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57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57화
지담이 강남 아르미스 빌라로 들어섰다.
딩동~
초인종을 눌렀다.
철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제라르가 반가운 미소로 지담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니, 초대에 응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제라르는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제라르가 현관문을 잡아 주었다.
지담이 제라르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담의 눈이 커졌다.
최고급 빌라 아르미스는 역시 달랐다.
높은 층고, 넓은 평수, 대리석 바닥과 벽, 화려한 샹들리에,
거실 통창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한강이 훤히 보였다.
“집이 갤러리 같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물건은 많이 없네요.”
“네, 쓰지 않는 물건 쌓아두는걸 안 좋아해서요.”
“공간이 많아서 그런지 여유로워요.”
제라르가 미소 지었다.
“아, 이건 제가 아끼는 다기 세트인데,
인간문화제 이숭윤 선생님 작품이에요.
녹차 잎도 조금 챙겼습니다.”
지담이 작은 선물 가방을 제라르에게 건넸다.
제라르는 뜻밖의 귀한 선물에 감동을 받았다.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감사하게 잘 쓰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외국으로 많이 다녀서,
이런 한국적인 것은 잘 모릅니다.
요즘 지담 님 덕분에 깨우쳐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라르가 다기 세트를 꺼냈다.
잠시 감상 후,
거실 진열장 가운데 자리를 비우고,
그곳에 다기를 전시했다.
“다기가 자기 자리를 찾았네요.”
지담이 거실 여기저기 놓여있는 그림들을 감상했다.
“자연을 그리워하는군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전부 자연에 관한 그림인데요.
석양, 바다, 숲, 새, 폭포, 구름. 해바라기.”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죠.”
“??”
“자연의 소리를 잃어버린 투정 같은 거.”
“자연의 소리가 어땠었나요?”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제라르는 잃어버린 순수성이 아쉬웠다.
그러다 문득,
“아, 이런 실례가.
손님이 오셨는데 맨입이라니.”
손님 접대가 늦었다는 걸 깨닫고 부엌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
장미 모양의 프랑스제 고급 쿠키와 홍차를 내왔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어쩜, 쿠키가 이렇게 예쁠 수가 있죠?”
지담이 장미 쿠키를 감상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수제 쿠키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겐데.
한번 드셔 보세요.”
“그럼 한번 먹어볼까요?”
지담은 쿠키 한 입을 베었다.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음. 촉촉해요. 부드럽고.
고소한 향이 기분 좋게 만드네요.
같이 드세요.”
“네.”
제라르도 하나 집어서 먹었다.
원래 좋아하는 쿠키지만,
지담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둘은 쿠키를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그러다,
제라르가 ‘작품’ 이야기를 꺼냈다.
“한 남자가 있었어요.
그 남자에겐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죠.
둘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인이 불치병에 걸려요.
남자는 자기가 하던 권투까지 그만두고,
3년을 넘게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간호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어요.”
지담의 눈이 반짝였다.
“남자는 아주 괴로웠습니다.
밥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할 만큼.”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지담이 물었다.
“그것도 있지만···
사실 ···
그녀를 간호할 때,
들었던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담은 숨을 죽이고 제라르를 바라봤다.
“시간을 잴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순간에,
남자는 여자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
지담이 짧은 한숨을 뱉었다.
“길든 짧든 한번 새겨진 자국은 지워지지 않으니까.
그 남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들췄겠네요.”
“네, 자기가 그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 거죠.
낙인처럼.”
“근데, 비약이 너무 심한 게 아닐까요?”
“그 생각을 하던 그 짧은 순간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거든요.
그 후로 그녀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지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남자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군요.
연인의 흔적이 없는 먼 곳으로.”
“네.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지담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담은 자기의 생각을 잠깐 정리했다.
“저라면 이러저러한 사연 없이,
그냥 떠나는 걸로 하겠어요.
그냥 남자는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거예요.
