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9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9화
오해일과 함께 택시를 탔다.
“SP 프로덕션으로 가주세요.”
광고 회사 「SP 프로덕션」
그들은 요가 학원 광고를 보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아직 나도 못 봤는데··· 참 일이 희한하게 풀린다.
“야, 우진아?”
해일이 나를 불렀다.
“응?”
“만약에 계약을 하면, 광고 출연료를 받잖아.”
나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너, 얼마 생각하고 있어?”
“나? 글쎄···.”
전생에 몸값이 최고였을 때, 1년 단발 출연에 3억 정도 받았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는 없고··· 쌩 초보 신인의 몸값이 어느 정도일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전생 땐 쌩 초보 시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백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것도 많으려나?”
“이래서 매니저가 있어야 한다니까.”
“왜?”
“잘 들어 봐.”
오해일은 차분차분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사람들 너 요가 광고 보고 연락한 거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델이야 널렸는데···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에 모델이 한둘이겠냐? 그런데, 동네 케이블을 보고 널 지목했다는 건··· 딱 네가 필요했단 거야.”
“그런데?”
뭔가 설득력 있는 말에 귀가 쫑긋 섰다.
“그런데는 무슨 그런데야. 이거 텔레비전 광고고 네가 꼭 필요한 거니깐··· 한 ··· 한 이백에서 삼백은 받을 수 있다는 말이지.”
“··· 그거 말 되네.”
해일이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딱 부러지게 말할 테니까 넌 잠자코 있어. 배우가 직접 나서는 거 모양 빠져서 안 돼.”
“해일이 너 벌써 매니저 다 됐다.”
우리 둘은 실컷 웃었다. 해일이가 있어 무척 든든했다.
상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돌출 간판 앞에 택시가 섰다,
광고 회사라 다르군. 신선하네.
“어떻게 오셨나요?”
“··· 오늘 여운진 감독님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여기는 배우 배우진이고 저는 매니저 오해일입니다.”
해일이 나를 돌아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가 있으니 정말 편하구나.
“아,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직원은 여 감독이 기다리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유리로 된 사무실 벽 진열장에는 피규어가 빽빽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에어리언, 터미네이터, 쥬라기 공원, 타이타닉까지···
나중에 마블 나오면 돈 엄청 깨지겠다.
여운진 감독은 나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속마음을 숨기려 나름 참고 있긴 했지만 얼굴에 다 드러났다.
“여기 앉아요.”
여 감독은 내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민망할 정도로.
“렘브란트도 있고 안데르스 소른도 있네. 손에 잡히는 것 같으면서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느낌이라···”
여 감독은 내 외모에 대한 감상을 의식의 흐름대로 뱉어냈다.
“우진이는 그냥 묘하게 생겼죠.”
오해일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여 감독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새로 나온 핸드폰 광고야. 컨셉은 신비주의와 힐링. 한 마디로, 요정의 숲 같은 그런 곳에 요정처럼 생긴 인물이 신비롭게 등장해서. 뭔가 느낌을 주는 거야. 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렇게 신비롭다 뭐 그런··· ···”
‘핸드폰이라고? 완전 메이저네.’ 조금 얼떨떨했다.
“혹시 뭐 얼굴 망가뜨리거나 귀에 이상한 거 붙이고 그러는 거 아니죠? 우리 배우님은 이미지를 관리를 해야 해서 말이죠. 지금 영화도 찍고 있고···”
오해일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영화?”
“아직은 촬영 중입니다.”
“광고가 먼저 나올 거야. 일정이 좀 급해. 그리고 신비주의 컨셉이라 대중에게 먼저 알려져서도 곤란하고. 빨리 찍고 빨리 나갈 거야.
일단 카메라 테스트부터 받자. 아직 미성년자니까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하고.”
여 감독이 서둘렀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말씀을 안 하셨는데요.”
오해일은 어물쩍 넘어가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얘기는 시작도 안 한 것이다.
“··· 아, 출연료.”
“네. 아직 배우님이 데뷔하기 전이긴 하지만, 얼마 후면 영화도 나오고 하니까··· 그런 부분은 좀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해일은 불편한 말도 곧잘 했다. 제법 매니저 티가 났다.
해일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밀어 내게 손가락을 세 개 펴보였다.
‘삼백?’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건 최 피디 담당인데 잠깐 자리를 비웠거든. 뭐 나랑 얘기해둔 건 있으니까. 그래. 생각해 온 건 있어? 또 너무 안 맞으면 협상을 해야 하고.”
“세 장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해일이 당당하게 말했다. 거침이 없었다.
“세 장? 세장은 너무 많은데? 아직 영화를 찍고 있다고는 해도, 광고는 완전 초짜잖아.”
“그럼, 얼마나 생각하고 계신데요?”
초짜라는 말에 해일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우리는 한 장 생각하고 있었어. 이것도 많이 생각한 거야. 이 광고 찍고 싶어 하는 모델들이 줄을 섰어. 메이저 광고에 컨셉이 좋아서 말이지.”
“··· 그럼 그분들과 하세요. 우리 배우님은 영화에 전념해야 하고··· 또 그렇게 싸게 돌릴 생각 없어요. 영화 개봉하고 천천히 광고 찍어도 늦지 않습니다. 가자, 우진아.”
오해일은 대차게 나왔다. 나는 놀래서 입이 쩍 벌어졌다.
백만 원도 사실 감사하긴 한데···
매니저 오해일이 엎자면 엎어야지.
나는 해일이를 따라 일어섰다.
여 감독은 사색이 돼서 우리를 다급히 붙잡았다.
