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34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34화
정현아는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시작은 폴 엔터테인먼트 장성태 대표의 전화였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정현아에게 배우진의 전속 코디가 되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업계 최고 대우를 보장했다.
정현아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승낙을 했다.
그날로 윈즈 하우스에 사표를 냈다.
갑작스러운 퇴사에 원장님은 섭섭해하셨지만, 결국 정현아의 꿈을 응원해 주셨다.
다음 날, 장성태 대표와 정식 계약을 했다.
밴이 나오는 일주일 후부터 합류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현아는 쉬지 않았다.
배우진의 키 몸무게, 피부 톤, 머리숱과 색깔, 어울리는 스타일과 피해야 하는 스타일등을 연구하고 공부했다.
오늘 저녁 백제 호텔에서 배우진을 만나기로 했다. 첫 만남에 식사부터 하고 싶다는 배우진의 제안이 있었다.
나는 오해일과 함께 백제 호텔 9층 레스토랑 창가 자리에 앉아 정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진아, 여기 엄청 비싸. 랍스터가 22만 원이야. 놀라지 마. 1인분 가격이야. 부가세는 별도래!”
오해일이 유리잔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는 일부러 비싸고 고급진 레스토랑으로 현아 누나를 불렀다.
누나에게 비싼 밥을 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2만 원짜리 랍스터로 전생의 내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때, 정현아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먼저 와 계시네요.”
“네, 스케줄이 좀 빨리 끝나서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누나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우진 씨가 코디로 저를 지목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믿어주신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현아는 각오를 다지며 가방에서 파일과 책, 공책을 꺼냈다.
“제가 배우진 씨 외모를 분석한 결과··· 흰 피부는 ··· 검정 바지라면 ··· 섹시한 이미지는 ··· 패션쇼 ··· 벨트 ··· ··· ··· 외모가 탑 ··· 예술 ······ 결론은 ··· .”
다짜고짜 일 얘기부터 시작했다.
얼굴에 열정이 가득했다.
“일 얘기는 차차하고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정현아를 제지했다.
지배인이 메뉴판을 들고 테이블 앞에 서있었다.
“아차. 제가 너무 앞서 나갔네요. 죄송해요.”
정현아는 펼쳐놓은 서류 뭉치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지배인이 메뉴판 3개를 각각 테이블 앞에 놓아주고 갔다.
“여긴 랍스터가 맛있어요. 랍스터 어떠세요?”
나는 정현아에게 권했다.
메뉴판을 보고 있는 정현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해일아, 너도 랍스터 먹어. 나도 랍스터 먹을 거야.”
“··· 으 응, 그래···.”
“와인도 한 병 시킬까? 와인 한잔 어떠세요?”
오해일과 정현아에게 물었다.
정현아의 눈이 와인 가격에 자동으로 꽂혔다.
헉!!
“네, 좋죠. 랍스터에 와인···”
“··· 나도 좋아, 랍스터엔 와인이지.”
배우진, 정현아, 오해일 세 사람은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호텔 레스토랑에서 랍스터에 와인을 마셨다.
***
-밴 진짜 좋다. 핸들 돌아가는 게 달라, 지금 다 와 가거든. 10분이면 도착해.
“알았어. 조심해서 와.”
전화 속 오해일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처음으로 밴을 몰아 나를 태우러 오는 중이었다.
“엄마, 집에 맥스 커피 어디 있어?”
“어, 그거. 왜?”
“연극 단원 친구들이 꼭 좀 가지고 오래. 마트마다 품절이라고···.”
“그러게, 그런 가봐. 우리는 그때 맥스 회사에서 30통이나 보내줘서 몰랐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한 5통은 가져가도 되지? 어차피 다 못 먹는다고 걱정했잖아.”
“우진아, 그게···.”
“네.”
“엄마 친구들이 그거 못 구한다고 하도 성화를 내서, 한 통씩 다 나눠줬어.”
“30통 다?”
엄마는 남은 커피 두 상자를 꺼내놓으며, 커피에게 괜한 화풀이를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아무리 광고가 멋져도, 커피가 완전 품절인 게 말이 돼? 마트고 시장이고 못 구한대.
사실 나도 맛도 못 봤어. 다 나눠주고 두 통 남았는데, 아까워서···.”
