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20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20화
해일이와 약속한 대로, 요가를 빠지고 전단지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른 새벽, 대문 앞에 해일이가 와있었다.
박은하와 함께.
“넌 웬일이냐?”
박은하에게 물었다.
“요가 못 간다고 전화했는데, 은하도 우리 도와주고 싶대. 일손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잖아.”
박은하에게 물었는데 오해일이 변명하듯 말했다.
“그래. 일손은 많으면 좋지. 택시나 잡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콜택시 불러놨어. 좀 있으면 올 거야.”
“아이고, 준비성 철저한 짜식!”
나는 해일이에게 헤드락을 걸며 장난을 쳤다. 해일이도 내 허리를 잡고 버티면서 반격했다. 우린 서로를 밀고 당겼다. 아이처럼 신나게.
찌릿!!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찌릿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박은하가 한심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런 애한테 내가 요 며칠 끙끙 댔던 거야? 이건 뭔가 잘못됐어, 분명히.’
박은하는 최근 자기를 아프게 했던 열병의 실체를 확인해야 했다.
지금 당장.
“야! 배우진! 너 나 좀 봐.”
“응?”
“내 눈 똑바로 봐.”
“왜?”
“확인할 게 있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박은하가 다짜고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황스러워 나는 눈을 피했다.
박은하는 내가 피하지 못하게 얼굴을 꽉 움켜잡았다. 나는 꼼짝없이 박은하의 눈을 쳐다봤다.
잠시 후, 내 얼굴을 잡고 있던 손아귀 힘이 스르륵 풀렸다.
박은하는 실망스러운지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됐어. 역시, 없어. 없어. 그런 게 없다고.”
오해일과 나는 서로 눈치만 슬금슬금 봤다.
“역시 그때 그 눈빛은 연기였어. 가짜였다는 거지. 진짜였음 지금도 있어야 하잖아··· 괜히 끙끙 앓았네.
오늘 나와서 확인하길 잘했지. 음, 잘했어··· 가슴도 하나도 안 뛰고 설레는 느낌도 없잖아.”
박은하는 혼잣말을 쏟아냈다.
“넌 정말 엉뚱해. 도대체 뭔 말이냐?”
“알 거 없고, 너 그 눈빛 조심해라. 아무데서나 발사하고 그러지 말고.
그냥 잘 간직해둬. 네 눈 속에. 알았지?”
그때, 콜택시가 왔다.
“춥다. 빨리 타자.”
우리는 대학로로 갔다.
***
대학로엔 크고 작은 극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여기저기 공연을 알리는 현수막과 전단지가 연극의 메카임을 알렸다.
“우리 극단도 이런데 있으면 좋겠다.”
“그러게. 이렇게 모여 있는 게 좋은데··· 정보도 빠르고.”
“그러니까 첫 연극이 잘 돼야지. 자 빨리 붙이자.”
나는 전단지를 꺼내 전봇대로 갔다.
“이게 효과가 있을까?”
박은하가 테이프를 잘라 주면서 물었다.
“뭐.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니까··· 자 이제 한번 달려볼까?”
내가 말했다.
“잠깐만.”
해일이가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내 은하와 내게 내밀었다.
“겨울바람에 손가락이 꽁꽁 얼어 전단지를 못 붙이는 일은 없어야겠지?”
손난로였다.
“안 그래도 벌써 손이 굳어오고 있었는데··· 해일이는 정말 섬세해.”
박은하는 손난로를 흔들어 뺨에 댔다.
“너무 세게 비비면 터지니까 살살 비벼. 얼굴 새까매진다.”
해일이의 말에 박은하가 피식 웃었다.
“여기 너무 넓어서 함께 다니면 얼마 못 붙일 것 같아. 전단지를 나눠서 각자 흩어지자. 다 붙이면 저기 광장 입구에서 기다리기.”
“좋아.”
“알았어.”
나는 해일이와 은하를 리드했고, 그들은 잘 따라줬다.
우리는 전단지를 서른 장씩 나누고 테이프를 챙겼다.
