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4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4화
제12회 「젊은 연기 축제」.
연영과 교수 협의회가 주최하고 문화 체육부와 공연 제작 협회가 지원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청소년 연극제가 열렸다.
지난 대회 수상자들이 영화, 드라마, 연극 등 현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배우가 꿈인 청소년에겐 최고의 등용문이었다.
관계 학교와 학원들의 자존심을 건 대회이기도 했다.
방식은 본인이 선택한 3분 내의 연기를 무대 위에서 펼치면 된다. 참가자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게 배려한 방식이었다.
응원하러 온 가족 친구들, 취재기자와 진행 요원들로 경연장이 복작거렸다. 올해는 역대 최고 3000명이 예심을 거쳐 250명이 본선에 올랐다.
엔터 회사들의 캐스팅 매니저들도 총출동했다. 진짜배기 원석을 발굴하기에 이만한 기회가 없으므로.
“올해는 작년보다 더 치열 하구만.”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소울 엔터의 캐스팅 팀장이 부하 직원과 함께 참가자 명단을 보고 있었다.
“뉴 페이스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질 거야.”
“우리 회사 에이스 차민혁도 9회에 대상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저길 봐라. FNT, 장미, S&A, 골든 키위, M&A 스튜디오 까지··· 영입 경쟁이 장난 아닐 거다. 정신 바짝 차려.”
“네. 팀장님”
“특히 서원 예고 참가자는 눈여겨보고.”
“네. 알겠습니다.”
서원 예고는 지난 9회, 10회, 11회 연속으로 대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실상부 최고의 배우 전문 예술 고등학교였다.
***
무대 뒤 대기실은 250명의 참가자들과 지도자들로 시끌벅적했다. 공간이 모자라 복도까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대사를 외우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대사와 동작을 살피는 동안, 나와 김도한은 스트레칭으로 긴장을 풀었다.
몸이 느슨해야 호흡을 갖고 놀 수 있고 그래야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기에.
“무대에 서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문장에 스민 호흡 외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됩니다.”
민상기 선생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명심해라. 발성이나 동작, 감정은 이미 너희 머리와 몸과 가슴에 다 들어 있다. 억지로 끄집어내려고도 하지 말고 의식도 하지 마라. 알겠나?”
“네, 선생님.”
선생님은 평상시와 다르게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웠다.
그때,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무리를 뚫고 한 남자가 다가와 민상기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그 남자의 옆엔 한 남학생도 있었다.
‘저 녀석 눈에 익는데··· 아, 맞다. 강정우!’
남학생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다. 전생에 나의 데뷔작 를 함께 했던 강정우였다.
‘영화가 워낙에 히트를 치는 바람에 주연인 나를 비롯해 조연들까지 모두 떴었지. 강정우도 그중 하나였고. 강정우를 여기서 만나네.‘
“어? 박중만이? 오랜만이야.”
민상기 선생님이 남자를 아는 체했다.
“선배님을 여기서 보게 될 줄 몰랐네요. 어쩐 일이세요?”
“제자가 오늘 대회에 참가하거든.”
“아 그럼~ 소문이 사실이었네요. 요즘 제자 키우신다고··· 아 참. 인사드려. 민상기 선생님이시다. 연극계의 신화 같은 분이시지.”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정우는 민상기에게 꾸벅 인사했다. 목소리가 바위를 얹은 듯 단단하고 묵직했다.
민 선생님도 우리를 박 선생님에게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나는 박중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름을 물었다.
“배우진입니다.”
“배우진이라. 페이스가 예술이구나.”
“그 녀석 얼굴 지웠어.”
민상기 선생님이 순간 정색했다.
“얼굴을 지웠다고요? 이 얼굴을요?”
“그래. 나중에 보면 알 거야.”
‘한번 두고 보자’ 박중만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야, 정우야. 너 긴장 좀 해야겠다.”
박중만은 비아냥대듯 강정우에게 말했다.