“이봐, 이봐, 이봐. 왜 이리 성미가 급해. 알았어··· 그럼 서로 한 발씩 양보해서 두 장으로 하자. 이것도 내가 진짜··· 최 피디한테 혼날지도 몰라.”
해일이 귓속말을 했다.
“이백 정도면 괜찮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두 장.”
“좋아. 좋았어. 그리고 이건 전속 1년이니까 이 기간 동안 다른 핸드폰 광고 계약하면 안 돼. 다음에 부모님과 함께 정식 계약을 할 거야.
계약서 작성하고 며칠 후에, 출연료 이천 만원 통장으로 들어갈 거고.”
“네?!”
“!!”
“이··· 이천 만원??··· 오우 쉣!!”
출연료가 이천 만원이라는 말에 오해일과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한 장이 동그라미 하나 더 붙인 한 장 일거라 곤 상상도 못했다.
***
촬영장 밥차는 진리다. 촬영장에서 먹는 밥은 어떤 음식이 나와도 꿀맛이다. 함께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데 어울려 먹으니 밥맛은 배가 되고 힘이 솟구쳤다.
전생에 혼자 방 안에서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 밥차 계란 프라이는 진짜 진리야. 엄청 맛있어.”
폭열단 리더 역의 나균성이 계란 프라이를 한 번에 구겨 넣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오디션은 몇 번 봤어?”
나균성이 옆에 앉으며 살갑게 말을 걸었다. 영화에선 동갑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나보다 네 살이 더 많았다.
“여기가 첫 번째입니다.”
“음,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난 지금까지 오십 번 봤는데 오십 번 다 떨어지고 여기 간신히 붙었다. 처음엔 우진이 널 보고 ··· 저 새끼 저거 얼굴로 붙었네. 이렇게 생각했거든···
그런데 영화를 찍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 나만의 착각이었지.
넌 정말 연기 끝내 줘. 되게 끝내줘. 보고 있으면 멋지고 빛나고··· 뭐라고 할까. 나보다 어리지만 왠지 닮고 싶은 멘토 같은 느낌.”
사실, 내 마음은 40 초반에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 깨달은 아저씨’이다. 나균성이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액면가는 19살 순수 청년. 나는 손사래를 치며 겸손함을 유지했다.
“아. 아닙니다.”
“자식 겸손하기까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전생처럼은 안 되려고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균성은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 연기 그만두려고 했었어··· 그런데 저번에 비 오는 날 무릎에 피나도록 열심히 연기하는 널 보고 내가 너무 부끄럽더라. 너만큼 해보고 그만두려 한 건지 스스로 묻게 되더라고”
나균성은 솔직한 자기의 속내를 말했다. 슬럼프에 빠진 그에게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나균성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역시 배우는 연기지.’
“선배, 우리 연습 한 번 해요. ‘이진홍’하고 ‘폭열단 리더’가 만나는 첫 장면 아직 감이 안 잡혀서요.”
“그래? 나야 땡큐지.”
나균성은 먹던 밥을 마저 입에 넣고 벌떡 일어섰다.
밥차 옆으로 구석진 자리에 배우진과 나균성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날 너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친히 왔다. 황송하지.”
“진홍이 오랜만에 보네. 그런데 말이 좀 많다.”
“반가워서 그래. 겁이 존나 많아서 떼거지로 뭉쳐 다니는 멸치 대가리들을 보니까.”
배우진의 독기 서린 목소리에 나균성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짧은 대사 하나도 단단했다.
자칫 정신을 놓았다간 여지없이 녹다운될 것 같았다. 연습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우리가 멸치면 넌 뭐냐?”
“난 고래지. 유유히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멸치든 고래든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건 다 똑같지. 그런데 고래랑 멸치랑 누가 먼저 좆 될까?”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배우진과 나균성에게 꽂혔다. 한 편의 드라마를 감상하듯 밥을 먹으며 그 둘을 지켜봤다.
‘배우들이 배우진과 합만 맞추면 자기 실력의 이백 프로를 해내는구나. 대단한 에너지야. 이번 영화 일내겠어.’
류지완 감독의 눈길도 배우진과 나균성에게 가있었다.
“당연히 고래지. 왜? 우리 멸치는 밟아도 밟아도 또 생겨나거든. 존나 밟을수록 쪽수가 더 늘어난다고. 쪽수로 덤비면 고래 한 마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웃기고 자빠졌네. 고래가 왜 고랜지 한 번 보여줄게.”
차민혁도 먼발치에서 보고 있었다.
배우진은,
연기를 잘한다.
열심히 한다.
겸손하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거기다 잘생겼다.
배우진은 촬영장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스태프들도 배우진을 좋아하고 배우들도 배우진을 좋아했다.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함께 연습하고,
차민혁은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밖으로 밀려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주인공은 차민혁 자신인데···
촬영장의 분위기는 배우진이 주도하고 있었다. 대본 속의 주인공은 차민혁이지만 촬영장의 주인공은 배우진이랄까.
‘눈엣가시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이상한 건 차민혁도 배우진이 싫지 않다는 거다.
배우진을 보고 있으면 연기에 대한 열정이 살아나고, 열심히 하고 싶어 지며, 연기가 재밌었다.
그리고 배우진은 차민혁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스스럼없이 군다.
사실, 촬영장에서 차민혁에게 제일 살가운 것도 그 녀석.
감독이든 스태프든 다른 배우들이든, 차민혁만 보면 슬금슬금 도망가고 인상이 굳어지는데, 배우진만큼은 평범하게 차민혁을 대한다.
‘그래서 더 싫은 거야. 맞아. 그래서 더 싫은 거야.’
기분이 엿 같았다.
차민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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