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98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99화
재패니즈 월드 사장실에 홍보부장이 들어왔다.
“공항이 난리가 났었다면서.”
사장은 홍보부장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채근했다.
“네. 저희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홍보부장은 방금 전 나리타공항 사진 여러 장을 테이블에 펼쳐 놓았다.
개미처럼 많은 사람들이 배우진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였다니. 우리가 배우진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었고만.”
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배우진이 현재 일본에서 인기가 치솟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키라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배우진은 이미 아키라를 능가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는 게 좋을까? 좋은 생각은 있어?”
사장은 이마를 찡그렸다.
배우진의 시장 가치를 몰라보고 섣불리 행동한 것을 후회하며.
“네, 대세는 이미 기울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키라는 배우진한테 묻어가는 게 가장 현명합니다.”
아키라가 배우진보다 인기가 많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전략에서
배우진의 인기에 탑승하는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묻어간다. 묻어간다고?
오~”
사장의 이마가 펴졌다.
힘들이지 않고 큰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장의 반응이 좋자 홍보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배우진이 노출되는 곳에 아키라도 함께 노출될 수 있도록 둘의 이미지를 연관시키는 겁니다.
배우진을 떠올리면 아키라도 함께 떠올릴 수 있도록.”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긴 한데, 어떻게?”
사장이 둘의 이미지를 연관시킬 방법을 물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우진이 한국에서 천재 배우로 불린다더군요.
근데 그건 우리 아키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키라도 일본의 천재배우죠.
한국의 천재배우 대 일본의 천재배우라는 대결 구도를 짠다면,
배우진이 가는 곳에 우리 아키라도 가게 될 겁니다.”
홍보부장이 자신감 있게 방법을 말했다.
“오호, 그거 좋은 생각이야. 일리가 있어.
한국의 천재배우 대 일본의 천재배우!”
사장이 무릎을 탁 쳤다.
홍보부장의 대책은 떨어져 가는 아키라의 인지도를 다시 올릴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이었다.
사실, 아키라는 얼굴도 좋고 연기도 좋고
거기다 시기를 잘 만나 단기간에 일본의 탑배우도 되었지만,
천성적인 게으름, 건방짐 등으로 요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었다.
회사는 아키라가 아직 건재할 때 더 많은 수익을 뽑아야 했다.
배우진을 활용해서 아키라를 다시 띄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전략은 없었다.
홍보부장은 세부 계획을 말했다.
“배우진이 내일 예능 ‘톤네루즈 쿠와즈 기라이’에 나가는데
거기 우리 자회사 온앤온 소속 키타가와 케이코가 함께 게스트로 나갑니다.”
“계속 말해봐.”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케이코가 배우진에게 까메오 출연을 부탁한다면,
배우진이 들어주지 않을까요?
두 진행자 토코야마와 오타니에게도 귀띔해 놓으면 확실할 겁니다.
소문에 의하면 배우진은 모든 연기에 진심이고,
주변 사람을 아낀다고 하니,
분명 부탁을 들어줄 겁니다.
우리 아키라가 주연인 드라마에 배우진 출연을 성사시키고
언론을 통해 한국 천재배우 대 일본 천재배우의 틀을 짠다면,
그 뒤로는 일이 저절로 풀릴 겁니다.”
홍보부장의 목소리가 확신에 가득 찼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인기 드라마의 한 장면을 배우진과 아키라가 함께 연기한다면,
한국 천재배우 대 일본 천재배우의 대결구도는 저절로 짜지겠지.
우리 회사의 이익을 최대한 뽑을 수 있겠어.”
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짓다 갑자기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배우진이 드라마 까메오 출연할 시간은 있나?”
“네, 마지막 날 일정이 비어있습니다.
그날 촬영날짜를 잡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홍보부장의 계획엔 빈틈이 없었다.
“아하하, 그래. 그래.
그쪽 장 대표가 배우진 일정 빡빡하게 잡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서 스케줄 하루는 뺏었지.
