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25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25화
서원 예고 출신 강정우와 안효진은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극단 꿈 오디션이 있는 날이었다.
역수동 변두리 근처에 있다는 극단을 찾아 헤맸다. 약도를 들고 있었지만 길 찾기는 만만치 않았다.
강정우는 작년 ‘젊은 연기 축제’ 때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서원 예고 에이스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대기실에서 배우진을 만났을 때만 해도 ‘얼굴만 잘 생긴 놈이 뭘 하겠어.’라고 생각했다. 자신 만만했다.
하지만 바로 앞 순서였던 배우진의 연기는 심사위원과 관객뿐 아니라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정우까지 압도해버렸다.
강정우는 그 순간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졌고, 대사 한마디 뱉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서원 예고의 명예와 강정우의 자존심이 한 방에 날아가던 순간이었다.
그나마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 안효진이 금상이라도 받아 온 것이 서원 예고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너 배우진 때문에 오디션 보는 거야?”
안효진이 물었다.
“응.”
“뭐 트라우마 극복 그런 건가?”
“맞아.”
강정우가 퉁명하게 대답했다.
“뭐야? 너 답지 않게.”
“배우진 걔를 제대로 보고 싶어. 내가 당한 게 실력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너도 같은 이유로 가는 거 아니야?”
“나? 난 아닌데?”
안효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 제치고 대상 탈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배우진에게 진 건 너나 나나 똑같아.”
“연기가 무슨 백 미터 달리기냐?”
“그럼 오디션을 보려는 이유가 뭔데?”
“너 몰랐어? 나 셰익스피어 광팬이야.”
“대단한 안효진이다.”
강정우는 ‘놀러 올 거지?’를 봤었다. 배우진이 연극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인터넷을 찾아봤다.
연극 관련 게시판에서 배역 오디션 정보를 수월하게 얻을 수 있었다.
강정우는 오디션 날짜를 체크하고 극단의 약도를 그렸다.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 대본을 구해 읽었다.
자석에 끌리듯 오디션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갔다.
이번 연극을 통해, 사실상 손 놓고 있던 연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약도대로라면 저기 저 건물인 것 같은데.”
안효진이 휑하니 서있는 창고를 가리켰다.
“한 번 가 보자.”
현관 앞에 작은 간판이 달려있었다.
강정우와 안효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오디션을 보러 사람들이 제법 왔다.
“다행히 애쓴 보람이 있다.”
“그럼 우리가 새벽에 전단지 붙인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도한이도 인터넷 게시판마다 매일매일 공지 올리고 질문에 답변해주고. 고생 많았지.”
밀려드는 참가자들로 우리는 바빠졌다.
나는 신청서를 받아 순서대로 쌓고, 해일이는 편집한 대본을 각자에게 나눠 줬다.
대본을 받은 지원자는 상자에서 제비를 뽑았다.
제비로 뽑힌 역할을 오디션 무대에서 연기해야 한다.
“그래쉬아노.”
“안토니오.”
“로렌조.”
“살레이오.”
“슬레이니오”
“포샤.”
참가자들은 여기저기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방금 결정 난 자기의 배역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음 지원자가 신청서를 내밀었을 때, 나는 멈칫했다.
“어? 연극제때 우리 만났었지? 서원 예고. 강정우.”
전생의 첫 작품 도 함께 했기에 나는 강정우를 쉽게 알아봤다.
“이거 여기 내면 되는 거야?”
강정우는 내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 일만 했다.
“어. 나한테 주면 돼.”
나와 눈도 맞추지 않았다.
그리고 대본을 받고, 제비를 뽑았다.
“안토니오.”
강정우는 안토니오를 뽑았다.
다음으로 안효진.
“포샤.”
강정우와 안효진도 다른 참가자들처럼 구석에 자리를 잡고 대본을 펼쳤다.
“야, 강정우. 너 배우진 만나러 왔다면서? 왜 아무 말 안 해?”
“보러 왔다고 했지. 얘기 나눈다고는 안 했어.”
“그래서, 트라우마는 좀 극복되셨나?”
“두고 보면 알겠지.”
강정우는 대본을 펼쳐 안토니오 파트를 확인했다.
준비가 끝났다. 지원서를 낸 참가자는 이백 명 정도였다.
연출가 민상기가 앞에 나섰다.
“우선 이번 오디션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오디션은 기존의 오디션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자유연기는 없으며 지정 연기만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 전체의 리딩을 릴레이식으로 합니다.”
다소 생소한 방식에 극단 안이 술렁였다.
