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22
22. 폭발적인 반응
최도윤.
주연도 아닌 조연.
물론 주연 못지않은 비중의 조연이지만, 세상에 누가 저토록 시작부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릴 수 있을까.
그리고 첫 등장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저 모습에 누가 과연 이견을 표할 수 있을까.
‘허, 무슨…….’
제운이 놀란 나머지 도윤을 바라보는 사이 주변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죽이는데.”
“눈빛 봐라. 캬.”
“오호호. 우리 도윤이 시작부터 장난 없는데?”
스태프들, 그리고 같은 배우들의 감탄.
도윤은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은.
[학점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했나요?] [신민재 씨, 우리 회사는 15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기업으로서 중견기업 못지않은 규모와…….] [이 회사에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돈보다 열정을 바라보는 직원을 원합니다.]‘신민재’의 면접 장면.
압박면접이랍시고 건네는 면접관의 질 낮은 질문에 당황한 ‘신민재’는 더듬거리며 답한다.
[저, 그.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연기였지만.
‘그냥저냥. 볼 만한 정도네 뭐.’
‘조용히 좀 이야기해. 듣겠다.’
“좋네요. 서 배우도 비주얼 좋구만.”
“주조연들 비주얼이 좋아서 이거 현실성 있는 회사 맞나 싶네.”
방금 최도윤 때와는 달리 적당한 칭찬과 연기에 대한 것 대신 비주얼에 대한 칭찬만 들려오자 태주는 힘없이 팔을 늘어뜨렸다.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치욕스러움.
“태주야.”
용석이 이를 감지하고 태주의 어깨를 잡아줬지만.
“놔.”
태주는 어깨에서 용석의 손을 떼어내고 TV를 노려봤다.
하지만 갈수록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신민재 씨. 나한테 중요한 건 당신이 이곳에서 일을 잘하는 겁니다. 열심히 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1부 중반, ‘강영준 대리’에게 면박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그런 것처럼 어깨가 움츠러들었고.
[민재야. 너무 기죽어 있지 말고 오늘은 푹 자. 엄마가 너 좋아하는 찌개 끓여줄게.]원로 배우, 이옥주의 연기 앞에서 편집과 구도의 힘으로 간신히 커버한 자신의 부족한 연기가 눈에 띄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태주야.”
“형, 미안한데 나 좀 나가 있을게.”
결국 자리를 뜨는 태주.
그 모습을 발견한 선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야, 야. 해영아. 태주 선배 나간다.”
“갑자기 왜요?”
“모르지. 자기 연기가 마음에 안 들었나.”
소곤거리는 둘뿐만 아니라 도윤도 그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다시 TV로 시선을 고정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못 견디겠지.’
자기 자신보다 다른 녀석이 주목받는 꼴을.
그런데 어쩌냐.
이제는 완전히 뒤집혔는데.
웃기게도, 태주의 연기력은 도윤이 기억하던 회귀 전보다 더 안 좋았다.
그때는 그나마 위기감을 좀 일찍 느껴서 연습이라도 했을 텐데, 이번에는 도윤이 의도적으로 어르고 달래며 매번 띄워주기만 하니 위기감은 전혀 못 느낀 걸까.
하지만 태주의 평이하다 못해 특색 없는 연기 속에서도 1화는 전혀 문제없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흘러갔고.
[신민재 씨. 이런 식이라면 다른 회사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대미, 클로징을 장식하는 도윤의 대사가 끝나고 2부 예고편이 흘러나오는 순간 모두가 직감했다.
‘할 만하겠는데?’
이만하면 기대해 볼 만하다고.
“캬! 죽인다!”
“진짜 우리 드라마 맞아요?”
“PD님, 저 눈물 나려고 해요.”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하며 감정을 토해내는 사람들.
“흐어어엉…….”
자신의 자식 같은 대본이 드디어 영상화된 감격 덕인지 아름은 아예 울음까지 터뜨렸다.
“아이고, 이 좋은 날에 우리 전 작가 우네. 보면 눈물 참 많아. 뚝!”
“뚜, 뚝!”
아름은 딸꾹질이 나기 직전에 억지로 울음을 멈췄다. 하지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울음은 어쩔 수 없었다.
피식대던 제운이 미리 채워둔 소주잔을 들었다.
“자자. 다들 이제 술잔 좀 듭시다. 앞으로 이틀 동안 촬영 없으니까 마음껏 드시고, 마음껏 취하세요. 그리고 전 작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요. 오늘은 우리 전 작가의 날이니까.”
아름은 그 말에 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조심스레 일어나 갑자기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흐어어어엉.”
그러다 결국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드렸다.
오늘은 그럴 수 있는 날이니까.
“흐엉. 그, 그럼…… 의 성공을 위, 위하여어!”
“위하여!”
이어지는 아름의 울먹이는 선창과 나머지 사람들의 후창을 시작으로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최 배우, 한잔 받아!”
“우리 영혼의 파트너! 진 과장이 한 잔 따라주지!”
“오, 역시 술도 잘 마신다니까!”
