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24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24화
의 재정 상태가 심각했다. 이대로 방치하다 오디션이나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김도한과 오랜 고민 끝에 ‘일일 찻집’을 열기로 했다. 어느 정도의 자금을 모을 수 있길 바라면서···
민상기 선생님께 ‘일일 찻집’ 이야기를 꺼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오직 연기’만을 사랑하는 민상기 선생님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낼까 조심스러웠다.
“선생님, 극단이 힘듭니다. 도한이랑 ‘일일 찻집’을 해보겠습니다.”
“일일 찻집?”
“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혼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래. 일일 찻집이 있었지. 하아! 이거 진짜.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선생님은 의외의 반응을 보이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셨다.
“옛날에도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고 일일 찻집 많이 했었거든. 어떤 때는 너무 많이 해서 365일 찻집으로 바꾸자고 할 정도였어. 극단보다 수입이 더 좋았지.”
선생님은 추억에 빠져 잠시 즐거워했다.
그리고 구(舊) 연극 동기, 현 카페 사장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상기가 일일 찻집 한다는데 내가 그 정도도 못하겠냐?”
카페 사장 친구 덕분에 커피 머신과 식기류가 한 번에 해결되었다.
선생님은 꽃집을 운영하는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민상기가 찻집 해서 연극 올린다는데 그 정도는 도와줘야지.”
찻집 데코레이션도 끝났다.
선생님은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의자와 테이블이 해결됐다.
거의 모든 준비를 선생님 혼자 다 했다. 도한이와 나는 초대장을 만들고, 차 만드는 연습만 하면 됐다.
***
‘일일 찻집’의 오픈 일이 되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우리는 손님을 기다렸다.
“우진아, 원래 이렇게 떨리는 거 맞아? 긴장된다.”
해일이는 물 한 컵을 단숨에 마셨다.
“나도 사실 조금 그래. 무대 위에 설 때랑 또 다른 기분이야.”
“손님이 많이 올까?”
“진짜 모르겠다. 손님이 쏟아질지 파리만 날리게 될지.”
“티켓에 네 이름 넣었어? 그러면 엄청 몰려 들 텐데.”
“선생님이 그건 하지 말래. 이건 극단 이름으로 하는 거니까. 나도 맞는 생각인 거 같아.”
딸랑~ 딸랑~
현관문에 달린 종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민상기 선생님, 김도한, 오해일 그리고 나의 눈이 일제히 문으로 향했다.
“오빠~”
나수연이 반갑게 뛰어 들어왔다. 뒤로 박은하랑 오설기까지.
‘폴 엔터테인먼트 걸그룹’이 첫 손님이었다.
춤을 담당할 멤버를 찾지 못해 걸그룹 진행이 막혀있단 소식을 듣고, 오해일과 나는 ‘춤 신동 나수연’을 추천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장기자랑에서 봤던 나수연의 춤은 찐이었으니까.
장 대표님은 ‘하늘 소망원’에 직접 찾아가 나수연을 만나고, 수연이의 춤을 봤다. 다음 날 회사로 불러 카메라 테스트도 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합격!!
“여기로 앉아.”
꽃장식이 예쁘게 되어있는 창가 자리로 박은하, 오설기, 나수연을 안내했다.
“뭐 드시겠습니까?”
손님에 대한 예의로 나는 높임말을 썼다.
“왜 이래?”
박은하가 정색했다.
“저는 카페 라떼 먹겠습니다. 선배님.”
오설기가 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난 우유. 키 더 커야 해.”
나수연이 말했다.
“난 아메리카노. 설탕 듬뿍 알지?”
박은하가 오해일을 보고 말했다.
“응, 맛있게 해 줄게.”
“호떡 아이스크림도 좀 줘. 다이어트를 너무 했더니 당 떨어져.”
“알았어.”
오해일이 주문을 받아 카운터로 갔다.
