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5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5화 (장면 추가)
오늘 친구 오해일을 만나 함께 고아원에 가기로 했다.
지난 삶에서 해일이는 나에게 여러 번 봉사 활동을 권유했었지만, 번번이 바쁘다는 핑계만 댔었다.
전생의 2003년 크리스마스이브가 떠올랐다. 고아원 아이들과의 약속을 간단히 깨버리고, 재벌가 망나니들의 파티에 갔었지.
그다음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 후로 처참히 무너졌던 삶···
‘좋은 배우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해.’
나는 책상에 놓여 있는 「오즈의 마법사」를 가방에 넣었다. 아이들에게 읽어 주려고 어젯밤에 몇 번이나 연습을 했었다.
내 작은 재능으로 행복해할 작은 얼굴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설거지를 끝내고 물기를 수건에 닦고 있었다.
“엄마.”
“응, 어디가?”
“오늘 해일이랑 고아원 가기로 했어.”
“우리 아들, 연극제 대상에, 봉사 활동에, 요즘 너무 대견해.”
엄마는 아들이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엄마의 손길을 피해 도망치듯 현관으로 내달렸다.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너무 늦지는 말고.”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 올게요.”
“아들, 용돈 필요해? 잠깐만 있어 봐. 엄마가 용돈 좀 줄 게.”
“아니야. 나 돈 많아. 아, 잠깐만.”
하마터면 진짜 목적을 잊을 뻔했다. 나는 가방에서 선물 상자 두 개를 꺼냈다.
“이거.”
“이··· 이게 뭐냐?”
“대상 받은 상금으로 산거야. 엄마 화장품이랑 아빠 넥타이. 그리고 이 돈은 엄마, 아빠 데이트할 때 쓰세요.”
상금에서 용돈 조금 빼고 나머지를 흰 봉투에 담아 드렸다.
“아들··· 이거···아···”
엄마는 감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모르는 척 쌩하니 집을 나왔다.
“다녀올게요.”
***
고려당으로 갔다. 오해일과 만나기로 한 동네에서 제일 비싸고 맛있는 빵집.
“여기.”
먼저 온 해일이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애들 무슨 빵 좋아해? 대상 상금 아직 남았어. 넉넉하게 사가자.”
“오~ 미래의 대배우님, 역시 통이 크시네요.”
“대배우라.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데.”
“앉아. 뭐 좀 먹고 가자.”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니 허기가 밀려왔다. 오해일이와 나는 샌드위치와 주스를 주문해 먹었다.
“야, 해일아!”
“왜?”
“너 대학 갈 거야?”
“대학? 아니. 안 갈 거야. 빨리 사회 나가서 내 힘으로 돈 벌고 싶어.”
“부모님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셔. 내 인생이니까. 하여튼 난 빨리 돈을 벌고 싶다.”
전생에서도 해일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사회로 뛰어들었었다. 청소, 배달, 사무 보조, 서빙, 상하차, 숯불 피우기, 놀이동산 인형 탈 등등··· 다양한 알바를 하며 사회 경험을 착실히 쌓아 나갔었다. 오해일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그럼, 매니저 같은 건 어때?”
“매니저? 무슨 매니저?”
“내가 배우 되면 내 매니저 좀 해 줘.”
“···”
해일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건 부탁이다. 친구의 부탁.”
“··· 얼마나 줄 건지부터 말해. 고급 인력을 날로 먹을 순 없지.”
“네 주머니 터지도록 줄게.”
“진짜?”
“진짜.”
“··· 콜. 그런데 조건이 있어.”
“조건?”
“난 시시한 건 싫다. 우리나라 영화계를··· 아니 전 세계 영화계를 씹어 먹을 정도의 대배우가 된다고 약속해.”
“그거야 당연하지. 나는 연기로 말하는 배우가 될 거야”
나는 해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일은 내 손을 잡았다. 이로써 계약이 성립되었다.
“사실, 연극제에서 너 연기 보고 완전 소름 돋았잖아. 내 친구 배우진이 맞나 싶더라고.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그리고 쟁반을 들었다. 단팥빵, 소보루, 슈크림, 만쥬, 카스테라, 도너츠··· 눈에 보이는 데로 빵을 쓸어 담았다.
