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7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7화
한 달 전부터 다니고 있는 요가 새벽반. 날이 추워지며 무작정 공원에서 운동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비 오고 스모그 심한 날은 어쩔 수 없이 운동을 쉬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숨 마시면서 허리 쏙, 앞 목은 길어집니다. 소 자세. 후 내쉬면서 턱 당기고 등을 뒤로 밀어냅니다. 꼬리뼈 안으로 말아 내려주세요. 고양이 자세.”
강사의 구령에 맞춰 동작을 했다.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유연성이나 기르자 싶어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근력 운동이 많이 됐다.
“한 번 더 숨 마시면서 소 자세. 엉덩이를 조금 더 들어 올려 볼게요. 허리 쏙. 후 내시면서 등을 뒤로 밀어냅니다. 복부에 힘 단단하게 주세요.”
강사가 다가와 배우진의 등을 잡고 자세를 고쳐주었다.
‘사심을 안 먹을래도 안 먹을 수가 없구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그림인데, 땀에 젖으니 남성미가 아주··· 안 돼. 내가 이런 맘먹으면 안 되지. 망해가던 새벽반을 살려 주신 귀인인데···.’
“배우진 회원님 정말 많이 늘었어요. 자세가 안정적이에요.”
강사는 속내와는 달리 딱딱한 목소리로 배우진을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배우진이 입을 열자 요가 반 전원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여고생부터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까지 전 연령 여자들의 뜨거운 눈길이 배우진을 감쌌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근데 사람이 언제 이렇게 늘었지?’
처음에 등록할 때만 해도 겨우 2명이었던 회원이, 이제는 강의실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였다.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때,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강사가 하던 동작을 멈추고 말했다.
“어제 미리 말씀드린 대로 저희 요가원 광고 영상을 조금 찍겠습니다.”
“그럼 우리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가요?”
한 아주머니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동네 케이블 방송에 나갈 거예요. 그냥 편안하게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카메라맨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했다.
강사의 구령에 맞춰 회원들은 다시 요가를 했다.
전체 분위기만 담는 간단한 촬영. 카메라맨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쭉 훑었다.
그러다 렌즈에 배우진이 들어왔다. 카메라가 잠깐 멈췄다.
‘연예인인가? 카메라를 먹네. 먹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배우진의 모습을 한 참 담았다.
***
의 첫 리딩을 겸한 1차 미팅 날이었다. 콜타임 보다 일찍 유니콘 스튜디오 회의실에 도착했다.
얼마나 그리웠던 현장인가? 산전수전 다 겪고 돌아온 영화판.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문을 열었다.
화이트보드에 ‘파도 첫 미팅‘이라고 큼직하게 적혀있었다. 미팅 준비로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이진홍’ 역할을 맡은 배우진입니다.”
나는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신인의 마음으로.
“아예.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아, 네.”
나는 얼른 스태프가 하는 일을 도왔다. 테이블에 음료, 휴지, 간단한 다과를 정갈하게 올리고 의자도 각 맞춰 정리했다.
“아니. 안 해도 되는데··· 그냥 편하게 앉아 계세요.”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요.”
“··· 고마워요.”
스태프가 살짝 웃었다. 첫 느낌이 좋았다.
나는 내 이름표가 있는 곳을 찾아 앉았다.
곧,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홍’ 역의 배우진입니다.”
친근한 내 태도에 어색한 분위기가 점차 사라졌다. 서로 인사하며 스몰 토크를 나누는 사이, 콜타임 1시가 되었다. 테이블 위 이름표들의 주인이 다 도착했다.
한 명만 빼고.
주인공 ‘최우석’ 역의 차민혁.
의 주연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류지완 감독과 김진숙 대표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다 모였습니까?”
류지완 감독이 물었다.
“아직 차민혁 씨가 안 왔는데요?”
조감독의 대답에 류지완 감독은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1시 15분.
“시간 전달 안 했어요?”
