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24
24. 받아, 당장
섬뜩함.
순간 태주가 느낀 감정은 분명 섬뜩함이었다.
“너, 너 지금 뭐라고…….”
“누구는 단역 하나 따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그 고생을 하는데, 누구는 소속사 잘 만나서 주연 꿰찬 놈이 애새끼마냥 꼬장이나 부리고.”
도윤은 그러더니 당황한 태주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서태주 선배님. 지금 선배님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웃음은…….
지금까지 태주가 보았던 ‘그 웃음’이 아니었다.
순간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지금 눈앞에서 웃는 저 최도윤이, 과연 자신이 알던, 지금까지 꼬박꼬박 선배님이란 호칭까지 붙여가며 깍듯하게 굴던 녀석이 맞을까.
아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그 광경에 태주는 저도 모르게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너 이 개새끼가 미쳤…….”
“입 닫아봐. 계속 그러면 누가 받아줄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그거 알아?”
도윤은 한 발, 천천히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넌 지금 촬영장 안 올라가면 끝이야. 영원히.”
“……!”
“왜냐하면 이젠 너 없어도 되거든.”
이 와중에도, 태주는 자신이 저지른 일보다 도윤이 자신에게 보인 이 모습에 더 충격을 받았다.
전혀 이럴 것 같지 않았던 사람이, 지금 자신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
“이제 절반 왔으니까 염치는 챙기자고. 응? 너 없어도 PD님이면 아무 문제 없이 찍을 것 같으시긴 한데…… 그래도 그 잘난 팬들 기다리는 거 생각해야지. 안 그래?”
“이 개새끼가!”
와락!
결국 태주는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하고 도윤의 멱살을 붙잡았다.
치미는 분노와 배신감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윤은 태주의 팔을 떼어내는 대신 피식거리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이렇게 나왔어야지.”
동요조차 않는 도윤의 모습에 태주가 더욱 흥분한 그때였다.
“이 X발 새끼가…… 너 뭐냐? 뭐 하는 새끼냐고!”
“태주야!”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
용석이었다.
뒤이어 안절부절못하던 스태프도 함께 뛰어왔다.
그 순간 태주는 엉겁결에 도윤의 멱살을 놓았고, 도윤은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최, 최도윤 배우님. 괜찮으세요?”
다급히 도윤을 부축하는 스태프.
도윤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서태주!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형! 저 개새끼가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저거 다 연기였다고! 가면이었다고!”
바락바락, 이성을 잃고 외치는 태주의 괴성이 주차장을 가득 울렸다.
스태프는 그 모습에 기겁했고.
용석은 다급하게 태주 앞을 막아섰다.
“태주야, 진정해!”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 지금 저 개새끼가 나한테 뭐라고 한 줄이나 알아?”
용석이 순간 도윤을 바라본 그때.
“죄송합니다. 전 그냥 선배님께서 빨리 촬영장에 돌아오셨으면 하는 마음에 드린 말인데…… 그게 선배님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것 같습니다.”
도윤은 정말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만큼은 용석도 도윤을 의심할 수 없었다.
“서태주. 당장 사과해.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러는 거 아니다. 정신 차려! 너 주연이라고!”
“저, 저 새끼가…….”
“서태주, 당장 사과하라고!”
그런 가운데-
고개를 숙인 도윤은 웃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 * *
사건의 파장은 컸다.
“죄송합니다. 소속 배우 관리를 못 한 저의 책임입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태주의 소속사, 숨 엔터태인먼트의 실장이 직접 더블스튜디오로 찾와와 제운을 비롯한 스태프 일동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연 배우가 폭력을, 그것도 지금 에서 가장 인기 높은 배역을 맡은 배우에게 휘둘렀다는 건 엄청나게 큰 일이었으니까.
물론 멱살만 잡았다지만, 중요한 건 멱살‘만’ 잡은 게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댔다는 게 문제.
그리고 하필 그 ‘누구’가 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최도윤이다.
