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37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37화
사무실 소파에 앉아 오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사무실에 내려주고,
현아 누나랑 동대문 시장에 갔는데 생각보다 늦었다.
전화를 했다.
“해일아, 나 사무실에서 볼 일 다 끝났어. 언제 와?”
-아, 그게 현아 누나가 너 의상 본다고 보고 있는데, 계속 영감이 떠오른대. 나온 김에 아는 가게 몇 군데만 더 들렀으면 해서··· 한 시간 정도만 기다려 줄 수 있겠냐?
“알았어. 좀 쉬고 있을게. 천천히 와. 오후 스케줄도 없고.”
-그래, 금방 갈게. 끊어.
나는 오랜만의 여유에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우진아, 밥 먹으러 가자. 대표님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나오래.”
김동국 실장이 나갈 준비를 하며 내게 말했다.
“아니에요. 전 여기서 조금만 쉴 게요. 배도 안 고파요.”
“그럴래? 그럼 좀 쉬어. 송찬기, 나가자.”
“네.”
김동국 실장은 송찬기를 챙겨서 나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참, 우진아.”
“네.”
“저기 연습실에 오설기 있어.
설기는 하도 얌전해서 있는 듯 없는 듯 해.
혹시 배고프면 둘이서 뭐 시켜먹고.
그리고 전화는 자동 수신되니까 안 받아도 된다. 신경 쓰지 마.”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진짜 간다.”
“네, 다녀오세요.”
김 실장이 나가고 나자 사무실 전체가 고요했다.
‘설기가 있었구나. 바빠서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인사나 해야겠다.’
나는 설기를 보러 연습실로 갔다.
설기는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데··· 뭘 저렇게나 열심히 보고 있지?’
“음음.”
나는 설기가 놀랄까 봐 인기척을 냈다.
설기가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돌아봤다.
“안녕. 오설기. 그동안 잘 지냈어?”
내 인사에 설기가 활짝 웃었다.
“선배님.”
“오랜만이다. 데뷔하고 어때? 할 만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매일매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오설기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다 그래. 처음엔. 차츰 나아질 거야.”
설기의 얼굴이 해쓱했다.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먹어. 안 그럼 나중에 고생한다.”
“네, 잘 챙겨 먹고 있어요. 근데, 그런 것 보다···.”
“응?”
고민이 있어 보였다.
나는 들을 준비를 했다.
“저번에 ‘다크호스 아이돌’에 나갔을 때, 엠씨가 무슨 질문을 하는데 당황해서 한마디도 못했어요.
다행히, 은하 언니가 잘 넘겨주긴 했지만, 계속 은하 언니 도움을 받을 순 없잖아요.”
내성적인 오설기의 성격이 방송에 적응하기 힘든 것 같았다.
나는 오설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설기야, 방송할 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웃기려고 할 필요도 없고, 칭찬받으려 할 필요도 없어.
꾸미려고 하면 할수록 네가 불안해지고, 그러면 보는 사람도 불편해져.
그냥 오설기 너 자체면 되는 거야.”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설기의 얼굴이 한층 편안해졌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재밌게 봐?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아, 이거요. 재활용 박스 안에 있던 건데. 보는 순간 뭔가 필이 꽂혀서···”
설기가 읽고 있던 책을 나에게 내밀었다.
!!
그것은 시나리오였다.
“선배님도 읽으셨죠?”
오설기가 해맑게 물었다.
‘읽었다고 해야 하나, 안 읽었다고 해야 하나.’
지난번 를 봤을 때,
첫 장도 안 넘겨보고, 대표실에 버려두고 나왔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다 안다.
전생에서 영화를 찍었었으니까.
어떤 대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났다.
“어? 응.. 응… 읽었지.”
재벌집 도련님이 안하무인으로 살다 가난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내용.
남주는 백마 탄 왕자님, 여주는 신데렐라
10-20대 여자들이 많이 사랑해준 드라마
역시 오설기도 좋아하는구나.
“주인공이 너무 멋져요.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거친 바다 한가운데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에요.”
오설기가 시나리오 속 장면을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음?!
에서 그런 장면이 나온다고?
다른 거랑 착각하는 것 같은데!
“여자 주인공 ‘제이’의 성격이 나약하지 않아서 좋아요.
사랑도 좋지만 자신의 자존감과 신념을 지키죠.
저도 ‘제이’처럼 살고 싶어요.”
오설기는 시나리오의 내용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자꾸 다르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랑 전혀 다른데, 혹시 다른 시나리오랑 착각하는 거 아냐?”
내 말에 오설기가 시나리오를 내손에 꼭 쥐어주었다.
“음. 아닌데요. 선배님이 한 번 직접 보세요.”
나는 의심하며 시나리오의 첫 장을 넘겼다.
그런데 시나리오는 첫 장부터 달랐다.
‘뭐야. 이게 아닌데. 뭐가 이렇게 변했지?’
는 내가 전생에 알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나 좋았다.
나는 작품에 매료되어 멈출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읽어나갔다.
“선배님. 선배님.”
오설기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괜찮으세요?”
오설기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응, 괜찮아. 설기야. 나 이 시나리오 좀 읽을게.”
“네. 그건 원래 선배님 거잖아요.”
“그··· 그래. 원래 내 거? ··· 고마워.”
그때, 오해일과 정현아가 연습실로 들어왔다.
“여기 있었네. 맛있는 거 사 왔어. 먹자.”
“설기도 있었네.”
“네, 우진 선배님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넉넉하게 사 왔어. 같이 먹자.”
“네.”
셋은 연습실 바닥에 떡볶이 순대 튀김을 펼쳤다.