나는 한 상자는 남겨 두고, 나머지 한 상자만 챙겼다.
“엄마도 아들 광고 나온 커피 맛은 봐야지. 이건 딴 사람 절대 주지 말고 엄마 타드세요.”
“그래도 돼?”
“네, 한통도 충분해. 240 봉지나 들었는데 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엄마의 안색이 밝아졌다.
“오늘 뭐 중요한 날이랬지?”
“응, 드레스 리허설. 실전과 똑같이 한번 맞춰보는 거야.”
“그래, 아들 잘하고 와. 저녁에 맛있는 거 해놓을께.”
“네, 엄마.”
나는 맥스 커피 한 통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흰색 밴이 때맞춰 미끄러져 들어왔다.
드르륵~
차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현아 누나가 방긋 인사했다.
“빨리 타. 차 진짜 좋아.”
“응~”
현아 누나와 어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많이 친해졌다.
서로 간에 말은 놓기로 했다.
그게 서로 편하다는 결론.
“오늘은 드레스 리허설이니까 살짝만 손대자.”
현아 누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빗으로 내 머리를 살짝 만졌다.
“역시, 본판이 좋으니 빗질 한 번으로도 연예인 같네.”
현아 누나가 내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이번엔 팔 한번 내밀어 볼래?”
누나가 시키는 대로 양팔을 뻗었다.
누나는 내 남방 소매를 길게 한 번 접고, 다시 짧게 한 번 접었다. 소매가 깔끔해졌다.
“이 정도면 되겠다.”
누나는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안 했는데 꾸민 듯 안 꾸민 듯, 나는 세련된 도시남이 되었다.
‘한빛 아트홀’ 앞에 밴이 섰다.
“우진아, 난 누나랑 회사 잠깐 들어가 봐야 하거든. 금방 올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알았어. 천천히 와.”
나는 ‘맥스’ 커피를 소중하게 들고 밴에서 내렸다.
***
2층 대봉관으로 들어섰다.
“우진이다!!”
“오오, 우진이.”
“배우진, 빨리 와.”
단원들이 좀비처럼 달려들었다.
내 손에 들린 ‘맥스’ 커피 상자에 눈들이 꽂혀서.
“우와, 이게 바로 맥스 커피야?”
“아니, 도대체 이게 뭔데 품절이라는 거야?”
“두루미 하고 우진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이 그림이 히트잖아요.”
단원들은 맥스 커피를 들고 있는 나를 뜨거운 눈길로 바라봤다.
“잠깐만. 잠깐만. 일단 다들 물러서요.
커피를 그냥 놨다가는 대참사가 벌어질 것 같아.
내 앞으로 쭉 줄을 서세요.
공평하게 다섯 개씩 나눠 드릴게요!”
극단의 평화를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좋아.”
“다섯 개나. 오예.”
“신나~.”
단원들은 도란도란 커피 타임을 가졌다.
안효진이 커피 두 잔을 들고 김도한에게 갔다.
“자, 이거. 마셔봐.”
김도한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나한테 주는 거야?”
“그럼.”
“감동이다. 이 귀한 커피를.”
김도한이 주머니에서 커피 다섯 개를 몽땅 꺼내 안효진의 주머니에 넣었다.
“어, 어. 이거 뭐야?”
“너 다 가져. 난 네가 타 준 이 커피 한잔이면 됐어.”
안효진이 싱긋 웃었다.
“와~ 진짜 맛있다.”
“두루미 맛이다.”
“두루미 맛?”
“맛있다고.”
“인정.”
옆 창가에, 배우진과 강정우가 커피 잔을 들고 서있었다.
“도대체 매번 캐릭터가 변하는 이유가 뭐야?”
강정우가 배우진에게 물었다.
“그날그날 샤일록의 심정을 따라가 보는 거지.”
배우진이 담담히 대답했다.
강정우는 느꼈다. 연습을 할 때마다 배우진의 ‘샤일록’이 달라진다는 것.
미묘한 차이지만 강정우는 느낄 수 있었다.
어떨 때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냉혹한 사채업자 ‘샤일록’,
또 어떤 때는 버려지고 배고픔에 떠는 개 같은 ‘샤일록’.
또 어떤 때는 그 중간쯤,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 내 대본을 봐.”
