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87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88화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려 했지만
파파라치 때문에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엘리 스킨 주차장에서부터 따라온 검은 그림자들은
이제 우리 집 대문 앞에 진을 쳤다.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나는 망원경을 가지고 삼층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살금살금 낮은 포복으로 창가까지 기었다.
머리만 살짝 내밀어 파파라치의 동태를 살폈다.
‘전봇대 뒤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둘,
맞은편 담 모퉁이에 하나,
슈퍼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고 있는 셋,
마찬가지로 슈퍼 앞 게임기에 앉아 게임하는 둘,
승용차에 하나,
까치발을 하고 우리 집 담벼락을 기웃거리는 셋.’
열 명이 넘는 파파라치들이 우리 집을 포위하고
내가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고 있었다.
전봇대 뒤, 파파라치의 대포가 순간 나를 향했다.
‘이런, 들켰다.’
나는 얼른 몸을 숙여 위기를 모면했다.
‘이건 너무 심한데.
며칠 동안 새벽 운동도 못 나갔어.’
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어.
이 집은 너무 열려 있어.’
나는 일층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거실 탁자에 앉아 뭔가를 적고 있었다.
“뭐해?”
노트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 아··· 재단 운영하는 데 도와줄 사람이랑
필요한 서류랑, 자금 같은 거 정리하는 중이야.
순조롭게 잘 되고 있어.
한 번 볼래?”
엄마가 깨알같이 정리되어있는 노트를 보여주었다.
“아니. 엄마가 잘 알아 하는데 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
“그래. 그렇게 할 게.”
나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식혜가 있었다.
“엄마 식혜 마실래?”
“아니, 아까 한잔 마셨어.
너 마셔.”
“응.”
나는 컵에 식혜를 한잔 따라,
다시 거실로 나왔다.
엄마랑 파파라치에 대해 의논할 때가 왔다.
그동안 부모님 걱정하실까 혼자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엄마, 그런데 저 밖에 있는 사람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밖에? 사진기 들고 있는 사람들?
파파라치?”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엄마도 알고 있었어?”
엄마는 이미 파파라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이고, 그럼 당연하지.
며칠 전부터 우리 집 앞에 낯선 남자가 서성댔는데···
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전문 사진기자라고 하데.
그래서 ‘아~ 파파라치’하니까 깜짝 놀라더라.”
엄마는 노트를 꼼꼼히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처음엔 도망가는 척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도망가지도 않아.
‘안녕하세요, 우진이 어머니.
우진이 언제 들어오나요?’
이렇게 유들거린다니까.”
엄마는 기가 차는지 헛웃음을 웃었다.
파파라치가 부모님까지 괴롭힌다면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이사 갈까?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이사?”
엄마가 볼펜을 놓고 나를 쳐다봤다.
“계속 파파라치가 우리 집 주변에 있으면
지나다니는 이웃들도 불편하고
나도 마음 놓고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너 초등학교 3학년 때
이 집 들어와서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너무 갑작스럽다.”
엄마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근데 사정은 항상 변하는 법이니까.
이사가 필요한 시점이라면
이사를 가야지.
아빠랑 상의해 볼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네.”
“참, 내일 어디 간다고 했지?”
“회사 단합회.
회사 사람들 모두
‘해픈’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린 거라,
내가 빠질 수가 없어.”
“하룻밤 자고 오는 거야?”
“응. 함평 호수 1박 2일.
내일 아침에 해일이가 데리러 올 거야.”
“가서 재밌게 놀고 스트레스 다 풀고 와.
이제 또 바빠지면, 그런 기회가 흔치 않을 거다.”
“응, 신나게 놀고 올 거야.”
“그래.”
엄마는 작성하고 있던 노트로 다시 눈을 돌렸다.
야옹 야옹
까망이가 다가와 내 다리에 자기 머리를 문질렀다.
“까망아, 형아가 놀아줄까?”
나는 고양이 장난감 낚싯대를 들었다.
까망이의 동공이 커지며, 초집중 모드로 변했다.
낚싯대를 살살 흔들어주자,
낚싯대 끝에 달린 생쥐를 잡겠다고 까망이는 필사적으로 날아다녔다.
하하
호호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엄마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
“우리 집 막내다.
어떻게 저렇게 예쁜 고양이를 데려 왔어?
엄마 요즘 까망이 보는 재미로 살아. 호호.
이리 온, 까망아.”
엄마가 두 팔을 벌려 까망이를 불렀다.
까망이는 엄마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그때, 커튼 사이로 기분 나쁜 빛이 번쩍였다.
‘음, 파파라치. 거실까지 침범하다니!
