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94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95화
김동국의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예전 회사에서 일할 때부터,
일본과의 비즈니스는 개운했던 적이 없었다.
특유의 말 바꾸기, 은근히 무시하기, 자기들 이익만 챙기기···
아시아의 큰 시장이라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어쩔 수 없이 일본 진출을 하긴 하지만,
언제나 뒷맛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배우진 일정은 더욱 철저히 준비했다.
계약서도 몇 번이나 꼼꼼히 살피고,
애매한 조항은 몇 번의 논의를 거쳐서라도 명확하게 바꾸고,
틈을 보일 수 있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송 대리의 아리송한 표정을 보니
뭔가 또 시작됐구나 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송 대리.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이야?”
김동국은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물었다.
빨리 들어보고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네, 그게. 온앤온 그쪽 말로는,
나리타 공항에 저희가 도착하는 시간이
홍콩에서 돌아오고 있는 일본 배우 ‘시미즈 아키라’의 입국 시간과 같답니다.
그래서 시미즈 아키라가 입국장을 먼저 나가고
그 뒤에 우리가 나갔으면 한다고요.”
송 대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좀 이상하다 했지만
막상 그 메시지를 입으로 전해보니,
확실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김동국의 속이 뒤틀렸다.
“걔들이 나갈 때까지 우리 보고 기다리라고?
얼마나?”
“기자 회견까지 하면 한 30분 정도···”
송 대리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벌개 졌다.
자기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주눅이 들었다.
“뭐? 그러면 30분 동안 꼼짝없이 입국장 안에 있으라고?
호텔 체크인 빨리하고, 짐 풀고 쉬면서
내일 스케줄 준비해야 하는데···
거기다 잘못하면 딱 러시아워에 걸리잖아.
첫날을 도로에 갇혀 있으라는 거야?”
김동국이 불같이 화를 내질렀다.
평소 화를 거의 내지 않는 김동국에게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송 대리는 물론 다른 일행들까지 잔뜩 긴장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그렇게 한다고 했어?”
‘어느 정도 예상한 바는 있었지만
비행기에 타자마자 이렇게 뒤통수를 날릴 줄이야.’
김동국은 답답한 마음에 송 대리를 다그쳤다.
화들짝 놀란 송 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제가 미쳤습니까?
우리 배우진이 지금 어떤 위친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송 대리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시작했지만,
결국 말꼬리가 밑으로 쳐졌다.
“··· 십분 정도는 기다려 준다고 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였다.
송 대리는 김해 공항의 번잡함 속에서
일행이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었다.
갑자기 걸려온 일본 측 전화를 무슨 정신으로 받았었는지 아마득하기만 했다.
“뭐?”
김동국은 세모눈을 하고 송찬기를 쳐다봤지만,
‘그런 바쁜 상황을 이용해
자기들의 이익을 채우려 한
일본이 나쁘지 송찬기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
사실, 송 대리의 대처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배우진은 김동국과 송찬기의 대화를 모두 들었고,
지금 발생된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김 실장님.
겨우 10분인데요.
그리고 시미즈 아키라는 요즘 일본에서 제일 핫한 배우잖아요.
아마 아키라 팬들도 많이 나와 있을 거고,
잘못하다 팬들끼리 엉켜서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쪽에서 연락 준 걸 거예요.”
배우진의 말에 일단 분위기는 진정되었다.
“그리고 일본 측이 바라는 게 혹시 이런 상황이 아닐까요?”
모두들 의아한 눈빛으로 배우진을 바라봤다.
일본이 어떤 상황을 바란다는 건지.
“잘못은 그쪽이 해놓고,
우리끼리 잘잘못을 따지며 분열하는 모습.”
“아.”
“맞다.”
“항상 그런 식이지.”
배우진이 핵심을 찌르자 일행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김동국은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우진이 네 말이 맞아.
어차피 조용히 넘어갈 놈들은 아니었어.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자.
우리끼리 잘잘못을 따지는 건 무의미해.
송 대리 앞으로 보고는 즉각 즉각 하고
애매한 말에는 바로 대답하지 말고,
알았지?”
김동국이 원래의 이성적인 모습을 되찾았다.
“네, 알겠습니다.”
송 대리의 마음도 더 야물어졌다.
‘시미즈 아키라’
나는 ‘시미즈 아키라’를 잠시 생각했다.
그는 전생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꽉 박힌 배우였다.
아직은 본색을 숨기고 있지만
나이가 더 들고 인기가 떨어지면,
‘독도는 일본 땅’이라든지,
‘한국은 미개한 나라’라는 망언을 해대며,
우익을 등에 업고 배우 생활을 연명할 놈이다.
‘이번 일본 일정에서 시미즈 아키라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이왕 만난 김에 참교육 좀 시켜 볼까?’
나는 비행기 창 밖 하얀 구름을 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
그 시각,
JAL 항공 퍼스트 클래스.
시미즈 아키라가 좌석을 뒤로 쭉 눕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일본에서 핫한 신인 배우로
마성의 천재 배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데뷔작 에서
여고생을 사랑하는 열혈남아로 분해,
일본 여성들의 영원한 첫사랑이 된 이후,
나오는 영화마다 히트를 치며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물론, 가 일본에서 개봉되기 전까지.
최근 A.K.R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해 다시 큰 인기를 누리고,
홍콩 팬미팅까지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키라.”
매니저가 자고 있는 아키라를 깨웠다.
아키라의 성격은 잘 알고 있지만
긴급히 할 말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뭐야? 다 왔어?”
아키라는 짜증을 내며 매니저를 째려봤다.
“조금 있으면 나리타에 도착이야.”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키라가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직 바다 위였다.
“아직 멀었잖아. 뭐 할 얘기 있어?”