이미 예정된 프로그램처럼.
원인과 결과 없이.”
“그것도 담백하고 좋네요.”
둘은 자기의 이야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지담은 시나리오가 거의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이제 배우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생각해 둔 배우는 있나요?”
“네, 매일 생각합니다. 한국 배우, 프랑스 배우, 할리우드 배우까지···
탑배우 신인 배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요
하지만··· 언제나 한 명의 배우만 남게 되네요.”
“누군지 알 것 같은데요. 저도 감독님과 같거든요.”
“배우진.”
“배우진.”
둘은 동시에 배우진의 이름을 불렀다.
제라르와 지담의 예술적 교감으로 ‘작품’이 탄생하고 있었다.
***
날이 점점 추워졌다.
‘프린스 앤 플라워’ 촬영도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날이 꾸물꾸물한 게 꼭 눈 올 것 같다.”
“그러네. 저번 크리스마스 때도 눈 왔었는데.”
“맞다. 작년에 우리 박은하랑 하늘 소망원 갔던 날,
그때 눈 왔었어.
벌써 1년이 돼가네.”
“해일아, 내일 오전에 설기랑 ost 연습하는 거 맞지?”
“어, 맞아. 아침에 노래 연습하고, 점심땐 영웅이 병문안 갈 거야.
영웅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가야 겠지? 뭐가 좋을까?”
“··· 운동화. 영웅이가 얼룩말처럼 마음껏 뛰고 싶다고 했거든.”
“좋지. 너 촬영하고 있을 때, 내가 사다 놓을게.
요즘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잇템으로 산다.
돈 안 아낀다.”
“당연하지. 돈 아끼면 내 친구 아니지.”
“크크, 근데 요즘 촬영장 분위기 너무 좋지 않냐?
JC에서 제작비 안 아끼고 팍팍 쓰니까,
촬영 속도가 두 배는 빠른 것 같아.”
“돈은 마술 같은 거야. 그지?”
배우진과 오해일이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
“어이 소품. 창가에 꽃병 갖다 놓고. 꽃은 장미로만 해.
창문으로 화사한 빛이 들어오는 느낌으로 조명도 부탁해요.”
백 감독이 소품 담당에게 소리쳤다.
“필요한 소품 넉넉하게 챙겼는데.
모자란 건 없죠?”
이 피디가 백 감독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네, 장미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었는데,
꽃이 다양하게 많이 왔네요.
분위기가 더 살아요.”
“회장님이 절대 모자람 없이 넉넉히 챙기라고 하셨어요.
이번 영화에 거는 기대가 크세요.”
“요번 영화만 같으면 정말 영화 찍을 맛납니다. 하하.”
백 감독이 기분 좋게 웃었다.
“영화가 벌써 종반이네요.”
“그러게 말이요.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간단 말이야.”
그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배우진이 촬영장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백 감독과 이 피디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와. 오늘은 더 산다.
어떻게 하루하루 리즈 갱신이냐.”
“눈이 부신다.”
백 감독과 이 피디가 배우진의 외모를 칭찬했다.
배우진은 빙그레 웃었다.
“칭찬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일단, 분장 받고 나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설기도 좀 전에 왔어.”
“네.”
배우진이 대기실로 들어갔다.
“선배, 오셨어요?”
설기가 반갑게 인사했다.
오늘 찍을 장면에 맞춰 분장이 다 끝나 있었다.
빨간 체크 원피스를 입은 설기는 귀엽고 깜찍했다.
“안녕, 설기. 일찍 왔네. 좋은 하루.”
배우진이 의자에 앉았다.
분장사가 와서 배우진을 살폈다.
“정현아 씨는 빈틈이 없네.
들어올 때부터 이미 ‘준’이야.
살짝만 보정하면 되겠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배우진은 하얀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머리는 자연스럽게 웨이브를 주었다.
밝은 파운데이션으로 피부톤만 살짝 정리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선배, 너무 멋져요.”
