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77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78화
‘장명구 복싱’의 희망 은아름은
어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아름이를 먹이고 입히고 살리느라
한 번도 일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아름이는 복싱을 시작했다.
세계 챔피언이 되어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려고.
챔피언은 아름이의 인생 목표가 되었다.
새벽부터 복싱장에 나가 고된 훈련을 받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하지만
할머니만 생각하면
아름이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요 며칠 할머니의 기침이 점점 심해져 아름이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조금 쉬었으면 좋겠는데 할머니는 한사코 폐지를 주우러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름이의 눈에 할머니의 굽은 등이 계속 들어왔다.
콜록 콜록.
“할머니 그냥 좀 쉬면 안 돼?”
복싱장에 갈 준비를 하다 말고 아름이가 할머니 앞에 앉았다.
“아이고··· 콜록 콜록. 기침 조금 하는 거 같고 호들갑이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빨리 가 봐··· 콜록 콜록.”
할머니는 누워서 손을 저었다.
“할머니가 아프니까 그렇지.”
“내가 아프긴 왜 아프냐. 이 나이에 기침 안 하는 할미가 어딨다고
··· 콜록 콜록.”
“할머니 없으면 이 세상 나 혼자인 거 알지?
할머니 건강해야 해.”
아름이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고, 야가. 내가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콜록 콜록.
너 아직 챔피언 벨트도 안 땄는데, 콜록.
내가 그때까지는 거뜬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콜록콜록”
할머니는 아름이가 복싱장에 가면,
바로 일어나 폐지를 주우러 갈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한 푼이라도 벌어야 했기에.
꽃다운 나이를 즐기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는 아름이가 눈에 밟혀
할머니는 아파도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었다.
“그럼 나 관장님께 말씀드리고 빨리 올 테니까 같이 병원에 가자.”
아름이의 말에
“올 거 없어. 저그 한의원 갔다 오면 돼. 거기 기침약이 잘 들어.
너 빨리 체육관 가. 지각했다고 관장님한테 혼나겠다.”
할머니가 아름이의 등을 떠밀었다.
“그럼 갔다 올게. 한의원 꼭 다녀와.
오늘은 폐지 줍지 말고. 꼭.”
“알았어. 알았어.”
아름이는 순간 망설였지만,
하루라도 빨리 챔피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복싱장으로 향했다.
쉭, 쉭,
로드웍을 하며 아름이는 복싱장으로 뛰었다.
“아름이 왔냐? 나 좀 보자.”
장명구 관장이 아름이가 들어오는 걸 보고, 관장실로 불렀다.
“네.”
숨 돌릴 틈도 없이 아름이는 관장실로 들어갔다.
“아름아. 좋은 소식 있어.”
“네. 관장님.”
아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장명구를 바라봤다.
“마리 곤잘레스 3차 방어전 도전자로 네가 정해졌다.”
장명구가 호탕하게 웃으며 소식을 전했다.
“네? 정말요?”
아름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꿈을 이룰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그래. 올 8, 9월쯤 일 것 같은데.
협회에서 일주일 내로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겠대.
이제 일분일초가 중요하다.
정신 집중하고 복싱에만 전념해야 해.
뭐 네가 한눈 안 팔 거라는 걸 잘 안다만,
신경을 바짝 써라.”
“네. 관장님.”
은아름은 허리를 깊이 숙여 장명구에게 인사를 했다.
***
촬영 중에도
나는 매일 새벽 복싱장에 나와 운동을 했다.
‘엄대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필요하기도 했고,
운동으로 하루를 여는 회귀 후 나의 습관이기도 했다.
“이백 구십 팔.”
“이백 구십 구.”
“삼백.”
윗몸일으키기 삼백 개를 하고.
일어서서 거울에 복근을 비춰봤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조금만 더 다듬자.’
함준익 선수와의 챔피언 결정전 촬영을 앞두고
나는 복근 강화 훈련에 힘쓰고 있었다.
“한 세트만 더.”
나는 윗몸일으키기 자세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나.”
“둘.”
.
.
.
.
후아,
후아,
후아.
온몸에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276, 277, 278···”
“너 이제 완전 프로 선수 다 됐다.”
