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128
128. 한동안
지플릭스는.
국내에서 가장 핫한 배우라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최도윤이 참여한 덕에 초기 많은 가입자를 확보했다.
여기에 의 시사회에 다녀온 사람들이나 영화를 먼저 본 평론가들도 호평을 쏟아내며 관심을 더욱 키운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정까지 5분이 채 남지 않은 지금 이 시각.
사람들은 이제 잠시 후에 시작될 지플릭스 한국 서비스를 기다리는 한편-
‘믿고 보는 최도윤’의 를 감상하기 위해 저마다 준비했다.
맥주와 팝콘을 준비하는가 하면.
커다란 TV에 컴퓨터를 연결하거나.
빔 프로젝트를 틀어놓는 등.
특히, 도윤의 찐팬들은 저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와 에 글을 올리며 자정이 되길 기다렸다.
채은성도.
그중 한 명.
내일 몇몇 사건 심의가 있었지만.
사실 반차를 내서 상관없다.
‘이런 건 2회차, 3회차까지 달려줘야지!’
만약 기존 영화처럼 상영관 개봉작이었으면.
은성은 아마 반차가 아니라 며칠 휴가를 내고 영화관에서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시사회에서 본 에 큰 감명을 받았으니까.
사실 도윤의 팬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일.
특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수철이 ‘중년의 멋짐’을 폭발시키며 선보인 연기가 의외로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은성도 그중 한 명.
물론.
아무리 그래도 은성의 마음속엔 도윤 한 명뿐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가운데.
자정.
드디어 가 공개되는 시각이 되었고.
은성은 부푼 마음을 안고 지플릭스 어플을 눌렀지만.
곧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 왜 안 돼?”
지플릭스 어플리케이션은 작동되었지만.
검은 화면만 뜰 뿐.
그 뒤로 넘어가질 않았다.
그러다 뜬 메시지는 바로…….
[사용자가 많습니다. 잠시 후 시도해 주세요.]은성을 비롯한.
오늘 자정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메시지였다.
* * *
[지플릭스, 결국 서버 터졌다…… 새벽 5시 되어서야 간신히 접속!] [ 인기? 혹은 지플릭스 인기? 지플릭스 서버 ‘마비’] [지플릭스코리아, “즉각 서버 증설할 것”] [지플릭스, 한국 시장 성공적으로 안착?]자정, 일시적인 이용자 급증으로 마비된 서버는 수많은 기사들을 낳았고.
10분 후엔 되겠지, 30분 후엔 되겠지, 1시간 후엔 되겠지 싶어 기다리던 사람들 일부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우게 만들었다.
물론.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게 무슨 대수냐 싶어 잠든 사람도 있었지만.
은성을 포함한 도윤의 찐팬이거나 지플릭스 컨텐츠를 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던 것.
여하튼.
이런 일로 지플릭스는 다급히 서버를 증설해야 했지만.
그건 곧…….
한국 시장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도윤과 수철이 주연을 맡은 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거나 다름없기도 했다.
정량적으로 관객이 몇 명이고 개봉 기간은 얼마 동안이며, 같은 기존의 법칙대로 산출할 수는 없지만-
지플릭스만의 통계에 의하면.
“아시아 지역 1위!”
분명히, 시작부터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니까.
“이야…… 고생한 보람 있네. 고생했다, 도윤아, 수철아.”
덕분에 동민의 입가엔 요새 웃음이 마를 날이 없었다.
간판 배우라 할 수 있는 도윤의 성공가도가 이어지고 있었고.
특히, 조마조마했던 수철의 복귀가 성공적이었으니까.
물론 시기상으로만 따지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수철 주연의 드라마가 먼저고 는 그다음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둘 다 잘 뽑혀 나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여하튼 수철은 지금 드라마의 시청률 고공행진과 의 호평 속에서 정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지금도, 매니저의 닦달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우, 엄청 보채네요. 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 오면 쳐들어와서 끌고 나갈 기세에요.”
수철의 너스레에 동민은 빙그레 웃었다.
아직 를 기억하며, 장난식으로 조롱하거나 진짜 비난하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철의 복귀 스토리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10년 만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수철의 배경을 노리고 토크쇼나 예능에서 계속 섭외가 들어오겠는가.
“다녀와. 오늘도 새벽에 끝나냐?”
“네, 아마도요.”
“제수씨 요새 엄청 기다리겠네.”
“요새는 그냥 자요. 제가 그러라고 했거든요.”
수철은 씩 웃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닥 대표실을 나선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 도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간판배우 타이틀 없어도 되겠는데요.”
“야, 무슨 소리냐? 미국 때문에 네가 일정 줄여서 그렇지 원래대로였으면 이 자리 만들지도 못했어.”
하기야.
도윤이 미국에 간다고 이런저런 일정들을 더 이상 잡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사실 오후에 이렇게 한가로이 동민과 대화를 나누기엔, 도윤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배우도 이 정돈데 전문 예능인이나 아이돌들은 도대체 얼마나 바쁜 거지.’
특성상 예능이나 토크쇼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 출연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다른 쪽 사람들은 얼마나 바쁠지.
상상도 안 된다.
“기분은 좀 어때?”
“그냥저냥요. 사실 가기 전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 아마 그럴 거야. 대본은?”
“보고 있어요. 음, 어렵진 않은데…… 그냥 연기하면 되겠죠.”
와중에 도윤다운 대답을 내놓는 도윤.
참고로 도윤이 참여하는 드라마는 바로.
“그래도 좀비 아포칼립스면 엄청 기대되잖아. HBU에서 제작하는 드라마들이 다 대박 나기도 했고.”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였다.
미국에서는 아주 흔하게 제작되는 장르이자,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장르.