만약 이 일이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여론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상황.
“사장님께서 직접 사과하라 지시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심지어 이 건을 보고받은 숨 엔터의 사장이 직접 사과를 지시했다.
숨 엔터에서 이 일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증거.
하지만 제운은 그 사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없던 걸로 할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 서태주 배우가 한 번이라도 촬영장에서 분란을 일으킨다면, 그때는 하차도 고려하겠습니다.”
강수.
가 현재 순항 중이기에 꺼낼 수 있는 카드.
제작비 부족에 캐스팅 난항으로 고생하던 초기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애초에 이 바닥은 시청률로 말하는 곳.
제운은 이참에 주도권을 확실히 되찾아오려 하는 것이다.
물론, 제운도 숨 엔터를 아주 몰아붙이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겁만 주는 거지.’
최소한 드라마 촬영을 무사히 마치기는 해야 하니까.
아무리 제운의 실력이 좋다고 해도, 지금 태주의 분량이 점차 줄어든다 해도 주연 배우가 하차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9부 촬영이 진행 중인 상황이고, 배우 하차는 아름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
결국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자리는 숨 엔터가 사과하고.
추가적인 제작비 지원 및 차후 숨 엔터 소속 배우 캐스팅 시 우선권을 부여하는 쪽, 그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쪽으로 합의되었다.
거기에 태주의 사과는 덤.
“제가 경솔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그 사과를 그 누구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고.
그 누구도 태주의 저 사과가 진심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 뿌리 깊게 박힌 이미지.
그걸 뽑아내고 새로운 이미지를 심으려면…….
‘불가능하지.’
이미지란, 그래서 중요하다.
무혐의 판결을 받은 도윤이 1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만큼.
그리고 한편.
“살다 살다 숨 엔터에서 사과하는 것도 들어보네.”
도윤의 소속사, 이엔 엔터는 난데없이 찾아온 숨 엔터 실장이라는 사람이 거듭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의 사과를 건네기까지 하자 혼란에 휩싸였다.
“그쪽에서도 애가 탔겠지. 도윤이가 입 한번 벙긋하면 서태주 이미지가 끝장이 날 텐데.”
그리고 수철과 달리 동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미 수철에게 해당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은 시점부터 예상한 듯했다.
“그나저나 아슬아슬하다 싶더니 결국 서태주 그 친구가 사고를 치네요.”
“뭐, 이 바닥에 그런 녀석은 항상 있었지.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날뛰는 녀석들.”
거기까지 말한 동민은 문득 씩 웃었다.
“근데 또 모르지.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다른 이유요?”
꼬박꼬박 보고를 받지 않아도 수철은 이미 태주에 대한 소문을 알음알음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터질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른 이유?
“도윤이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도윤이요?”
“그래. 촬영장에서 도윤이 매번 웃고 깍듯하다면서? 그런 녀석한테 서태주가 왜 주먹을 휘둘러?”
“자격지심 때문이 아닐까요? 드라마에서 도윤이 인기가 지금 제일 높잖아요.”
“이 팀장. 잘 알면서 왜 그래. 벌써 감 떨어진 거야? 카메라 앞에 안 선 지 5년밖에 안 됐으면서.”
수철은 동민이 넌지시 던진 말에 과거를 떠올렸다.
떠오른다.
항상 웃는 낯 뒤에 무언가 감추고 다녔던 배우들의 모습이.
“도윤이가…… 설마요.”
“모르지.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근데 그런 낌새가 보이면 말해. 조심하라고.”
조심하라.
수철은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이번 건은 대충 봐도 서태주 그놈이 문제인 것 같지만…… 이 바닥엔 생각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많아. 그런 가면 따위는 한 번에 꿰뚫어 보는 양반들 말이야.”
그러다 문득 웃음을 터뜨리는 동민.
“그래도 재미있어. 확실히, 촬영 중간에 뭔가 단단히 깨달은 모양이야. 어쩌면 이 정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은 걸지도 모르지.”
