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84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85화
공영 주차장에서 소악산 정상을 올려 다 봤을 때 아마득했다.
정상은 안개로 덮여 꼭대기가 보이지도 않았다.
기암이 창병처럼 솟아있는 소악산은
경관이 수려하고 신비로워
주로 도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산세가 험악해 오르기 힘들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구조대가 구조하는 모습이
종종 뉴스에 나오곤 했다.
제라르는 어떤 사진작가가 찍어 논
소악산 정상 부근 월영암의 풍경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었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지만
멋진 풍경을 품고 있는 월영암은
‘대호’의 행선지 중 하나로 적합했다.
“안내소 직원 말에 따르면,
월영암 가는 길이 많이 험하답니다.
길도 많이 사라져서
그쪽으로 가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는데요.”
조감독이 현장에서 알아온 내용을 말했다.
“음···.”
제라르 감독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럼 최소 인원만 움직이자.
배우진, 오해일, 유진, 그리고 나만 월영암에 오르고,
나머지 인원은 밑에서 대기하는 걸로.
월영암의 풍경 조금만 담아 오면 되니까 그렇게 하지.
조감독은 다음 행선지 다시 한번 체크하고.”
“네. 알겠습니다.”
촬영팀은 월영암을 오르는 팀과,
밑에서 대기하면서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팀으로 나뉘었다.
“하루 야영하고 늦어도 내일 오후까지는 내려올게.”
제라르는 떠나기 전,
조감독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야영할 짐과 최소한의 촬영 장비를 챙겨 출발했다.
“다녀오십시오.”
“우진아, 잘 다녀와.”
남은 스태프들과 현아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험악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험했다.
제대로 된 길이 거의 없었고,
미끄러운 바위나 잡목이 울창해서
그것들을 해치며 나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제라르가 제일 먼저 쓰러졌다.
“여기에선 잠깐만 쉬자.
하아, 하아.
겨우 시작인데 벌써부터 지친다.
어떻게 이렇게 힘들지?”
제라르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원래 비경은 꼭꼭 숨겨져 있는 거야.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겠다는 산의 의지지.”
유진이 제라르에게 물을 건넸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도 제라르보다 쌩쌩했다.
“유진 감독님 대단하세요.
장비 다 들고 안 힘드세요?”
숨을 고르며 해일이가 물었다.
해일이는 음향을 맡기로 했다.
유진 촬영감독 옆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일이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옛날엔 카메라가 이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웠어.
비경을 담아내느라
하루에도 이런 산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곤 했지.
근데, 역시 배우진이야.
숨소리 한번 거칠어지지 않는구나.
너 그런 모습 카메라에 다 찍고 있다.”
유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직 이 정도는 거뜬합니다.
제라르 감독님, 제가 짐 좀 들어 드릴까요?”
권투로 몸이 단련돼있어 그런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역시 대단해.
우진이 널 보니 나도 다시 힘이 난다.
그리고 내 짐은 내가 감당해.
자, 다시 출발하자.”
제라르가 힘을 내어 말했다.
“네.”
우리들은 다시 산을 올랐다.
희미한 산길을 따라 깊은 숲 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이쯤에 폭포가 있다고 하던데.
아직 물소리도 안 들리네.”
제라르가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숲이 시끄러워서 그래요
풀벌레 소리랑 새 울음소리 때문에
가까이 있어도 잘 안 들릴 거예요.”
내가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제라르는 바위에 기대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두두두두
뭔가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뭐··· 뭐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진동은 점점 더 커졌다.
그 진동은 곧바로 우리 일행을 향해서 돌진했다.
온다, 온다, 온다!
팍!
날렵하고 우아한 고라니 한 마리가 우리들 머리 위로 날았다.
와와
우와
우리는 꼼짝 않고 고라니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만 굴렸다.
마지막 착지 순간,
나는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파바박!
고라니는 금방 반대편 덤불로 유유히 사라졌다.
“유진? 찍었어?”
“찍었어. 찍었어.”
제라르와 유진은 카메라부터 확인했다.
“와~ 진짜 깜짝 놀랐다.”
“깊은 산 속이라 신기한 일이 다 있네.”
해일이와 나는 고라니가 사라진 곳을 한참을 바라봤다.
잠시 숨을 돌리고,
우리는 다시 월영암을 향해 나아갔다.
위로 올라 갈수록
밑에서는 보지 못한
특이한 잡초와 야생화들이 울창했다.
그런데 길은 점점 험악해졌다.
“제라르. 이러다 길을 잃겠어.”
“그러게 말이야.