“10퍼센트 이야기할 때 솔직히 미친 줄 알았거든? 근데 이젠 진짜 모르겠다. 에라, 기분이다! 10퍼센트 넘기면 커피 1만 잔에 2천 잔 추가!”
“에이! 신태규 선배님! 너무 짜요!”
“에이이이이! 좋다! 그럼 3천 잔!”
“어! 2천 잔 받고 3천 잔 더라는 뜻이죠?”
“야 인마! 내 통장 와이프가 관리해!”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중심이 된 도윤.
“주연 배우는 또 어디 갔어?”
“서태주 그 친구는 맨날…… 됐다. 마셔. 마셔!”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태주가 보이지 않아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
심지어 태규는 그날 제작발표회 이후 카메라 뒤에서는 태주를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했다.
“아까 속이 안 좋아 보이던데, 제가 나가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에이, 뭐하러 가. 그냥 앉아 있어. 와 봤자 분위기만 망치는 놈. 에휴, 그런 놈이 무슨 주연을 한다고.”
태규의 만류에도 도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도요. 오늘 주연이 이 자리에 있어야죠.”
“어휴, 최 배우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래, 다녀와.”
도윤이 슬며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였다.
스태프 한 명이 상당히 심각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곧장 제운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언가 소곤거렸다.
“하, 이런 미친 새끼.”
그리고 기어이 터져 나오는 제운의 욕설.
남들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옆에 있던 도윤은 분명히 들었다.
“언제 갔는데?”
“방금요. 매니저랑 스타일리스트 데리고 바로 빠져나갔습니다.”
아마, 태주의 이야기이리라.
뻔히 답이 나오는 이유.
하지만 사정이야 어떻든 태주는 지금 큰 실수를 범했다.
“아주 개판으로 구는구만. 알았어. 최 배우. 서태주 씨 안 찾으러 가도 됩니다. 집에 가셨다네요.”
갈 데까지 갔다는 증거로 이제는 ‘서 배우’에서 ‘서태주 씨’로 바뀐 호칭까지.
그리고 도윤은 제운의 말에 최대한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에휴, 그놈 어쩌려고 그러나. 최 배우. 한잔 받아.”
“아, 예. 선배님.”
“그런 놈이 주연이라고…….”
도윤은 탄식하는 태규를 바라보며 소주를 쭉, 들이켰다.
속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 * *
태주의 일과 관계 없이.
는 방영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다.
1. 알고 있는가
2. 최도윤
3. 신태규
4. 서태주
5. 류해영
6. 백제운
방영하는 동안 슬금슬금 올라오더니 방영이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관련 키워드.
-와ㅅㅂ 숨막혀 죽을 뻔했네 PTSD 온다
-최도윤 연기 미친 거 아니냐? 내 사수 보는 줄 암;; 도랏;;;
-근데 우리 사수가 저 얼굴이면 매일 야근해도 여한이 없을 듯
-진 과장은 ㄹㅇ 진짜 꼰대를 데려왔네 ㅋㅋㅋㅋㅋㅋ 신태규 연기 뭐냐?
-해영이 오늘 강아지같음 졸귀임 ㅎㅎ
-도유니랑 선우 짤 쪄왔다 빨리 가져가 !!!!
기대 이상이라는 댓글 반응.
그리고 그 댓글의 과반수를 차지한 최도윤의 연기에 대한 찬사.
단순히 차갑기만 한 게 아니다.
내면 연기와 몇 가지 대사의 암시를 통해 ‘강영준 대리’가 왜 저렇게 차갑고 까칠한 캐릭터인지 보여주는 장치까지 삽입해둔 것.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강영준 대리’ 캐릭터의 과거에 대한 추측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예전에 무슨 회사에서 무슨 사고 있었던 거 아님?
-진 과장이 뭐 말하려다가 입 다무는 장면 보면 뭐 있어 보임
-강 대리 완전 진짜 내스타일 ㅠㅠ 나쁜남자 너무조으다
여기에.
[ 첫방 시청률 화제 속에 4.1% 기록!] [, 순간 최고시청률 4.2% 기록!] [, 배우들 열연 속 첫방 마무리…… 기대감↑] [‘신선한 오피스 드라마’, 시작부터 흥했다!]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첫방 시청률 4%를 넘기며 더블팩토리 사무실과 각 배우들의 소속사 사무실은 환호에 휩싸였다.
부족한 제작비.
신인 작가.
지상파 방송사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던 PD.
망해도 고개를 끄덕일 조건인데도 터진 시청률에 를 비웃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쏙 들어갔고.
[최도윤, 첫방부터 엄청난 연기…… 네티즌, “내 사수였으면 퇴사했다” 극찬]1화에서 서태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카메라에 잡힌 최도윤은 그야말로 큰 관심을 받았다.
반면.
“서태주는 온통 팬들이 단 댓글뿐이네.”
“이러다 쪽팔려서 팬들 촬영장 초대는 하겠나.”
