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아왔다
────────────────────────────────────
돌아가다
한 극장.
무대를 바라보는 두 여성의 표정이 어두웠다.
“······우리 아들이 눈에 안 띄네요.”
“그러게요. 누가 저 사람을 넣은 거예요?”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태는 무대를 응시했다.
가운데 선 남자가 홀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비록 휠체어 위에 앉아 있었지만 극장을 울리는 시원한 발성과 역동적인 몸짓은 무대를 넘어 관중석까지 장악했다.
뒤에서 투덜거리는 이들조차 무대 위의 청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감사합니다!”
성공적으로 극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지자 관객들의 박수가 극장을 울렸다.
훌륭했던 연극과 달리 대다수의 관객은 언짢은 기색을 비췄다.
‘결정 났군······.’
관중석을 확인하고 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후배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태하도, 수고했어.”
“네, 형님도 멋지셨어요.”
“우응.”
태화는 동료들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며 그들의 성취를 칭찬했다.
이 안에서 신체적 장애를 겪는 이는 태화뿐, 나머지는 모두 지적 장애인이다.
원래라면 함께 연기하기 힘든 상황.
그러나 극의 감독을 맡은 이와 사고당하기 전부터 알던 사이었던지라 이렇게나마 연극에 참여할 수 있었다.
“태화야.”
“아, 감독님.”
문가에 선 성태를 보며 태화는 환하게 웃었다.
다리가 망가진 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외면했다. 굳이 도움도 안 되는 장애인과 엮이기 싫었던 것이리라.
부모와 다리를 잃고 힘들어하는 그를 지지해 준 몇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성태였다.
“잠깐 대화 좀 하자.”
“아, 네. 그럼 저 먼저 가겠습니다!”
동료들을 향해 크게 인사를 한 뒤 태화는 성태의 걸음에 맞춰 바퀴를 굴렸다.
“잡아 줄까?”
“아뇨, 형. 괜찮아요.”
한번 권유한 것을 끝으로 상태는 입을 닫았다.
이것저것 물어도 짧게 끊는 그를 보며 태화도 결국 침묵을 지킨 채 휠체어를 밀었다.
사무실에 들어선 성태는 의자에 앉아 태화를 응시했다.
후배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슬픔과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태화야.”
한참을 침묵하던 성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 형.”
“너 그만둬라.”
갑작스런 소리에 태화는 눈을 깜박였다.
무엇을 그만두라는 건지 짐작은 안가도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미지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해 그는 올라가지 않는 입술을 가까스로 올렸다.
“형 저, 술 담배도······.”
“연극 그만두라고. 포기해.”
“······.”
태화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성태를 바라봤다.
사실 눈앞이 하얗게 변해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성태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혀, 형? 그게 무슨 의미예요? 제가, 제가 뭘 잘못했나요? 실수했어요?”
“그런 거 아니야.”
다급하게 묻는 태화를 보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이리도 비참하고 무기력하진 않았으리라.
오히려 그 반대이기에 성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안타까웠다.
“너한테 재능이 있으니까.”
“그게 무슨······.”
“재능이 있는데도 좁혀지지 않는 격차는 너한테 절망만 안겨 줄 거다.”
그는 태화의 재능을 아꼈다.
때문에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을 때부터 눈여겨봐 왔고, 다리가 망가진 후에도 포기하지 말라며 다독였다.
‘그래선 안 됐는데.’
그러나 그것은 성태의 욕심이었다.
장애인 연극의 현실도 모른 채 후배가 보여 줄 연기에만 홀려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에 내던지는 행동이었다.
“너도 알잖아. 장애인 연극? 장애인들도 배우가 될 수 있어요? 말만 번지르르한, 까보면 치료 겸 보여 주기용일 뿐이야.”
정신이 멀쩡한 신체적 장애인들보다 지체 장애를 위주로 배우가 구성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
자존감이 낮아진 지체 장애인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자신감을 주는 게 이 단체의 의의였다.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 사람들 가족인 건 알지? 일반 관객들도 예술 관람보단 자선이란 의미, 도덕적 의미가 더 커.”
말만 좋아 예술 활동이지, 수준은 고등학교 연극보다 못한 게 실력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 저렇게 노력해서 연기를 펼친다.
관객들이 원하는 포인트는 바로 그것이었고, 그렇기에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상대 배우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빛은 배척당했다.
“네가 다리 잃고 5년간 고생한 것도 안다. 휠체어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것도, 좀 더 나은 연극을 위해 발성부터 다시 밟았던 것도 알아.”
성태는 태화의 노력을 떠올렸다.
다리를 잃었기 때문일까.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사람처럼 태화는 닥치는 대로 연기에 도움되는 것들을 배우고 흡수했으며 화려하게 개화했다.
다리만 멀쩡했다면 이런 작은 사무실이 아닌 화면으로 만났으리라.
“근데, 장애인에게 그건 사치더라.”
그는 말을 줄였다.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지는 이곳에서 다리 없는 배우는 뜰 수조차 없는 별이었다.
“네가 잘하면 잘할수록, 그림자만 커지게 되어 있어.”
“······전.”
지금껏 듣고 있던 태화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다, 간신히 물기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전,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듣고 바라봐 주는 게 좋았어요. 그게, 그렇게 큰 사치인가요.”
“······미안하다.”
억지로 웃으려는 태화를 보며 성태는 눈물을 참았다. 절망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그 끈을 끊어 버린 사람이 울 순 없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헛된 말들을 풀어 데려오지 않았을 텐데.
태화가 다른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 뒀을 텐데.
고작 개화할 재능을 보고 싶다는 욕심에 아끼는 후배를 빛나는 지옥으로 밀어 버렸다.
“······시간을 주세요. 이대로는 포기할 수가 없어서, 아니 이해는 했는데, 그래도 제가 10년을 걸어온 길이잖아요.”
“그래······.”
태화는 고개를 숙인 채 휠체어를 움직였다. 눈가에 방울방울 얽힌 것들을 성태가 보지 못했으면 했다.
방을 나선 그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고여 있던 눈물을 흘렸다.
슬픔도.
절망스런 미래도.
눈물처럼 흘러 사라지길 바랐다.
***
마음을 추스른 태화는 모두가 떠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스무 살이란 나이에 배우가 되고 싶다 결심하고 아버지와 싸우면서까지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배웠다.
고작 소규모 극단에서 공연하고 단역밖에 뛰지 못하는 생활이었어도 연기라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당신을 사랑할 뿐인데! 그게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는 오늘 했던 대사를 읊었다.
텅 빈 극장을 가득 매울 정도로 힘 있는 음성. 그러나 들어 주는 이는 없었다.
태화는 눈을 감았다. 마른 줄 알았던 눈에서 또다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씨발······.”
처음 성태의 제안을 들었을 때 그는 불안에 차 있었다. 사고 전 자신은 그리 눈에 띄는 배우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스스로가 발전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태화는 4개의 손가락을 지닌 피아니스트를 떠올렸다.
분명, 자신도 그런 주인공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안녕하세요, 이태화 님.”
절망에 빠져 눈을 감고 있던 그의 귓가에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태화는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돌렸다.
검은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사무적인 웃음을 띠고 있었다.
“누구······.”
“Afterlife 매니지먼트의 사건사고 담당 부장 유은림이라 합니다.”
그녀가 건넨 명함을 받아 들고 태화는 어정쩡하게 인사를 건넸다.
매니지먼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왜 그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안녕하세요. 근데 저는 왜······?”
“박길수라는 인간을 아시나요?”
의아해하던 그는 갑자기 듣게 된 이름에 정신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