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155
155. 도사마
지플릭스는 전 세계에 수십 개의 지사를 둔 공룡 기업이다.
미국에서 OTT 서비스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기업.
다양한 컨텐츠를 공격적으로 제공해 인기를 끌고, 이제는 오리지널 컨텐츠까지 생산하며 자체 경쟁력을 갖추는 기업.
그런 지플릭스가 최근 관심을 가지는 시장은 바로 한국이었다.
동아시아 3국 중에서도 가장 질 좋은 컨텐츠를 생산하면서도.
심지어 좋은 그 좋은 퀄리티의 컨텐츠가 빠른 속도로 쏟아진다.
거기다 꽤 많은 돈을 쏟아부어 만든 영화 가 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일부 지역과 유럽에서 나쁘지 않은 성공을 거둔 상황.
때문에.
에 거액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한편.
지플릭스 본사 주요 임원들이 무려 ‘시찰’을 나오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작은 현재 6부까지 진행된 상황으로 곧 7부 촬영에 들어가며 예정된 날짜까지는 문제없이 촬영이 완료될 것으로…….”
본사에서 나온 임원들은 무려 한국 지사장의 보고를 받는 한편-
“이전에 지시한 추가 컨텐츠 제작 건은?”
“그 건 역시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드라마 제작사 십여 곳에서 입찰해 왔고 조만간 미팅을 가져서 제작사 선정 예정입니다.”
“좋군. 제작비도 사실 그리 큰돈은 아닌데 말이야.”
“미국보다는 환경이 훨씬 낫지. 불평하는 프로듀서도 없고, 배우들도 고분고분하고. 무엇보다 비용 대비 결과물을 잘 뽑아주잖아?”
슬픈 이야기지만.
한국의 ‘제약’은 미국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
물론 미국식에 맞춰 적당히 근로 시간을 보장해 주고 우월한 제작비 지원으로 편의를 봐준다곤 하지만.
걸핏하면 보이콧하는 배우들이라든가 스태프들의 땡깡, 무엇보다 총괄 프로듀서와 기 싸움을 벌여야 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여기는 그야말로 골치 아픈 일 없이 돈이 따박따박 벌리는 천혜의 환경이나 다름없는 셈.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아시아에서 한국만큼 훌륭한 제작 능력을 갖춘 나라는 없습니다. 아마 한국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면, 몇 년 내로 지플릭스가 아시아 역시 장악하게 될 겁니다.”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것.
“좋아. 오늘 프레젠테이션 한 내용들 모두 해보라고. 지원은 무제한으로 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메일을 하나 보낸 게 있었는데…….”
“아, ‘그 건’ 말씀이시군요.”
이런 가운데.
지플릭스 한국 지사장은 ‘그 건’이 언급되자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그 건’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본사 임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 건’이라면 지플릭스 한국 지사장 정도의 위치로 충분히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생각되었기 때문.
“실은…… 일정을 아직 조율 중입니다.”
“조율 중이라고? 이야기한 지 2주는 지난 것 같은데.”
“예, 그쪽에서 현재 촬영에만 집중하고 싶다면서 아직은 힘들다고 합니다.”
“허.”
임원은 당황스러운 한숨을 내쉬는 한편.
현재 촬영에 집중하고 싶다는 사유에 곧바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음 오리지널 컨텐츠에 캐스팅될 수도 있다는 걸 넌지시 이야기해도?”
“이미 앞으로 약속한 스케줄이 꽉 차 있고, 새로운 작품이라면 그 스케줄이 다 끝날 즈음에 논의하겠다고 합니다.”
“흐음.”
임원은 턱을 매만졌고.
다른 임원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빌에게 듣던 대로야. 그 ‘도윤’이라는 배우, 만만찮아.”
“다른 녀석들이었으면 들어보는 시늉이라도 했을 텐데.”
“그만한 배짱을 부려도 상관없다는 거지. 이러니 더 탐이 나는데.”
사실.
오늘 임원들의 한국 방문이 단순히 ‘시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만한 위치의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고작 한 가지 이유만으로 올 리 없다.
당연히 여러 이유가 존재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도윤과의 미팅이었다.
물론.
뜻대로 되진 않을 듯했다.
도윤 측에서 드라마 촬영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거절했으니까.
이들 입장에서야 당황스럽겠지만.
도윤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알았다면 딱히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이러는구나 싶어서, 그러려니 싶어서 한숨만 쉬었을 테지.
그리고 실제로도.
한숨을 쉬고 있었다.
“도윤아, 진짜 안 만날 거야?”
“시간 없어요. 그쪽에서는 맞추라 이거 아닌가요?”
“그야 그렇긴 한데…… 거기는 곧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럼 미국 가서 보죠, 뭐. 앞으로 대본 분석하려면 시간 없어요.”
경후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렇듯.
도윤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연기에 한해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고.
쉴 때조차 다른 작품을 감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여유를 부리거나 다른 일정을 소화할 때는 딱 두 상황뿐이다.
현재 촬영 중인 작품에 반드시 필요한 일정이거나-
아니면 현재 휴식기거나.
“진짜로?”
“네. 바빠요.”
물론 이런 모습들이 지금의 도윤을 만든 거긴 하지만…….
답답할 때가 있긴 하다.
뭐.
사실 안 만난다고 도윤의 앞길에 먹구름이 끼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게 아쉬운 건 맞다.
