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182
182. 배고프다
보통 드라마 촬영에는 관련 활동들이 동반된다.
배우가 단순히 촬영만 하는 직업이었다면, 배우들이 그렇게 힘들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도윤도 그렇다.
아무리 도윤이 섭외하기 어렵고 만나기 어렵다고 한들, 작품 관련 행사에서까지 보기 힘든 건 아니었다.
“자, 포즈 그대로 가겠습니다! 아, 느낌 좋네요! 그 미소 그대로…… 네! 그대로 쭉! 나이스하네요!”
드라마 포스터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방문하는가 하면-
“허허, 이거 참. 최도윤 배우님이 이렇게 저희랑 함께하니 꿈만 같네요.”
“과찬이십니다.”
의도적으로 기자들 몇을 부른 자리에서 방송국 사장님과 식사를 하는 등.
여러모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했다.
물론 그 모든 자리에는 기자들이 따라다녔다.
혹시라도, 톱배우에게서 기삿거리 삼을 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아, 뭐 흘리는 게 없냐.”
“최도윤이 원래 그렇잖아. 데스패치가 그렇게 시도하다 결국 포기한 거 몰라?”
“걔들이야 뭐……. 아, 이거 국장한테 소스 따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왔는데 돌겠네. 뭐 캐낼 거 없냐? 질문할 거라도?”
“잘못하면 팬들한테 죽어. 저번에 박우영인가, 기사 한번 잘못 냈다가 메일 테러 당하고 쓰는 기사마다 찾아와서 난리도 아니었다는데.”
물론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사생활에서 콕 잡아 이야기할 만한 거리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입 밖으로 꺼내거나 기자들이 눈치채게 만들 만한 사람도 아니니까 말이다.
여하튼.
도윤을 따라다니던 기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방향을 약간 틀어보기로 했다.
“거기 매니저는 어때?”
“매니저? 아, 그 덩치 큰 친구?”
“덩치 큰 친구 둘 있잖아. 거기서 두 번째로 큰 친구.”
“난 그 스타일리스트도 좀 궁금하던데. 힙하게 입고 다니는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되게 실력 좋다던데. 최도윤 신인 때 ‘오메스’ 협찬 따 왔다고 하더라고.”
바로.
팀 최도윤이었다.
듣기로는 다들 한 가락씩 한다던데.
캐보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뭐 캐내시려는 것 같은데, 그냥 가십시오. 오늘 몸이 좀 찌뿌둥하니까.”
대놓고 접근했던 기자들은 두칠의 덩치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고.
“이상익 기자님? 저번에 저희 배우 기사 쓰셨던데. 그게 아마 작년 4월 25일자 기사였죠?”
“네, 네에?”
“여기 있네요. .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제목이죠?”
“그건 그, 그때…….”
“가주세요. 제가 일해야 해서.”
민주에게는 오히려 역공만 신나게 맞고 왔다.
그래서 이제 남은 건.
한 사람.
가장 어리바리해 보이고.
가장 말이 많고.
가장 순둥순둥해 보이는.
성호였다.
“네? 저희 형이요?”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멍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눈을 뜨는 모습이 과연 톱스타의 데뷔 때부터 함께한 매니저가 맞나 싶긴 한데.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나만, 하나만!’
뭐든 좋다.
연애든, 아니 하다못해 요새 누구와 톡을 하는지만이라도!
하나의 작은 사실을 부풀려 수십 줄의 기사로 만드는 건 이들의 전문.
그래서 지금 다른 사람들이 안 보는 사이 성호에게 은근슬쩍 접근한 기자들은 숨죽인 채, 성호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혹시…… 아, 아니다. 형이 말하지 말랬는데.”
“에헤이, 이러면 김빠지죠. 절대 어디 가서 말 안 할게요. 저희가 기자긴 해도, 이게 또 어디서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급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고심하던 성호가.
“그럼, 절대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돼요.”
마침내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고개를 살짝 낮추고 속삭이며.
끄덕끄덕.
옆에 있던 기자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뭔데요?”
“그게…….”
성호는 뜸을 들인 끝에.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저희 형 요새 노래 연습해요.”
