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75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76화
배우진이 감천 하늘길에서
영화 촬영한다는 소식이
부산 시내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지역 기자들뿐만 아니라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로
그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찰들이 급파돼 현장 질서를 잡았다.
처음에 두 명이 나왔다 금세 스무 명이 되었다.
촬영팀은 겨우 사람들을 밀어내고 라인을 쳤다.
하지만 불쑥불쑥 방해꾼들이 너무 많았다.
제라르와 유진이 오늘 촬영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원래는 저녁 어스름에 이 장면을 찍고 싶었거든.
근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제라르가 현장 분위기에 맞게 촬영을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알렸다.
“나도 동감이야.”
“저 건물 때문에 그림자가 져서 아련한 분위기가 묻어나지가 않아.
역광이나 역사광을 이용하면 될 것 같긴 한데
그러면 또 얼굴이 어두워져서
감정이 세게 표현될 것 같아.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밤이 되면, 저 사람들 조금은 돌아가지 않을까?”
와글거리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제라르가 말했다.
“같은 생각이야.
조심한다고 해도 카메라에 사람들이 잡힐까 걱정스러워.
그리고 밤에 저기 가로등이 켜지면,
역광을 쓰더라도 얼굴이 묻힐 것 같진 않아.
밤 씬으로 가자.”
“좋아.”
두 사람은 밤에 찍는 것으로 촬영을 조정했다.
제라르가 대기 중인 배우진과 소유나에게 갔다.
“밤 씬으로 촬영하기로 해서,
깜깜해질 때까지 대기하셔야 합니다.
괜찮을까?”
배우진과 소유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네, 전 괜찮습니다.”
배우진이 대답했다.
“저도 괜찮긴 한데···”
소유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제라르가 소유나의 안색을 살폈다.
소유나가 입을 열었다.
“저 계단 오를 때, 테이크 짧게 가는 거죠?
한 번에 오르진 않겠죠?”
소유나는 하늘길 계단을 직접 보자 살짝 겁이 났다.
200개가 넘는 계단을 업혀서 오른다니 너무 걱정이 되었다.
“네? 그게 무슨?”
제라르는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감독님 저길 보세요.
계단이 저렇게 가파른데
우진이가 나를 업고 오른다는 게 좀 그렇잖아요.
아무리 우진이가 힘이 좋다고 해도
저렇게 경사가 급하고 울퉁불퉁한 계단을 어떻게 저를 업고 올라가요?
아이 참. 저 생각보다 몸무게 많이 나가요.
우진이가 허리라도 삐끗하면,
혹시, 뒤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소유나는 솔직한 심정을 뱉어냈다.
“선배님, 괜찮아요. 저 정도는 뭐. 가볍게.”
옆에서 듣고 있던 배우진이 소유나를 안심 시켰다.
사실 그 정도는 정말 아무 문제없었다.
“우진아. 네가 보기엔 내가 날씬해 보이겠지만,
군살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너 그러다 정말 허리 나가.
큰일 난다고.”
소유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배우진은 직접 증명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소유나가 정말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촬영하기 전에,
선배님 업고 몇 발작만 올라가 볼게요.”
배우진은 소유진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
“그럼 되겠네요. 일단 테스트 겸.
우진이한테 업혀보시고
그래도 불안하시면
그땐 소유나 씨가 편하신 대로 조정을 하겠습니다.”
배우진의 제안을 제라르는 바로 찬성했다.
소유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래, 그럼 한번 해보고 결정하자.”
승낙을 했다.
배우진이 소유나를 업고 하늘길 계단 앞에 섰다.
오우~
와~
아악~
아이~
찰칵
찰칵
찰칵
두 탑배우가 나서자, 구경하던 사람들의 감탄과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선배님, 이제 올라갈게요.
불안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응. 알았어.”
배우진이 계단을 올랐다.
쉽고
가볍게
뛰어서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소유나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힘, 균형, 유연, 스태미나
배우진의 모든 운동 감각이 합쳐져
구름 위를 걷듯 사뿐사뿐.
아무렇지 않았다.
배우진의 등에 업힌 소유나의 마음도 점점 안심되었다.
“괜찮아요? 너무 가벼워서 깃털 업은 것 같아요.”
“네 등 너무 편해.”
“꼭대기 까지 갈게요.”
“야~ 그래도.”
