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40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40화
임무석 선배는 양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도망 다니는 데 재미를 붙이더니 기회만 있으면 뛰쳐나가.”
“못 잡으면 어떻게 해요?”
“밤에 혼자 슬슬 들어와. 혹시 큰길 나가서 사고당할까 걱정이지.”
매애애애애
양을 우리에 넣었다.
“자, 여기가 내 집이고 내 가족이야.”
임무석 선배는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산속에 있는 작은 놀이동산이지만,
놀이기구, 실내 놀이터, 동물원, 카페테리아, 체험관 등이 알뜰하게 갖춰져 있었다.
“와아. 정말 멋져요. 여길 어떻게 운영하게 되신 거예요?”
현아 누나가 물었다.
“그거··· 사람이 참 운명인 날이 있어. 옛날에 여기 촬영 온 적이 있었거든.
그때 저기 개천에서 어른들이 놀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전혀 안 돌본 거야. 한 아이가 깨진 유리병에 다리를 크게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어.
그걸 보고는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거지.
이후로 그게 내 꿈이 되었어.
연기해서 번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서 ‘신나랜드’를 열었어.
꿈을 이룬 셈이지.”
임무석 선배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멋지세요.”
“훌륭하세요.”
우리는 임무석 선배의 말에 완전히 감동을 받았다.
“아니, 아니, 이래서 내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하는 거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런 말 듣는 거 쑥스럽고 싫어.”
임무석 선배가 정색을 했다.
순간,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서있었다.
“자, 자, 우리 후배님께서 부족한 나에게 한 수 배우러 왔다고 하니, 리딩이나 한번 해 볼까? 날씨도 좋은데 저기 벤치로 가지.”
“네, 선생님.”
임무석 선배가 대본을 챙겨 앞장섰다.
나는 뒤를 따랐다.
*
[스승님. 월아와 구진 도법의 얼개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월아의 변화무쌍함이 구진의 등을 타면 기의 흐름이 어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놈아. 선조세법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야. 전에도 얘기했지만 세법의 기결은 점과 점만 나열해 놓은 것이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것은 바로 신체이니라. 신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신체를 이루는 것은 백과 혼인데 백은 또한 혈과 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혈과 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자는 수만 가지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머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백과 혼의 흐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
‘역시 매끄럽지 않아. 사포질을 덜한 나무 표면 같아. 거칠거칠해.’
선배와의 리딩이 끝났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극의 느낌이 덜 하지?”
임무석 선배가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봤다.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아. 99점 정도 돼.
근데 너는 부족한 1%를 채우려 날 찾아왔겠지?”
“네. 대사에 어감이 잘 살아나지 않습니다.”
“자 그럼, 내가 시범을 보여 볼게. 잘 들어봐.”
임무석 선배는 잠깐 집중하더니,
내 역할 ‘하백’의 대사를 읽었다.
[스승님. 월아와 구진도~법의 ‘얼개’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월아의 변~화무쌍함이 구진의 등을 타면 ‘기의 흐름’이 어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나?”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임무석 선배는 핵심 단어에서 한 템포 쉬고, 장단이 있는 단어는 짚어 발음했다.
말에 리듬이 생기고 단단한 사극 톤이 완성되었다.
“배우는 항상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장단을 찾는 연습을 게을리 해선 안 돼.
단어가 기본이야. 확실하게 입에 붙여. 신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그게 안 되면 얼굴 근육이 경직되고 어색해져.”
나는 임무석 선배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바짝 세웠다.
“그리고 단어와 동작은 함께 가는 거야. 자, 그럼 다시 한번 해볼까?”
“네.”
가르침을 잘 생각해서 대사를 읊었다.
“그렇지. 그렇지. 부족했던 1%를 채웠네. 한 번에 이렇게 해결하다니, 대단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어제 가르쳐주는 건데. 귀한 시간을 뺏었다.”
나는 갑갑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연기가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 오늘 귀한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나도 오랜만에 젊은 후배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뭐 더 가르쳐 줄 건 없으니까 이제 그만 가 봐도 돼.
나도 바빠.