***
고아원은 버스 정류장 가까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로 보였다. 넓은 운동장에 빨간 벽돌 건물이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커다란 대문 사이로 안이 훤히 보였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대문 앞에 선 오해일을 보고 달려왔다.
“형.”
“오빠.”
아이들의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어? 이 아저씨는 누구야?”
“오빠 친구야. 잘 생겼지?”
“응. 엄청나.”
“오빠 보다 더 잘생겼어?”
여자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 배신자~”
오해일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아이들을 쫓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운동장으로 도망쳤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작된 술래잡기.
나도 가방과 빵을 내려놓고 바로 달려들었다.
“하하하.”
“호호.”
“잡아봐라.”
“간다.”
우리는 한참을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조금 뒤, 대문이 활짝 열리고 작은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트럭엔 책이 가득 실려 있었다. 건물 안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와 책을 안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해일아, 가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
해일이는 앞뒤로 매달려 있던 아이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아이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말을 잘 들었다.
“저 책 다 정리하고 다시 놀아줄게.”
“형, 약속했다.”
“그래.”
오늘은 도서관을 새로 만드는 날. 바쁜 일손을 돕는 게 우선이다. 우리는 팔을 걷어 부치고 트럭 앞으로 달려갔다.
“원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쪽은 제 친구 배우진입니다.”
해일은 트럭 앞의 한 중년 여성에게 나를 소개했다. 여기 ‘하늘 소망원’의 원장님인 것 같았다.
“해일이 친구?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배우진입니다.”
원장님은 옆에 선 여자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세련된 중년 여성이었다.
“아, 이쪽은 오늘 이 많은 책들을 기증해주신 귀한 후원자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김진숙이에요. 학생들이 이런 봉사 활동을 다 하고··· 감동이에요.”
김진숙은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김진숙? 머릿속에 이름이 뱅글뱅글 맴돌았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 그리고 이거.”
고려당에서 사 온 빵을 원장님께 드렸다.
“그냥 와도 되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 친구가 저번에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거든요. 그 상금으로 산거라 괜찮아요.”
오해일이 내 대신 대답했다. 자랑스럽게. 벌써부터 매니저 노릇인가?
나는 멋쩍게 미소 지었다.
“혹시 ‘젊은 연기 축제’ 그 연극제?”
김진숙이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네, 맞습니다.”
“아!”
김진숙은 더 길게 말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직 원장님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고 있기에.
그녀는 영화 제작사 ‘유니콘 스튜디오’의 대표이사이자 영화계의 큰 손.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 후원 활동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서 비밀로 하고 있었다.
‘올해 강력한 우승 후보를 누르고 뉴 페이스가 등장했다고 하더니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날 바빠서 직접 연극제에 가보지는 못했었다.
새로운 우승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그 순간, 배우진도 그녀가 생각났다.
‘아~ 유니콘 스튜디오 김진숙 대표!’
영화계에서 워낙 유명한 이름인지라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연극제에 관심을 드러내자 누구인지 확신이 들었다.
전생에서 크게 엮인 사이는 아니었다. 유니콘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방향이 나의 방향과는 달랐기에.
“도서관은 1층 복도 끝 방에 만들 거예요. 여기 책들을 그 방으로 옮겨 정리하면 돼요.”
인사는 끝났으니 이제 일할 차례. 원장님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셨다.
“네, 맡겨만 주세요.”
해일과 나는 양손에 책 꾸러미를 들었다. 19세의 몸은 이런 일이 정말이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책을 나르고 정리했다. 아이들이 함께 도와 일은 빨리 끝났다.
***
저녁 식사 후, 아이들은 나의 구연동화를 들으러 강당에 모였다. 아이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떠올린 동화 읽어주기.
동화를 읽는 것도 연기다. 지문과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한 명이 모두 소화해야 하는 연기.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얼굴 근육을 풀었다.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기에.
준비가 끝나자 첫 문장을 시작했다.