동민은 도윤을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무구한 얼굴.
‘그래, 이 바닥에서는 약은 놈이 되어야지. 우직한 놈보다는 그게 나아.’
때문에 당돌하고 꽤 재미있게 느껴진다.
최도윤이라는 배우가.
3년을 지켜보면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에 흥미도 동하고 말이다.
‘여하튼 결과는 좋군.’
덕분에 이번 일로 이엔 엔터는 생각지도 못한 두 가지 이득을 얻었다.
하나는 거대 기획사인 숨 엔터에 빚을 지웠다는 것.
또 하나는-
자신들 회사의 최도윤이라는 배우가, 이번 기회로 확실한 이득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
“이 팀장.”
“네, 대표님.”
“최도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밀어주자고. 지금까지 보류해 뒀던 각종 CF랑 차기작 제안들, 모두 정리해서 가져와.”
수철은 그 말에 동민과 도윤이 를 두고 했던 내기를 떠올렸다.
“이렇게 된 거, 앞으로 우리가 판 깔아주자고. 회사가 해야 할 일이 그거잖아?”
그리고 그 내기는 아마…….
도윤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다.
* * *
내부적인 이슈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는 훈훈한 메이킹 필름 영상과 기사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
드라마는 8화 방영을 마치고 반환점을 돈 가운데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진짜…… 10퍼센트 가겠는데?”
“그러게요. 최 배우님 무슨 예언자래요?”
8화 기준 시청률 8.2%.
케이블로 이뤄낸 엄청난 쾌거.
심지어 시청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반응도 아주 좋았다.
-민재 안 혼나게 뒤에서 커버쳐주는거 보고 눈물 ㅠㅠㅠㅠㅠㅠ
-선진이가 강대리 좋아하는 거 무적권인 듯
-또 또 진준커플빠들 나댄다 ㅋㅋㅋ 당연히 민준커플 아니냐?
방영 날이면 이슈 데이터 수집 사이트에서 매번 화제성 1위를 기록했고, 검색어 장악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될 정도.
광고 완판으로 제작비 부족 문제도 해결됐고, 추가적인 PPL 문의가 쏟아지는 상황.
특히, 오피스 드라마라는 특성상 각종 사무용품 브랜드와 커피 브랜드의 PPL 문의가 줄을 이었다.
[, 시청률 상승하며 광고 완판 쾌거!] [‘고공행진’ ,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 [ 최도윤 공약 10% 넘기나?]여기에 화를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아름의 캐릭터 조형이 진가를 발휘하며 예상지 못한 일도 일어났다.
“근데 PD님은 어느 파세요?”
“파? 무슨 파. 대파? 난 쪽파가 좋은데.”
싸늘한 개그.
그러나 아름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재차 물었다.
“아이, 그거 말구요. ‘파’ 있잖아요. PD님 모르세요?”
“나 옛날 사람이야. 미안.”
멋쩍게 웃는 제운에게 아름이 보여준 건 바로 클립 댓글이었다.
-당연히 진준 커플 아님?
-꽁냥꽁냥한 거 안 보임? 무적권 민준 커플이다.
물론 제운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진준? 민진?”
“류해영 배우가 맡은 이선‘진’, 그리고 최도윤 배우가 맡은 강영‘준’이랑 조합한 게 ‘진준’ 커플이구요, 주선우 배우가 맡은 강석‘민’이랑 이선‘진’이랑 조합한 게 ‘민진’ 커플이요.”
쉽게 말해 커플링.
아름이 대본에서 러브라인을 부각시킨 건 아니지만, 극 중에서 자연스레 얽히게 되는 각각의 배역에 몰입한 시청자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용어라고 할 수 있었다.
“거, 참. 특이하기도 하네.”
“요즘엔 원래 이래요. 각자 좋아하는 커플 지지하면서 투닥투닥거리기도 하구요. 작가는 이런 거 보면 기분이 제일 좋다구요. 제가 만든 캐릭터를 시청자들이 인상적으로 보는 거니까요.”