조만간 수를 내야겠어.
그나저나 내일 함평 갈 때 저 놈들을 어떻게 따돌리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회사 단합회에 파파라치를 달고 갈 수는 없었다.
‘아, 그래. 그러면 되겠다.’
번개 같은 아이디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고전적인 방법이긴 해도, 그렇게라도 안 하면 회사 단합회 다 망치는 거니까.’
나는 방으로 들어와 김도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우진. 오랜만이다.
“응, 도한아. 잘 지내지?
-새 작품이 아직 결정 안 나서,
좀 한가한 편이야, 넌?
“나 ‘해픈’ 막 끝나고 휴식 중.
민상기 선생님도 잘 지내시지?
-여전하시지. 좀 세련돼지신 거 빼곤.
“그래?”
-제라르 감독님만큼은 아니지만,
요즘 점점 멋져지고 계셔.
“크크. 조만간 한번 뵈야겠다.
-그런데 웬일이야?
“아, 용건이 있었지.
나 요즘 파파라치 때문에 꼼짝 못 하고 있어.
-저런.
“내일 회사 단합회도 있는데,
저 사람들 달고 가면 정말 큰일이야.
-그래서 내가 도와줄 일은?
“내일 오전 미래 백화점 4층 남성복 매장에서 똑같은 옷 두 벌을 사서,
한 벌은 네가 입고 한 벌은 나한테 전해주면 돼.
화장실에서 만나는 걸로 하고.
-오, 007 작전. 스릴 있겠는데.
“부탁 좀 할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네 덕분에 내 일 풀린 게 얼만데.
그럼 자세한 사항은 내일 문자 하면서 맞추자.
“응, 고마워.”
-고맙긴. 내일 보자.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
회사 단합회 날이 밝았다.
해일이가 나를 데리러 오고 있었다.
-우진아. 지금 가고 있거든.
오 분 뒤에 도착할 거야.
대문 앞에 차를 대고
빵빵 두 번 울릴 테니까
바로 뛰어나와서 차에 타.
“알았어.”
나는 하얀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밴을 기다렸다.
빵빵
신호가 왔다.
“엄마, 다녀올게.
까망아 형 갔다 올게.”
“조심해서 다녀와.”
야옹 야옹
엄마와 까망이에게 인사를 하고 대문 밖을 나갔다.
엘리 스킨을 다녀온 후 처음이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열린 차 문으로 재빨리 뛰었다.
영화 촬영 때보다 더 긴장됐다.
내가 타자마자 차 문이 닫혔다.
휴~
“안녕 우진아, 오랜만이다.”
현아 누나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누나의 긴 웨이브가 짧은 단발로 변해있었다.
“안녕 누나. 어? 머리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졌네.
누나한테 잘 어울려.”
“그래? 고마워 우진아.
너도 피부에서 빛이 난다.
눈 부셔.”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찰칵
찰칵
현아 누나랑 인사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에도 파파라치의 카메라는 쉬지를 않았다.
“해일아, 일단 출발하자.”
“그래.”
밴이 출발했다.
밴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로 달렸다.
교차로를 지나 차량이 많은 곳으로 진입했다.
차선도 바꾸고 일부러 길을 뱅뱅 돌기도 했다.
파파라치를 따돌리려 해일이가 많이 애썼지만,
파파라치는 지치지도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도대체 몇 대가 붙은 거야?”
해일이가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로 뒤를 확인했다.
택시를 타고 따라오는 파파라치
자동차로 따라오는 파파라치.
못해도 일곱 대는 넘어 보였다.
“우진아, 작전 있다고 했지?
저 사람들 못 따돌리면,
단합회고 뭐고 다 끝장나겠는데.”
해일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 지금부터 누나랑 해일이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응.”
“알았어.”
나는 차근차근 작전을 설명했다.
“우선 미래 백화점 정문으로 가.
거기서 나를 내려 줘.”
“백화점 정문에.”
“응. 차는 주차하지 말고
후문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나오면 태우고 출발.
어때? 간단하지?”
“우리가 할 일은 그것뿐이야?”
“응, 나는 백화점 정문에서 내려
곧장 4층 남성복 매장 화장실로 갈 거야.
거기서 도한이를 만나서 옷을 바꿔 입고 나올게.”
“너무 단순한데. 먹힐까?”
“단순한 게 통하는 법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파파라치 떼어 놓을 수가 없어.”
“그래. 한번 해 보자.”
“화이팅!”
우리들은 굳은 결의를 다졌다.
밴이 백화점 정문에 나를 내려주고 출발했다.