설기의 눈이 커졌다.
“감독님 기다리시겠다. 나가자.”
“네, 선배.”
백 감독은 오늘 촬영에 대해 설명했다.
“··· 그리고, 한 번 보자.
‘제이’가 설거지를 하려 하면, ‘준’이 대신 설거지를 하고.
‘제이’가 청소를 하려 하면, 마찬가지로 ‘준’이 대신하고.
그러다 창가 먼지를 털고 있는 ‘제이’를 ‘준’이 번쩍 들어서,
침대에 눕히고.
살짝 입 맞춘다
사랑스럽게.
입술이 닿지는 말고,
흉내만 내면 돼.
오케이?”
“네. 감독님.”
배우진이 대답했다.
“준에게 안길 때 ‘어머’ 소리를 내는 거 괜찮을까요?”
설기가 디테일한 사항까지 꼼꼼히 점검했다.
“음, 일단 상황보고, 여러 가지로 해 보자.”
“네.”
“오늘 느낌, 전반적으로 간질간질하게 부탁해.”
“네.”
우진과 설기는 슛 들어가기 전,
세트장에 들어가 짧게 동선과 대사를 맞춰보았다.
준비가 끝났다.
“스탠바이~ 액션!!”
싱크대에 수북이 쌓여있는 접시들.
‘제이’가 앞치마를 질끈 매고 싱크대 앞에 선다.
소파 등받이에 턱을 괴고 ‘제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준’
벌떡 일어나 ‘제이’에게 걸어간다.
‘제이’의 허리춤에 묶인 앞치마 끈을 푼다.
“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제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준’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다.
“팔 올려.”
황당한 ‘제이’가 가만히 ‘준’을 본다.
“만세.”
‘준’은 거침이 없다.
“만세? 그게 뭐.”
“빨리.”
‘제이’가 얼떨결에 만세를 한다.
‘준’은 ‘제이’의 앞치마를 벗겨, 자기가 맨다.
“뭐 하는 거예요?”
“넌 소파에서 쉬고 있어. 어서. 고용주의 명령이야.”
‘준’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제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어느새 ‘준’이 다가와서 청소기를 빼앗아 자기가 돌린다.
화사한 햇살이 창가로 쏟아진다.
앞에 놓인 장미꽃이 오늘따라 더 싱그럽다.
창가에 서서 먼지를 털고 있는 ‘제이’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준’은 싱그러운 미소로 ‘제이’에게 다가간다.
‘제이’의 손에서 먼지떨이를 빼앗아 탁자 위에 올린다.
“야아, 그거 왜.”
‘제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는 ‘준’.
심쿵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본데.”
‘제이’는 고개를 숙인 채 툴툴거린다.
갑자기 ‘제이’를 번쩍 안아 드는 ‘준’
흡.
‘제이’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목 안으로 말아 넣는다.
‘제이’의 볼이 빨개진다.
‘준’은 ‘제이’를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힌다.
“좀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다 해놓을게.”
‘준’이 뒤돌아선다.
그때,
‘제이’가 ‘준’의 손을 잡는다.
“가지 마. 옆에 있어.”
‘제이’의 표정이 진지하다.
‘준’은 잠시 생각하다,
‘제이’ 옆에 눕는다.
둘은 서로를 쳐다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준’과 ‘제이’의 입술이 맞닿는다.
“컷! 좋았어!!!!”
백 감독은 평소보다 더 우렁차게 컷을 외쳤다.
“그림 기똥차게 나왔다!”
와와와와
짝짝짝짝
스태프들이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진과 설기가 세트장을 나왔다.
“설기야, 수고했어.”
“네, 선배님도요.”
“내일 오전에 노래 연습 알지?”
“네, 당연히 알죠. 그동안 제 연기 지도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데요.
저도 선배님께 갚아드릴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아요.”
“그래, 내일 보자.”
“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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