배우진이 속도를 내서 척척 올랐다.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
밤이 되고, 하늘길 계단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구경꾼들도 많이 돌아가고, 촬영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밤의 하늘길은 애틋하고 아련했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
제라르 감독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촬영 들어갑시다. 준비는 다 됐죠?”
제라르는 무전으로 스태프들 상태를 확인했다.
“네. 다 준비됐습니다.”
“오케이, 레디~~~~.”
그런데 그때
끼익.
계단 위쪽 집 대문이 끼익 열렸다.
할머니 한 명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끼익
끼익
다른 집 대문들도 열리며 할머니 여러 명이 나왔다.
할머니들은 대부분 꼬부랑 할머니들이었다.
사실 이 시간은 동네 꼬부랑 할머니들 마실 시간.
할머니들은 계단 꼭대기 위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떡, 과자, 사탕을 나눠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다.
“촬영 잠시 미루겠습니다.”
제라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일단 촬영팀을 대기시켰다.
“이번 영화는 정말 해프닝의 연속이다.”
유진이 다가와 말했다.
“그러게. ··· 그 상황을 잘 이용하는 게 우리의 몫이겠지.”
제라르는 할머니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감독님. 잠깐만 비켜 달라고 말씀드려 볼까요?”
조감독이 제라르에게 달려와서 물었다.
“아니, 잠깐만.”
“네?”
“할머니들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지금 이 분위기와 잘 어울려.
그냥 가만히 놔두자.”
제라르는 할머니들을 그냥 두고 촬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진아 준비됐지?”
“네.”
배우진은 제라르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알았다.
은 원인과 결과가 없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작품이다.
상황을 인위적으로 손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영화는 처음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촬영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제라르가 스태프들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할머니들이 화면에 나와도 괜찮아?”
유진이 물었다.
“응, 안될 이유도 없어.”
“오케이.”
“자,
레디~ 액션!”
‘대호’ 배우진과 ‘미경’ 소유나가 힘든 하루를 끝내고 골목으로 접어든다.
둘은 손을 꼭 잡고 있다.
계단 앞에서 ‘대호’가 ‘미경’ 앞에 무릎을 굽혀 앉는다.
“업혀.”
“너, 힘들어.”
“업혀.”
“야, 오늘은 다큐 감독님도 계신데.”
“그게 뭐. 빨리 업혀.”
‘미경’은 쭈뼛거리며 ‘대호’의 등에 업힌다.
‘대호’는 ‘미경’을 업은 채 계단을 오른다.
“자주 업어 주시나 봐요?”
다큐 감독이 ‘대호’에게 묻는다.
“가끔. 미경이가 많이 힘든 날은요.”
‘대호’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세계 챔피언이 된다면 더 편한 곳으로 이사 가셔야겠어요.”
“네, 미경이가 편한 곳으로 가야겠죠.
그래도 전 매일 이렇게 미경이를 업어 줄 거예요.”
“왜요?”
“지금 이 시간이 저에겐 가장 행복하거든요.”
‘미경’ 소유나는 행복하다.
‘대호’의 넓은 등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이고 보기 좋다 보기 좋아.”
“머시마가 힘이 좋구마. 힘이 넘쳐.”
그 둘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농이 구수하게 화면에 젖어든다.
다큐 감독이 서서히 뒤로 빠지고
‘미경’을 업은 ‘대호’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비춘다.
“컷! 쎄시봉!”
완벽한 장면이 나왔다.
제라르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
촬영을 끝내고 촬영팀은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침부터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에, 다들 지쳤다.
식사를 끝내고 제라르와 촬영팀은 호텔로, 소유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자, 우리도 갈까?”
해일이가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 부산에 왔는데 그냥 갈 수 있나.
부산하면 바다. 바다 하면 해운대.
가슴 뻥 뚫리게 바다 한번 보고 가자.”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래, 그래.”
피곤해하던 현아 누나도 해운대란 말에 기운을 바짝 냈다.
“밤이 늦었으니까 사람들이 별로 없겠지.
어두워서 잘 알아보지도 못할 거야.
그래. 가자, 해운대로.”
늦은 밤, 우리 셋은 해운대로 갔다.
철썩 철썩
파도소리를 들으니 가슴속 깊이 청량감이 느껴졌다.
