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26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26화
극단 꿈의 단원이 스무 다섯 명으로 불어났다. 썰렁했던 극단이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본격적인 연극 준비에 앞서 등산을 하기로 했다. 단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마음을 굳게 다지는 자리였다.
“헉헉.”
오디션에서 ‘포샤’ 역을 한 번에 따낸 안효진은 산을 오르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어제저녁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 힘이 없었다.
“우리 조금 쉬었다 갈래?”
김도한이 안효진에게 물었다.
김도한은 오늘 등산으로 안효진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맡은 ‘바사니오’의 연인 ‘포샤’ 안효진이니까.
김도한은 안효진과 속도를 같이 하며 친해질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안효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급기야 호흡이 거칠어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점점 뒤처지기까지 했다.
“여기 물 마시고 조금만 쉬자.”
김도한이 물병을 따서 안효진에게 내밀었다.
“헉. 그럴까? 헉, 헉.”
안효진은 나무에 기대어 물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기운이 약간 돌아왔다.
“내가 가방 들어줄게.”
“아니, 괜찮아.”
“바사니오라면 당연히 포샤의 가방을 들어줬을 거야.”
김도한의 말에 안효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순순히 가방을 내주었다.
“고마워.”
안효진이 다시 앞장섰다. 김도한은 뒤를 따랐다.
“배우진은 원래부터 연기 잘했어?”
안효진이 김도한에게 물었다.
“눈에 확 띄었지.”
김도한은 배우진이 학원에 온 첫날을 회상했다.
“학원에 온 첫날 민상기 선생님을 울렸다니까. 진짜 대단했어. 그때 난 그렇게 생각했어. 이 녀석은 타고난 연기 천재구나.”
“그랬구나···.”
“우진이의 놀라운 점은··· 자기 재능보다 노력을 더 한다는 거야. 정말 미친 듯이 노력해. 닮고 싶은 친구야.”
안효진이 멈춰 섰다.
“강정우랑 같은 과네. 물론, 정우가 한 방에 깨지긴 했지만.”
“오디션 때 보니 강정우 연기도 괜찮던데.”
“강정우도 잘하지. 헉, 서원 예고에서 3년 내내 전액 장학금 받았어. 배우진 헉, 아니었으면 지금 뉴욕 예술대학교에 입학했을 걸. 헉, 헉. 헉.”
안효진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흘렀다.
“효진아 우리 저기 바위에 앉아서 쉬었다 가자.”
“나 때문에 너까지 너무 쳐지는 거 아닐까?”
“빨리 간다고 좋을 거 하나 없어.”
“고마워.”
“뭘.”
나는 강정우랑 아무 말 없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강정우는 아직 나와 대화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굳은 얼굴, 무거운 발걸음.
이럴 땐 가만히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고 완만한 오솔길이 나타났다.
나는 심심해서 휘파람을 불었다.
오설기가 만든 의 멜로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야, 배우진.”
강정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오. 이제 입을 열기로 한 거야?”
“휘파람 불지 마.”
“응?”
“휘파람 불면 뱀 나와.”
전혀 엉뚱한 얘기에 나는 그만 웃을 뻔했다.
“그게 뭔 소리야? 휘파람 불면 뱀이 나온다고? 귀신 나온다는 얘긴 들었어도 뱀 나온다는 얘긴 처음이다.”
“귀신은 없잖아.”
“그렇긴 하다.”
그때, 오솔길 옆으로 정자가 보였다.
“좀 쉬었다 갈래?”
“그러지 뭐.”
나는 정자에 들어가 강정우와 마주 보고 앉았다.
“늦었지만 축하한다. ‘안토니오’ 배역 따낸 거.”
강정우는 한참을 바닥만 바라보다 머뭇거렸다.
“···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부끄러웠을 때가 언젠지 알아?”
“···”
“젊은 연기 축제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무대를 내려왔던 순간이야. 그런 치욕은 처음이었어.
연기로 밀린 적은 없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지.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꿈이 아닌가?
며칠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어. 연기고 뭐고 다 하기 싫더라고. 짜증 나고··· 그래서 다 때려치우려고 했었다.”
“다행이다. 네가 안 그만둬서. 그랬다면 강정우의 ‘안토니오’는 없었겠지.”
강정우는 씩 웃었다.
바람이 우리들의 머리를 깊게 쓸고 지나갔다.
“때려치우지 못한 이유는 바로 너였어. 너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어.”
“··· 그래서? 알게 됐어?”
“모르겠어. 지금도···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내가 연기가 정말 고팠다는 거. 난 연기를 끊을 수 없다는 거.
오디션 때 너랑 대사 주고받는데··· 미치겠더라. 너무 좋아서.”
“나도 연기가 미치게 좋아.”
나와 강정우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
차가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로 들어섰다. 국도도 곧 끝나고 산길을 탔다. 꼬불꼬불 산길 끝에 어떤 멋진 풍경이 있을지 기대가 됐다.
“얼마나 좋은 경치 길래 이렇게까지 찾아들어간대요?”
오해일이 김동국 실장에게 물었다.
“이번에 CF 감독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야. 광고를 예술 영화처럼 찍는다는 거지. 실제로 예술 영화감독이기도 하고. 에서 이번 광고에 애 많이 썼다.”
“이런 첩첩산중에 뭐가 있을까요?”