“각 배역별로 줄을 서세요. 여기서부터 차례대로 안토니오, 포샤, 그래쉬아노, 슬레이니오, 네릿서, 제시커, 로렌조입니다. 빠른 번호가 앞입니다.”
오해일이 돌아다니면서 지원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저기, 질문 있습니다.”
한 지원자가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여기 ‘바사니오’와 ‘샤일록’은 빠졌는데요.”
“바사니오와 샤일록의 배역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샤일록’과‘바사니오’는 배우진과 김도한으로 이미 내정돼 있었다. 민상기와 진행한 여러 번의 리딩에서 그 둘은 안정적이고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자, 그럼 먼저 안토니오, 살레리오, 슬레이니오 나오세요.”
지원자 세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리딩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나갑니다. 만약 자기 순서를 놓치면 아웃입니다. 자, 준비 됐죠. 시작합니다.”
시작 구호와 함께 리딩이 시작 되었다.
안토니오역을 맡은 지원자가 첫 스타트를 끊었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기분이 울적한지 모르겠네. 우울증 때문에 난 아주 지쳤어. 나 때문에 자네들도 지쳤다지만, 내가 왜 이러는지···]안토니오의 대사가 끝나자 살레리오가 받았다.
[자네 마음이 먼 바다에서 파도 따라 흔들리고 있어서 그런 거야. 자네의 큰 배들은 모두 바람에 불룩해진 돛을 달고···]“살레리오, 말이 너무 빨라!! 천천히.”
민상기가 지원자를 즉석에서 평가했다.
[··· 큰 날개를 펄럭이는 독수리처럼 파도를 헤치며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을 테니까.] [하긴 나라도 그 많은 재산을 바다에 걸었다면 당연히 마음이 온통 바다에 나가 있어서 안절부절못할 것은···]“3번 슬레이니오 아웃. 다음 참가자 슬레이니오 인.”
슬레이니오 역을 맡고 있던 3번 지원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다.
“절 따라오세요.”
오해일이 3번 지원자를 무리에서 데리고 나와 나가는 문으로 안내했다.
“다음 슬레이니오. 계속 대화를 이어가.”
슬레이니오 역을 맡은 다음 지원자가 이어서 대사를 했다.
“힘을 빼! 용쓰지 마. 변비 걸렸어?”
“몸이 왜 이렇게 경직되어 있어!”
“점점 더 세게. 더. 더. 더.”
민상기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덥수룩한 머리가 수사자의 갈퀴처럼 휘날렸다.
“13번 아웃! 다음!”
“17번 아웃!”
지원자들이 오디션 방식에 익숙해지자 분위기가 한층 치열해졌다.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극단 내부에 가득 찼다.
2막으로 넘어가자 지원자들이 모두 바뀌었다.
[그래, 네릿서. 이 작은 몸뚱아리로 커다란 세상을 감당하는 일이 이젠 정말 싫어졌어.]‘포샤’ 역을 맡은 안효진이 포문을 열었다.
네릿서 역의 지원자가 다음 대사를 받아쳤다.
[그러실 만도 하실 테지요, 아가씨, 만일 아가씨의 불행이 지금 아가씨께서 누리고 계시는 행복보다 더 커진다면 말이에요.]“43번! ‘포샤’ 역 합격.”
안효진은 바로 배역을 따낸 첫 번째 합격자가 되었다. 흠잡을 데 없는 안정적인 연기였다.
오오.
와아.
부러움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2막도 끝나고 3막으로 넘어갔다.
배우진이 지원자들 사이에 들어왔다. ‘샤일록’ 부분의 리딩을 해주기 위함이었다.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서 야콥이 어쨌다는 건가? 이자를 받고 돈놀이라도 했다는 건가?]안토니오 역을 맡은 58번 참가자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천만에요. 이자를 받다니요. 나리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은 직접적인 이자는 아니지요. 야콥이 어떻게 했나 들어보세요. 삼촌과 약속을 했지요···]배우진이 ‘샤일록’의 대사를 그냥 읽었다. 상대 지원자의 실력이 드러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정도로만 연기했다.
[저 놈이 하는 소릴 들었나, 바사니오? 악마 같은 놈이 제 잇속을 위해서 성경구절까지 들먹거리는군. 저 놈이 성경구절 내세우는 건···]“감정을 억지로 꺼내려고 하지 마! 나 지금 연기하고 있습니다. 동네방네 자랑질이야?”
민상기가 58번 지원자를 몰아붙였다.
그 순간, 58번 지원자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다시!”