나는 여전히 시나리오를 읽고 있었다.
“우진아 조금만 먹어.”
해일이가 나를 불렀다.
“해일아.”
“응?”
“ 작가님 좀 알아봐 줘.
작가님 연락해서 내가 한번 뵙고 싶다고 말씀드려.”
전생에서도 한번 본 적 없는 작가.
이름도 모른다.
관심도 없었으니까.
“엉? 작가님을?”
“부탁할게.”
“알았어. 근데 일단 좀 먹자.”
“그래. 먹자.”
“우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
전통 찻집이 골목 안쪽 끝에 있었다.
‘프린스 앤 플라워’ 작가님과 만나기로 한 그곳엔,
빨갛고 노란 덩굴장미가 돌담을 칭칭 덮고 있었다.
배우진은 돌담을 지나 찻집 문을 열었다.
고목으로 만들어진 문은 어둡고 묵직했다.
딸랑~
맑은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게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하얀 원피스에 먹색 앞치마를 둘러 맨 찻집 주인이 나를 보고 인사했다.
너무 어리지도 너무 나이가 많지도 않은,
화선지 같은 수수한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혹시 아무도 안 계시나요?”
“무슨?”
“제가 여기서 작가님을 뵙기로 했는데,
혹시 먼저 와계신 손님이 있나 해서요.”
찻집 주인이 활짝 웃었다.
눈매 뒤로 잡히는 옅은 주름이 편안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배우진 씨. 제가 그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찻집 주인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 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잘 찾아오셨네요. 찻집이 구석에 있어 그런 가 다른 사람들은 잘 못 찾더라고요.
일단 차는 한 잔 하셔야죠?”
“네.”
“쌍화차 어떠세요? 어제 달여뒀는데 맛있어요. 건강에도 좋고.”
“좋습니다.”
“저기 창가 자리에 앉아 계세요. 차 가지고 갈게요.”
“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문 밖으로 초록색의 싱싱한 정원이 보였다.
쌍화차 냄새가 그윽하게 가게를 채웠다.
“한번 드셔 보세요.”
작가는 쌍화차 두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내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매니저 분께 연락받았을 때 놀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올게 왔구나 생각했어요.”
작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가 연락할 걸 아셨다는 말씀이세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배우진 씨를 보고 쓴 시나리오니까요.”
“저를 보고 썼다고요?”
“사실 처음에 쓴 는 지금 내용이 아니었어요.
백 감독님이 젊은 여성 취향의 시나리오를 한편 써달라고 의뢰를 하셨어요. 특별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블링블링 샤방샤방한 장면들로만 꽉꽉 채워 주면 된다고.
어찌나 닦달하시던지 설렁설렁 한 달 만에 썼어요.
··· 잠깐만요.”
작가는 주방으로 가서 종이 뭉치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게 처음 원고예요. 한 번 보세요.”
나는 원고를 받아서 읽어보았다.
내가 알고 있던 원래의 가 맞았다.
“그걸 넘기려고 감독님께 전화를 걸려는데, 그 광고를 보게 된 거예요.”
작가는 나를 빤하게 쳐다봤다.
“페어리.”
“아, 네.”
“광고에서 우진 씨를 보는 순간 머리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원래 써둔 건 완전히 잊고 다시 썼죠.
영감이 솟아 쓰는 글은 힘들지 않아요.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느낌이랄까.
삼일 만에 다 썼어요.
부드러운 눈빛에 숨어있는 야성미 넘치는 남자 주인공.
그 남자를 포용하는 야생화 같은 여자와의 사랑.”
나는 쌍화차로 바짝 마른 목을 적셨다.
“그렇군요.”
운명처럼 다가온 .
전생이든 현생이든 내가 풀어야 하는 숙제인가!
“이 시나리오는 분명 배우진 씨 거예요.
이 영화를 잡으세요.”
작가는 진지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얼마간의 대화를 좀 더 나눴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나는 일어날 채비를 했다.
“아니에요. 제가 더 고맙죠.
우진 씨를 이렇게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종종 들러주세요.
보시다시피 여긴 손님이 별로 없어서, 머리 식히기엔 딱 좋아요.
저도 그런 이유로 여길 운영하지만.”
“네, 아 참, 제가 아직 성함도 못 여쭤봤네요. 실례지만 성함이?”
“지담이에요. 찻집 이름이랑 같아요.”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지담 밖으로 나왔다.
맑은 하늘 위로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
“대표님, JC 박상기 제작 부장님이 직접 전화 오셨습니다.”
“JC에서?
우리나라 제일 큰 영화 제작 배급사의 제작 부장이 신생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여보세요. 장성태입니다.”
-안녕하세요. JC 박상기 제작 부장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보내드린 시나리오에 대한 답이 너무 늦어져서요.
JC에서 보낸 시나리오?
아!
배우진에게 한 칼에 거절당하고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보내졌던 그 시나리오가 생각났다.
“저, 그게 배우진 배우가 거절을 했습니다.”
-우리 시나리오를 거절했다고요? 시나리오를 읽어 보기는 했습니까?
“네,,, 읽어 , 봤습니다. 취향이 아니라고 안 한다 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고 거절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서 장성태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참, 낭패군요. 저희 쪽에선 꼭 배우진이 주인공을 맡아줬으면 하거든요. 다른 대안은 아예 생각도 없습니다. 시나리오도 좋고, 제작 지원도 빵빵한데, 이해할 수 없군요.
저희 시나리오 한 번만 더 검토해서 배우진 씨를 설득해주세요. 개런티도 탑급에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장성태도 가 아까웠다.
하지만 배우진이 이미 거절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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