붙이고, 인터넷 카페에도 올리자. 일단 단원 모집이 돼야 극단이 굴러갈 테니까.”
“알았어. 내가 전단지를 만들게.”
“난 인터넷 관련 게시판에 홍보할게.”
“해일아, 당분간 새벽 운동은 전단지 붙이는 걸로 대신하자.”
“그래. 그러자.”
의 초대 단원이 된 우리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
“늦은 건 아니지?”
나는 소속사 문을 열며 오해일에게 물었다.
“정확하게 3시. 안 늦었어.”
오후 3시에 장성태 대표님과 미팅이 있었다. 길이 막히는 바람에 늦어져 뛰어오는 길이었다.
“저희들 왔습니다.”
오해일의 인사에 김동국 실장이 일어섰다.
“왔어? 잠깐만 기다리자. 대표님, 손님과 아직 말씀 중이셔.”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대기 의자에 잠시 앉았다. 대표실의 유리창 너머로 장성태 대표와 손님이 보였다.
뭔가 얘기가 잘됐는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대표님과 손님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손님의 뒷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익숙한데?
박은하잖아.
“해일아, 박은하는 왜 또 저기 있냐?”
“아, 저번에 우리 회사 전화번호 좀 달라더니, 얘기가 잘 됐나 보네.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거든.”
오해일이 싱글벙글거렸다.
장성태 대표가 문을 열었다. 박은하가 인사를 하고 나왔다. 대표님은 뒤따라 나오며 박은하를 배웅했다.
“저희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으로 이렇게 핫한 박은하 씨를 회사 식구로 맞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앞으로 상생하는 파트너쉽으로 한번 잘해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장성태 대표와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 박은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런데 박은하는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눈길을 거둬 버렸다.
뭔가 찬바람이 쌩 불었다.
‘뭐지? 쟤 왜 저래?’
박은하는 나를 지나쳐 오해일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내가 쟤한테 잘못한 거 있냐?”
오해일에게 물었다.
“기분 탓 이야.”
오해일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장성태 대표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들어와. 여기 앉지.”
대표님이 자리를 권했다.
“저번에 ‘페어리 후속편’ 같이 찍었던 모델 맞지? 우리 회사와 계약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해 왔어, 너희들이랑 친구라며? 아무래도 우진이 네 덕분인 것 같다.”
장성태 대표님은 소소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두툼한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페이지를 펼쳐 나에게 내밀었다. 글씨가 빼곡했다.
“이건 우진이 네 스케줄이다. 이것도 추리고 추린 거야··· 우선 광고 쪽이 폭발적이야. 그렇다고 그쪽에서 하잔 다고 다하면 이미지가 금방 소진돼서 안 돼.
내 생각엔 일단 커피 정도는 괜찮은 것 같아. 광고는 상징성도 있잖아. 그 제품은 항상 일류 배우만 쓰니까. 그쪽에서도 신인인 널 지목한 건 파격적 선택이야.
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으로 찍으니까, 의 강렬한 이미지도 좀 순화될 거야.”
장 대표님은 내 이미지까지 꼼꼼히 신경 쓰며, 스케줄을 신중히 선택했다.
“네, 저도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음, 그래. 그럼 이건 하는 걸로 체크해두고, 일정 나오면 알려줄게··· 그리고 영화 드라마 시나리오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장 대표님이 사무실 한쪽에 쌓여있는 시나리오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생각하고 있는 차기작은 있어? 하고 싶은 배역이라든지, 장르라든지···”
대표님이 차기작 얘기를 꺼냈다.
내가 오늘 말하려 한 주제였다.
“연극을 하겠습니다.”
장 대표님의 수첩을 넘기던 손이 멈췄다.
잠시, 나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연극?”
“네. 민상기 선생님이 극단을 만드셨는데, 첫 작품으로 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거기에 출연하겠습니다.”
장성태 대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한 후,
“좋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그런 연극 한 편 올리고 나면 연기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달라질 거야.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흔쾌히 승낙을 했다.
사업자 마인드가 아니라 배우의 서포터 입장에 선 것이다.
“연극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주어진 스케줄은 소화하겠습니다.”
나는 덧붙여 말했다.
“그래. 서로 일정을 조정해가며 잘해 보자.”
똑똑
그때 김동국 실장이 보고서를 하나 주고 갔다.
“아, 이거···.”
장성태 대표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뭔가요?”
오해일이 물었다.
“유니콘에서 영화 홍보 차 잡은 스케줄인데··· 이게 예능이야.”
“예능이요?”
“저번에 제작사랑 통화를 했는데··· 나는 우진이 네가 예능에 나가는 건 아직은 좀 그래. 좋은 이미지를 한꺼번에 소진해 버릴 수 있거든. 잘됐을 때 얻는 게 큰 만큼, 못됐을 때 잃는 것도 커.
홍보 겸 차민혁과 둘이 출연해달라는데··· 차민혁 스케줄 때문에 녹화가 당장 3일 뒤야.”
장성태는 눈을 감고 목을 뒤로 젖혔다. 고민이 깊어 보였다.
“어떤 예능인가요?”
내가 물었다.
“ 유석재와 김희원이 엠씨지. 편안한 진행에 좋은 시청률, 나쁘진 않은데, 갑자기 개인기를 시키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장 대표는 진퇴양난에 빠진 기분이었다.
는 전생에 내가 좋아했던 예능이었고, 출연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의 스타일을 알고, 방송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대충 알았다.
“대표님, 그런 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예능 감각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걱정하시는 일 없이 깔끔하게 녹화 잘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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