따뜻한 손난로도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저기 뒷길로 해서 오른쪽으로 돌아 나올게. 해일이는 저기 왼쪽으로 돌아 나와. 은하는 대로 쪽을 맡아. 무슨 일 있음 전화하고.”
“응.”
“응.”
우리는 각자 맡은 구역으로 출발했다.
나는 가볍게 달리며 전봇대, 게시판, 건물 벽 등 사람들 눈에 띌만한 곳에 전단지를 붙였다.
추위에 손가락이 얼어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손난로로 녹여가며 열심히 붙였다.
이 전단지를 보고 의 단원이 늘고, 실력 있는 배우가 오디션을 많이 보러 와주길 바랬다.
한 바퀴 돌고 나자 내 손에 있던 서른 장의 전단지가 다 사라졌다. 광장 입구에는 오해일과 박은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붙였어? 별일 없었지?”
나는 해일이와 은하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대로엔 버스 정류장이나 게시판이 많아서 금방 끝냈어.”
박은하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전단지 붙이는 알바는 중학교 때부터 해온 일이야. 나한텐 식은 죽 먹기지.”
그러고 보니, 해일이는 경력직이었다.
“저 앞에 포장마차 있더라. 거기 가서 따뜻한 어묵 국물이라도 먹고 헤어지자.”
“그래.”
“좋아.”
우리는 언 몸을 녹이고 허기를 채우러 새벽까지 영업하고 있는 포장마차로 향했다.
“아줌마, 여기. 어묵 좀 주세요.”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을 쭉쭉 들이켰다.
캬~
“와, 아. 속이 다 풀린다.”
얼었던 몸이 한 번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근데, 대표님은 너랑 계약했다던데. 사실이야?”
오해일이 어묵 국물을 내려놓으면서 은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응, 조건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무엇보다 사장님 마인드가 맘에 들더라.”
“그럼, 활동 계획은 어떻게 돼? 계속 모델만 할 거야?”
내가 물었다.
전생에 흐지부지됐던 박은하의 경력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일단 그렇게 생각했는데, 대표님은 다른 아이디어가 있으신가 봐. 춤 노래는 어느 정도 하냐고 묻던데”
“그래?”
해일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내가 춤 노래가 그렇게 나쁘지 않거든. 완전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수준은 돼.”
전생에 박은하랑 만나던 시절, 노래방에서 ‘엄정아의 배반의 튤립’을 부르던 게 생각났다.
맛깔났었지.
“그래서?”
오해일이 계속 물었다.
“대표님 눈빛이 확 변하시던데. 그러면서 걸 그룹 얘기하시더라. 회사에 노래도 잘하고 작곡도 하는 가수 지망생이 있는데, 그 지망생이랑 나랑 어울리겠대.”
가수 지망생?
전생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군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우선은 그러신가 봐.”
“그렇구나.” 해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우리는 이제 한 식구 맞지? 건배 한 번 하자.”
해일이의 제안에 우리는 어묵 국물 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 폴 엔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겨울 새벽, 우리는 애사심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
오늘은 녹화 날. 김동국 실장님이 해일이와 나를 방송국까지 태워줬다.
“해일이 운전 연수는 잘 받고 있지?”
김 실장님이 해일이에게 물었다.
“네. 잘 받고 있습니다.”
“그래, 불편하더라도 면허 나올 때까지는 내가 태워줄게.”
“실장님 너무 힘드시지 않을까요?”
해일이가 말했다.
“이 정도로 뭘. 예전에 잘 나가던 걸그룹 맡았을 땐, 새벽부터 그다음 날까지 대한민국을 세 번 왕복한 적도 있어.”
“와우. 그걸 어떻게 감당해요?”
“대표가 스케줄 들어오는 대로 다 잡아 버리는데 어떡해? 안 가면 위약금인데··· 하루에 3억을 버는데 먹는 거는 매일 천 원짜리 김밥이더라.”
“와우.”
“헐.”
김 실장님의 무용담에 우리는 입이 쫙 벌어졌다.
실장님이 기분 좋게 웃었다.
차가 방송국에 도착했다.
“유석재가 알아서 잘 살리니까 오바만 하지 마. 편안하게 하면 돼.”
