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164
164. 몰입에서 벗어나라
첫 촬영 날이 되었다.
시즌 2.
현재 미국 전역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
그 시즌 2의 첫 촬영 날이.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의 주연 3인방 중 한 명이자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동양계 배우, ‘도윤’은…….
“세상에.”
리허설 때보다 훨씬 더 살이 빠진 모습으로 촬영장에 나타났다.
총감독 크리스의 주문이 있었다지만.
저건 너무 심한 수준이었다.
오늘 첫 촬영을 보러 온 프로듀서 빌도 할 말을 잃을 수준.
피골이 상접했다.
상투적인 이 표현이 그렇게 어울릴 수 없는 몰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빌이 크리스에게 따지듯 물었고.
크리스는 당황한 나머지 입을 쩍 벌린 채 답하지 못하다 간신히 대답했다.
“그, 그게…… 좀 더 ‘초췌하게’ 보여도 좋겠다고 주문했는데…….”
“젠장! 도윤을 몰라서 그래?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최대한’ 초췌하게 만들어 온다고!”
빌은 황당하다는 듯 소리치고.
다시 한번 도윤을 바라봤다.
바싹 마른 몸.
근육은 일부 남아 그 흔적이 보인다지만.
‘건장한’ 남자의 체격으로 보이기엔 다소 힘든 수준이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제기랄.”
빌은.
저 초췌한 몰골로 촬영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서 크리스에게 다시 물었고.
크리스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한 달 전의 일이었다.
* * *
도윤은 1차 리허설에서 패배 아닌 패배를 맛봤다.
“좋은데.”
“하나도 안 밀렸다고.”
“그랜트 표정이 심상찮군.”
주변에서는 도윤을 추켜세워 주고.
예전이었다면 도윤 스스로도 나쁘지 않은 연기였다며 만족했겠지만-
도윤은.
지금의 ‘강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랜트가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에.
흥미가 조금 담겼음에도 말이다.
‘좋은 연기야.’
그랜트는 확실히 도윤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촬영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주연급’ 동양계 배우라서만은 아니다.
발음이 유창하진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었고.
최근 주목받는-그러나 그랜트는 이름을 전부 외우지 못한- 각국의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기야.
자신이 아는 빌이라는 프로듀서가 이유도 없이 동양계 배우를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쓰고 심지어 주연을 맡긴 데엔-
다 이유가 있을 테니.
심지어.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눈에 띄기까지.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연기에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게 너무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랜트의 시선은 거기까지였다.
그랜트도.
도윤과 마찬가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면…….
상대가 어떤 연기를 펼치든 상관없다는 쪽이었으니까.
이런 가운데.
“다시 가보겠습니다.”
“괜찮겠나?”
“어차피 혼자 하는 씬이니까요. 감독님만 괜찮다면,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좋아.”
도윤은 누가 봐도 완벽한 방금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놀랍게도 다시 리허설을 요구했고.
그 배우에 그 감독이라고, 크리스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참, 그전에. 다시 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이번 씬은 회상입니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강석’이 자신이 돌아갔어야 할 곳을 그리워하며 혼란을 겪죠. 그런데…… 지금은 제 자신이 혼란스러운 느낌입니다.”
“이를테면?”
“‘강석’이 저인지, 제가 ‘강석’인지 모르겠습니다.”
크리스는 헛숨을 들이켰다.
지금 도윤이 말하는 건.
메소드 연기의 일종이다.
크리스가 아는 도윤은…….
배역에 몰입하는 건 카메라 앞에서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다시 도윤이라는 정체성으로 완벽히 복귀한다.
배역과 스스로를 분리할 줄 아는 배우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의 도윤은 그런 혼란을 겪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말이다.
‘어쩐지.’
오늘따라.
연기가 더 좋아 보이더라니.
그게 지금까지 은연중에 배척하던 연기법을 사용하면서였단 말인가?
“갑자기 그러는 이유가 있을 텐데.”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크리스는 차마 그대로 가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배우에겐 연기도 중요하지만.
연기가 끝난 후의 태도도 중요하다.
크리스는 지금껏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고생하던 배우들을 숱하게 봐 왔다.
그리고 개중에는-
배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촬영장에서 진짜 ‘살인자’처럼 굴거나 ‘상이군인’처럼 구는 배우도 있었다.
도윤이 그러리라 생각되지 않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좋아. 다시 해보자고. 그럼, 이번에는 몰입도를 조금 줄여볼 생각인가?”
“그보다는 일체감을 없앨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배역 자체가 저랑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먼 타지에서 생존하는 이방인.
‘강석’과 도윤.
이보다 비슷한 느낌이 더 있을까.
크리스는 그제야 도윤이 고민하는 가장 원론적인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가보자고.”
그리고.
도윤은 무려 1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나마 만족할 만한 수준의 연기를 뽑아냈다.
하지만 이건 리허설이었고.
그래서 도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성호가 걱정할 만큼.
“형 괜찮을까요?”
또한 민주도 이번만큼은 성호를 안심시킬 수 없었다.
민주도 도윤의 저런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
매번 완벽하게 준비한 뒤 리허설이건 촬영이건 한두 번 안에 깔끔히 끝내던 배우가.
리허설에서 같은 씬에만 무려 1시간을 소모하다니.
그래서.
“지켜보자.”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최도윤이라는 배우는.
어쨌든 길을 찾아내니까.
한계에 부딪치더라도.
항상 일어나는 배우였다.
민주가 아는 도윤은 분명히 그랬다.
여하튼 표정이 좋지 않은 도윤에게.
크리스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몰입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든가?”
“이번 배역은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럼…… 체격을 조금 줄여보는 건 어떻겠나?”