“나수연, 잘하고 있지? 내가 너 감시한다고 약속하고 원장님께 걸그룹 허락받은 거야. 오빠 눈 크게 뜨고 있다.”
나는 나수연을 향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언니들한테 물어보면 알걸. 근데, 오빠 우리 걸그룹 이름 생겼다.”
“그래?”
“이에요.”
오설기가 대답했다.
“오, 이름 좋다. 뭔가 느낌이 좋아.”
“네.”
오설기는 얼굴을 붉히며 창가를 내다봤다.
주문한 음료와 호떡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오해일은 호떡을 작게 잘라,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었다. 그리고 접시에 담아 미스 그린 멤버들 앞에 놓았다.
“음. 호떡 아이스크림 진짜 맛있어. 환상이다.”
그녀들은 맛있게 먹으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우리 이제 갈게.”
“벌써? 한 시간도 안됐는데.”
“안 돼. 이것도 대표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거야. 들어가서 연습해야 돼.”
“그래, 그럼 잘 가.”
“오빠, 안녕.”
“선배님, 안녕히 계세요.”
“간다.”
그녀들이 떠났다.
찻집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에 선생님의 친구 분들이 왔다 갔다.
폴 엔터테인먼트 대표님과 실장님도 다녀가셨다.
드문 드문 손님들이 왔다 갔다.
.
.
.
부모님이 오셔서 극단 내부를 구경하고 커피를 마셨다. 후원금이라며 흰 봉투를 주시고 가셨다.
친구들도 몇 명 더 오고···
어마맛!
지나가던 커플이 호기심에 들어왔다.
“배우진 맞죠. 페어리 배우진.”
“네. 맞습니다.”
“어떡해. 어떡해.”
“여기 앉으세요.”
“저기, 사인 좀.”
나는 커플에게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 주었다.
입이 귀에 걸린 커플도 커피를 마시고 갔다.
점심이 한 참 지났다.
드문 드문 오던 손님의 발길이 끊기고 찻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우진아. 이거 예상했던 그림이니?”
“아니. 이래선 재료값도 안 나오겠다.”
“이렇게 안 올 리가 없는데.”
“여기가 너무 구석진 곳이라서 그런가?”
“그러니까 ‘일일 찻집’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해야 한다니까. 월요일이 뭐냐? 월요일이. 애들 다 학교 가고 직장인들도 회사 가는데, 오고 싶어도 어떻게 와?”
김도한이 투덜거렸다. 도한이는 처음부터 토요일에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남아있던 한 명의 손님마저 가고 찻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자금을 좀 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떡하지??’
근심이 깊어갔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갑자기 밖이 소란해졌다.
“무슨 일이지?”
밖으로 나가보았다.
“헉.”
“뭐야?”
“오 마이 갓.”
배우진 팬클럽 이름표를 단 관광버스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배우진 팬클럽 러블리스타 – 경남] [배우진 팬클럽 러블리스타 – 전라] [배우진 팬클럽 러블리스타 – 충주] [배우진 팬클럽 러블리스타 – 부산]끼익
끼익
“해일아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오늘 일일 찻집 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
와아악
와아
배우진스액터스!!!
배우진스액터스!!
배우진스액터스!!!!!
순식간에 일일 찻집이 배우진 팬미팅 장으로 변했다.
각 지역 팬클럽 회원들은 자기들인 준비해 온 음료와 다과를 펼쳤고, 셀프서비스로 커피를 타 마셨다.
그리고 모금함을 만들어 그곳에 기부금을 넣었다.
배우진은 싸인을 하고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팬들을 위해 노래도 몇 곡 뽑고 함께 춤도 추었다.
목표했던 모금액은 순식간에 차 버렸지만,
팬들은 밤늦도록 계속 밀려들었다.
***
배역 오디션 전에 연극을 한 편 보고 싶었다. 김도한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고, 우리는 대학로로 가서 연극을 한 편 봤다.