나는 파파라치들이 따라 올 간격을 유지하며,
백화점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곧 파파라치들이 우르르 내 뒤를 쫓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남성복 매장으로 올라갔다.
파파라치들도 딴청을 피워가며 나를 따라 4층으로 올라왔다.
나는 남성복 매장 통로를 조금 걷다가
구석진 곳의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파파라치는 화장실 입구를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도한이 움직였다.
김도한은 검정 모자, 검정 선글라스, 파란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고,
“잠시만요. 실례합니다.”
일부러 파파라치를 밀치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연기력이 끝내줬다.
나는 첫 번째 칸에 들어가 있었다.
똑↘또↗독→
리듬을 타는 노크소리.
김도한이었다.
똑↘또↗독→
나도 똑같이 노크했다.
김도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두 번째 칸으로 들어가
칸막이 사이로 나에게 옷을 넘기기 시작했다.
치밀함을 위해 우리 둘 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재빨리 도한이가 넘긴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와 선글라스까지 썼다.
그리고 도한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김도한. 고맙다. 다음에 밥 거하게 쏠게.] [기대할게. 재밌게 놀고 와.]나는 유유히 화장실에서 나와
파파라치를 지나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해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일아, 지금 간다.”
-응, 문 열어 놓을게.
나는 백화점 후문으로 나가 밴에 올라탔다.
밴은 여유롭게 출발했다.
“따돌린 것 같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물었다.
해일이가 백미러를 확인했다.
“완전히 깨끗해. 성공이야.”
와와
우우
짝짝
우리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도착해 있을 거야.”
“오늘 신입들도 온다고 했지?”
“응. 얼굴도 괜찮고 연기, 노래, 춤도 곧잘 한 대.
잘하면 보이그룹 하나 나올지도 몰라.”
“설기는 바빠서 올 수 있으려나?”
“무지 바빠.
오늘도 방송 녹화랑 행사가 한가득이라,
대표님이 그냥 쉬라고 했다는데,
늦더라도 꼭 온다고 했데.”
오랜만에 만날 얼굴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함평으로 갔다.
***
밴은 함평 호수 앞 웅장한 별장으로 들어갔다.
빽빽한 숲 한가운데 어마하게 큰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와~ 여기 공기 진짜 가볍다.
숨이 저절로 쉬어지는 기분이야.”
현아 누나가 차에서 내리면서 바로 맑은 공기를 감지했다.
“풍경도 아름답다.
호수가 숲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나는 호수에 비친 숲의 풍경에 감탄했다.
“자, 우리도 빨리 짐 풀고 놀아 보자고.”
해일이의 목소리가 들떴다.
“좋지.”
“당연하지.”
우리는 각자의 짐을 챙겨 들고
별장 정원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섰다.
넓은 정원은 푸른 잔디로 깔끔했고,
소나무, 단풍나무, 장미나무, 금목서가 주변을 단아하게 꾸미고 있었다.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여기 헐리웃 영화에 나오는 무슨 대부호 파티장 같아.
대표님은 이런 곳을 어떻게 아셨지?”
내부 인테리어의 럭셔리함에 우리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우진이, 해일이, 현아 왔니?
오느라 수고 많았다.”
장성태 대표가 이층에서 내려오면서 우리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우리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파파라치가 엄청 괴롭혔다면서.
어떻게 왔어?”
“우진이가 멋지게 따돌렸어요.
다른 사람들은요?”
“아, 모두 요 아래 수상 레저 타운에서 놀고 있다.
너희들도 빨리 재밌게 놀고 와.”
“대표님은요?”
“아, 난 벌써 놀다 왔지.
하늘 나는 거 한 번 타니까 진 빠져서 더는 안 되겠더라.
지금부턴 그냥 푹 좀 쉴게.”
대표님은 아침 일찍 와서 이미 다 노셨다고 했다.
“여기 오늘 우리 회사에서 다 빌렸으니까
눈치 볼 것 없이 신나게 놀다 와.”
대표님은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네. 박은하는 왔나요?”
해일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벌써부터 와서 놀고 있지.
수연이 다나, 신입들 다 왔어.”
“아, 그러면 우리도 빨리 가야지.”
오해일의 마음이 바빠졌다.
“대표님, 그럼 놀다 오겠습니다.”
인사를 꾸벅하고는 쏜살같이 먼저 달려 나갔다.
“대표님 그럼 저희도 놀다 올게요.”
현아 누나와 나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해일이가 저만치 앞서 있었다.
“같이 가자.”
“누가 은하 잡아가니?
천천히 가.”
누나와 나는 웃으며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은하 옆에 남자는 누구지?”
미끈한 근육질의 한 남자가 박은하와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