대상을 맡아 놓기라도 한 듯 둘은 여유 만만해 보였다.
[잠시 뒤에 대회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참가자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대기실에서 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잠시 뒤에 대회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참가자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대기실에서 나가 주시길 바랍니다.]장내 방송이 울리자 선생님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고 참가자들만 남게 되었다.
“반갑다. 정식으로 인사할 게. 나 강정우야.”
강정우가 자신감 있게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균형 잡힌 몸과 얼굴이 안정감 있어 보였다.
주연인 나의 어설픈 연기를 상쇄시키려, 조연들은 연기가 좀 되는 녀석들을 썼었지.
강정우를 보자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나, 배우진.”
“계속 눈에 띄더라. 얼굴 사방에서 빛이 나서.”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고마워.”
나는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깔끔하게 끊었다.
“민상기 선생님 제자라고 하니까 기대해 볼 게. 열심히 해라.”
“너도.”
녀석은 은근히 기분 나빴다.
뭔가 나를 가르치려는 듯 한 태도.
내 연기가 형편없을 거라 확신하는 저 태도.
공교롭게도 참가 순서가 녀석이 마지막이고 내가 바로 그 앞이었다.
***
[자 이제부터 연기 경연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사회자의 말에 무대 뒤는 술렁였다. 몇몇 참가자들은 급하게 청심환을 꺼내 먹거나 심호흡을 해댔다.
“참가번호 1번 나와 주세요.”
경연이 시작되었다. 1번 참가자가 무대 앞으로 나가 가운데 섰다. 깜깜한 객석에 밝은 주황색 조명만이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첫 참가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1번입니다.”
잠깐 숨을 들이쉬더니,
“애는, 어딜 간다고 그래. 해놓은 거 한 입도 안 먹었잖아. 이따가 보내줄게···”
첫 문장부터 발음이 뭉개졌다. 목소리를 크게 내려고 억지로 힘을 줬기 때문인 것 같았다.
빕~
일분도 안돼서 벨이 울렸다. 벨이 울리면 멈춰야 한다. 시간이 짧을수록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의미.
1번 참가자는 황망히 무대 뒤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다음 출연자 나와 주세요.”
두 번째 참가자도 빨리 벨이 울렸다. 대본의 대사와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긴장해서 그런 것이겠지.
순서가 획획 지나갔다.
다음은 김도한 차례.
“시작하세요.”
“도둑질은 그만두겠다고 벌써부터 말했잖아!”
울림통이 컸다. 첫 대사부터 시선을 확 끌었다. 심사위원들도 잡담을 멈추고 순간 집중했다.
“맹세해!··· 난 한번 한 말은 지키는 놈이야. 이래 뵈도 글자 나부랭이나 배웠으니까. 이제부터 일을 할 거야··· 저 영감님은 자원이라도 해서 시베리아로 가라는데. 어때··· 같이 안 갈 거야? 너는 내가 이런 생활을 좋아하는 줄 알지만, 천만에. 난 똑똑히 알고 있어···”
감정의 강약을 조절해 가며 무대를 쥐락펴락 했다.
“난 그래. 그럼 정말 도둑놈이 돼 주지. 그랬어. 이렇게 처음 도둑질을 시작했고,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됐단 말야. 그게 이 세상에 대한 발악이고 반항이었어. 세상이 미웠어! 돌아버리겠다구. 어느 놈 하···”
빕~
“수고하셨어요.”
마지막 한 대사만을 남겨두고 벨소리가 울렸다. 3분을 거의 다 채웠다.
역시 대단했다. 심사 위원이 수고했다는 말을 처음으로 한 것도 김도한이었다.
다시 일사천리로 순서가 넘어갔고,
1부 마지막 출연자 서원 예고 여학생이 무대로 올라왔다.
“날 왜 찾아? 언니가 뭔데 나한테 그런 명령을 해? 언니도 내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잖아.”