“네. 실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담당 스태프가 현관 앞에 나와 있었다. 그는 해일이에게 ID 카드가 걸린 목걸이를 주었다.
“배우진 님 대기실은 3층 3-1실입니다. 거기서 대기하시다 10시 녹화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대기실 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와아. 이게 다 뭐냐?”
“무슨 여기 식물원이야?”
대기실 안은 꽃다발, 화환, 화분이 가득했다. 팬들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오해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이런 거 처음 봐. 진짜 대단해.”
팬들의 사랑을 실감하니 내 기분도 한껏 업 됐다.
“해일아, 여기 사진 좀 찍자. 팬 카페에 감사 인사 올려야겠다.”
“그래. 그래.”
해일이는 디카를 꺼내 꽃 속에 파묻힌 나를 세심히 찍어주었다.
똑. 똑.
“들어오세요.”
해일이가 말했다.
“우진. 우진. 오랜만이다.”
차민혁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영화 쫑파티 이후로 첫 만남이었다.
“선배, 잘 지냈어요?”
우리는 반가움에 서로 껴안고 악수를 나눴다.
차민혁은 오해일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이야.”
“네, 선배님. 좋은 소식 들었습니다. 사극 한다면서요.”
오해일이 차민혁에게 말했다.
해일은 소식이 빨랐다. 매일 신문과 인터넷 기사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어? 아직 확정은 아니고 검토 단계다. 사극은 아무래도 연기도 그렇고, 좀 힘들잖아.”
“선배 정도면 충분하죠. 잘하실 거예요.”
“이번 영화하면서 연기가 많이 늘긴 했어. 우진이 네 덕분이다.
참, 너는 요새 뭐해? 차기작 정했어?”
“저는 연극 준비하고 있어요.”
“연극?”
“민상기 선생님이 극단을 만드셨거든요. 거기 첫 작품 합니다.”
“그래?”
차민혁은 배우진에게 또 한 번 놀랐다.
‘역시 달라. 영화 드라마 시나리오가 물밀 듯 들어 올 텐데, 그걸 다 마다하고 연극이라니. 얜 정말 연기에 미쳤어.’
“그건 그렇고. 너 예능은 처음이잖아. 내가 너보다 예능은 더 잘할 거다. 오늘 나만 따라와.”
차민혁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네, 선배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열린 대기실로 엠씨 유석재가 들어왔다.
“여기들 계셨네.”
“아, 선배님.”
나는 유석재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에이, 인사 그렇게 하지 마. 편하게 해요. 와아. 역시 잘 생겼네. 예능은 처음이죠?”
유석재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네. 잘 부탁합니다.”
“아니. 내가 더 부탁해야지. 이렇게 어려운 걸음 해주셨는데. 오늘 편하게 해요. 너무 웃기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아요.
노철홍이 짓궂은 질문을 할 수는 있는데, 그냥 넘겨도 돼.
내가 잘 살려 줄게요.”
유석재는 예능이 처음인 내가 걱정돼서 온 것 같았다.
역시 배려의 아이콘!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만 믿겠습니다.”
씩씩한 내 대답에 유석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석재 형은 여전하구나. 전생에서도 나만 보면 좋은 얘기 많이 해줬는데···’
그때, 복도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FD가 유석재를 찾았다.
“녹화 10분 전입니다.”
“알겠습니다.”
유석재의 행동이 빨라졌다. 시간을 체크하며 나를 돌아봤다.
“우진 씨. 편하게 해요. 긴장하면 더 힘들어요.”
“네.”
유석재는 급하게 문을 닫고 나갔다.
“자, 이거 하나 먹어.”
유석재가 나가고, 차민혁이 초콜릿 하나를 까서 내 입에 넣었다.
“배고프면 아무 생각도 안나. 당 충전은 필수야.”
“네, 선배도 같이 드세요.”
우리는 초콜릿을 함께 까먹으며, 녹화에서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대충 입을 맞추었다.
재미를 위한 약간의 과장은 필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미리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은데.”
오해일이 시간을 체크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가자.”
“네, 선배. 가죠.”
우리는 녹화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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