[악마가 짓는 미소 같은 거라고. 겉은 번드레한데 속이 썩은 사과···]“똑같잖아. 어깨가 올라갔어. 어깨에 힘을 빼고 호흡을 하란 말이야.”
민상기는 58번의 가능성을 보았다. 힘만 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마음에 더 몰아세웠다.
[악마가 짓는 미소 같은 거라구. 겉은 번드레한데 속이 썩은 사과 같단 말이지, 속이 검은 놈일수록 겉은 번지레해서 보기가 좋은 법이지!] [삼천 더컷이라. 거금이군. 석 달이라. 가만있자, 열두 달에서 석 달을 빼서 연리로 계산하면 이자가 얼마가 되나.] [그래, 샤일록, 변통 좀 해주겠소?]“58번 아웃.”
민상기의 입에서 ‘아웃’이 나왔다. 58번 지원자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대본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발광했다.
“야이 X팔. 내가 뭘 힘을 줬는데. 그러면 대사가 화를 내는데 힘을 빼면서 화를 낸단 게 말이 돼.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리고 이게 뭐가 오디션이야.”
오해일이 달려들어 제지했지만, 58번은 더욱 날뛰었다.
“그리고 배우진 이 사람도 내가 볼 때 별로 잘하는 거 없어. 여기 다른 지원자들보다 나은 게 뭐야? 다른 사람들은 쌔빠지게 하고 있는데, 이름 조금 알려졌다고, 거저먹는다는 게 말이 돼? 어! 샤일록이 웃겠다.”
58번 참가자는 배우진을 걸고넘어지며 행패를 부렸다.
무표정하게 58번을 바라보던 민상기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배우진. 지금부터는 네 연기를 해. 도우미 역할은 끝났어.”
배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호흡을 길게 들이마셨다.
‘배우진!’
강정우가 신경을 바짝 세웠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변했어.’
강정우는 포착했다.
갑자기 늙고 표독스러운 샤일록이 되어버린 배우진을.
[안토니오 나리, 나리께서는 지금까지 내가 거래소에만 가면 이자를 받고 돈놀이를 한다고 내게 욕을 수없이 하셨지요.]배우진의 첫 대사에 극단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다들 숨소리도 죽인 채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그래도 난 어깨를 움츠리고 지금껏 참아 왔어요. 우리 유태인은 참는 일에는 이력이 났거든요. 당신은 날 이교도라느니, 사람 잡을 개새끼라느니 하면서 욕을 하시고 이 유태식 저고리에 침을 뱉으셨지요. 내가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쓰는데 날더러 나쁜 놈이라고도 하셨어요···]분명 ‘샤일록’은 분노로 꽉 찼지만, 배우진의 목소리는 오히려 점점 줄어들었다. 목소리가 작아질수록 샤일록의 분노는 더욱 강렬해졌다.
[이제 와선 날더러 돈을 꾸어주겠느냐 안 꾸어주겠느냐 대답을 하라고 하시는군요.]밑바닥까지 내려갔던 배우진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쇳가루를 씹는 것처럼.
[내가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리면 될까요?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될까요! 개새끼한테 무슨 돈이 있겠으며 있다고 한들 개새끼가 어떻게 삼천 더컷 되는 거금을 빌려줄 수 있겠소! 저에게 발길질을 하면서 개새끼라고 저에게 욕을 하셨지요. 그런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 드릴깝쇼?”라고 말씀을 드리는 게 정상인가요?]배우진의 연기가 거기서 멈췄다.
58번 지원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배우진의 기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벅! 저벅!
그때 누군가 배우진 앞에 섰다.
강정우였다.
[난 앞으로도 당신을 개새끼라고 부를 거구, 계속 침을 뱉고, 발길질도 하겠어. 돈을 꿔주더라도 행여 친구에게 빌려준 거라고는 생각 말아.]강정우는 그다음 이어진 안토니오의 대사를 쳤다.
‘안토니오’ 강정우는 ‘샤일록’ 배우진의 거친 눈을 정면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새끼도 치지 못하는 쇠붙이에서 이자를 받아먹으려는 자가 어디 있어? 차라리 원수한테 돈을 꿔줬다고 생각해. 그럼 계약을 어길 경우 떳떳이 위약금을 받아낼 수도 있을 테니까.] [아니 점잖은 나리께서 왜 그렇게 화를 내시고 그러십니까! 난 지금 나리와 잘 사귀어서 우정도 나누고 여태껏 받은 수모도 싹 잊어버리고···]배우진과 강정우의 연기는 극단 안의 소음을 모두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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