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51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51화
JC 회의실에 배우진과 백 감독이 들어섰다.
박상기 제작부장이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요즘 수고가 많으시죠? 촬영에 관해 이것저것 점검할 사항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네.”
“앉으세요.”
배우진과 백 감독이 자리에 앉았다.
바로, 진채은이 커피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백 감독님, 배우진 씨 오셨어요?”
진채은이 밝게 웃었다.
‘역시, 진채은이 꾸민 일이었구나.’
배우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베트남 갔을 때 사온 커피예요. 오늘 다 같이 한번 마셔볼까요?
여기는 연유를 이렇게 듬뿍 뿌려먹더라고요.”
진채은이 베트남 연유 커피를 테이블에 한잔씩 놓았다.
“달고 맛있네요.”
박 부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배우진 씨는··· 다음 주에 ‘한밤의 tv 통신’ 인터뷰가 잡혀있습니다. 강정우랑 함께 출연하면 됩니다.
촬영이 ··· 지연········· 예약이··· 조연과 주연······ 질서··· 원로배우··· 잘··· 원만··· 조화··· 함께라면··· 회사는··· 필름··· 좋습니다······ 믿습니다···
그리고 혹시··· 뭐 특별히 건의하실 사항 있나요?
현장에서 불편한 거라든지, 회식을 더 하고 싶다든지?”
박 부장은 영양가 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없습니다.”
백 감독이 대답했다.
“저도 없습니다.”
배우진도 따라 대답했다.
박 부장이 진채은의 눈치를 살폈다.
“아, 네 그럼, 백 감독하고 저는 따로 의논할 일이 있는데···
백 감독 내 방으로 가서 좀 더 이야기해도 되죠?”
“아, 네.”
박 부장을 따라 백 감독이 일어났다.
배우진도 함께 일어섰다.
“저는 배우진 씨와 영화에 관해 의논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잠깐만 앉아 주실래요?”
진채은이 말했다.
“음.”
배우진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박 부장과 백 감독 앞에서 진채은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박 부장과 백 감독이 회의실을 나갔다.
배우진과 진채은 둘만 남았다.
“배우진 씨,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그냥 밥 한 끼 먹자는데, 그렇게 빡빡하게 굴건 없잖아요.”
“그쪽과 단둘이 밥 먹을 이유 없습니다.”
“밥 먹다 보면, 좋은 이야기가 오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가령 JC 차기작의 주인공이라든가 아니면 CF 출연? 더해서 JC라는 든든한 백을 얻게 되는 그런 거?”
“그런 거 ‘제작 총괄 지휘자’님 다 하십시오. 특별한 말씀 없으시면 일어나겠습니다.”
“그깟 밥 한번 먹는 게 뭐가 대수라고 이래? 릴랙스 하면서 살아.
그래야 연기도 자연스러워. 너 보다 잘난 배우들도 다 그렇게 해.”
진채은이 발끈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야. 제작 투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그것뿐인 줄 알아? 배급은?
편집 다 끝낸 영화도 극장 못 잡아서, 일 년에 수백 통씩 창고에서 썩어가.
너 그렇게 자신 있어? 나랑 진짜 한번 해볼래?”
“지위를 이용한 이런 협박 저한테는 안 통합니다.
계속 이러시면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배우진이 일어서서 말했다.
“다시는 이런 자리 만들지 마.
너랑 엮일 일 절대로 없어.”
배우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회의실을 나갔다.
진채은이 부들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세트장 태양그룹 ‘최 회장’ 집.
촬영이 밤늦게까지 계속 이어졌다.
‘최 회장’ 정일섭이 후계자를 뽑겠다고 정식 선언했다.
‘홍 여사’ 나희진이 드디어 자기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는구나 하고 기뻐하고 있을 때,
‘최준’ 배우진이 집안에 들어왔다.
“네가 여기 왜 들어와!”
‘홍 여사’ 나희진이 ‘최준’ 배우진에게 고함을 질렀다.
“당장 내 집에서 꺼지지 못해.”
“제가 꼭 못 올 곳에 온 건 아니잖아요. 같은 핏줄인데.”
“뭬야! 핏줄? 너 같은 놈은 여기 있을 자격이 없어. 당장 꺼져.”