서태주는 연기에 대한 찬사보다는 V.I.C 팬들의 반응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오히려 주연인데도 평이한 연기만 보여줬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서태주는 좀 애매하다
-주연하기엔 좀 부족한 느낌?
-조연들이 더 돋보인듯
-감정선도 엄청 평범함
그야말로 극명한 대비.
도윤이 너무 잘한 걸까.
아니면, 태주에게는 주연의 자격이 없는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가운데, 도윤은 첫방이 나가자마자 휴대폰 알림이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진귀한 상황을 목격했다.
[오빠! 대박! 진짜 연기 대박! 어제부터 엄마 1화만 다섯 번째 보고 있어!] [서이솔 사인 언제 받아주냐?] [아들! 너무 축하해!]가족들의 축하 메시지를 시작으로 대학 동기, 선후배, 교수님의 문자와 생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람들의 축하가 줄을 이었고.
[축하해. 나도 거기 갔어야 했는데 ㅠㅠㅠㅠ]유나의 아쉬움과 기쁨이 담긴 톡과 함께.
[원하는 조건 있으면 얼른 말해!!]를 함께 찍었던, 도윤에게 자기 회사로 오는 게 어떻겠냐는 놀라운 제안을 던진 대배우 정수의 톡도 날아왔다.
물론 저 조건 운운은 농담의 성격이 강했다.
질척거리는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여하튼, 정말 대박은 대박이었다.
덕분에 이제 2부까지 방영을 마친 시점에서 촬영장 분위기는 더욱 좋아졌다.
그리고 이어서 3부, 4부에서 의 시청률은 놀랍게도 1, 2부 평균 4.8%에서 6.3%로 가파르게 상승 중.
황금시간대도 아니고, 케이블 방송에, 제작비가 부족해 여타 드라마처럼 엄청난 홍보가 이뤄진 게 아님에도 이뤄낸 쾌거.
덕분에 현재 9부 촬영을 진행 중인 의 촬영장 분위기는 더없이 훌륭했다.
물론.
태주는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다.
차에 처박혀 있거나.
어디 안 보이는 곳에 있다가 스탠바이 시간이 되면 슬금슬금 기어 나오거나.
심지어.
주연임에도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의 연기를 탓하기보다, 그게 연출의 문제라 생각한 건지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그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또다시…….
사고를 쳤다.
“컷-! 미치겠네. 서 배우. 나 좀 봅시다!”
촬영장에 울려 퍼지는 제운의 높은 목소리.
제운은 한숨을 쉬더니 다가온 태주에게 모니터링 화면을 가리켰다.
“보면서 뭐 느껴지는 거 없어요?”
“느껴지는 거라뇨?”
순간 치미는 화.
하지만 제운은 최대한,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조곤조곤 설명했다.
“서 배우. 우리 지금 9부 찍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감정이 안 잡힙니까? 캐릭터의 감정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가 안 되나요?”
9부.
이미 반환점을 지나 이쯤 되면 배우들의 연기에 물이 오를 시점인데 태주는 전혀 발전이 없었다.
“지금 여기서 ‘민재’는 화를 낼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해야 한다구요.”
스토리는 이제 슬슬 절정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절절매던 ‘신민재’는 점차 시스템에 적응해가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다.
그러던 차에 방금 찍은 씬이 바로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수 ‘강영준 대리’가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한 상황.
“자,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만약 서 배우가 ‘민재’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화를 낼까요?”
제운은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경으로 물었다.
그러나 태주는 제운의 기대를 무참하게 부숴버렸다.
“저라면 그럴 것 같은데요. 왜 참아야 하죠? 화가 나는 상황인데.”
제운은 이마를 짚었다.
“여기 이 신입사원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됩니까? 자기 때문에 상사가 징계를 받게 생겼는데, 회사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화를 낸다구요? 신입 사원이?”
결국 한숨을 내쉬는 제운.
“하. 도대체 9부씩이나 찍을 동안 뭘 한 건지…… 이보세요, 서 배우. 당신 주연입니다. 기획 의도는 고사하고 자기 배역 분석은 확실하게 했어야지! 서 배우! 주연이 무슨 뜻인지 몰라?”
그리고 참다 못해 이번 촬영 들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고야 말았다.
사실 오래 참은 거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태주가 보인 행태를 생각하면 진작에 고성과 쌍욕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니까.
오히려 제운이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인내한 셈.
그런데.
“그럼 잘 좀 찍어주시든가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고.
순간 제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쯤 되면 죄송하다는 말은 아니어도 최소한 입을 다물고 수긍하는 모습은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저게 대답이라고?
저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고.
“대단한데. 여포를 보는 기분이야.”
“그거 극찬 아니에요?”
이 상황을 지켜보던 민주가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비유하자 성호가 슬며시 물었다.
자신이 알기로 여포는 굉장히 센 장수인데……
그럼 반어법인가?
“머리가 비었잖아. 멍청하다고.”
“아.”
성호는 뜻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의 기막힌 비유에 도윤도 감탄하던 그때였다.
“야, 이 새끼야!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기어이 제운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