“로케이션 매니저가 장소 100개를 구해갔는데, 다 퇴짜 맞고 101번째에 오케이 난 곳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이야.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면서, 맑은 호수가 아름답고 하늘이 낮게 깔린 곳. 뭐 그런 곳을 찾아달라고 했대.”
“감독 고집 있네요. CG 수준이 많이 향상되어서 요즘은 대개 세트장 촬영을 선호하던데···”
“그렇게 찍을 거면 이 감독 섭외도 안 했지. 감독 이름이 제라르 윤이라고 했던가?
프랑스 유학파에···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가봐.
예술적 영상미를 담는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그림 하나는 멋들어지게 나올 거야.”
“에서 돈 많이 썼겠는데요?”
“제라르 윤이 또 엄청 부자란다. 돈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지부터 체크한대.
이번 광고도 자기 스태프 데려다 찍고,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승낙한 거야.
쪽에서도 부글부글 거릴 일 많았는데, 다 맞춰 줬나 봐.
고급 진 영상미는 상징이니까.
그러니까 우진아, 오늘 잘해야 된다. 그림만 잘 나오면 너도 이미지 엄청 상승할 거야.”
“네 실장님. 걱정 마세요.”
우리는 피어난 새싹과 봄 향기를 맡으며, 어딘지 모를 CF 촬영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참. 너희 아직 다나 못 봤지?”
김 실장님이 생각난 듯 말했다.
“다나?”
해일이와 내가 동시에 되물었다.
“ 래퍼. 며칠 전에 미국에서 들어왔어.”
“아하. 이제 미스 그린 완전체네요.”
“근데 이게 골 때려.”
“엥. 왜요? 자기 멋대로 인가요?”
김동국은 머리를 저었다.
“아님, 생각보다 실력이 없어요?”
“실력? 실력은 죽이지. 엄청. 그래서 탈이야.”
“네??”
“대표님 머리가 지끈지끈하실 거다.”
산길은 끊어질 듯 이어지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끊어졌다.
길 끝에는 촬영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래. 나중에 다시 올게. 3시간이면 될 거야. 은행 가서 바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무슨 일 있음 전화하고.”
“네.”
“걱정 마시고, 천천히 볼 일 보고 오세요.”
김 실장님은 해일이와 나를 내려주고 차를 돌렸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해일이와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촬영장이 가까이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우리는 20분 넘게 걸었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나뭇가지들이 촘촘해지면서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여기 맞나? 다시 돌아갈까?”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그때, 앞에서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와. 이게 뭐야!!”
그곳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 하늘을 통째로 삼킨 호수,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하늘, 눈부신 햇살.
“여기 뭐야?”
“우리나라에 이런 데가 있었어?”
우리는 한참을 넋을 뺐다.
“정말 아름답다.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이겠는데.”
우리는 풍경을 감상하며 호수를 따라 걸었다. 호수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잔물결만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촬영팀이 어디에 있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오해일은 촬영 위치를 물어보려 김 실장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통신이 잡히지 않았다.
“더 가보자.”
“그래.”
내가 앞장서서 걸었다.
잠시 후, 썬베드를 깔고 누워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간이 테이블 위에는 보온병과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가가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남자가 교양 있게 인사를 받아줬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그는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여기 촬영하는 사람들 못 봤나요? 카메라나 은색 판 같은 거요. 판자에다 호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남자는 가만히 나를 훑어보다가,
“혹시 ‘맥스’ 모델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배우진입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전 촬영감독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뭐지. 촬영감독이 촬영을 앞두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니.’
촬영감독이 호숫가에 누워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에, 얼떨떨했다.
오해일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얼굴만 힐끔거렸다.
촬영감독은 손가락으로 뷰파인더를 만들었다.
그리고
“잠깐만 거기 서 계세요.”
그 안에 내 모습을 담아 요리조리 재면서 각을 잡았다.
“잠깐만 호수를 배경으로 서 주실 수 있을까요?”
여전히 얼떨떨했지만, 일단 촬영감독의 말을 들었다.
나는 호수를 배경으로 서서 포즈를 잡았다.
“고개를 잠깐 왼쪽으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음~ 판타스틱하네. 아, 그림 잘 나오겠다.”
촬영감독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뷰파인더를 내렸다.
그리고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오늘 찍을 커핀데 맛이 그럭저럭 괜찮아요.”
맥스 커피를 권했다.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커피잔에 담아 우리에게 내주었다.
커피 맛은 최고였다.
“다른 스태프들은 저 뒤쪽에 있을 겁니다.”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일광욕을 즐겼다.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만 까딱였다.
촬영감독이 말한 곳으로 갔다.
간간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 조명판 같은 장비들도 보였다.
“휴~ 다행이다.”
“그러게. 제대로 찾았네.”
“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분위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
줄넘기를 하는 사람.
나무를 등지고 독서를 하는 사람.
‘뭐지? 이 낯선 분위기는?’
“여기 진짜 CF 찍는 데 맞아?”
해일이는 울상이 되었다.
김 실장님과 장 대표님께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불통이었다.
배우진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독서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오늘 광고를 찍을 배우진입니다. 제라르 윤 감독님 어디 계신가요?”
“음···”
그녀는 호숫가를 한번 크게 돌아보더니,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나룻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감사하다는 내 말에 빙그레 웃더니,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프랑스에서 촬영하던 사람들이라 그런 가 분위기가 다르네. 그런데 이래서 촬영은 하는 거냐?”
우리는 오늘 촬영이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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