“자격이 되던데요. 저도 최근에야 알았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여기 가족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회장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홍 여사’ 나희진이 ‘최 회장’ 정일섭을 휙 노려봤다.
“컷! 네. 좋습니다.”
백 감독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쉬고 다음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아고, 힘들어.”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좀 쉬자.”
“오늘 밤새울라나. 집중이 안 된다.”
밤샘 촬영에 모두들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때,
트럭 한 대가 들어오더니 요란하게 음식 준비를 했다.
“저 차 뭐야? 이 피디님. 오늘 뭐 오기로 했어요?”
“응? 그런 거 없는데. 저거 무슨 트럭이지?”
“간식 차 같은데요.”
“그럴 리 없는데···”
이 피디가 간식 차로 갔다.
“뭡니까?”
“여기가 촬영장 맞죠?”
“그런데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진채은 씨가 여기 간식을 제공해 드리라고 해서 왔어요.
노량진에서 장사 접고 바로 오는 길입니다.”
“진채은 씨가요?”
“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후딱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때 맞춰 보라색 스포츠카가 들어왔다.
진채은이 내렸다.
“안녕하세요. 이 피디님.”
“아, 네.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놀라셨죠? 오늘 밤샘 촬영이 있다고 해서 힘내시라고 제가 특별히 부탁을 드렸어요.
배가 든든해야 힘이 나지 않겠어요.”
“아, 당연하죠. 이렇게 신경 써 주시니 갑자기 힘이 솟는데요.”
이 피디는 살살 웃으며 진채은의 비위를 맞췄다.
“자, 자 여러분. 와서 배도 좀 채우시고 잠깐 쉬도록 하세요.”
진채은이 손나팔을 만들어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맛있겠다.”
“먹으니까 힘이 솟네.”
“그러네.”
맛있는 냄새를 맡고 모두들 우르르 달려들어 출출했던 속을 달랬다.
“많이 드세요.”
진채은이 미소를 지으며 여유만만하게 거실 세트장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밤늦게 고생 많으십니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힘든데 여기까지 오셨어요?”
쉬고 있던 배우들이 진채은과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진채은이 곁눈으로 배우진을 봤다.
배우진은 진채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저씨. 많이 힘드시죠?”
진채은이 정일섭에게 다가가 애교 섞인 목소리를 냈다.
“요즘 자주 보네.”
“아저씨 고생하신다고 아빠가 자주 들르라고 했어요.”
“하하. 우리 채은이가 이렇게 신경 쓰는 걸 보니 이번 영화는 대박이 나겠어.”
“당연하죠.”
정일섭은 언제나처럼 진채은을 이뻐했다.
“꿀배도라지 차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왔어요. 목에도 좋고 기운도 좀 나실 거예요. 제가 한잔씩 따라 드릴게요.”
진채은이 꿀배도라지 차를 한 사람씩 직접 건넸다.
“감사합니다.”
“아유, 이걸 직접 만드셨어요? 잘 마실게요.”
“아이고, 제가 가서 먹어도 되는데. 직접 갖다 주시고.”
그런 진채은의 모습을 정일섭은 마냥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채은이가 이제는 철이 좀 들었나.’
진채은은 정일섭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배우진에게 꿀배도라지 차를 들고 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자, 이거 마셔. 다 너 때문에 준비한 거 알지?”
“전 괜찮습니다.”
배우진은 정중히 사양을 했다.
진채은은 여전히 작지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너 때문에 준비한 거야. 그러니까 마시라고.”
“전 됐습니다.”
배우진이 단호하게 자리를 피했다.
정일섭은 멀리서 진채은의 호의를 무시하는 배우진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배우진 저 녀석 그렇게 안 봤는데. 채은이가 들어올 때 인사도 안 하더니만,
성의 가득한 차도 거절하고.
못 돼 먹은 녀석이로군. 인기 좀 있다고 건방져.’
정일섭의 마음에 배우진에 대한 편견이 생겨버렸다.
***
정일섭이 촬영 중간에 쉬고 있었다.
의자 깊숙이 앉아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기분 좋았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쑥덕쑥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용이 배우진과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
“배우진 연기 잘한다고 잘난척 하지 않냐?”