“좋겠네, 우리 전 작가.”
“그럼요.”
이런 가운데, ‘당연하게도’ 태주의 언급은 찾을 수 없었다.
태주는 지금 포지션이 굉장히 애매하다.
주연이지만, 주연 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또 최소한의 연기는 해주는 덕에 극의 흐름을 망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주연치고는 중심이라 할 수는 없는 상황.
여하튼 그러면서도 드라마의 흥행은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 다소 독특하다고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이제는 더 이상 난리를 칠 만한 명분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주연치고는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데, 다른 배역의 인기는 점점 상승해 주연의 큰 활약 없이도 드라마는 잘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가운데 도윤은.
“한잔 받으세요, 선배님.”
“선배님은 무슨. 형이라고 불러. 우리 벌써 같이 12부나 찍었다? 이제 4부밖에 안 남았어.”
“그래도 제가 어떻게…….”
“나 서운하게 자꾸 이럴 거야?”
“알겠습니다, 형님.”
그날 태주와의 사건이 있은 후로는 더더욱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평소의 이미지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날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정이고 뭐고 알 필요도 없다며 태주를 비난했고, 도윤에게는 동정의 시선을 보냈으니까.
괜히 배우 설득하러 갔다가 멱살만 잡히고 돌아온, 인성 바른 배우 최도윤으로 인식된 셈.
심지어.
[오죽하면 그 착한 최 배우가 그랬겠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
그래서 도윤과 태주의 처지는 극명했다.
태주는 이전처럼 꼬장을 부리거나 대놓고 건방지게 굴진 않았지만 이제 촬영 시간 외에는 그 어떤 존재감도 보일 수 없었고.
“도윤아, 여기.”
“아,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옥주 선배님.”
“편하게 누나라 부르렴.”
“어유, 누님. 저는 몰라도 도윤이한테 누나가 왠 말입니까. 이모면 몰…… 어우! 아파요!”
“아프라고 때렸다, 왜!”
반면 도윤은 촬영장의 모든 배우며 스태프들에게 이쁨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하지.’
도윤은 고작 이 정도로 멈추자고 대표 동민과 내기까지 하며 에 합류한 게 아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가 좋고, 자신만이 아는 미래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도 그 이유지만…….
10년이라는 치욕의 세월을 견뎌낸 걸 생각하면, 이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
저대로 두면 녀석은 언젠가 다시 슬금슬금, 기어 나오려 할 것이고 그 공백은 당연히 도윤보다 짧을 것이다.
녀석의 뒤에는 거대 기획사가 존재하고, 굳이 배우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많은 팬들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의 리더니까.
그래서-
‘기대해.’
도윤은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주의 커리어에 치명타를 입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한 방을.
‘메일은 잘 받으셨으려나.’
도윤은 회귀 전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사건 자체는 흔하디흔한 연예계 도박.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추적했던 기자.
다른 기자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파헤치길 주저했던 그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결국 세상에 밝히고, 살해 협박까지 받았던 보기 드문 기자.
아마 2017년쯤이었나.
도윤은 그때 봐둔 기자의 이름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다행히 현시점에서도 같은 언론사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접촉했다.
물론, 신원은 감추고 가짜로 만든 이메일로 떡밥을 흘린 것이다.
그 ‘한 방’을 준비하기 위해서.
흠칫.
이런 가운데.
억지로 술잔을 기울이던 태주는 불현듯 도윤과 눈이 마주친 순간, 맹수 앞의 사냥감처럼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건 본능이었다.
그날, 주차장에서 마주한 그 섬뜩한 느낌이 재현되자 찾아든 본능.
‘이런 시발…….’
속으로 아무리 욕을 해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
그때 도윤이 슬며시 일어나 태주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선배님, 한잔 받으시죠.”
그 말은 태주의 귀에 이렇게 들려왔다.
술 받아.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