해운대의 밤은 생각보다 밝고,
사람들도 많았지만,
다들 자기들만의 낭만을 즐기느라
우리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롭게 놀았다.
맨발로 해변을 걷고.
파도를 쫓다 도망가고.
고운 모래사장에 그림도 그렸다.
조개를 줍고
해초 가지고 장난치다.
서로에게 물 튀겼다.
해변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마지막으로 모래사장에 앉아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우진아! 저기 쭉 가면 어디가 나오는 줄 알아?”
해일이가 손가락을 망망대해 끝 수평선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로 쭉 가면 일본?”
그 방향으로는 일본밖에 없으니까, 나는 쉽게 답을 했다.
“맞아. 일본이야.
지금 일본에서 대박 났어.
촬영에 지장 있을까 봐, 대표님이 쉬쉬하시는데,
사실 정말 난리 났어.
배우진 광풍!!
일본 사람들이 우진이 네 얼굴 한번 보는 게 평생소원 이레.”
“정말?”
전생에 ‘프린스 앤 플라워’는 국내에서는 대박이었지만 해외로 진출하지는 못했었다.
내 앞에 넓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 어제 뉴스에서도 나왔어.
연예 뉴스 말고 9시 뉴스.
아시아 전역에 배우진 신드롬!”
현아 누나도 말을 보탰다.
“ 촬영지가 일본 관광객들로 넘쳐서 관광특구 추진 중이고.
준이 썬더를 타고 달렸던 해변 쪽 호텔들은 벌써 1년 예약이 다 찼단다.
아무래도 촬영 끝나는 대로, 일본부터 가야 할 것 같아.
안 그러면 쳐들어 올 기세야.”
해일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좋지. 간 김에 여행도 좀 하고.
이왕 가는 거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다 가자.
가서 확 쓸어버리는 거지.”
나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오, 그런 태도 멋져!”
해일이가 방긋 웃었다.
“대표님이 너 영화 촬영 끝날 때까지 아무 말 말라고 하셨거든,
네 마음이 붕 떠서 연기에 집중 못 할까 봐.
그런데 난 널 알잖아.
인기 좀 오른다고,
연기가 소홀해지는 그런 시시한 배우 아닌 거.
그래서 미리 말해 주는 거야.
마음의 준비는 해둬야 하니까.”
나에 대한 신뢰감으로 해일이의 눈빛이 빛났다.
“역시, 내 친구 오해일!
그런 일 있음, 앞으로도 즉각 즉각 말해줘야 해.”
“알았어.
이런 기세라면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유럽, 미국까지 휩쓰는 거 아냐?”
해일이가 더 큰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우진이 얼굴 서양 배우 누가 와도 절대 밀리지 않아.
우진이는 진정한 얼굴 천재라고.”
현아 누나가 내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다,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난 얼굴보다는 연기로 우뚝 서고 싶은데.”
“그건 당연한 거지. 연기 천재는 깔고 가는 거고.”
“그런 면에 있어서 은 나에게 진짜 중요한 작품이야.
‘엄대호’라는 배역에 집중할수록 내면 연기가 장난 아니게 늘고 있어.”
“그럼 깐 가느거야? 베를린도? 아님 베니스?”
오해일은 흥분해서 3대 영화제 이름을 들먹였다.
“못할 것도 없지.”
나는 왠지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듯 한 느낌이 일었다.
“이제 일어나자. 너무 늦었어.
내일 오전부터 일정 빡빡해.”
해일이가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일어섰다.
“내일 스케줄 뭐였더라?”
내가 물었다.
“강정우랑 초코파이 광고.”
“맞다. 초코파이 광고.
정우 오랜만에 보겠네.
은근히 재미있는 친구란 말이지.
개성 있어.”
“저번 ‘친해지길 바래’ 역대 시청률 찍었잖아.
강정우 인지도 많이 올라가고
드라마 캐스팅도 됐나 보더라.
어쨌든 우진이 옆에만 붙어 있음, 인생이 잘 풀려.”
“맞는 말이야.
내일 가서 초코파이 몇 상자 받았으면 좋겠다.
나 진짜 좋아하는데.”
현아 누나도 일어서며 모래를 탈탈 털었다.
그리고 내 옷에 묻은 모래까지 탈탈 털어주었다.
우리는 바다를 뒤로 하고
내일을 위해 서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