닭장 청소도 해야 하고, 잡초도 뽑아야 되고, 기름칠도 해야 하고, 울타리도 손봐야 되고.
바빠.
하여튼 즐거웠어.”
임무석 선배는 끙 하면서 일어섰다.
허리를 쭉 펴고 무릎을 톡톡 두드리고 밀짚모자를 툭툭 털어 썼다.
“그럼 가.”
나는 그냥 갈 수 없었다.
놀이동산은 넓고 할 일은 많았다.
“선생님. 가르침에 대한 보답으로 오늘 돕고 싶습니다.”
내 말에 선배는 뒤돌아보았다.
“그럴래?”
한 번의 거절도 없이 임무석 선배는 도움을 흔쾌히 받았다.
*
“아이, 귀여워.”
현아 누나가 기니피그를 잡으려 손을 내밀었다.
후다닥후다닥
기니피그는 잡히지 않으려 여기저기로 뛰었다.
끼익 끼익
겁을 먹고 웅크리고 앉아 슬프게 울기까지 했다.
“너희들 씻겨 주려는 거야.”
현아 누나가 당근 스틱을 흔들며 상냥하게 말했다.
기니피그가 현아 누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누나는 기니피그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감싸 쥐어,
미지근한 물에 넣었다.
놀랍게도 기니피그는 얌전히 목욕을 받았다.
“목욕을 좋아하나 봐. 가만히 있네.”
현아 누나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나와 해일이는 바닥에 떨어진 기니피그의 똥을 치우고, 깨끗이 닦았다.
“이 정도면 반짝반짝하다. 다음은 어디?”
“앵무새 우리.”
앵무새 우리로 들어갔다.
알록달록 예쁜 앵무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와 어깨에 앉았다.
손바닥에 준비한 먹이를 올리자 앵무새가 손위로 앉았다.
씨앗과 곡식의 껍질을 벗겨가며 잘 먹었다.
“앵무새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해바라기 씨 까먹는 거 진짜 신기하다.”
우리는 앵무새 깃털을 빗자루로 쓸어 담고,
물걸레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똥을 박박 문질렀다.
오래돼 안 닦이는 오물은 끌을 들고 와 모조리 긁어냈다.
소독으로 마무리 하자 마음이 다 상쾌했다.
“할 만한데.”
“동물 우리가 깨끗해지니까 보람차다. 애들이 좋아할 거야.”
“이제 몇 군데 남았지? 빨리 해치우고 다른 일도 좀 해야지.”
“좋아.”
젊어서 그런지,
친구와 함께라 그런지,
존경하는 선생님의 꿈이라 그런지,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현아 누나가 칠이 다 벗겨진 담장 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누나.”
“응, 칠이 너무 벗겨져서 을씨년스러워 보여.”
“아무래도 경영난이 좀 있는 것 같아.”
“맞아.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어. 일하는 사람도 임무석 선배님이랑 어떤 아저씨뿐이고.”
“우리 시간 계속 있지?”
현아 누나가 해일이에게 물었다.
“응, 내일 오전에 연극 맞춰 보는 게 제일 빠른 스케줄이야.”
“그렇담 여기 멋진 그림을 하나 그려볼까? 3시간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아 누나가 손으로 벽에 각도를 재면서 말했다.
“신나랜드를 배경으로 임무석 선생님의 그라피티 캐리커처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오, 누나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나 미대 나온 여자야.”
“멋지다.”
현아 누나는 벽화를 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해일이와 함께 그라피티 재료를 사러 갔다.
나는 선배와 울타리를 점검했다.
“선생님. 그런데 오늘 사람들이 아무도 안 오네요.”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임무석은 벌어진 울타리를 부드러운 철사로 서로 이었다.
“평일에는 손님이 거의 안 와. 그래서 아르바이트생도 주말에만 와.”
“주말에는 많이 바쁘시겠어요.”
“별로 안 바빠. 사람들이 적당히는 오는 데 막 바쁠 만큼은 아니야.
이건 비밀인데, 나 이거 운영하려고 연기한다니까.”