기자들의 행복회로가 펑! 하고 터져나갔다.
노래?
설마 축가?
아니면 세레나데?
다급하고, 어떻게든 소스를 얻어야겠다고 고민하던 나머지 생긴.
안타까운 현상.
그러니까…….
“이번 드라마 OST 부르기로 했거든요.”
“…….”
소식 빠른 기자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그런.
아주 김빠지는 사실.
‘미친…….’
‘그걸 누가 몰라…….’
특히 여기 있는 기자들은 하나같이 도윤의 소식에 목마른 기자들.
당연히 OST 참여 소식 정도야 알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건.
그걸 무슨 특급 기밀이라도 되는 양 분위기를 잔뜩 고조시켜 놓고 말한 이 매니저라는 놈이다.
물론.
“이거 진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기자들은 화를 낼 수 없었다.
“하, 하하. 그래요? 되게 반가운 소식이네. 최도윤 배우님 노래 되게 잘하지 않아요?”
“맞아요. 예전에 에서 부른 OST 되게 잘 들었는데.”
“이야, 탑 시크릿이네, 탑 시크릿!”
그래도 혹시 모른다고.
기자들은 맞장구까지 치며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들은 양 호들갑을 떨었다.
“매니저란 새끼가, 어우.”
“저거 그냥 정보가 느린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아. 아, 결국 공쳤네. 돌겠다, 돌겠어. 미국 다녀왔으면 말이야, 응? 약도 밀수하고, 총기도 밀수하고…….”
“그건 너무 갔다.”
덕분에 소득 없이 돌아가던 기자들은 도윤의 뒷담화를 열심히 해댔고.
기자들이 돌아간 뒤.
“쟤들이 뭐라고 하든?”
“비밀 캐내려고 하던데요. 그래서 형 OST 참여한다고 해줬죠.”
“잘했어.”
민주는 유혹을 이겨낸 성호의 머리를 대견하다는 듯 쓰다듬어주었다.
사실 유혹이랄 것도 없었다.
성호도 몇 번 겪어봤던 만큼.
이골이 날 대로 난 상태였으니까.
다만.
기자들에게 가장 만만히 보였을 뿐.
“성호야, 혹시 수원역 가본 적 있어?”
“수원역이요? 거긴 왜요?”
“아니, 거기 가면 1분에 한 번씩 누가 말 걸 것 같아서.”
“…….”
도를 아십니까.
이제는 길을 물어보다가 인상이 좋네요로 시작하는 그런 뻔한 레파토리.
여하튼.
세 사람이 기자들 앞에서 전원 침묵을 지킨 이유는 당연히 의리를 지키는 것도 있었지만.
“근데 진짜 차라리 말할 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말이. 형님은 진짜 어떻게 저렇게 사냐. 나는 자신 없음.”
“진짜 가끔 보면 애늙은이 같아서 신기할 때가 있긴 하죠.”
정말.
진짜로.
말할 게 없어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비밀이라고 해 봐야…….
도윤이 실제로는 음치라는 거?
말해 봐야 믿지도 않겠지만.
여하튼.
그런 이유에서.
기자들이 저기 연기에 집중하는 최도윤이라는 배우의 비밀을 캐낼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계속 그럴 일을 만들지 않을 테니까.
* * *
촬영은 계속되고.
연기는 무르익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 뭐, 가서 뭘 사라고? 차를 사? 미친 거 아니야? 나 통장에 이백 있어, 이백!”
도윤은 지금.
‘미래의 나’가 하는 황당한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서, 소개팅을 부탁하라고? 아니, 무슨 페라리나 포르셰도 아니고 이백으로 무슨 차를 사서 소개팅을 해? 차라리 없이 나가는 게 낫…… 알았어, 알았다고!”
마치 앞에 누가 있다는 듯 외치는 모습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모두가 숨을 죽인다.
특히, 한올을 비롯한 연차가 짧은 배우들은 도윤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
하지만 금세.