강정우가 자기 대본을 배우진에게 내밀었다.
대사 사이사이에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고, 여백에는 안토니오의 감정과 그에 맞는 동작들이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자리가 모자라 포스트잇까지 붙어 있었다.
“나는 ‘안토니오’와 나를 철저히 분리시켰어. ‘안토니오’라면 이렇게 행동하겠지. ‘안토니오’라면 이렇게 웃겠지. ‘안토니오’라면 이쯤에서 손가락질할 거야.
철저한 계산 아래, 그에 맞는 옷을 입혔어.
그런데 너의 ‘샤일록’은 해 질 녘의 노을만큼이나 변덕이 심해. 내가 어디에 맞춰야 할까?”
강정우는 배우진의 대본을 펼쳤다.
종이가 너덜너덜하긴 했지만, 필기의 흔적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셰익스피어’가 왜 ‘샤일록’이란 인물을 탄생시켰는지, ‘샤일록’은 왜 그렇게 행동을 한 것인지, 이 연극에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메타포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
강정우는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의문을 한 번에 쏟아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배우진이 입을 열었다.
“어제의 ‘샤일록’이 오늘의 ‘샤일록’이 될 수 없어. 아마 내일은 또 다른 ‘샤일록’이 나타나겠지.
셰익스피어 손끝에서 탄생됐던 ‘샤일록’ 또한 지금은 없어.
지금의 ‘샤일록’은 나만의 ‘샤일록’이야.”
배우진의 말에 강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일록’은 그날그날 달랐지만,
항상 완벽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커피 타임 후, 배우들은 본격적인 리허설 준비에 들어갔다.
배우들은 의상을 입고 분장을 했다.
그리고 무대 앞으로 나왔다.
16세기 베네치아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무대에는,
그 시대의 건물과 길거리가 완벽히 재현되어 있었다.
음향 기술자가 마이크를 들고 와 배우들에게 채웠다.
“자, 준비됐나?”
민상기 연출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네.”
“네. 준비됐습니다.”
민상기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었다.
“그럼 각자 위치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뭣 때문에 내가 그런 강요를 당해야 합니까? 부디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샤일록’ 배우진의 묵직한 발성에서 분노가 묻어난다.
[유태인이여, 그대가 호소하는 바는 정의이지만 정의만 내세우면 구원을 받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걸 명심하시오.]‘포샤’ 안효진은 냉철한 재판관이 되었다.
[제 행위의 응보는 제가 받겠습니다! 전 법에 호소합니다. 이 증서대로의 담보물을 요구합니다.‘샤일록’ 배우진은 물러 설 수 없다. 자기의 신념을 지키고, 그동안 당해온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다.
[이 사람은 돈을 변제할 능력이 없는가?]‘포샤’ 안효진은 치우침이 없다.
[아닙니다. 이 법정에서 제가 대신 지금 당장 지불하려고 합니다. 원금의 열 배라도 지불하겠습니다. 제 손, 제 머리, 제 심장을 담보로 하는 한이 있어도요.]‘바사니오’ 김도한의 진심이 처절하다. 친구를 지키기 위한. 정의를 위한.
[그럴 순 없소. 베니스의 어떠한 권력도 이미 정해진 법을 바꿀 순 없소. 그것이 판례로서 기록되면 많은 위법 행위가 반복되어 국사가 문란해질 테니 그럴 순 없소.]‘포샤’ 안효진은 원칙을 지키는 재판관이 되어 ‘샤일록’을 안심시킨다.
이 정도로 공평한 재판관의 판결이라면 따르지 않을 수 없겠지!
[저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법에 따라 어서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안토니오’ 강정우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슴속 깊은 절망을 안은 채.
[다니엘 같은 명판결이시다! 그래 다니엘! (포샤의 옷자락에 키스한다) 오 현명하신 젊은 판사님, 정말 존경합니다.]‘샤일록’ 배우진의 탐욕이 표면에 드러난다. 바로 앞에 있는 승리의 깃발을 뽑아 들기만 하면 된다.
‘샤일록’은 환희에 빠진다.
민상기와 제라르 윤이 객석에 앉아 연극을 보고 있다.
흠잡을 데 없는 명연기와 숨 막히는 몰입감으로 무아지경에 빠졌다.
이 무대가 단지 리허설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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