삐져나온 못을 빼고 다시 단단하게 박으며 임무석 선배가 슬쩍 웃었다.
“재밌어. 애들이 놀러 와서 좋다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 거 보면, 진짜 하나도 안 힘들어.
내가 정말 돈이 많으면 다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니까.
돈 없어서 놀이동산 못 오는 사람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게.”
*
현아 누나의 손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밑그림도 없이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는데,
지나간 자리에는 임무석 선배의 얼굴, 눈, 코, 입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임무석 선배의 특징을 잘 짚어낸 유쾌한 캐리커처가 완성되었다.
“와.”
“우와.”
나와 해일이는 입을 헤 벌리고 감탄에 감탄을 했다.
신기에 가까운 누나의 솜씨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배경을 그릴 거야.”
“누나, 벽이 엄청 큰데. 그냥 그릴 수 있어?”
“머릿속에 다 있어.”
누나는 다시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누나의 손이 벽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임무석 선배 뒤로, 놀이기구가 하나씩 생겼다.
“이게 뭐야?”
임무석 선배가 다가왔다.
해일이와 나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했다.”
현아 누나가 스프레이질을 마무리했다.
짝짝짝
“와, 이건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려야겠다.”
임무석 선배는 감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고,
나와 해일이는 누나의 팔과 어깨를 주물렀다.
“야, 야. 안 그래도 돼.”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임무석 선배가 시원한 수박과 찰옥수수를 내왔다.
수박이 꿀통에 담가 놓은 듯 달달했다.
찰옥수수는 감칠맛이 끝내줬다.
“너희들 오늘 도와준 기념으로 재밌는 거 태워줄게.
다 먹었으면 나 따라와.”
임무석 선배는 수박과 찰옥수수를 다 먹은 우리 셋을
‘디스코 팡팡’으로 데려갔다.
“예? 이걸 타라고요?”
“그래. 어서 타. 신나게 태워 줄 게. 평소보다 3배는 더 재밌게 태워 줄 거야.”
선배가 DJ석으로 갔다.
“빨리 타.”
“아 이거 난코스다.”
“자신 없는데.”
“선생님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그냥 재밌게 한 번 타자.”
우리 셋은 주섬주섬 디스코 팡팡에 올라탔다.
“자, 돌아 돌아 인생이 돌아간다. 꽉 잡아. 안 그럼 튕겨.”
임무석 선배가 레바를 당겼다.
‘디스코 팡팡’은 처음에는 천천히 돌다 곧 미친 듯이 돌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아아악
날뛰는 황소처럼 우리를 이리 튕기고 저리 튕겼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누나, 꽉 잡아. 튕겨 나겠어.”
“우진아! 나 잡아 봐. 나 좀 잡아.”
“누나, 내가 도와줄 게.”
해일이가 바닥에 쓰러진 누나를 도와주려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디스코가 팡팡 튀었다.
해일이와 누나는 팝콘처럼 함께 튀겨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현아 누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누나가 내 손을 잡을 똥 말 똥 할 때,
디스코가 팡팡 튀었다.
아악
아아아아
악악악
누나가 엉금엉금 기었다.
해일이가 떼구루루 뒹굴다가 누나 위로 포개졌다.
디스코가 팡팡 튀었다.
저들을 구해야 한다.
나는 집중했다.
원심력과 팡팡 튀는 간격을 계산했다.
중심을 잡고, 해일이의 손을 낚아챘다.
동시에 해일이는 누나의 손을 잡았다.
성공!!
겨우 진정이 되는가 했는데,
“어때? 평소보다 3배로 재밌지?
돌아라!!!!!!”
디스코 팡팡의 강도가 더 세졌다.
우리 셋은 다시 뒤엉키고 범벅이 되었다.
“해일아~.”
“응~.”
“소망원 애들도~ 이거 타면 재밌겠지? 아아악”
“그럼, 애들은 다 좋아해. 아~~”
“여기 데려와서 놀자. 악악”
“좋지. 좋아. 애들이. 아악. 좋아할 거야. 아아악~~~”
우리의 대화는 절규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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