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26
26. 큐티, 오빠 얼굴, 심장…… 접수.
의 기나긴 레이스가 드디어 끝을 앞둔 가운데.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씬 촬영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오늘 제작진과 출연진은 새벽에 일어나 칼바람을 뚫고 광화문 광장에 집결했다.
바로 시청률 공약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제운, 그리고 아름이 내걸었던 식사대접 공약은 이미 방영 중간 진행했고.
태주가 내걸었던, 자기 팬들을 초대하겠다는 공약은 사정상 이뤄지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 난리를 쳐 놓고 촬영장에 팬들을 부른다는 계획이 이뤄질 리 없었으니.
여하튼 이제 남은 건 하나.
“진짜 10% 넘겨서 공약 이행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난 형님이 그 말 했을 때 당연히 넘을 줄알았는데?”
“와, 진짜 선우 오빠는…… 태세전환이 어떻게 그렇게 빨라요? 오빠도 도윤 오빠가 말했을 때 안 믿었잖아요?”
“내가? 내가 언제?”
바로, 도윤이 내세웠던 커피 배포 공약이다.
“조심히 옮기세요! 선, 거기 선 치우고! 오케이.”
“엄청 무겁습니다! 그리고 템퍼랑 포터필터 수량 확실히 체크해 주세요!”
“세팅 완료하면 스팀노즐부터 잘 닦아주세요! 오늘 ‘도라떼’도 엄청 나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커피 무상 제공을 맡은 브랜드이자 도윤과 전속모델 계약을 맺은 ‘커피앤탑’ 측은 아예 전자동 커피머신 수십 대를 공수하는 패기를 선보였다.
현장에서 커피를 직접 내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거기다 기존 1만 잔에 더해 5천 잔의 추가 제공은 물론.
이 1만 5천 잔을 모두 광장에서만 나눠줄 수 없어 미리 신청을 받은 기업으로 ‘배달’을 갈 계획도 모두 세워둔 셈.
이참에 신생 브랜드로서 그 입지를 넓히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고.
‘돈 굳었지, 뭐.’
도윤은 모델료에 더해 원래대로였으면 나갔을 커피값까지 굳혔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다만.
“오늘 몇 잔이나 내려야 집에 갈 수 있을까?”
“살려줘.”
오늘 커피 내리기에 동원된 아르바이트생들은 그야말로 죽을상.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 추운 날 야외에서 커피를 내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인지라 최소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천막과 빵빵한 난방이 제공되었다.
자신의 공약 때문에 고생할 사람들을 위해 도윤이 전속 모델로서 커피앤탑 측에 부탁한 것이다.
“그래도 돈 많이 주잖아. 얘기 들어보니까 최도윤 배우가 우리 일당 올려달라고 했다던데.”
“솔직히 어려울 건 없는데…… 근데 진짜 언제 다 내리냐. 무슨 1만 잔을 배포한다던데.”
“사실 1만 5천 잔이래.”
“난 죽음을 택하겠다.”
알바생들의 한숨이 이어지는 한편.
다른 배우나 스태프들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청률 10%를 넘었기에 이런 칼바람 속에서도 당연히 웃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촬영 종료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여기 있는 배우들 중 이번 의 인기를 견인한 사람이 도윤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써 부정하는 한 사람.
태주만 빼고 말이다.
주연 배우임에도 극을 이끌어가긴커녕 다른 조연들의 케미에 묻히며 ‘간신히’ 촬영만 마치는 정도였던 태주.
아마 PD에게 ‘잘 좀 찍어주시든가요’라고 말한 사건, 도윤의 멱살을 잡았던 사건이 없었다고 한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촬영장에서는 컷사인이 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후다닥 숨기 바쁜 배우, 서태주.
심지어 PD에게도 이제는 완전히 무시당하는 주연 배우이기도 했다.
그래도 오늘은 표정이 조금 밝았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알려진 사실들이 없으니 오늘 자신에게 몰릴 팬들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길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꺄아아악! 진짜 최도윤!”
“우와! 진짜 개존잘!”
“실물 개쩐다. 와.”
“ 엄청 잘 보고 있어요!”
행사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간 곳은 태주가 아니라 바로 옆에 서 있던 도윤이었다.
“오빠! 이번 콘서트 꼭 갈게요!”
“이번에는 티켓팅 제발 성공해야 하는데! 저 저번에 또 이선좌 당했어요!”
심지어 태주를 알아보고 오는 팬들 중에서는 의 팬들도 있었지만, 이번 커피 공약 이벤트를 미리 알고 온 V.I.C의 팬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도윤 쪽엔…….