“요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어.”
“근데 이번 영화 솔직히 배우진이 다 이끌어 가는 거긴 해.”
“아니지. 정일섭 선생님이 계시니까 중심이 딱 잡히는 거지.”
“모르는 소리 마.
지난번 리딩 때도 그렇고, 배우진이랑 정일섭 선생님이랑 연기하는데,
선생님이 밀려.”
“그건 맞아. 배우진이 정일섭 선생님 한 방 먹였다고 자랑하고 다니던데.”
“진짜?”
정일섭의 마음이 팍 상했다.
안 그래도 배우진을 고깝게 보고 있던 차였다.
우연히 들은 뒷담화로 배우진에 대한 미운털이 꽉 박혀 버렸다.
“배우진 이 놈.”
*
“야, 우리도 이 정도면 연기상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언니. 채은이가 시켜서 하는 거긴 하지만, 조금 미안하다.
옆에서 보니까 배우진 그렇게 나쁘지 않던데.
내 연기하는 것도 봐주고, 친절해.”
“야! 야! 넌 마음이 독하지가 못 해. ‘제이’ 오설기를 생각해. 네 자리 뺏어간.”
“알았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공민주와 신정아가 정일섭의 휴식처를 살금살금 빠져나갔다.
***
‘최준’ 배우진과 ‘최승호’ 강정우가 서로 맞붙는 장면.
모두들 꼼짝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두 젊은 배우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최승호’ 강정우가 ‘최준’ 배우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다 보고서 새삼스럽게 왜 물어?”
‘최준’ 배우진은 관심 없다는 듯 뿌리치고 갔다.
“그 사업은 회장님이 가장 아끼는 사업이야. 그런데 그걸 해체해야 한다고?”
“다 들었네.”
“무슨 생각으로?”
“그건 이미 다 쓴 배터리야. 충전도 안 되는 거 몰라.”
“단물 다 뽑아 먹었으니까 버린다. 참 편하게 사업하는구나.”
“··· 그게 내 생각일까? 눈 뜨고 똑바로 봐봐. 내가 누구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지.”
“그게 무슨 소리야?”
‘최준’ 배우진은 조소를 보낸다.
몇 발작 걷다 뒤돌아서 ‘최승호’ 강정우에게 일침을 날린다.
“다음부터 내 몸에 손대지 마. 딱 질색이야.”
“컷! 좋았어. 갈수록 더 좋다. 조금 쉬고 테이크 4로 가자.”
배우진과 강정우의 합이 착착 맞아 들어가는 것이 백 감독으로선 너무나 즐거웠다.
특히, 배우진의 흡입력은 갈수록 엄청났다.
정일섭이 도끼눈을 뜨고 배우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희진아! 배우진 쟤 어떠냐?”
정일섭이 옆에서 있던 ‘홍 여사’ 나희진에게 물었다.
“배우진? 괜찮지. 오묘하게 잘 생겼고.
그런데 연기는 그것보다 더 좋아.
싹싹하고 편하고 좋아.
마음에 쏙 들어.”
나희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좀 가식적인 거 같지 않아.
뭔가 속과 겉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앞에서는 겸손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호박씨 까는 그런 스타일?”
“그래? 난 전혀 못 느꼈는데. 오빠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오늘 ‘별들의 밤’ 행사 알지?”
‘별들의 밤’은 55세 이상 시니어 배우들의 모임이었다.
정일섭은 올해 말에 있을 ‘배우 협회장’에 출마할 것이므로,
‘별들의 밤’ 회원들에게 먼저 인정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연히 가야지. 거기에 내가 빠지면 되나?”
그때, 홍삼 드링크를 들고 진채은이 촬영장에 들어왔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기운 빠지면 연기하기 힘들어요.”
“아이고, 요새 채은 씨 덕분에 호강하고 있어요.”
“채은이가 요즘 우리 촬영장의 비타민이야.”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그리고 우리 JC 작품인데···
그런데 아저씨, 이런 얘기 조금 조심스럽지만···.”
“무슨 일인데? 나한테 못할 말이 뭐 있어?”
“그게··· 배우진과 대화 좀 해주세요.
요즘 촬영장 분위기를 너무 흐려놔요.