“그냥 내 말 들어. 들어서 후회 볼 거 없어. 어차피 그 이백, 내가 알기로 차에 안 쓰면 토토나 하다가 의미 없이 날릴걸? 내가 맞춰볼까? 너 오늘 맨유 승에 걸려고 했지?”
도윤이 펼치는 1인 2역에 침묵을 삼킨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화무쌍할 수 있을까.
과연.
연기를 하는 게 맞기나 할까?
그냥 원래 저렇게 두 개의 인격을 지닌 듯한 모습에.
“와아…….”
한올을 비롯한 신인급 배우들은 감탄을 삼키고.
연차가 어느 정도 된 배우들은 부러움에 마른침만 삼킨다.
그리고 두 개의 연기를 마친 도윤은.
감정에서 빠져나올 틈도 없이 곧바로 다가가 오상학과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끝쪽 강세를 다시 살려볼까요? 음, 그러니까…… 여기, 네 이 부분이요.”
“음,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더 좋아질 것 같다면 전 얼마든지 찬성입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그 모습에.
다른 배우들은 불평할 틈도 없다.
심지어 가장 대사량이 많은데.
NG 한 번 내는 법이 없는 사람.
처음에는 혀를 내두르던 사람도.
이제는 그러려니 할 정도.
오히려 연기할 일이 없는 매니저들 사이에서 도윤은 더욱 화제였다.
“아니, 저런 완벽주의자 밑에서 어떻게 일하는 거예요?”
“하니까 되던데요.”
“어우, 우리 배우님은 하도 X랄 맞아서…….”
성호는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도윤의 참교육이 무서워 적당히 입을 다물었다.
이런 한편.
도윤은 이제 두 달 뒤에 일본에 갈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모든 걸 쏟아 넣으며 연기하고 있었다.
덕분에 현장을 방문한 광고주들은 그야말로 입이 귀에 걸렸다.
저런 배우가 펼치는 저런 연기가 있는데.
드라마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고.
광고를 따내 삽입되는 자신들의 상품 역시.
‘떡상’이 예약된 셈.
사실 가장 좋은 건 도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거겠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그게 됐다면 지금 이럴 일도 없었겠지.
여하튼.
“그래서…… 이제는 뭐? 그냥 시작부터 좋다고 하라고? 야, 미쳤어? 사람 죽일 일 있냐? 소개팅 나가서 보자마자…… 알았어! 해볼게, 해본다고!”
도윤은 찌질한 ‘과거의 나’와 완벽한 ‘미래의 나’를 쉼 없이 오가며 마침내 오늘도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했고.
“배고프다. 고기나 먹으러 가자.”
“돈치돈 예약할까요?”
“아니. 오늘은 소고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인데도.
오늘따라 소고기를 외치며 엑셀을 밟고 있던 성호가 발에 힘을 주게 만들었다.
“형,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누가 보면 내가 언제 소고기 안 사 먹인 줄 알겠다.”
“에이, 설마요!”
도윤은 운전하는 와중에 온갖 아양을 떨어대는 성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오늘도 열심히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민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새 뭐 열심히 해? 삼국지?”
“네. 게임 해요. 삼국지 게임. 갓겜이에요.”
“뭔데?”
“삼국천통 모바일이요.”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삼국지였다.
그리고 두칠은.
“전 요새 인스타합니다.”
자랑스럽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도윤은 보았다.
두칠이 키우는 고양이의 모습을.
그리고.
고개를 들어 두칠의 얼굴에 난 상처를 힐끗거렸다.
저 길게 난 상처가.
저 고양이가 낸 상처라 이거지.
“전 요새 차 정비 배우고 있어요!”
“나중에 매니저 그만두고 카센터 차리게?”
“어, 그건 아닌데…… 그냥 재미있어서요?”
“그래, 잘됐다.”
그리고 성호는.
차를 좋아하는 녀석답게.
나름 짬을 내서 뭔가 하는 모양.
여하튼.
잘된 일이다.
셋 다 나름 취미가 있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건.
그렇기에.
도윤은 오늘처럼 더더욱 연기에 집중할 수 있겠지.
“좀 밟아 봐. 배고프다.”
“넵.”
네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기분 좋은 적막 속.
그들이 탄 차는.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