그래서 경후는 동민과 수철에게 SOS를 보냈지만.
“그냥 포기해. 원래 그런 애야.”
“ 가차 없이 까고 신인 작가 작품 합류한 거 보면 몰라? 원래 그런 애였어.”
두 사람 모두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는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경후는 결국 두 손을 들어버렸다.
그리고.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도윤이 원래 이런 배우라는 걸 말이다.
여하튼 지플릭스 본사에서 온 임원들은 결국 도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지만.
“얘는 아주 복이 굴러들어오는구나.”
미국에 방문하면 꼭, 언제든지 연락 달라는 말을 직접 전화를 걸어 전해주었다.
비즈니스 매너상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혹시 아는가.
정말 도윤이 미국에 가면 바로 만나줄지.
하기야.
누가 봐도 아시아 시장에 공을 들이는 지플릭스가 아시아 최고의 배우를 그냥 둘 리 없을 테니.
뭐.
그런 말이야 듣든 말든.
지금 도윤은 대본만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또한 도윤의 머릿속엔.
얼마 전까지 생각하던 창업 건 역시 다른 자리로 밀린 상태였다.
촬영 중에는 작품 생각만.
도윤의 철칙이다.
‘그래서 얘가 연애를 안 하나. 아니, 못 하나?’
그런 의심이 경후의 마음에서 자라날 즈음.
지이이이잉.
휴대폰이 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사였다.
“네, 박경후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바로.
도윤이 대상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전화였다.
* * *
연말 시상식.
늘 그렇듯, 받는 배우만 받는다지만.
그래도 배우들에게는 영광된 자리다.
수상을 바탕으로 더 좋은 계약을 맺을 수도 있고.
더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도 있다.
때문에 올 한 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배우라면, 시상식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혹시 내가 받지 않을까.
이번에는 내가 그래도 꽤 했는데.
그래도 걔보다는 내가 낫지.
그놈의 미덕 때문에 겉으로는 겸손을 표해도 속으로는 다들 자신의 운을 자신 있게 점쳐본다.
다만.
이번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최도윤.
대상 후보에 저 최도윤이라는 이름 석 자가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쉽게 보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후보 한 명은 다른 시상식 가고, 다른 한 명은 해외여행?”
무려 두 명의 대상 후보가 사실상 대상 수상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둘 다 그럴듯하고, 나름대로 쿨해 보일 만한 이유지만.
누가 봐도 도윤을 의식한 포기.
덕분에 방송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놓였으나.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후보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둘 중 한 명에게 대상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무려.
이었으니까.
도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닌 이상, 안 줄 수 없는 셈이다.
결국.
“영예의 대상! 그 수상자는…….”
도윤은 지난해에 이어 또 한 번 시상대에 올라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축하하는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럴 줄 알았지.”
“무조건이지. 최도윤 아니면 누가 받겠어.”
“그래서 오늘 뒤풀이는 도윤이가 쏘는 건가?”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처럼, 도윤의 대상에 그리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도윤은 달랐다.
“또 한 번, 제가 이런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기쁩니다.”
상투적인 도입부로 시작된 소감은.
“저에게는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유독 특별한 한 해는 아닙니다. 저에게는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순간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고.
“그래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다 말씀드린다면 아마 PD님이 화를 내실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가족들, 그리고 항상 내 옆에 있는 성호, 민주. 고맙다.”
수상에는 늘 빠지지 않는 고마운 사람들을 언급하는 부분도 담백하게, 그러나 납득할 만하게 넘어가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도윤이니까 저럴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배우가 그랬다면.
성의가 없다느니 하면서 욕을 먹었을 게 분명하니까.
여하튼 그렇게 도윤의 생애 두 번째 대상 수상이 마무리되었고.
도윤은 뒤풀이 참여 다음 날.
의외의 장소, 아니, 나라로 향했다.
바로.
일본이었다.
“꺄아아아아악!”
“도윤 상!”
신년부터 도윤을 보기 위해 게이트 주변을 가득 메운 팬들.
한국에서의 환영 인파 못지않은 수많은 팬들과 기자들의 모습에 도윤은 환하게 웃음 지었고.
“도윤 상! 여기 좀 봐주세요!”
“미국에는 언제쯤 돌아가실 예정이십니까?”
“도사마!”
귓가를 파고드는 ‘도사마’라는 변명에 순간 멍해졌지만, 이제는 면역되었다는 듯 웃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다.
“도윤 상. 오랜만입니다.”
“타쿠 상, 잘 지냈죠?”
바로.
이전에 일본에 갔을 때 자신의 가이드 및 통역을 담당해 준 NJN 관계자, 타쿠였다.
“오, 승진했네요?”
“하하, 이번에 본부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도윤 상의 가이드는 언제나 저죠.”
타쿠는 싱긋 웃었다.
.
도윤이 특별출연, 아니 특별출연이라 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한 덕분에-
도윤은 일본에서도 특별상 후보로 지목되어 ‘니칸스포츠 드라마 그랑프리’라는 시상식에 초대된 것.
“오늘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특별상 후보들이 쟁쟁하지만, 모두가 도윤 상을 수상자로 점치는 분위기에요.”
타쿠는 마치 본인이 시상식에 초대된 것처럼 흥분해서 도윤에게 말했고.
도윤은 늘 그렇듯.
싱긋.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