자기 아니었으면 이 영화 시작도 못했다 하고,
영화에 연기되는 배우가 자기밖에 없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나 봐요.”
“아니, 그놈이!!”
“저도 너무 황당해서, 따로 얘기 좀 하자니까,
만날 일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하고.”
정일섭의 혈압이 머리끝까지 솟았다.
*
‘최준’ 배우진과 ‘최 회장’ 정일섭이 독대한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에 유일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분재가 있다.
‘최 회장’ 손에 쥔 가위 칼날이 번쩍인다.
“언제까지 저를 개처럼 부려 먹으실 거죠?”
‘최준’ 배우진이 싸늘하게 물었다.
“나는 너를 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지.”
‘최 회장’ 정일섭이 분재를 다듬었다.
“이젠 이런 고고한 놈들이 좋아지는구나. 누구처럼 시끄럽지도 않고.”
“쓸모없는 건 다 잘라버리고 말이죠.”
배우진이 애드립을 쳤다.
정일섭이 정색을 하며 NG를 냈다.
“잠깐, 잠깐. 거기서 애드립을 치면 감정이 깨져. 배우진, 대본대로 해.”
“··· 네. 선생님.”
‘애드립 좋았는데. 정일섭 선생님 오늘 왜 저러시지? 평소와는 다른데.’
백 감독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
‘별들의 밤’ 행사장이 시끌벅적했다.
트로트 가수가 찰지게 노래를 하며 흥을 돋우고,
오랜만에 만난 원로 배우들은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중앙 테이블에 정일섭이 자리를 잡고 앉아 동료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 젊었을 땐 하루에 몇 편을 찍었는지 몰라.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지.”
정일섭이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했다.
“맞아요. 형님 그때는 진짜 정신이 없었어요.”
“내가 막 뜨기 시작했을 때, 눈을 뜨기도 전에 영화사에서 와서 깨워 데려가.
무슨 영환지도 몰라. 그냥 대본 주면서 이거 하래. 그러면 뭔지도 모르고 그냥 하는 거야.
한 번은 깡패 두목 역할이었는데 일대 일로 붙는 장면이었어.
이정만 형님 하고.”
“아아, 이정만 형님.”
“이정만 하고 싸워서 내가 깨졌거든.
오전에 그거 찍고 오후에 다른 영화 촬영장에 갔는데,
이건 전쟁 영화야.
근데 거기 우리 대장이 또 정만이 형인 거야.”
“아하하하.”
“맞아, 맞아. 그땐 그랬어.”
“진짜 그때는 뭣도 모르고 찍었어.”
“요즘 애들은 깡다구도 없고, 연기도 못하면서 잘난 척하고, 뻐기고 그런 애들이 많아.”
정일섭이 사과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맞다. 일섭이 너 요즘 영화 들어가지 않았어? JC에서 제작하는 거.”
“그냥 조연이야. 별거 없어.”
“그 나이에 조연이면 됐지. 넌 어째 나이가 들어도 그렇게 잘 풀리냐.
회장하고 호형 호재 하더니만. 역시.”
“호형 호재 해서가 아니고, 내가 연기 감각이 되니까 그렇지.”
“어쨌든 형님은 좋겠수다. 아직도 쨍쨍한 현역이잖아요.”
“야, 야. 말도 마. 요즘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정일섭은 배우진을 생각했다.
동료들 앞에서 욕을 한사발 하고 싶었다.
“아니 왜요?”
“새파란 게 지가 주연이랍시고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테이블에 있던 동료들이 몸을 바짝 앞으로 당겼다.
“누가?”
“누군데?”
그때,
“아이고, 형님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임무석이 웃으며 급하게 들어왔다.
“야, 넌 왜 이렇게 늦게 오냐? 늙은 형님들 먼저 다 왔는데.”
정일섭이 자리를 내주며 핀잔을 줬다.
“아이고. 형님. 죄송합니다. 요즘 놀이동산에 손님이 많아서 엄청 바빠.”
“그래, 임무석이는 그냥 봐줘. 이제껏 고생하고 돈 좀 버는데···.”
다른 동료들이 편이 돼주었다.