유능한 ‘인권 변호사’가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조직 보스’의 변호를 맡는다.
협박과 살인을 저지른 확실한 증거가 있지만, 증거를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무죄를 받아 낸다.
그 후로 양심의 가책을 느낀 변호사는 스스로 자신을 고소하고,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로 나는 나를 변호할 자격을 박탈하며, 나의 죄에 대한 벌을 받겠습니다.]다소 무거운 주제에 묵직한 연기가 더해져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극장을 나와 김도한과 함께 노천카페로 갔다. 그냥 돌아가기엔 가슴에 여운이 너무 진했다. 우리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전부터 계속 생각해 봤는데··· 영화는 감정선을 길게 가져가니까, 메소드 연기가 가능할 것 같아. 반면 연극은 감정의 호흡이 짧아서 힘들지 싶어.
오늘 본 연극의 인물만 해도 1막에서는 정의감이 넘치는 변호사지만, 2막에서는 비겁해져야 한다 말이지. 물론 딸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어떻게 메소드 연기가 될 수 있겠어?”
나는 내 의견을 말했다.
“그렇긴 하다. 1막에선 자신감이 넘치는 변호사, 2막에는 갈등하는 변호사, 3막에는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악마로 변하니까.
그래서 연극 연기가 힘들다고 하나 봐.
그런데 ‘샤일록’은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쭉 가잖아. 메소드 연기로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샤일록의 감정이 하나로 이어진다고?
“연극 자체의 속성 때문에 안 될 것 같은데··· 악독한 샤일록이라 하더라도 그가 악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깨닫고 파괴해 버리니까. 감정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써야 해.”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향을 음미한 후 한 모금 마셨다. 최근에 맛을 들이게 됐는데 취향에 맞았다.
“그런 연기법을 「미카엘 체홉의 심리 제스처」라고 하죠.”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우리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고급 니트에 짙은 고동색 머플러를 두른, 삼십 대 초반, 유럽 감성을 물씬 풍기는 남자였다.
“잠깐, 합석해도 될까요? 이야기의 주제가 흥미롭네요.”
남자는 대화에 끼이고 싶어 했다.
“···아, 네. 여기 앉으세요.”
나는 남자를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 하시나 봐요. ‘샤일록’을 언급하셔서.”
잔잔한 목소리에 품위가 넘쳐흘렀다.
“지금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의 연출은 샤일록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욕심이 많으면 실패하기 쉽고, 욕심을 버리면 성공하기 쉽죠.”
“성공을 하고 싶으면 연극을 버려야 하고, 연극을 살리고 싶다면 성공을 버려야겠죠.”
남자의 말에 내가 응답했다.
내 대답에 남자는 살짝 미소 지었다.
“좀 전에 ‘심리 제스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에 관해 좀 더 듣고 싶은데요.”
나는 남자에게 부탁했다.
“메소드 방법은 자신의 내면을 캐릭터에 일치시키는 거라면, ‘심리 제스처’는 외면의 동작을 내면···”
나와 김도한은 남자의 말에 한참을 빨려 들어갔다. 한 시간이나 훌쩍 넘겼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앤소니 홉킨스는 메소드 연기하는 사람을 다 정신 분열증이라고 했단 말이죠.”
남자가 갑자기 시계를 보더니 급하게 일어섰다.
“아,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저는 먼저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극 준비 잘하세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짧은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나 버렸다.
“저분 놀랍다. 해박한 지식에 쉬운 설명. 보통 내공이 아닌데.
아 근데, 성함도 못 물어봤다.”
“그러게. 연락처라도 알아둘걸.”
우리는 남자가 사라졌던 길을 아쉬운 눈으로 계속 바라봤다.
제라르 윤은 광고 제작 회의에 늦었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한국에선 처음이었다.
회의 중, 모델의 프로필을 받아 보곤 놀랐다.
‘아까 그 청년의 이름이 배우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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