귀에 그대로 때려 박히는 소리. 3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호흡과 감정선이 일치했고 1미리의 오차도 없이 동작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심사위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 후, 대회의 2부가 시작되었다. 뒤로 갈수록 심사위원들의 얼굴은 피로로 무너져 갔다.
자연스레 벨을 누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참가번호 249번 나와 주세요.”
나는 무대 위로 편안하게 걸어갔다.
내 안에 스며든 캐릭터를 모두 쏟아낼 작정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서원 예고 학생이 괜찮았어. 거의 이변은 없는 듯 해. 마지막 250번 서원 예고가 강력한 우승 후보지?”
“그 46번도 괜찮지 않았어요. 내가 여기 적어 놨는데. 김도한 인가.”
“음음. 걔도 괜찮았어. 목소리가 좋고 유연하기도 하고. 특히 자연스러운 연기가 인상에 남아.”
심사위원들에게 나는 외모만으로도 불합격인 것 같았다. 마치 대회가 끝났다는 듯 잡담을 늘어놓았다.
“자, 시작하세요.”
호흡을 차분히 가다듬고 어깨에 힘을 뺐다.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려는 인격과 그 여자를 죽이려는 인격을 동시에 지닌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마의 마음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자를 살리려는 인격이 경찰서에 뛰어들어 죄를 자백했다.
“갑자기 그 악마가 나에게 온 게 아니에요. 땅 속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요.”
담담하게 살인마의 심정을 읊어갔다. 처음엔 차분하게 차근차근 설명한다.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데 녀석이 갑자기 자기 목을 졸랐습니다. 나랑 살고 싶다고··· 자기 몸을 버리고 나한테 올 거라고 했어요···”
뱃속 태아였을 때 처음 섬뜩한 눈을 본 것이다. 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웠어요··· 무서워서··· 그때부터 녀석이 시킨 대로 했어요. 엄마 배를 발로 차라면 차고 때리라면 때렸고, 또, 또, 훔치라면 훔쳤어요. 그리고 죽이··· 죽이라고 하면 죽였어요.”
서서히 맥박이 뛰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몸의 리듬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심사위원들은 눈에 힘을 주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의 호흡에 맞춰 그들의 몸도 꼬여 들었다.
“··· 아니, 아니에요··· 여자를 죽이지 않았어요. 그녀는 내가 죽일 수 없는 천사예요··· 안 돼, 안 돼 나오지 마. 나오지 마!”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악마가 기어 나왔다.
그의 탁한 목소리가 내 머리를 흔들었다.
“가져와! 가져와! 그녀의 목을 가져와!!···”
“··· 싫어! 싫다고···”
“그럼 엄마를 죽일 거야. 동생도 망치로 때려죽이고 아빠도 찔러 죽일 거야··· 아악··· 으아아··· 으아아아··· 제발 좀 이제 나가! 내 몸에서 나가라고! 저리 가! 저리 가아아아아아!!!”
몸과 마음이 칼로 난도질당한 듯 고통스러웠다. 나는 악마를 떼어내려 몸부림쳤다.
객석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들 나의 이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겪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산발적으로 하나 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해! 그년이 어디 있어! 안 돼. 말 못 해. 너에게 절대 말해 줄 수 없어. 네 눈을 뽑아 버릴 거야. 네 혀도!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쫌! 제발.”
이 대사를 마지막으로 연기가 끝이 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천천히 객석과 심사위원석을 둘러봤다. 얼마 동안 숨소리조차 사라진 고요함뿐이었다.
짝짝짝-
한 참 후, 어떤 한 사람이 박수를 쳤고 이내 그 소리는 천둥이 되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끊임없는 박수소리가 내 몸을 두드렸다.
무대를 내려오며 짧은 순간, 마지막 참가자인 강정우와 눈빛이 마주쳤다.
그는 입이 반쯤 벌어진 채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강정우는 무대에 올라갔고···
그는 배우진의 연기 기세에 눌려, 입도 떼지 못하고 무대를 그냥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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