순하고 착한 임무석을 모두들 좋아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들 하고 있었어요?”
임무석이 테이블에 놓인 주스 잔을 들며 물었다.
“일섭이 형님 영화 찍는데 싸가지 없는 신인이 하나 있대.”
“그래요?”
임무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일섭을 바라봤다.
“아니. 그러니까 그 녀석이 나보다 지가 연기를 잘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고,
나를 깡그리 무시하는 거야.
참 기가 차서.”
“응? 형님을 무시했다고? 그놈 배짱이 두둑하네.”
“그게 배짱이 두둑한 게 아니라 정신머리가 썩어 빠진 거지.
선배한테 기본 예의를 갖추어야지.
내가 그놈 버릇을 고쳐 줄 거다.
단단히 벼르고 있어.”
정일섭이 인상을 팍 썼다.
“쯧쯧. 젊은 사람이 예의가 있고 어른을 섬길 줄 알아야지.
그놈도 싹수가 노랗네.”
임무석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배우진 그놈을 내가 가만두나 봐라.”
정일섭의 입에서 ‘배우진’이 나왔다.
그 순간,
탁!!!
임무석이 들고 있던 주스잔을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았다.
“뭐라고요? 배우진이라고요?!!”
임무석이 큰소리를 내며 정일섭에게 덤볐다.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얼음이 되었다.
“지금 그 싸가지 없다는 게 배우진 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야, 야. 너 왜 그래.”
임무석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다들 당황했다.
“정일섭 형님! 똑바로 얘기해요.
배우진이 형님을 진짜 무시했어요?
직접 자기 입으로 형님보다 연기 잘한다고 했냐고!”
“··· 아··· 아니 나는··· 들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럼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 그 착한 배우진이를 지금 모함하고 있었던 겁니까?”
“응··· 무석이 너 배우진 알아?”
“네. 알다마다요. 지금 저 살려 준 게 우진이에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망해가던 ‘신나랜드’가 누구 덕에 날개를 달았게요?”
“으음···.”
정일섭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소문을 그저 들었을 뿐,
자기가 실제로 배우진을 겪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무석은 직접 겪은 배우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걔 연기 욕심밖에 없고 누구보다 착하고 공손하고!
내 우진이만 생각하면 지금도 밤에 눈물이 나와.
너무 고마워서.
그 동물원 청소 다 해주고, 잡초 뽑고, 울타리 고치고···.”
임무석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뿐인 줄 알아요?
고아원 아이들 데려와서 놀아주고···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은 ‘하늘 소망원’ 가서 애들 돌보고 책 읽어주고 놀아준답디다.
형님은 그래 봤어요???”
정일섭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헛기침만 해댔다.
다른 동료들이 정일섭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임무석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형님은 지금 자기가 직접 당한 것도 아니고!
소문내기 좋아하는 사람 말만 듣고 그 착한 애 흉보고 있었던 겁니까?
나이는 어디로 드신 거요!!!”
동료들이 웅성웅성거렸다.
“그래. 그건 맞아. 임무석이가 헛소리는 안 하지.
정일섭이가 잘못했네.”
“솔직히 형님, JC 회장 하고나 친하게 지냈지,
우리한테 관심 가져 준 게 뭡니까?
후배들 한 번 챙겨 줘 봤어요?”
“맞아, 우리 스크린 쿼터 시위 때도 얼굴 한번 내 비친 적 없잖아.”
“나도 배우진이랑 같이 찍었는데 그럴 애 아니야.
얼마나 싹싹하고 선후배 잘 챙기는데.
그리고 걔는 가슴속에 연기에 대한 열정만이 가득해.
다른 생각을 하는 애가 아니야.”
“어험, 헛헛.”
정일섭은 난감할 뿐이었다.
‘내가 실수를 했네. 의심도 없이 다 믿어버리다니···
보자,
배우진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의도적으로 날 이용하려 한 사람이···
··· 누군지 알겠다.
진채은이겠지.
어릴 때부터 싹수가 노랗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을 갖고 놀다니!’
“일섭이 형, 이런 식이면 나 다시는 형 안 봐.
나 갈 거야.”
임무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일섭이 임무석의 팔을 잡았다.
“무석아, 내가 사과 하마. 앉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