가시 돋친 아키라의 목소리에
매니저는 주춤거렸다.
“공항에 도착하면 팬들하고 취재 기자들이 많이 와 있을 거야.
사장님이 오늘은 공항에서 짧게라도 기자 회견을 하래.”
아키라의 눈치를 살피며 매니저는 사장의 뜻을 전했다.
“아이 씨. 짜증 나게.
피곤해 죽겠는데. 공항에서 뭔 기자 회견이야.
내가 그런 거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뭔 되지도 않게···”
아키라는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역시 평소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아키라는 기자 회견을 극도로 싫어했다.
귀찮은 걸 질색하기도 했고,
기자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연예인이 팬미팅을 하러 일본에 오고 있어.
아마 너랑 같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할 거야.”
매니저는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이었지만,
배우진이라는 말은 아꼈다.
배우진이란 말이 나오면
아키라는 폭발해서 아무 말도 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깟 나라 연예인 오는 게 뭐가 대수라고.
그리고 그게 기자회견이랑 무슨 상관이야?”
아키라는 매니저의 말이 이해도 되지 않고 짜증만 났다.
“그러니까 사장님 생각으로는
네가 먼저 나가 기자 회견을 하면
기자들이 너한테 다 몰릴 거고
저쪽은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게 된다는 거지.
한국 배우에 비해 네 인기가 더 높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줄 기회야.”
매니저가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설명했다.
아키라는 평소에도 사람 말을 잘 듣지 않고
이해도 못하고 화만 내는 경우가 많았다.
매니저는 이번 사장님의 특별지시를
착오 없이 진행시키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아니 할리우드 스타도 아니고
그깟 한국 배우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하여튼 난 기자 회견은 안 해.”
아키라가 썩소를 날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드디어 배우진을 언급할 차례였다.
“한국에서 오는 그 배우가 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진이니까.”
매니저가 침을 꼴깍 삼켰다.
“뭐??”
아키라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매니저의 작전이 먹혔다
“의 최준??
매일 아침 방송에서 언급하는 그 배우진??”
가 개봉한 이후로,
아침 방송에서 배우진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간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아키라는 그것도 싫어 아침방송 끊은 지도 몇 주 됐다.
“그래. 지금 일본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장난 아니야.
사실, 너의 영원한 첫사랑 이미지마저 흔들릴 정도지.
이번 기회에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사장님의 판단이야.”
매니저의 말이 아키라의 귀에 팍팍 박혔다.
“당연하지. 분수도 모르고 까부는 한국인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먼저 입국장을 나가서 취재진을 독차지하는 거야.
뒤에 들어올 배우진에게는 하나도 남겨주지 말고.
또 우리 팬들이 먼저 좋은 자리를 다 잡게 하고,
배우진 팬들은 구석으로 몰아내고.”
매니저는 아키라에 바짝 붙어 앉아 속삭였다.
“좋아. 좋아.”
매니저의 계략에 아키라의 눈이 반짝였다.
아키라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깔보고 있었고,
한국 영화는 한수 아래라고 항상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 일본에서 광풍 몰이를 하고,
배우진은 연일 매스컴에 도배되었다.
그것만 해도 분한 노릇인데,
개봉 한 달 뒤 개봉했던
자신이 출연한 영화 이 완전 폭망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었다.
“그놈이 드디어 팬미팅하러 온단 말이지.”
아키라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기자회견 준비해.
그리고 지금 스타일리스트 불러.
좀 꾸미고 나가야지.
배우진보다 내가 더 잘생겼다는 걸 보여 줄 거야.”
아키라의 가슴이 활활 불타올랐다.
배우진에게 빼앗겼던 여자들의 마음을
오늘 한꺼번에 다 회수하리라 다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가끔 기자들에게도 친절해야지.”
JAL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을 향해 열심히 날아가고 있었다.
***
배우진과 일행이 탄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이 두 시간 정도라 힘들지는 않았다.
간단한 자기 짐을 들고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각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꽤 북적였다.
일행은 배우진을 보호하기 위해,
배우진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서서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심사대가 가까워지자
김동국 실장이 일행에게 주의사항을 일렀다.
김동국은 일본어도 잘하고,
비즈니스 차 일본을 여러 차례 와봤기에
장성태가 믿고 일행을 딸려 보냈다.
그렇기에 김동국의 책임감은 평소보다 더욱 무거웠다.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서류 있지.
그거랑 여권 준비하고.
지문하고 사진 촬영을 할 거고,
입국 심사관이 두 가지 정도 질문을 할 거야.”
“네.”
“영상까지 보면서 다 준비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번 일정에 따라나선 폴 엔터의 직원들은
입국, 출국, 일본 방송 문화와 간단한 일본어 등 사전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그래도 긴장하면 생각이 잘 안 나는 법이니까.
일본어 몇 가지만 점검하자.
자, 방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일본어로 〖호우몬노 모크데키와 난데스카〗?”
〖호우몬노 모크데키와 난데스카?〗
모두들 작은 소리로 따라 했다.
“우리는 일 하러 왔으니까 〖비즈네스데스〗라고 대답하면 돼.”
〖비즈네스데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디에서 머무릅니까?
〖도꼬데 토마리마스까?〗라고 물으면
〖리츠호테루데 토마리마스〗라고 대답해.”
〖리츠호테루데 토마리마스〗
다들 다시 한번 일본어를 복습하며 긴장된 마음을 풀었다.
“공항직원이나 안전요원은 없나요?”
오해일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한국의 탑배우가 왔는데,
아직까지 모든 것이 너무 평범했다.
“입국 심사가 끝나면 수화물 장에 나와 있을 거야.”
김동국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네.”
오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흩어져 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배우진도 줄을 섰다.
사람들이 배우진을 힐긋힐긋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