[안녕? 난 도로시야. 그리고 여기 귀여운 강아지 토토가 있어. 우리 집은 미국 캔자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태어났고 자랐어.]살짝 하이톤으로 여리게 여자 아이의 목소리를 냈다. 억지로 꾸미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빨리 지하실로 도망쳐! 엠, 회오리바람이 몰려온다. 어서 피해! 도로시와 토토는 어디 있니? 얼른 피해.]다급하게 소리치며 얼굴에 두려움을 그려냈다. 지금 당장 회오리바람에 날아가 버릴 듯.
“도망쳐.”
“도로시, 토토 어딨어?”
“아~~.”
“어떡해. 어떡해.”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소란한 소리가 원장실까지 들렸다.
“우진 학생이 이야기를 잘 읽나 보네. 아이들 웃음소리가 저렇게 큰 건 또 오랜만이야.”
“많이 재미있나 봐요, 우리도 한번 가볼까요?”
차를 마시던 원장과 김진숙은 함께 강당으로 갔다. 닫혀 있던 문을 살며시 열었다. 열기가 후끈 쏟아졌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도로시가 가까이 다가가니까 허수아비가 말을 거는 것이 아니겠어요? 안녕? 좋은 날씨지?]“안녕.”
“안뇽.”
“안~~~~ 녕~~~.”
내가 허수아비가 되어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관객 호응이 너무 좋아 저절로 흥이 났다.
[어머, 지금 나한테 말을 한 건가요? 물론이지. 만나서 반가워요. 아가씨!]배우진을 바라보는 김진숙의 눈매가 날카로웠다. 봉사 활동을 하던 부드러운 눈빛에서 배우의 연기를 보는 제작자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했다.
‘보통이 아닌데.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발성으로 각 캐릭터의 감정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어.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금상첨화 구만. 흡입력도 상당해.’
김진숙은 본능적으로 사업가 기질이 발휘되었다.
‘쟤 물건이다!’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 많은 사자가 힘을 합쳐 마녀를 물리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몸까지 휘둘러가며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와~~~.”
“최고, 최고.”
“재밌다.”
순간, 열렬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가 크던 작던 관객의 호응은 배우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해일이가 대단한 배우라고 하더니, 그냥 천재 배우네. 천재 배우야. 다음에도 혹시 시간 되면 아이들에게 책 좀 읽어 줄 수 있나요?”
원장님이 다가오며 나에게 말했다. 무척 감격한 표정이었다.
“네. 자주자주 들러서 읽어주겠습니다.”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오빠 최고. 최고.”
“재밌다. 또 읽어주세요.”
아이들은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내 주위를 맴돌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대상을 탈만하네요.”
김진숙이 말했다.
계속된 칭찬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쑥스러워할 필요 없어요. 하여튼 다음에 또 봅시다. 좋은 기회에 말이죠.”
김진숙은 손을 내밀어 내게 악수를 청했다.
***
교장실에 배우진, 오해일, 배우진 부모님, 오해일 부모님, 담임선생님이 모였다.
고 3 배우진과 오해일의 학사 일정과 진로에 관해 상의를 하는 자리였다.
“그럼, 우진이와 해일이는 대학 안 가나요?”
교장 선생님이 부모님들께 물었다.
“네, 우진이는 연기를 하는 것이 꿈입니다.
진로를 정했는데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있을까요?”
“저희 해일이도 마찬가지예요. 뜻이 확고해요. 우진이의 매니저 일을 한답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싶어요.”
“음.”
교장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담임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진이와 해일이는 성실한 학생들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잘할 겁니다.
꼭 대학만이 답은 아니죠.”
교장 선생님이 배우진과 오해일을 바라봤다.
“배우진, 오해일.”
“네, 교장 선생님.”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네, 잘하겠습니다. 학교와 부모님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대학에서 하는 공부만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도 우진이와 생각이 같습니다.”
“좋다. 이 정도로 확고한 의지라면 그 길을 가야지.
학교는 학생이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는 곳이지, 막는 곳은 아니야.
너희 둘은 야자, 보충 수업을 빠져도 좋다.”
교장 선생님은 우진과 해일이의 꿈을 지지했다.
“그 대신 훌륭한 배우가 되거라.”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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