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44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44화
이 대학로로 이전했다.
나와 해일이는 대학로 한가운데,
빨간 벽돌 건물 앞에 서있었다.
“역수동 창고랑은 비교 불가다.”
해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겨울 생각나? 여기 대학로에서 전단지 붙였었잖아.
그때, 우리 극단도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꿈만 같다.”
“그러게. 꿈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 몰랐어.”
우리는 극단으로 들어갔다.
“안도 깨끗하고 좋아.”
“넓고 쾌적하다.”
두리번두리번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는데,
“헤이. 배우진, 오해일.”
김도한이 먼지를 털다 우리를 발견했다.
“오, 김도한. 잘 지냈냐?”
“연극 이것저것 마무리하고, 이사한다고 정신없었다.”
“항상 수고가 많아. 이제 정식 단원만 남은 거야?”
“응, 다음 작품 정해질 때까지는 그래.
근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새까맣냐?”
“영화 준비로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
“자전거 타다 죽을 뻔도 하고.”
“엥? 그건 무슨 소리야?”
“아휴, 산에서 MTB 자전거 타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했어.”
“세상에.”
“그래도 자전거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서로 간의 근황 체크 후,
“자, 여기.”
마트에 들러 사 온 휴지, 각티슈, 퐁퐁, 고무장갑을 도한이에게 안겼다.
“뭘 이런 걸 다?”
“이사하고 첫 방문인데 그래도 빈손으로 올 순 없지.”
“그래, 고맙다.”
“컬러복사기도 주문해 놨어.”
“야, 그건 비싼데. 어쨌든 고맙다.”
“마루에 탄력이 있어.”
해일이가 제자리 뛰기를 하며 말했다.
“그거 강화 탄성 마루야. 점프를 하거나 많이 걸어도 발이 안 아프대.”
“우와, 전면에 대형 거울까지. 정말 좋다.”
“나 이번에 이사하면서, 민상기 선생님 다시 봤잖아.
돈 안 아끼시더라. 좋다는 건 다 했어.”
“흠, 저번 일일 찻집 때도 그렇고 은근 반전의 사나이야.”
“큭큭.”
“맞아. 양파 같은 남자야.”
“그런데 여길 너랑 선생님 둘이서 다 옮겼어?”
“이사할 것도 없었어. 역수동 창고에서 가져올거나 있어야지. 그냥 대본이랑 책들만 챙겨 왔어.
그리고 둘이 아니라 셋이다.”
“아차, 안효진.”
“맞아, 효진이도 정식 단원이지. ··· 근데, 어딨어?”
앞치마에 두건, 고무장갑까지 낀 안효진이 탕비실에서 나왔다.
“어? 우진이랑 해일이 왔네.”
“안녕. 안효진. 오늘 색다른 패션인데.”
“청소 패션?”
“자, 자.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는 소매를 걷으며 청소 준비를 했다.
“나는 거울이랑 유리창을 닦겠어. 광을 내버릴 거야.”
해일이가 신문지를 잡았다.
“오, 신문지. 역시 배운 사람이야. 그럼 나는 바닥 물걸레질을 하겠습니다.”
나는 구석에 놓인 대걸레로 향했다.
“먼지는 다 털었고, 나는 짐 정리 좀 할게. 아직 못 뜯은 박스가 많아.”
도한이는 박스 더미로 갔다.
“난 싱크대 닦다 나왔거든.”
효진이는 다시 탕비실로 들어갔다.
새로 옮긴 이 반짝반짝 깨끗해졌다.
*
청소 후, 우리는 짜장면을 시켜먹기로 했다.
김도한이 법인 카드를 꺼냈다.
“우와. 법카.”
“선생님이 밥은 꼭 법카로 먹으랬어.”
“극단이 돈방석에 올랐나?”
“돈도 돈이지만 인지도가 엄청 올랐어.
대형 공연 제의가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중.”
“진짜 잘 됐다. 덕분에 우리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난, 짜장면.”
“난, 짬뽕.”
“난 간짜장.”
“난, 유린기.”