지도에 따르면 여기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더 이상 길이라고 부를 만한 길이 없었고,
결국 우리는 깊은 산속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월영암을 영화에 꼭 담아내고 싶었는데,
‘대호’에게 그만한 곳도 없는데···.’
제라르는 난감했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고민에 빠졌다.
“아쉽지만 일단 철수하는 게 낫겠다.
영화보다 사람의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
제라르가 힘든 결정을 내렸다.
어쩔 수 없었다.
길이 이 정도로 힘든 줄 알았으면
현지 가이드라도 데려왔어야 했는데···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사실, 은 인생에서 그냥 일어나는 일이 주제라
일부러 철저한 사전 준비를 배제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 월영암 산행은 실패인 듯싶었다.
우리는 내려가는 일에 다시 집중했다.
그런데 그것도 만만찮았다.
비슷비슷한 나무에 비슷비슷한 지형들.
길이 보이지가 않았다.
이어지던 길이 끊기고
또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그곳을 돌아 나오면
처음 그 자리였다.
우리는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해일이가 몸을 반쯤 숙이며 나에게 물었다.
“길을 잃은 것 같아.”
내가 사방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내 눈에 반짝,
아까 그 고라니가 보였다.
“우진아, 뭘 보고 있어?”
해일이가 물었다.
“고라니. 아까 그 고라니가 여기 있어.
우리를 따라온 것 같아.”
나는 고라니가 놀랠까 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라니가?”
해일이가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난 안 보이는데.”
“저기 풀 사이에.”
나는 손가락으로 정확히 고라니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정말?”
“고라니가?”
제라르와 유진도 다가와서 내가 가리키는 곳을 응시했다.
풀이 살짝 움직였다.
잠시 후, 고라니가 튀어나오며 모습을 보였다.
“와, 진짜 아까 그 고라니네.”
“신기하다. 언제부터 우리를 보고 있었던 거지?”
고라니는 우리를 돌아보며,
방향을 틀어 걸었다.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고라니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뭐? 진짜?”
“고라니가 자기를 따라 오라는데요.
고라니를 따라가면 길을 찾을 수 있어요.”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래, 우진이 말이 맞을 거야.
우진이는 틀린 적이 없어.
고라니를 따라가 보자.”
제라르가 나를 믿었다.
유진과 해일이도 따랐다.
“우진이가 앞장서서 고라니를 따라가고,
우리가 우진이 뒤를 쫓아가자.”
“응.”
“네.”
유진은 카메라를 켜고
해일이는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는 촬영을 하면서 다시 길을 나섰다.
고라니는 내가 뒤처지면 기다려주고,
붙으면 앞서 나가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안개처럼 고라니가 사라졌다.
“어, 고라니가 사라졌다.”
“이제 어쩌지?”
다시금 다들 당황한 그 순간,
쏴아아아-
내 귀에 물소리가 들렸다.
“어? 잠깐만. 물소리가 들려요.
잠깐만 다들 여기 계세요.
제가 먼저 갔다 올 게요.”
나는 빠른 걸음으로 물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마지막 수풀을 헤치고 앞을 보았을 때, 말문이 막혔다.
탁 트인 계곡에 장엄한 폭포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굵은 물줄기에 속이 뻥 뚫렸다.
“와우! 폭포다! 폭포!
이쪽으로 빨리 오세요.”
나는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제라르, 유진, 해일이가 금방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와아아아!”
“어마 어마하게 크다.”
“피로가 싹 풀린다.”
우리는 경이로운 폭포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잠시 계곡에 발이라도 담그자.”
제라르의 말에 우리는 신발을 벗고 계곡으로 들어갔다.
옥색의 물은 차갑고 깨끗하고 청량했다.
“여기 푯말도 있다.”
반대편에 푯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낙수 폭포낙수 폭포는 어깨 통증과 허리 통증을 다스리는 폭포다.
떨어지는 폭포수를 등으로 맞으면
손바닥으로 내리치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낙수 폭포라 이름 지어졌다.]
“잠깐만···.
‘대호’가 폭포를 찾는 장면 하고,
폭포수 맞는 장면을 촬영하는 게 어떨까?”
제라르의 영감이 폭발했다.
“네. 좋습니다.”
“좋아. 시원하게, 그림 잘 나오겠다.”
“찬성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 본 카메라를,
해일이가 음향 마이크를
제라르가 소형 캠을 들었다.
“큐.”
‘대호’가 수풀을 헤치며 폭포를 찾는다.
폭포 가운데 바위로 들어가 앉는다.