그 시간이 우리에게 이렇게 좋게 작용할 줄이야.
좋았어. 실수 없이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이번 배우진 일정으로 아키라의 전성기가 몇 년 더 늘어날 수 있을 거야.
그동안 회사는 성장하고.”
“지금 당장 기사를 잘 써줄 수 있는 기자들을 섭외해 놓고,
케이코 매니저에게 연락하겠습니다.”
홍보부장이 사장실을 떠날 준비를 했다.
당장 할 일이 산더미였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 나가서 일 봐.”
사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홍보부장을 보내주었다.
***
다음 날, 나의 일본에서의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에는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점심에는 시티 프리즘 홀에서 팬사인회를 가졌다.
두 행사 모두 무난하게 잘 마쳤다.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기자들의 질문은 평이했고,
일본 팬들은 질서 정연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 ‘톤네루즈 쿠와즈 기라이’ 녹화를 하러 후지 TV로 달렸다.
시간을 아끼려 키요스케 씨가 준비한 도시락을 차에서 먹었다.
“너무 귀여워서 이 도시락을 어떻게 먹니?”
현아 누나가 도시락을 열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고양이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이미 고양이 귀를 다 먹고 코로 젓가락을 가져가던 중이었다.
해일이 도시락의 고양이는 얼굴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젓가락질의 속도를 늦췄다.
“음, 그래도 배고프니까 먹어야겠지.”
누나는 아쉬워하면서 고양이 눈부터 파먹었다.
“맛있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누나는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해일이와 나의 젓가락질 속도도 정상이 되었다.
“일본 요리는 대체적으로 부드러운 것 같아.
계란말이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먹던 질감이랑은 조금 다른데.”
해일이가 계란말이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딱딱한 음식을 싫어해.
부드러울수록 고급 음식으로 취급하지.”
현아 누나가 일본 요리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평소에 젤리나 연두부 같은 거 많이 먹어.”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
해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와 가깝지만 많은 것이 다른 일본이었다.
“참, 키요스케 씨가 준 예능 대본 있지 않았나?”
나는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해일이에게 물었다.
“응. 여기 있어.”
해일이가 다 먹은 도시락을 정리하고,
‘톤네루즈 쿠와즈 기라이’ 대본을 찾아 나에게 건넸다.
알기 쉽게 한국어로 다 번역돼 있었다.
나는 빠르게 대본을 훑었다.
회의했던 내용과 비슷했다.
“키타가와 케이코.”
나는 오늘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게 될 여배우의 이름을 불러봤다.
일본에서는 매우 유명하다는데,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케이코는 일본 최고 미녀 3년째 1위를 하고 있는 여배우야.
영화보다는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편이고.
내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 주연 배우였어.
그때 완전 팬이었는데··· 우진이 네 덕에 케이코 실물을 다 보겠네.”
현아 누나가 케이코에 대해 말하면서 방긋 웃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유나 정도 되나?”
나는 케이코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응, 그 정도 돼. 아역으로 데뷔해서 인지도도 높고, 연기력 외모 다 인정받으니까.
설원에서의 마지막 장면 정말 끝내줬지.
홀로 눈밭에서 절규하던 모습이 온 일본인의 마음을 울렸거든.
나도 그때 좀 울었다.”
누나는 드라마의 여운이 살아나는지 코를 찡긋거렸다.
“눈밭? 그러니까 뭔가 알 것 같기도 하네.”
나는 케이코에 대한 기억을 짜내었다.
“어쩌면 이런저런 자료 화면으로 본 적 있을 거야.
깨끗한 눈처럼 순수한 이미지.”
“응, 그런 것도 같아.”
나는 두 개그 진행자 토코야마와 오타니에 대한 자료도 꼼꼼히 살피며 오늘 녹화를 대비했다.
***
후지 TV 방송국 정문 앞에 차가 섰다.
해일이가 먼저 내려서 달려드는 팬이나 기자는 없는지 확인했다.