우리는 효진을 쳐다봤다.
“효진이 너 유린기가 뭔지 알아?”
“몰라?”
“모르는데 왜 시켜?”
“사람은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해 봐야 하는 거야.
매일 똑같은 것만 먹으면 정체되는 거라고.”
“아··· 그렇구나.”
김도한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금방 짜장면이 도착했다.
우리는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음식을 펼쳐 놓았다.
후루룩
호로록
“우와, 그런데 텔레비전도 되게 좋아. 평면 32인치야. 크크.”
“진짜 크긴 하다.”
해일이가 티브이를 켰다.
마침 를 하고 있었다.
“오, 박은하 나오겠다. 요즘 점점 핫 해지던데.”
볼륨을 높였다.
*
‘책을 읽읍시다 팀이 5일 장을 방문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분식집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이고. 김우창 씨, 유석재 씨. 어, 이 아가씨는 무슨 은한데. 이은하?”
“박은하.”
유석재가 작은 목소리로 아주머니 귀에 대고 말했다.
“아, 맞다 맞아. 박은하.”
“사장님. 매운 불닭 꼬치 맛있어 보여요.”
김우창이 군침을 흘리며 말했다.
“그거 맷없어.”
아주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전 출연진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맷이 없어요?”
“응. 맷없어. 그거 말고 다른 건 다 맷있어.”
“아니. 맛없는데 왜 팔아요?”
“아, 요새 젊은이들이 매운 거 엄청 좋아한다 길래, 그냥 한번 맨들어 본거여.”
“제가 한 번 맛봐도 되나요?”
박은하가 물었다.
“맷뵈도 되는데 맵다고 삐삐(지럴)하지는 말어.”
아하하하
크크크
오호호.
“사장님 입이 누룽지처럼 구수하네요.”
박은하가 찰지게 말했다.
“손님 없을 때마다, 누룽지 하도 씹어서 그려.”
아주머니가 기가 막히게 받았다.
아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저. 한번 먹어 볼게요.”
박은하가 불닭 꼬치를 한입 먹었다.
“어유. 힘들 텐데.”
아주머니는 인상을 쓰며 괴로워했다.
박은하가 잘근잘근 씹는다.
눈을 부릅뜨고, 코 평수가 넓어지며, 양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는다.
하지만 특별한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어때요? 맛있어요?”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유석재가 물었다.
박은하는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뭐예요? 궁금해서 못 견디겠네.”
김우창이 나섰다.
박은하가 불닭 꼬치에 소스를 잔뜩 묻혀 김우창, 유석재에게 건넸다.
“괜찮죠?”
유석재가 박은하를 보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박은하는 고개만 끄덕였다.
“봐, 은하 괜찮잖아. 적당한 것 같아. 먹어보자. 맛있겠다.”
유석재와 김우창이 동시에 불닭 꼬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뱉었다.
아아아악.
꽤애애애액.
우와와와와와.
“오마 갓. 오마 갓.”
“아악 아악.”
“또뜨 허에 부텄어. (소스 혀에 붙었어.)”
둘은 고통스러운 뜨거운 맛에 난리 법석을 피웠다.
그제야 박은하도 입에 남아 있던 불닭 꼬치를 뱉으며,
“우유! 우유! 우유!”
격렬하게 우유를 찾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몸을 반으로 접어 ‘하악 하악’ 불을 뿜어댔다.
“우와. 진짜 넣는 순간 혀가 불에 덴 느낌이야.”
유석재가 침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 왜 괜찮다고 했어?”
김우창이 박은하에게 따졌다.
“저만 지옥으로 갈 순 없잖아요.
진짜 사포로 혀를 박박 문지르는 것 같았어.”
박은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짝짝
와
시장통이 한 바탕 웃음꽃이 폈다.
*
“하핳핳하하”
“하하하하하핳하”
“으하하핳하하핳하하.”
오해일이 배꼽을 잡고 굴렀다.
짜장면이 볼따구에 붙은 것도 모르고.
박은하만 나오면 자동반사적으로 웃었다.