폭포를 온몸으로 맞는다.
으으으으
수천 개의 창이 몸에 꽂히는 느낌.
등이 뚫리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고통은 잠깐.
곧, 경직되었던 근육들이 느슨해진다.
‘대호’는 양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 생명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런데
촬영이 순조롭게 이뤄지던 그때,
“뭐여?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폭포 안쪽에서 사람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옴마야.”
나는 순간 너무나 놀래서 쓰러졌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착 달라붙은
장년의 산 아저씨가 폭포에서 나와,
머리를 기울여 뜀박질을 했다.
귀에 들어간 물을 빼는 것 같았다.
아저씨의 얼굴과 손은 까무잡잡했고,
아래로 축 쳐진 눈매가 선했다.
“뭘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놀래?
귀신을 본 것도 아닌데 말이야.”
“누··· 누구세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하고 물었다.
“나? 나 여기 숲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지.”
산 아저씨는 여유만만하게 대답했다.
“네. 산속에서 사시는 가 봐요?”
“숲에 빌붙는 사람이 산속에 살지 그럼 아랫동네에서 살까 봐.”
아저씨는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
내 정체도 빨리 밝히라는 의미 같았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진입니다.”
“응, 그래.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네.”
“네. 저희는 지금 영화 촬영 중이었습니다.
이라는 영화에서 저는 ‘엄대호’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산 아저씨는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사람이 금방 달라지네.
자기를 배우진이라고 소개할 때와
‘엄대호’라고 소개할 때 말이야.
‘엄대호’는 가슴에 슬픔이 가득하네.”
아저씨가 ‘대호’의 마음을 포착했다.
그리고 유진과 제라르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봤다.
“아, 아. 그래서 저기 카메라가 있구먼.
지금 나도 찍는 거야?”
“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라서 계속 촬영 중이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전부 편집해서 잘라 내겠습니다.”
제라르가 다가오며 아저씨에게 설명했다.
“카메라 싫어하는 사람 있나.
영화에 나오면 좋지 뭐.”
“아, 감사합니다.”
제라르가 산 아저씨께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이 산을 배경으로 할 거면 찍을 곳이 많아요.
여기 낙수 폭포도 좋고,
또 월영암에서 내려다보는 절경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월영암이란 말에 모두의 귀가 번쩍 뜨였다.
“월영암 가는 길을 아시나요?”
내가 물었다.
“내가 여기 살고 있다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
“저희를 거기까지 좀 데려다주시면 안 될까요?”
“뭐, 못 데려다줄 것도 없긴 한데
월영암에 가려면 좀 힘들어.
우리 집에서 좀 쉬고 데려다줄게.
집이 좀 누추하긴 해도···
이런 이런.
내가 사람을 오랜만에 봤더니 말이 많아졌네.
어때? 따라오려면 따라와.”
산 아저씨는 옆에 놓아둔 자루를 들쳐 메고 느릿하게 숲으로 들어갔다.
우리 일행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고 아저씨를 뒤따라갔다.
“여기 사신지 오래되셨나요?”
내가 산 아저씨에게 물었다.
“한참 된 것 같은데
시간이랑 인연 끊은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어.
날이 따뜻해지면 봄이 오는 갑다,
날이 더워지면 여름이 오는구나,
바람이 선선해지면 가을이 오는 거고
눈이 내리면 겨울이 온 걸 느낄 뿐이지.”
산 아저씨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사람이 그립진 않으세요?”
“인연을 맺는다는 건 항상 골치가 아파.
깊게 맺을수록.
자네랑 나랑 오늘 하루 만났으면 그걸로 끝인 거야.
그래야 헤어질 때 섭섭지가 않아.
그냥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게
가장 깔끔하게 사는 거야.”
산 아저씨는 ‘대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제 얼굴에 뭐가 있나요?”
나는 내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좀 전에 말했듯이 ‘대호’ 일 때는,
마음에 슬픔이 가득해.
그러고 보면 자네는 연기를
무척 잘하는 모양이구만.”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신기하게도 ‘대호’의 감정을 잘 읽어냈다.
“오늘 손님도 왔는데 가는 길에 먹을 거 좀 구해야겠다.”
산 아저씨는 먹을거리를 채집하며 나아갔다.
그쯤 나는 눈이 밝아졌는지
사물들이 매직아이처럼 튀어 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 아저씨 저기요.”
나는 오솔길을 살짝 벗어난 덤불숲을 가리켰다.
우와.
와아아.
뒤따르던 일행이 감탄을 했다.
유진은 재빨리 내가 가리킨 곳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