체격을 줄인다?
도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배역과 조금은 다르게 할 필요는 없지. 모든 가이드를 대본에 의존하지 말라고. 도윤, 난 네 의견을 한번 존중해 보고 싶어.”
도윤은 그 말에 잠시 충격을 받은 듯 크리스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크리스는 왜인지.
자신이 실수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다.
그리고 도윤은…….
약간의 충격을 받은 얼굴 그대로 돌아섰고.
‘그거였지.’
무언가 깨달은 듯.
홀린 표정으로 골몰하며 차에 올랐다.
“형, 무슨 일 있…….”
“됐어. 그냥 둬.”
그리고 민주의 배려로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고.
곧.
B22
이동하는 차 안에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결론을 말이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며.
도윤은 2차 리허설을 거치고.
마침내 첫 본촬영이 있는 날.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같이 온 민주와 성호, 두칠이 아니었다면 아마 몰라봤을 만큼 변해서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트레이너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트레이너가 혹시 묶어놓고 운동시켰나? 아니면 그쪽 취향?”
크리스의 농담에.
도윤은 씩 웃기만 했다.
크리스는 결국 헛웃음만 흘리며 도윤의 앙상한 팔다리를 바라봤다.
근육이 일부 살아 있긴 해도…….
이건 정말.
작정하지 않고서는 못 만들어낼 모습이다.
“초반부 ‘강석’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 점점 말라가죠.”
“아무리 그런 설정이라도 이건.”
“나름대로 해석해 봤습니다. 감독님이 말한 것처럼요.”
크리스는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배우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군. 평소 너와 다른 건 확실해 보이는데.”
“그렇다면 다행이죠.”
도윤은 싱긋 웃었고.
그 표정에는 1차 리허설에서 고민하던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름대로.
극복했다고 봐야 할까?
다만.
“이러다 쓰러지면 우린 줄소송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배우가 강력하게 원하는데 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프로듀서인 빌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크리스가 배우를 자신의 각본과 연출에 맞춰 움직여 줄 ‘연기자’로 본다면.
프로듀서인 빌은 배우를 자신이 기획한 작품을 더욱 잘 팔아줄 ‘상품’으로 인식한다.
그 관점 차이에서 오가는 이야기인 것.
하지만 도윤이 나서자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
이쯤 되자 빌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럼 문제가 생길 경우 모두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할 만큼 빌이 쓰레기는 아니었으니.
아무튼.
그렇게 촬영이 준비되는 가운데.
“도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좀비는 따로 있는 것 같은데.”
합류한 도윤을 보고 아연실색한 다른 배우들도 한마디씩 던졌다.
특히.
도윤의 이런 프로페셔널한, 아니 병적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준비에.
다른 주연 배우, 그러니까 칼 해리슨은 꽺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도윤처럼 저렇게 살을 뺄 수는 없었다.
칼이 맡은 배역은 ‘강석’과 달리 독불장군처럼 초반에 그룹을 이끌다 중반부터 급격하게 무너지는 역할이었고.
그래서 왜소한 모습보다는 근육을 통해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
실제로 지금 칼의 몸은 전문 트레이너의 체계적인 지도 덕에 시즌1보다 훨씬 더 불어난 상태.
하지만 어쩌겠는가.
몸을 불린 것보다.
저렇게 피골이 상접한 게 훨씬 임팩트가 큰 것을.
“나라면 못 해. 정말로. 차라리 먹고 운동을 하고 말지.”
안드레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가운데.
도윤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도윤, 곧 촬영이야.”
“지금 나가지.”
본촬영.
리허설에서 수십 번을 진행하고.
대본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천 번씩 진행했지만.
도윤은 긴장하고 있었다.
마치 신인 배우처럼.
‘벗어날 수 있을까?’
배역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걸 피하기 위해 도윤은 어쩌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건강을 깎아가면서.
실제로 도윤은 음식 섭취를 극단적으로 줄였고, 여기에 약간의 운동을 병행하는 정도로 몸무게를 줄이고 또 줄였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를 볼 때가 왔다.
“잘 되겠죠.”
“오빠가 택한 거니까.”
“맞죠. 형님이 택한 건데. 지금까지 틀린 적 없었잖아요?”
팀 최도윤의 세 사람.
도윤이 저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사람들의 신뢰 어린 시선이 도윤을 향하는 가운데.
도윤은 카메라 앞에 섰고.
“좋습니다. 바로 가죠. 레디…… 액션!”
크리스의 외침에 따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구나.”
‘죽은 자’로 분장해 그르렁대는 소리를 내는 단역 배우 앞에서.
읊조리듯 중얼거린다.
하지만 눈에는 분노가 담겨 있다.
시즌2, 1부의 첫 번째 씬.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장치로 삽입시킨 이 씬에서.
‘강석’은 시즌1과 달리 바싹 마른 모습으로 분노에 차 ‘죽은 자’를 노려본다.
왜 ‘죽은 자’를 눈앞에 두고도 ‘죽이지’ 않는지.
왜 저렇게 온몸이 말랐는지.
왜 시즌1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분노 가득한 얼굴인지 알 수 없지만.
저벅, 저벅.
콰드득!
손에 든 마체테로.
‘죽은 자’를 난도질하며.
‘강석’은.
자신이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린다.
“후우…….”
거칠게 숨을 내뱉는 ‘강석’ 앞에.
조각나 널브러진 죽은 자의 ‘시체’.
그리고 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루시아나’의 충격받은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며-
“오케이! 좋습니다!”
크리스의 환호 비슷한 외침이 들려온다.
하지만.
환호하긴 아직 이르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도윤이.
‘강석’에서 벗어났는지…….
그걸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