그렇게 웃긴가?
도한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효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수상해’라고 생각했다.
“정식 단원이면 월급도 주신대?”
“응, 계약서도 썼어.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벌고, 좋아.”
“나도, 나도.”
김도한과 안효진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연극만 할 거야?”
“지금은 연극이 좋아.”
“효진이도?”
“당분간은 연극에 전념하려고.”
“참, 강정우는 어떻게 지내?”
“차민혁 선배 따라 ‘소울 엔터’ 들어갔어. 그리고 ‘프린스 앤 플라워’ 캐스팅됐다던데.”
“어, 그래.”
전생에서도 ‘프린스 앤 플라워’를 함께 했기에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라르 감독님, 프랑스 들어가신대.”
“응, 정말?”
“예술적 영감이 다 소진되셨나 봐. 영감 찾으러 가신대···”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깜짝 놀랐다.
떠나시기 전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나 제라르 감독님과 통화 좀 하고 올게.”
나는 밖으로 나와 제라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감독님 저 우진이예요. 프랑스 들어가신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어, 그렇게 됐어. 한국에서 너무 소진된 기분이야.
“얼마나 계실 건가요?
-글쎄, 지금으로선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걸 찾을 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이라.
넌? 영화 준비는 잘하고 있어?
“네, 다음 주에 리딩하고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기대가 된다. 이번 영화에서 선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혹시 오늘 저녁이라도, 뵐 수 있을까요? 감독님 떠나시기 전 인사는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좋아. 마침 별 일이 없는데.
“제가 조용한 찻집을 알게 됐거든요.”
-그래? 그럼 거기서 만나지.
“네.”
***
제라르는 배우진이 알려준 찻집을 찾아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제일 안쪽 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돌담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정원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비단잉어가 유유히 헤엄쳤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돌 위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토기 인형들이 아기자기 놓여있었다.
푸른 잔디 위로 현무암 디딤돌이 현관까지 이어졌다.
제라르는 디딤돌을 한 칸 한 칸 밟으며 찻집 앞에 섰다.
문을 열자 끼익 마찰음과 함께 은은한 풍경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차향이 코끝에 스쳤다.
가야금 음악이 들릴 듯 말 듯 공간에 퍼져있었다.
연분홍 개량한복을 입은 지담이 엷은 미소로 제라르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기 창가로 앉으시겠어요? 창이 넓어 정원이 잘 보이는 자리예요.”
“네, 감사합니다.”
지담은 제라르를 자리로 안내하고 주문을 받았다.
“우전으로 부탁드립니다.”
“네. 준비해 드릴게요.”
‘이런 것이 한국의 미라는 것인가?’
제라르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감독님.
“어, 우진아.”
-극단에 수도가 터져서 그거 수습하느라 늦었어요. 지금 출발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 천천히 와.”
지담이 녹차를 내왔다.
다기를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혹시, 제라르 감독님?”
“네? 절 어떻게 아시나요?”
“우진이라고 해서요. 배우진. 저희 집은 단골이 몇 없거든요.”
“아, 네.”
“들어오실 때부터 느낌이 달랐어요. 어쩌면 제라르 감독님이 아닐까 생각했죠.
제가 맥스 영상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두루미와 함께 즐기는 커피.
그게 진짠지 우진이한테 물어도 봤다니까요.”
지담의 미소가 찻집 지담과 닮아 있었다.
제라르는 속에서 뭔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다 말라버렸다고 믿었던 영감의 샘물이 솟아올랐다.
“아차, 제가 실례가 많았네요. 죄송합니다. 차 드세요.”
지담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아닙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라르가 지담을 붙잡았다.
“네, 그렇다면···”
지담도 제라르와 대화하고 싶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뭔가 영감이 떠올라요. 저도 글 쓰는 사람이거든요. 감독님을 이렇게 뵈니 제게 ‘어떤 글’이 나올 것 같아요.”
“저도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어떤 작품’이 떠올라요.
한국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제라르는 한 줄기 빛을 만난 느낌이었다.
프랑스는 안 가도 될 것 같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