“세상에, 줄 봐라.”
“최 배우 쪽만 엄청 튀어나와 있네요.”
“그럴 만하지. 나 같아도 저쪽에 줄 서겠다.”
제운과 아름이 혀를 내두를 만큼 엄청나게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물론.
“우린 이제 죽었다.”
“일당 많이 주는 이유가 있었네.”
이 줄을 본 알바생들의 절규도 이어졌다.
그러나 도윤은 ‘강 대리’와 달리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팬들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맞이했다.
“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 저 사진 한 장만…….”
그야말로 엄청난 인파.
미리미리 가이드라인을 치지 않았다면 교통이 분명히 마비되고도 남았을 정도.
하긴, 배달을 감안해 이만한 양의 커피를 배포하기에는 이곳밖에 답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오빠! 저는 도라떼로 주세요!”
“저 도라떼 아직도 못 먹어봤어요! 갈 때마다 품절이에요!”
“다른 데서도 파는데 오빠 포토카드 종류별로 모으려고 벌써 다섯 잔째 마시고 있어요!”
여기에 이 열띤 현장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은 오늘 기사에 내보내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면서-
케이블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도윤은.
“오빠, 오빠. 근데 왜 맨날 같은 티만 입어요?”
“네? 티요? 무슨 티요?”
뜬금없는 질문이 들려오자 드라마 촬영에서 맨날 같은 흰색 셔츠만 입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큐티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오자 그만 멍해져 버렸다.
“리액션 완전 혜자. 대박. 봤어?”
“대에박.”
그리고 질문을 던진 팬은 도윤의 그 표정에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웃고, 이 모습을 기자들이 열심히 찍어대고 있었다.
“다, 다음 분.”
하지만 그 뒤로도 도윤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오빠. 저 사실 굴 되게 좋아해요.”
“굴이요?”
“네. 오빠 얼‘굴’.”
“…….”
“오빠, 왜 어제 저 때리고 갔어요?”
“네? 제, 제가요?”
“네. 드라마 보는데 제 심장 때리고 가셨잖아요. 심쿵.”
“…….”
아직 이런 장난에 면역이 없다고 해야 할까.
도윤은 회귀 후 가장 당황스러운 심정이었고.
“큐티, 오빠 얼굴, 심장…… 접수.”
이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성호는 매우 진지한 눈빛이었다.
마치, 겨울철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응징당해도 도윤을 놀려먹길 멈추질 않는 성호였으니까.
이런 가운데 심지어.
“형. 형한테는 벽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벼, 벽이요?”
“네. 완‘벽’.”
커피를 받으러 온 남자팬 한 명이 화룡점정을 찍어버렸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아직 면역력이 없는 덕분에 도윤은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 * *
[, 역대급 공약 지켰다! 커피 1만 5천 잔 제공 완료!] [새벽부터 오후까지…… 시청률만큼 역대급이었던 공약!] [커피 배달받은 직장인들, SNS 인증샷 올리며 ‘훈훈’……] [(현장포토)‘강 대리님’ 최도윤, 달라진 인기 실감] [(현장포토)“강 대리님, 김 묻었어요. 잘생김.”] [현장포토]“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이벤트 종료 현장!] [(현장포토)알바생 여러분, 1만 5천 잔 내리느라 수고하셨습니다!]‘시청률 10% 공약 이벤트’도 모두 마무리되고.
마침내 팀도 드디어 마지막 촬영이 한창이었다.
“준비됐어요, 최 배우?”
“물론입니다.”
마지막 씬은 퇴사한 ‘강 대리’의 일상을 그리는 장면.
본래 조연이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신민재’ 못지않은 핵심인물로 떠오르며 추가된 장면.
이런 내용을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아름 역시 흔쾌히 받아들일 만큼, ‘강 대리’는 에서도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 슛 들어갑니다. 레디- 액션!”
드디어 시작된 마지막 촬영.
대사도 존재하지 않지만, ‘강영준’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함을 암시하는 장면이기에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과 손의 움직임이 특히 중요한 대목.
저벅, 저벅.
‘강영준’은 퇴사 후 방황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선다.
스륵.
그리고 옷장 구석.
깊숙한 곳에서 넥타이를 꺼내들고.
“후우.”
잠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이내 목으로 넥타이를 가져가고.
넥타이를 매는 ‘강영준’을 풀샷으로 잡아주다 서서히 클로즈업하여 타이트 앵글로 넥타이를 확대한 뒤.