류지완은 조감독을 다그쳤다.
“오늘 아침 확인 전화까지 했습니다.”
조감독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류지완 감독은 불편한 심기를 누르고 미팅을 진행했다.
“흠··· 우선 각자 소개부터 하죠. 저는 이번 의 감독 류지완입니다.”
짝짝짝-
“저는 이번 영화 프로듀서 김진숙입니다.”
짝짝짝-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엇, 제가 좀 늦었나요?”
차민혁이 나타났다. 뻣뻣하게 얼굴을 들고.
매니저와 코디가 뒤따라 들어오며 숨을 세차게 몰아쉬었다.
류지완 감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첫 상업 장편영화에 도전하는 신인 감독, 적은 예산에 신인배우들, 홍보 기획 모든 것이 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차민혁은 그나마 가 대중적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높은 인지도와 팬 층. 적당한 연기 실력과 준수한 외모를 지닌 탑 배우였기에.
류지완 감독은 차민혁에게 어쩔 수 없는 을의 입장이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조감독이 차민혁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그는 천천히 자기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다시금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저는 ‘이진홍’ 역을 맡은 배우진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짝짝짝-
소개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으로 차민혁이 일어섰다.
“저는 ‘최우석’ 역을 맡은 차민혁입니다.”
짝.
박수 소리가 영 시원치 않았다. 차민혁의 표정이 구겨졌다. 눈치를 챈 차민혁의 매니저가 요란하게 박수를 쳐댔다.
“영화 파도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났다 부서지는 십 대의 한 순간을 그린 작품입니다. 정제되지 않고 정해진 룰이 없는 야생의 삶. 한 마디로 먹이 사슬 꼭대기에 서고 싶어 하는 십 대의 원초적 본능을 그대로 가져 올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배우님들도 최대한···”
류지완 감독은 의 전체적인 방향과 결에 대해서 설명했다. 꾸밈이 없되 빛나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조감독이 시간 체크를 하고 다음 일정을 알렸다.
“리딩은 십 분 뒤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롱테이크로 한 번에 갈 예정이니까 화장실 가실 분이나 출출하신 분은 앞에 다과로 지금 배를 채우도록 하세요.”
나는 너덜너덜해진 대본을 꺼냈다. 일주일 내내 코를 박고 분석하고 연습한 결과. 이제 내가 ‘이진홍’인지 ‘이진홍’이 나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네가 배우진이구나.”
그때 차민혁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배우진입니다.”
차민혁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올해 「젊은 연기 축제」 대상 수상자. 맞지?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서원 예고 강정우를 물리치고··· 걔 내 후배야. 서원 예고 후배.”
“아, 네.”
속으로 ‘어쩌라고’ 외쳤지만, 전체 리딩을 앞에 두고 소란해질 수는 없었다.
“나도 그 연극제 9회 대상 수상자인 거 알지? 9회부터 쭉 우리 서원 예고가 대상 탔잖아.”
‘그래서?’ 나는 여전히 속으로만 받아쳤을 뿐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힘주지 말고 살살 해.”
경험자로서 보건대, 차민혁은 연예인 병이 심하게 든 것 같았다. 저러다 예전의 내 꼴 날 텐데···
“자,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배우들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 리딩 준비를 했다.
첫 씬.
불량 학생들이 패싸움을 벌이다 경찰서로 잡혀왔다.
“인마들 또 왔나. 아예 출석을 해라. 새끼들아 출석을 해. 무슨 경찰서가 너희들 학교냐. 새끼들아.”
“학교가 아니니까 왔죠.”
“뭐라? 이 새끼가··· 주둥이만 살았나.”
“아이. 씨팔. 내가 주둥이만 살았는지 옷 벗고 한 번 붙어 볼까요.”
불량 학생 역을 맡은 배우의 호흡이 첫 대사부터 무너졌다. 톤도 너무 과장됐고.