은아름이 내 옆에 와서 스트레칭을 하며 말을 걸었다.
“아직 멀었어. 저번에 함준익 선수랑 스파링 했었는데 차원이 다르더라.
이백 팔십···, 뭐, 뭐더라.”
아름이가 말 시키는 바람에 숫자를 놓쳤다.
“아, 몇 개 했는지 까먹었다.”
“넉넉하게 서른 개 더해.”
“···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나는 거뜬하게 서른 개를 끝내고,
바로 아름이와 나란히 서서 스트레칭을 했다.
다리를 쭉쭉 펴고, 팔을 꼬아 비틀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손목 발목을 돌리고, 탈탈 털었다.
그러다 아름이에게 좋은 소식 있다는 게 생각났다.
“아 참, 너 세계챔피언 전 잡혔다면서. 축하한다.”
하던 동작을 멈추고 아름이에게 축하의 악수를 청했다.
“그래, 고맙다.”
아름이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힘이 느껴졌다.
“이제부턴 훈련 강도를 더 높일 거야.”
아름이는 투지를 불태웠다.
“상대는 누군데?”
“마리 곤잘레스. 25전 25승 25KO승이야. 그것도 3회전 안에.”
“와우. 무슨 핵주먹 타이슨이야? 뭐가 그렇게 세?”
나는 놀라서 은아름을 가만히 쳐다봤다.
“챔피언이니까 그 정도는 돼야지.”
아름이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아름이와 스파링이 한번 하고 싶었다.
“지금 나랑 스파링 어때?
안 봐주고.
나중에 괴물 챔피언을 만나도 견딜 수 있게.”
“안 봐주고? 지금까지 봐줬단 말이야?
너 안 봐줘도 나한테 못 이겨.”
은아름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래? 그럼 다행이다.
풀 파워로 한번 해보자.
여자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아예 싹 지울게.”
전에 아름이와 스파링을 할 때
사실 나는 방어에 치중했었다.
왠지 온 힘을 다하면 아름이가 다칠 것 같아서.
하지만 지금 아름이의 상대가 괴물급 챔피언으로 정해졌다.
실전에 맞춰 훈련 강도를 높여야 했기에
나는 진지하게 아름이의 상대가 한번 되어주고 싶었다.
“좋아. 배우진. 지금 한번 해보자.”
“좋아.”
바로 우리는 링으로 올라갔다.
땡~
원-
투-
쓰리-
포-
나는 시작하자마자 정신없이 스트레이트와 훅으로 아름이를 몰아쳤다.
실전처럼 격렬하게.
아름이는 위빙으로 가볍게 내 공격을 피했다.
그런데
그때,
“쿨럭 쿨럭.”
링 바로 밖에서 관전하고 있던 장명구 관장이 가볍게 기침을 했다.
순간, 은아름은 흔들렸다.
밤새도록 기침을 한 할머니의 모습이 휙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잽으로 두세 번 견제를 하다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아름이의 발은 무뎠고,
스트레이트가 그대로 아름이의 이마에 걸렸다.
아름이가 휘청했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연속으로 주먹을 날렸다.
아름이는 블록킹과 파링으로 내 주먹을 쳐냈지만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내 주먹을 모두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름이를 몰아붙였다.
잽-스트레이트-리드 훅- 리어훅
잽-스트레이트-슬립-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양훅-양어퍼
나의 콤비네이션 기술이 현란하게 들어가자
아름이는 재빨리 클린치를 시도했다.
아름이의 몸이 내 몸에 바짝 붙었다.
공격할 틈이 없었다.
헉, 헉, 헉, 헉!
아름이는 많이 지쳐 있었다.
순간, 그만할까 생각했지만
그건 은아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리의 스파링은 계속되었다.
나는 아름이를 코너로 몰았다.
아름이가 더킹을 하며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나는 상체를 흔들며 쉽게 피했다.
팍
팍
팍
팍
팍!
내 주먹 모두가 정확하게 꽂혔다.
아름이의 다리가 풀려버렸다.
더 이상 스파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팔을 휘저어 중지 신호를 보내며 로프에 기댔다.
후~ 후~ 후~ 후~
‘뭐야? 평상시의 아름이가 아닌데. 무슨 일 있나?’