꽉.
마침내, 넥타이를 당겨 조이는 ‘강영준’의 손을 끝으로 장면이 마무리된다.
그와 동시에.
“컷-! 오케이! 완벽합니다!”
제운이 드디어 크랭크 아웃(crank out)을 선언하며 공식적인 촬영 절차가 모두 종료되었다.
‘진짜 마지막까지…… 완벽하네, 완벽해.’
물론 편집, CG 작업 등 부가적인 일들이 남았지만 이제 더 이상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설 일은 없었다.
쉽게 말해.
“고생들 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촬영이 종료된 것.
‘진짜 끝이구나.’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솟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도 성공을 예언하지 않았던 드라마, .
하지만 이젠 보란 듯이 역대 최고 시청률을 찍은 .
짝짝짝짝.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고생했다, 해영아.”
“오빠두요. 도윤 오빠! 고생했어요!”
“이옥주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태규 너도.”
배우들 사이에서는 흘러나오는 아쉬움을 달래며 서로를 안아주었다.
이런 가운데.
“자자, 오늘은 빼는 거 없습니다. 다들 스케줄 비워 두라고 제가 한 달 전부터 이야기했죠? 오늘은 죽을 때까지 마시는 겁니다!”
“우와아아아아!”
제운이 쫑파티 이야기를 꺼내자 사방에서 환호가 일었다.
* * *
광고도 완판됐겠다.
덕분에 xvN에서 특별 지시로 최고급 한우집을 대관한 촬영팀과 출연진은 그야말로 제대로 흥이 올랐다.
“캬, 이 맛이지. 그래. 쫑파티에서 마시는 소주가 최고란 말이야. 캬, 고기도 살살 녹는다.”
“태규야, 오랜만에 우리 대작이나 할까?”
“좋죠, 누님. 아, 도윤아! 와서 심판 좀 봐 줘!”
느닷없이 술 대결을 벌이는 태규와 옥주.
“으! 써어. 저 소주 대신 순아리 먹을래요!”
“어허, 과일소주라니. 그거 먹다가 훅 간다.”
“왜에요. 매니저 있는데에!”
소주 다섯 잔에 이미 혀가 꼬부라진 해영.
“형님, 한잔 받으세요. 촬영 고생 많으셨어요.”
옥주의 승리 판정을 내리고 돌아온 도윤에게 얼른 술을 따라주는 선우까지.
도윤은 소주를 들이켠 뒤 이미 곯아떨어진 해영을 바라보며 피식거렸다.
“술이 되게 약한가 보다.”
“맨날 저래요. 그런데 술자리는 기를 쓰고 참석하고. 매니저가 고생이죠.”
도윤은 성호 못지않게 험상궂은 인상을 지닌 해영의 매니저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성호가 그렇듯, 그 매니저도 담당 배우 앞에서는 절절매는 녀석이었는데.
‘아니지. 저 짜식은 요새 기어오르지.’
도윤은 민주와 함께 다른 매니저들과 신나게 술병을 기울이는 성호를 한번 째려본 뒤 선우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나저나, 넌 차기작 정했어? 제안 많이 들어왔다면서.”
“고민 중이에요. 제안은 몇 개 들어왔는데 그게…….”
도윤은 선우가 말하는 드라마 목록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란 이름이 들려오자 곧장 이야기했다.
“그거 해. .”
“예? 사실 그건 안 하려고 했는데.”
“무조건 그거 해.”
.
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주목을 못 받지만, 중반부부터 약진해서 상당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
“배역은?”
“조연급이요. 여주를 짝사랑하는 남주 역할인데…….”
역시.
도윤이 피식거렸다.
“그거 해. 나도 대본 읽어봤거든. 마음에 들어.”
“진짜요?”
“그래. 한번 해봐. 잘할 것 같은데.”
도윤이 기억하기로 회귀 전, 이 방영될 때 방금 선우가 말한 배역은 별다른 주목을 못 받았다.
하지만 선우는 다를 것이다.
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자신만의 연기를 보여줬으니까.
“형님이 추천한 거니까 꼭 해볼게요.”
그리고 선우는 지금 도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을 만큼 신뢰하고 있었다.
“근데 형님은요?”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 뭐 할지 고민 중이야.”
사실상 회귀 전 도윤의 커리어는 까지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못한 건 아니다.
지금 도윤의 머릿속엔 미래에 성공할 드라마들 목록이 잘 정리되어 있었으니까.
“아니면 그냥 형님 하는 드라마에 가볼까요?”
