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3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3화
“일분 안에 날 울려봐.”
역시 스타일은 변함이 없네. 처음 만났을 때에도 똑같은 지시를 내렸었지.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차분히 되짚어 보았다.
[배우는 눈빛만으로도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절대 좋은 배우라고 할 수 없다.] [너 스스로 죽음을 앞에 둔 말기 암 환자라 여기고 감정을 끄집어 내 봐.]말기 암 환자가 되라고? 나 진짜 암에 걸렸었는데. 그것도 어제까지.
병에 걸려 죽어가던 나를 생각하자 잊지 못할 슬픔이 흘렀다. 가슴이 꽉 뭉치고 몸이 뜨거워졌다. 부모님의 죽음까지 떠올리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감정을 폭발시키려 하지 말고 호흡에만 신경 써.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깊게 들이마시고 깊게 내 쉬고. 몸의 긴장을 풀어. 몸이 경직되어 있으면 들숨과 날숨도 흐트러진다.]나는 복식 호흡으로 터져 나오는 감정을 꾹 눌렀다.
가슴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목울대가 크게 상하 운동을 했다.
불규칙한 숨 속에 입술이 떨렸다.
코끝은 찡해지고 눈가가 붉어졌다.
오열을 쏟아내고 싶지만 가슴속 깊이 누른다.
어느덧 슬픔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눈 코 입 그리고 귀까지 열기가 새어 나온다.
그때였다.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가가 서서히 빨개졌다.
나의 슬픔이 선생님의 슬픔을 불러내고 있었다. 나의 고통이 선생님의 고통을 끌고 나온 것이다.
선생님의 입술 사이로 옅은 한 숨이 새어 나왔다. 슬픔을 참지 못하고 숨을 토해냈다.
“후~”
“너, 인마. 거짓말했지? 연기 처음 아니지?”
선생님은 눈물을 훔치며 다짜고짜 몰아붙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어 그냥 가만히 있었다.
“딱 봐도 초보가 아닌데. 너 가르쳐준 선생 누구야? 그 선생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 찾아가.”
‘그래서 찾아왔잖아요.’ 속으로만 외쳤다.
“저는 무조건 선생님한테 배울 겁니다.”
선생님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 덤덤히 말했다.
“배우의 기본은 건강이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내일부터 새벽에 일어나서 한 시간 이상 운동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해라.
한시라도 눈과 코와 귀를 가만 두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모든 소리를 들어라. 코로 들어오는 모든 냄새를 맡아라. 몸은 항상 유연한 상태를 유지한다. 알겠나?”
“··· 합격인가요?”
“수업은 오후 6시 30분이다. 각오는 단단히 하고 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나는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괴물이 들어왔어.”
민상기는 배우진이 나간 문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
삐비- 비비빅– 삐비- 비비빅–
새벽 다섯 시 반. 알람 소리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지체 없이 일어나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의 기본자세. 이 생에선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다.
신선한 새벽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자 머리가 개운해졌다. 한 발 디딜 때마다 쌩쌩한 다리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이런 고품질 몸을 함부로 놀려 댔다니···’
넓은 공원을 세 바퀴 정도 돌고 나니 땀이 흥건했다. 몸 깊은 곳에서 활력이 솟았다.
아침 운동을 끝내고 현관으로 들어선 내 눈에 아버지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뿌옇게 쌓이고 꼬질꼬질했다.
나는 신발장을 열어 구두약, 솔, 헝겊 그리고 라이터를 꺼냈다.
‘군대에서 터득한 불광 기술을 한 번 들어가야겠네. 아주 거울처럼 빤짝하게··· 그러고 보니 회귀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구나. 군대를 또 가야 하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면 ‘에라 모르겠다’ 한 번 더 가지 뭐.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새벽 운동 탓인지 허기가 져 허겁지겁 밥을 먹어댔다.
그 와중에 엄마는 힐끗힐끗 내 눈치를 봤다.
“왜? 뭐 묻었어? 뭘 그리 아들 얼굴을 자꾸 힐끔힐끔 쳐다봐요?”
“너 내 아들 우진이 맞지?”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그럼 내가 아들 우진이지 외계인일까 봐?”
“아니. 어제도 그렇고 뭔가 변했단 말이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엄마 아침 준비하는 것도 도와주고··· 그리고 여보, 저기 봐. 저기.”
엄마는 현관을 가리켰다. 아빠 구두가 거울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저게 뭐야? 새 구두야?”
“우진이가 당신 구두 닦아 놨어. 그것도 저렇게 빛나게 말이야. 그러니까 이상하지.”
“우진이 혹시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냐?”
아빠까지 덩달아 가세했다.
“아니 아들이 효도하겠다는데 그걸 병으로 몰아가는 부모님이 세상에 어딨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돼. 그러다 병 생겨.”
“두 분 모시고 아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밥맛이 좋아 한 그릇 더 해치웠다.
***
학교 쉬는 시간에는 시집을 읽었다. 짧은 시간을 활용하기엔 그만한 게 없었다.
‘감정을 이해하는 데 시집만큼 좋은 건 없지.’
저녁에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주옥같다. 친구를 향한 그리움이 마음에 사무쳤다.
시끌벅적한 가운데서도 오직 나만의 밤하늘이 느껴졌다.
“야, 배우진.”
일진 한 무리가 교실 뒷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거침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야, 요새 안 보인다. 어딜 그렇게 뺀질 나게 도망가.”
고등학교 시절 가끔 어울렸던 무리였다.
“왜? 나한테 무슨 볼일 있냐?”
“너 토요일에 스케줄 좀 비워 놔라.”