일본에서는 운전대를 안 잡으니, 한결 여유 있게 나를 케어할 수 있었다.
〖배우진 씨 반갑습니다. 녹화 시간이 여유가 없습니다. 빨리 저를 따라오시죠.〗
FD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짧은 인사 후, 매우 서둘렀다.
나는 시계를 한번 봤다.
크게 늦은 건 없었다.
‘일본 방송은 이런 식인가’
조금 의아했지만,
서로 문화가 다르니 손님인 우리가 그들의 문화에 맞추는 것이 예의.
나, 해일이, 현아 누나는 FD를 따라 함께 서둘렀다.
〖녹화장이 5층입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도 FD의 표정은 초조해 보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FD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 서고 문이 열렸다.
양 갈래 길이 있었다.
〖왼쪽은 출연자 전용 통로고, 오른쪽은 관계자분 통로입니다.〗
FD가 양 갈래 길을 돌아보며 우리 일행에게 알 수 없는 설명 했다,
〖네? 그럼 배우진과 우리가 따로 움직인다는 말씀이신가요?〗
현아 누나가 바로 물었다.
〖네, 왼쪽 끝에 녹화장이 있고, 오른쪽 끝에는 관계자 분 대기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모니터로 녹화 상황을 모두 확인 할 수 있습니다.〗
FD는 당연하다는 듯 다시 한번 설명했다.
“일본 방송이라 다른 가?”
해일이가 내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게, 매니저와 떨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나도 매우 황당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해일아, 누나랑 대기실에 가있어.
녹화 잘하고 올게.
걱정하지 말고.”
해일이와 누나를 안심시켰다.
“아, 뭔가 개운하지 않은데···.”
해일이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망설였다.
〖저기, 녹화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데 빨리 움직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FD는 또다시 서둘렀다.
〖네, 가시죠.〗
나는 FD에게 대답하며
먼저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가 몇 발자국 걷는 걸 보고는,
해일이와 현아 누나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 녹화 대본은 보셨나요?〗
〖네, 방금 차 안에서 살펴봤습니다.〗
〖두 MC에게 실례되는 말이나 행동은 삼가라고 몇 번이나 당부해 뒀고요. 우진 씨는 친구를 만나 듯 편하게 녹화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FD와 나는 녹화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고, 썰렁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른 시설이나 사무실도 없고,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앞을 걸어가고 있는 여자 한 명뿐이었다.
〖아, 큰일 났다.〗
FD가 갑자기 우뚝 서더니 자신을 자책하듯 머리를 두드렸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제가 키요스케 씨에게 긴히 전해줄 말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먼저 가시면 안 될까요? 여기 복도로 쭉 가시면 ‘톤네루즈 쿠와즈 기라이’ 녹화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이것도 문화 차이인가?’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FD는 벌써 엘리베이터로 뛰고 있었다.
〖네, 먼저 가 있겠습니다.〗
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배우진 씨.〗
뭔가 이상하다.
일본은 이런 곳인가?
그래서 일본이 이상하다고 하는 건가?
나도 이상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복도를 다시 걸었다.
내 앞 여자도 여전히 걷고 있었다.
그런데
몇 발 떼지 않아서,
와아아아악!
끄아아악.
아아악.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비명이 등 뒤에서 날카롭게 들렸다.
‘뭐지? 무슨 일이지?’
나는 사태 파악을 해보려 멈췄다.
앞 서 걷던 여자도 주춤 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악악
으아아악
사람 살려!!
쿵쾅
쿵쾅
진동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렸다.
‘지진이라도 났나?’
긴장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순간, 공포에 질린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여자를 지나 도망쳤다.
나는 당황으로 어쩔 줄 몰랐는데,
여자는 나보다 더 심했다.
몸은 얼음이 되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으며, 동공마저 흔들렸다.
〖괜찮아요?〗
나는 재빨리 다가가 물었지만,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완전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이 일을 어쩌지?’
쿵쾅
쿵쾅
쿵쾅
더 큰 울림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