“응?”
“형님이랑 촬영하면 재미있거든요. 해영이도 그렇대요. 형님이 다음 작품은 뭐 하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도윤은 그 말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나 기다리느라 기회 놓치는 건 안 좋아 보이는데. 내가 다음 작품 언제 할 줄 알고.”
“그런가요?”
“지금은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볼 때니까.”
“헤헤, 그럴게요.”
선우는 항상 수긍이 빨라 좋다.
그렇게 서서히 술자리가 무르익어가고.
“최 배우. 고마워요.”
취기가 오른 제운이 슬며시 다가와 도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PD님.”
“최 배우 아니었다면 드라마 끝까지 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진심이에요. 솔직히, 주연이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서태주.
오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주연 배우.
실력은 둘째 치고 안하무인으로 굴며 기어이 모두의 눈 밖에 난 주연 배우.
“근데 그걸 최 배우가 해줬어요.”
“아닙니다. 다른 분들이 잘해주시고 PD님이 고생하신 덕이죠.”
“아뇨. 이건 진심이에요. 최 배우, 정말 잘해줬어요.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쉬울 만큼.”
뭉클해진다.
를 찍을 때 주섭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인정받은 기분이 이런 거구나.
“아. 우리 전 작가도 엄청 고마워해요. 신인이라 숫기가 부족해서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그리고 우리 전 작가가 최 배우를 좀 좋아해요?”
도윤은 제운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이미 취해 잠든 아름을 보며 씩 웃었다.
“감사받은 걸로 치겠습니다.”
제운이 도윤의 어깨를 툭 쳤다.
“우리, 또 볼 수 있는 거죠?”
제운은 진심이었다.
온갖 악재 속에서도 을 성공으로 이끌며 재기에 성공했다는 세간의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도윤의 덕이 컸다.
비록 조연이지만, 주연 못지않은 영향력으로 또래 배우들을 이끌어주고 가장 돋보이는 연기로 극의 흐름을 잡은 배우.
‘언제 또 이런 배우를 만날 수 있을까.’
제운은 도윤이 씬을 마칠 때마다 오케이사인을 내렸던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 다가올 미래를 예상해 보았다.
도윤을 잡기 위해 수많은 제작사들이 이엔 엔터로 몰려오는, 그런 미래를.
“물론이죠.”
도윤의 그 대답에 제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 * *
술자리는 끝 무렵에 다다랐다.
그리고 도윤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서태주를 떠올리며 피식거렸다.
“그놈은 결국 막판까지 그러는구만.”
“스케줄 있어서 못 온다고 하던데.”
“스케줄은 지랄. 쪽팔려서 못 오겠지.”
“뭐 하러 신경을 써. 어차피 나가리된 놈인데. 배우 안 해도 아이돌로 먹고산다는 놈이라잖아.”
“난 그 새끼 때문에 이제 아이돌 출신이라면 보기만 해도 짜증 날 것 같은데.”
그래, 녀석도 이 자리에 오기 불편하겠지.
연속으로 자살골을 넣고 그 뒤로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촬영만 간신히 마쳤는데,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걸 자초한 건 자신이다.
심지어 촬영 막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눈 빨개져서 온 거 봤어?”
“그 새끼 진짜 ‘그거’ 아니야? 분장팀 말하는 거 들었는데, 손등에 상처가 그렇게 많대.”
“그거 하면 가려워져서 엄청 긁는다면서?”
“야. 야. 듣겠다. 조심해. 잘못하면 괜히 오해 산다.”
대강 들어도 알 수 있는 이야기.
서태주는 결국 스스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녀석의 뒤에는 여전히 회사가 존재하고, 여러 이해관계 덕에 묻혀버린 이 사건을 모르는 대중들이 존재한다.
아마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기어 나올지도 모르지.
그래서 도윤은 이전부터 준비해 온 한 방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이었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자신이 파티에 초대되어 함정에 빠졌던 그날의 날짜를 떠올렸다.
술에 취해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할 때 저항도 못 하고 빠졌던 그때.
9월 14일.
바로, 오늘.
부르르르.
도윤은 안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냈다.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도윤이 자신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가상 이메일 계정.
조만간 폐기될 그 계정에, 저번에 알아봐 둔 기자의 메일이 와 있었다.
[확실한 소스 제보, 감사합니다.]단문임에도 흥분이 느껴지는 내용.
자.
이제 지켜볼 일만 남았다.
도윤은 편안한 표정으로 마침 선우가 따라준 술을 쭉,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