아름이가 겨우 일어서
나에게 휘청 휘청 걸어왔다.
“무슨 일 있냐?”
내가 아름이에게 물었다.
“일은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어.”
“그런데 오늘 몸 움직임이랑 펀치가 왜 그래? 엉망이잖아.”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내일은 각오 해.”
아름이는 숨을 고르며 수건으로 얼굴 땀을 닦았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복싱장에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장명구 관장이 전화를 받았다.
뭔가 중요한 용건인 듯,
얼굴 표정이 심각해졌다.
전화를 끊고, 장명구가 은아름에게 다가왔다.
“아름아, 할머니가 병원에 실려 가셨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다.”
“네?”
은아름은 복싱장을 그대로 뛰쳐나갔다.
***
늦은 밤, 촬영을 모두 끝내고
나는 아름이 할머니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을 찾았다.
회복실 앞에 앉아 있는 아름이를 쉽게 찾았다.
“아름아.”
내가 아름이를 불렀다.
퉁퉁 부은 눈으로 아름이가 나를 쳐다봤다.
“우진아, 바쁠 텐데 여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걱정돼서 왔지? 할머니는 어떠셔?”
“급성 폐렴일 가능성이 크대.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일수도 있고,
갑자기 찬바람을 쐐서 일수도 있고.
일단 치료받고 급한 불은 껐는데···.”
창문으로 기계 호흡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확실한 건 검사를 좀 더 해봐야 알 수 있대.”
아름이가 차분하게 할머니 상태를 설명했다.
“할머니는 괜찮으실 거야.
너 챔피언 되는 거 꼭 보셔야지.
할머니를 믿자.”
나는 아름이를 위로했다.
“··· 아무래도 ··· 나 ··· 이번 챔피언 도전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아.
할머니 곁을 떠날 수 없어.”
아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순간, 링 위에서 당당하던 아름이는 없었다.
“그건 할머니가 원하는 게 아니야.
나중에 깨어나서 자기 때문에
네가 좌절했다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이 어떠시겠어?”
아름이는 고개를 더 푹 숙였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 자세로 있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너한테 이런 얘기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나 치료비 낼 돈도 없어.
할머니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병원비 마련하러 내일 또 아르바이트 나가야 해.
다른 사람들처럼 병만 걱정하는 게 아니라,
백 원이라도 긁어모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챔피언 따위 지금 생각할 겨를 없어.”
아름이의 절망은 생각보다 깊었다.
···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지?
무턱대고 내가 도와준다고 하면 아름이가 거절할 수도 있을 텐데···.
아, 그래. 엄마가 운영하는 기금!!’
그때,
나는 엄마가 운영하는 내 수입의 10% 기금이 생각났다.
오늘 아침만 해도
요즘 내 수입이 너무 많아져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엄마가 방긋 웃었었다.
“할머니 치료비랑 간병인 쓰는 건 걱정하지 마.
이런 일에 쓰려고 기금을 운영하는 사람을 내가 알아.
그쪽으로 연결해 줄게.”
내 말에 아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곳이 있어?”
눈빛이 반짝 빛났다.
“응, 복잡한 서류도 필요 없고, 증명하고 그럴 것도 없어.
그냥 네 처지 그대로면 바로 도와주는 곳이야.”
“우진아···.”
아름이는 목이 막히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시합까지만 내가 너 후원하고 싶어.
넌 반드시 챔피언이 돼야 하잖아.
그때까지만 내가 도울게.”
나는 진지하게 제안했다.
“참, 공짜는 아니야. 어떤 식으로든 갚아.”
아름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챔피언 되면,
링 위에서 가장 먼저 배우진 네 이름을 부를 거야.
기자들이 들이미는 수백 개의 마이크에,
내게 가장 고마운 친구는 배우진 너라고 말할게.”
붉게 상기된 얼굴로 아름이가 내게 약속했다.
“정말? 그거 영광인데.”
나는 그 순간을 상상했다.
멋진 그림이었다.
“딜. 그럼 거래 성사됐다.”
“좋아. 딜. 꼭 챔피언이 돼서 네 이름을 부를 거야.”
나와 아름이는 주먹을 쥐어 가볍게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