서열 1위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걷어 올린 팔소매 사이로 용 문신이 보였다.
예전엔 저런 게 무서워서 이런 놈들한테 꼼짝 못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생 중반 산전수전 다 겪어 보니 저런 녀석들이 제일 겁쟁이라는 걸 깨달은 바다.
“은광여고 애들이랑 5:5 미팅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나 그런데 관심 없어. 너희들끼리 가.”
“야! 네가 나와야 걔들이 나온다고.”
용문신이 내 멱살을 잡았다. 해병 수색대에서 무적도를 배운 나에게 깝죽거리다니 가소로웠다.
이단 옆차기로 날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연기로 상황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한 번 먹히나 볼까.
“죽고 싶나?”
영화 의 명대사를 날렸다. 원작보다 더 싸늘하게, 날카로운 눈빛을 실어. 몇 년 후에 나올 를 알리 없는 용문신은 무척이나 당황해했다.
안광까지 폭발시키자 녀석의 어깨가 움찔하더니 다리를 후들 떨었다. 멱살을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스르륵 풀렸다.
“그냥 곱게 보내 줄 때 가라. 대갈빡 날아가기 전에.”
나는 목소리를 무겁게 깔고 미친 연기를 선보였다.
일진 무리는 꼬리를 말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잘 생각해 봐. 토요일이다.”
놈들은 마지막 자존심을 챙기고 교실을 후다닥 뛰쳐나갔다.
된다.
연기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
일주일 후에 있을 연극제 준비로 학원은 바빴다.
“자, 「젊은 연기 축제」 가 일주일 남았다. 너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대회 인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거다.
영화 관계자, 엔터테인먼트 회사, 극단까지 젊은 신인 배우를 물색하러 다 몰려온다. 기회야.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자. 김도한.”
선생님이 김도한을 불렀다. 김도한이 앞으로 나오자 선생님은 손으로 큐사인을 보냈다. 며칠 전 내줬던 숙제 검사 시간이었다. 김도한은 얼굴색을 바꾸고 바로 몰입했다.
“나 미자 씨 사랑해. 나뿐만 아니라 여기··· 여기 이 심장도 미자 씨 너무 사랑한대. 당신이 타는 그 자전거. 저기 봐. 저기 공원에 당신과 똑같은 자전거···”
기똥차다. 정확한 딕션과 섬세한 표정. 역시 내가 아는 그 김도한이다.
“급하다 급해. 동작이랑 대사랑 같이 가야지. 대사만 치고 나가면 어떻게. 머릿속에 현장을 상상하면서 하란 말이야. 다시 해봐.”
민상기 선생님은 뭐가 거슬리는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김도한은 한마디 불평 없이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나 미자 씨 사랑해. 나뿐만 아니라 이 심장도 미자 씨 너무 사랑한데. 당신이 타는 그 자전거. 저기 봐. 저기 공원에 당신과 똑같은 자전거 탄 사람만 봐도 심장이 뛰어. 그··· 그냥 이렇게 뛰는 게 아니라 미친 듯이 뛴다고. 그리고··· 당신이 신은 운동화랑 그 삼색 후줄근한 운동복만 봐도 이제 눈이 돌아간다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제 어떡할 거냐고···그러니까 미자 씨가 책임져.”
“말을 끝맺을 때 이상한 쪼가 있어. 그거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 고쳐.”
“네 선생님.”
선생님은 이번엔 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번엔 배우진.”
“네.”
나는 앞으로 나갔다. 연기할 배역에 서서히 집중했다.
주인공 정한이 세상에 휩쓸려 자신의 본모습이 사라져가는 심정을 벨이라는 아이에게 말하는 장면.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공허를 표현해 낼 수 있느냐가 키포인트였다.
정한의 마음이 되기 위해 삼일 밤낮 연습하고 연습했다.
지난 삶에서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았던 나를 떠올렸다.
힘을 빼고 입을 열자 정한의 대사가 스스로 튀어 올랐다.
“벨.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해.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고 싶은데··· 몸부림칠수록 어른이 될수록 점점 더 힘들어져. 저기 길 위에 내가 서있어도 지나쳐 가는 사람들한테 난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눈으로는 날 보겠지만 의식은 하지 못하겠지. 일초도 안돼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는 거야. 아저씨는 그런 게 무서워.”
연기를 마친 후에도 나는 한참이나 정한의 마음이었다. 현재의 나로 돌아오기 위해 두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고요했다. 선생님은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코멘트가 없었다.
“뭐 이딴 녀석이 다 있어. 진짜 일 낼 놈이네.”
선생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선생님의 극찬에 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전생에서도 선생님은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싹을 틔워주셨다. 너무 빠른 데뷔와 감당할 수 없는 인기에 취해 꽃을 피우지 못한 건 내 잘못.
현생에서는 나무도 키우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생각이다.
“좋아, 좋아. 발성만 조금 더 신경 쓰자.”
“네. 선생님.”
“발성 연습할 때 괜히 볼펜 입에 물고 그러지 마. 별로 도움이 안 돼. 입을 다문 상태에서 계속 대사를 읽어.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쉬었다 하자.”
선생님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김도한이 나에게 다가왔다.
“와. 아직 한 달도 안 된 녀석이 이렇게 잘하면 나는 어떡하냐?”
김도한이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 너는 그런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해.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넌 그냥··· 아유 말을 말자.”
“야, 무슨 말을 하다 말어?”
“그냥 넌 무조건 잘 돼. 끝.”
김도한의 미래를 쫙 읊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고, 또 잘못했다간 미래가 바뀔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우리 대본 리딩 같이 할까?”
“좋지.”
연기라면 연습이든 실전이든 무조건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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