도윤은 거기서 생존자 중 한 명이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아포칼립스에 휘말린 한국인 ‘조강석’ 역을 맡게 될 예정.
그러니까.
‘예정’이다.
“오디션은 형식적이라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아요.”
그러니까.
일단 오디션을 치러야 한다는 뜻.
빌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확정은 됐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도윤을 소개하는 자리나 마찬가지라는데.
어디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
당연한 말이지만.
실수하면 난리가 날 테지.
그래서 도윤은 요새 광고 촬영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비는 시간에 빌이 메일로 발송해 준 샘플 대본을 읽고 또 읽는 중이다.
“잘될 거다. 도윤아.”
“그럼요. 잘 되어야죠. 그러려고 가는 거니까.”
“가만 보면 참, 걱정 없단 말이야.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거냐? 얌마, 내가 대표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다만…… 가서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망하면 망하는 거죠. 그거 걱정했으면 애초에 계약 안 했고요.”
틀린 말은 아니다만.
가끔 보면 저렇게 천하태평한 게 걱정되기도 한다.
미국은 분명히 다른 땅이니까.
물론 한국에서 이 짧은 시간 동안 이만한 성공을 거둔 도윤의 필모그래피를 고려했을 때 저런 반응이 영 신뢰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만…….
그래도.
물가에 자식을 내놓은 듯한 이 기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하나.
“수철이로 한시름 놓았더니…… 이제는 우리 간판 배우가 미국 가고. 그래, 잘 되겠지. 도윤이 너니까.”
“잘 안 되면 대표님 탓할 겁니다.”
“그래, 차라리 나 때문에 안 됐다고 하는 게 좋겠다.”
“아니, 예능으로 말했는데 다큐로 받으시면 어떻게 해요.”
“나 그만큼 심각해.”
도윤은 새삼 동민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한편.
동민을 위해서라도.
적어도 실패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스테레오 타입 캐릭터는 아니니까.’
다행스러운 건 도윤이 맡은 배역이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 드라마에 마치 ‘쿼터제’를 적용시키듯 등장시키는 유색인종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
더군다나.
아시아인 캐릭터에 흔히 적용되는 ‘엔지니어’라든가 ‘컴퓨터 고수’ 등의 특징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빌이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는지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나 군대를 다녀온 덕에 총기에 능숙하다는 설정이 붙어 있기까지.
대본을 읽어보니 비중도 상당하고.
‘사망 시기’가 중요한 장르 특성상 적어도 시즌1에서 퇴장하는 건 아닌 듯해 보인다.
물론 반응이 안 좋으면 중간에 사망하는 걸로 방향을 틀거나 시즌2에서 일이 생겨 갈라졌다며 소리소문없이 배역을 없애기도 하겠지만.
글쎄.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도윤은.
지금 이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생각이니까.
바로.
기회의 땅, 미국에서 말이다.
* * *
관련 인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도윤은 미국 진출 관련 기사가 뜬 걸 보고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안 그래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성공시키며 연일 화제를 뿌리는 도윤인지라, 미국 진출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이번에야말로 도윤을 데려오려 하거나, 혹은 도윤이 출연하는 드라마에 소속 배우를 출연시키려던 사람들은 또 한 번 쓴 물을 삼켰다.
“아니…… 다음 작품 뭐 하나 했는데 미국?”
“아, 진짜 망했네. 이제 진짜 못 잡겠네.”
“망하고 돌아와도 못 잡겠다. 실패하고 돌아와도 무조건 잡을 텐데.”
뭐, 이런 반응은 사실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도윤의 미국 진출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최도윤이니까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설령 최도윤이라도 어림없다.
이렇게 두 개의 의견으로 나뉘어서 말이다.
그리고.
양쪽 모두 일리가 있었다.
성공한다는 쪽에서는 지금껏 실패가 없었던 도윤의 필모그래피를 성공 예측의 증거로 들었고.
실패한다는 쪽에서는 이미 숱한 선례가 존재하는 미국 도전에 실패한 스타들을 증거로 들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이 입을 열기를.
그래서 도윤은 예정보다 조금 일찍, 기자회견을 열게 되었다.
수많은 플래시가 쏟아지고.
수백 명의 기자들이 셔터를 누르는 그 현장에서.
“최도윤 씨! 팬사인회 현장에서 미국 유명 프로듀서 빌 테일러와 대화하는 사진이 찍혔습니다! 이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도윤 씨! 미국 진출이 사실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시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종영 이후로 차기작 관련 이야기가 없던데, 미국 진출 때문인 게 맞습니까!”
연예부 기자들에게.
도윤은 우량고객이다.
비록 몇몇 사고뭉치 배우들처럼 스캔들을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를 만들어주는 건 아니지만.
일단 그 행보가 팬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이는 곧 높은 조회수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이 리셉션장에 모인 기자들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제발.
도윤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발언이 튀어나오길.
국내에 남든.
혹은 정말 미국에 진출하든.
사실 뭐, 무슨 대답이 나올지는 뻔하다.
아니면 아니라고 일축했을 일을 이렇게 기자회견까지 마련했으니, 당연히 미국 진출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래서 사실 기대하지 않는 기자들도 꽤 됐다.
하지만.
도윤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끝나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입을 열어.
“네. 미국 가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기대하던 기자들을 흥분시켰다.
“시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슨 작품을 하는 겁니까!”
“영화를 합니까, 드라마를 합니까!”
늘 그렇듯, 급한 나머지 소속과 이름도 안 밝힌 채 아우성치는 기자들.
물론 도윤은 여유롭게 그들을 바라보다 소란이 잦아들길 기다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계약 내용 때문에 아직 확실한 건 말씀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한 가지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한동안 한국에 돌아올 일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