류지완 감독의 얼굴이 살짝 찌그러졌지만 간섭은 하지 않았다. 신인이라 아직 갈고닦아야 한다는 건 이미 예상한 일. 심하게 거슬리지만 않으면 일단 통과.
“우석아, 미안한데 서울 삼촌 집에 가라··· 마이 생각해 봤는데 내하고 같이 있다가는 니도 나랑 똑같이 살까 봐 겁나서 그런기다.”
“··· 아부지도 겁나는 게 있습니꺼?”
“당연히 있지. 니! 니가 내처럼 될까 봐··· 그게 제일 겁나지.”
차민혁의 첫 대사는 경상도 사투리로 시작했다. 어색하다.
‘사투리 연구 하나도 안 했구나.’
주인공 ‘최우석’은 마산 출신이라 영화 내내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영화에서 중요했다.
감독이 차민혁에게 특별히 부탁한 부분이기도 했다. 류지완 감독의 콧등이 찡그려졌다.
차민혁의 리딩은 계속 이어졌다.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버지처럼 안 되려고 발버둥 쳐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차민혁의 연기는 사투리만 빼면 그럭저럭 보통은 됐다. 신인들보다는 나은 수준.
뭔가 차민혁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신인들 속에서 자기가 빛나 보이려고?
내 차례가 왔다.
‘이진홍’은 주인공 ‘최우석’이 전학 온 서울 극강 고교의 숨은 짱.
“야! 야. 돈 좀 빌려 주라.”
“없어.”
“아 나. 진짜, 우리 정아, 오늘 생일이야. 이번에도 빈손이면 나 죽어.”
나는 가볍고 코믹하게 대사를 풀어냈다.
“풉!”
“큭큭큭.”
긴장이 꽉 차 있던 회의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류지완 감독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걸 어떻게 해내나 싶었는데 잘 살렸네.’
“야, 이진홍. 너 혼자 남았다. 함 붙자.”
[오동구에게 걸어가는 진홍. 한 방에 동구를 날려 버린다. 바닥에 쭉 뻗은 오동구를 내려다본다.]조감독이 지문을 읽고,
“뭐야? 자냐? 그러게 주머니에 손은 왜 넣고 있대.”
“?!”
“!!”
사람들 모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신인이 대사마다 저렇게 색을 입힐 수 있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리딩에 자극을 받았는지 다른 배우들도 바짝 집중했다. 리딩 현장은 점점 뜨거워졌고, 캐릭터 분석과 연기에 대한 조언과 비평이 자연스레 오갔다.
“네. 수고했습니다.”
류지완 감독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뒤이어 모두들 파이팅 넘치게 박수를 쳤다. 성공적인 첫 미팅을 축하라도 하듯.
“자, 다들 고생하셨어요. 오늘 저녁 고깃집에서 회식 있으니까 빠지지 마세요.”
“야호~”
“뭐 맛있는 거 먹나요?”
“난 무조건 간다.”
배우들이 거의 이십 대 초반 자취하는 사람들이라 회식이란 말에 격하게 반응했다.
역시 이 맛이다.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류지완 감독에게 인사를 했다.
“오늘 정말 좋았어. 캐릭터 분석 제대로 했던데.”
류지완 감독이 나를 칭찬했다. 내 어깨까지 툭툭 치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김진숙 대표도 나에게 다가왔다.
“나, 기억해요?”
“네. 대표님. 고아원에서 뵙잖습니까? 감사합니다.”
“아니 내가 고맙지. 마지막 퍼즐이 돼줘서. 계속 열심히 해줘요.”
“네. 대표님.”
“그래. 배도 고픈데 고기 먹으러 가자.”
가슴이 터질 듯했다. 연기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전생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
이런 것이 바로 성취감이란 건가.
그것은 그냥 잘 생긴 얼굴로 얻었던 인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 졌다.
그런데 이 모든 그림을 차민혁이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 배우진 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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