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01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그녀의 외모를 보며 ‘연예인 같다’라 말했으며 들어본 적은 없는 회사이긴 해도 연예인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몇 번 받아봤던 지라, 혜연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혜연에겐 재능이 없었다. 얼굴은 되지만 춤이나 노래는 꽝이었고 연기력 또한 평범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자신 있는 외모조차 일반인들 사이에서나 반짝였지 비주얼로 유명한 아이돌, 배우와 비교하기엔 부족한 감이 많았다.
그렇게 연예인으로서의 재능이 바닥을 기는 그녀였으나 한 가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바로 눈치.
혜연은 다른 사람들의 기색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누가 누구를 싫어하고, 좋아하고, 눈여겨보고 있고, 시기하는 지, 한 눈에 파악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태화와 유독 친하게 지냈다.
안목이 괜찮은 단장 하성태가 근래 관심을 가진 이가 바로 이태화였기 때문이다.
재능을 알아볼 눈이 없다면 그런 재능을 가진 이를 관찰하면 됐고, 데뷔가 하고 싶으면 성공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콩고물을 얻으면 됐다.
물론 성공한 이들이 혜연을 만나주거나 그녀와 친하게 지내줄 가능성은 적으니 그녀는 아직 덜 큰 될성부른 새싹과 친하게 지내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바로 이태화였다. 단장이 주목하고 있는 배우 이태화 말이다.
‘오디션 날 기색이 이상했지. 그렇게 안 봤는데 성공하니까 날 버려? 건방지게······.’
혜연은 성태에게 태화에 대한 불만을 흘리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연기를 한답시고 집까지 나와 힘들게 지내는 그에게 그녀는 수많은 호의를 보냈다.
군대를 다녀온 탓에 주변과 어색해진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줬고, 연극 티켓을 사느라 식비가 부족해졌다는 그를 위해 부러 수제 도시락도 싸줬으며. 아주 딸랑이가 되어 그가 듣고 싶어 할 말들을 속살거려줬다.
주변에서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았으나 혜연은 수줍은 웃음으로 말을 삼갔다. 전혀 눈에 차지 않는 남자와 얽힌 것은 짜증났지만 그래도 태화가 성공했을 때 이런 ‘헌신’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인데다, 그때가 되면 사귀어 줄 수도 있는 일이니 확답은 피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노력의 노력을 거듭해 동료 이상 가족 미만의 위치를 획득한 혜연은 태화가 의 오디션을 본다고 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고 믿었다.
그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태화는 박가람 역을 따낸 뒤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그걸 계기로 승승장구했으니까.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가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렸다는 것.
부처 눈에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인다는 말처럼 혜연은 그 이유를 과거 자르기라 생각했다.
이제 인기를 얻었으니 쓸모없는 인간들을 전부 버린 거라 여긴 것이다.
‘누가 그리 놔둘 줄 알고?’
장난스레 ‘오빠 성공했으니까 밥이나 한 끼 사주세요’라며 작업을 치려던 그녀의 계획은 시작부터 막혔다. 연락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밥 사달라는 말도,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헌신짝 취급할 수 있냐 분통을 터뜨리며 혜연은 칼을 갈았다.
실수 인척 극단에 있는 이들에게 그에 대한 서러움을 흘렸고 여론을 조성했다.
다른 이들의 연락도 다 받지 않은 것인지 불만을 가진 이가 생각보다 많았고 덕분에 여론 몰이는 손쉬웠다.
그녀는 마지막 타깃으로 단장을 노렸다. 그가 대표로 태화에게 연락해 함부로 극단 인연을 끊지 말라 경고하게 만들려했다.
아무리 극단원 사이에서 있는 일에 중립을 유지하려 드는 그라 해도 이만한 인원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이쪽 편을 들어 줄게 분명하다 믿었다.
딱 한 가지. 잘해내던 그녀가 실수를 했다면 성태가 여전히 태화와 연락하는 걸 몰랐다는 것이리라.
“뭐가?”
“성공 좀 했다고 힘들었을 때의 동료들을 다 잊었잖아요.”
“······우리가 새 프로그램 들어간 게 바빠 보이니까 부러 연락을 안 하고 있는 거지. 걔도 요즘 한상 바쁘고.”
성태는 별 게 다 서운하다며 덤덤히 넘겼다.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때가 에 들어가기 전이니 꽤 오래되긴 했지만 성태 쪽에서 먼저 바빠질 거란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한가해진 다음엔 업계 관계자들 말만 들어도 연일 바삐 행동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여 이쪽에서 연락을 자제했다.
‘살다보면 친구들 사이에도 한 달에 한 번 연락하게 되는 건데 얘도 참 어리다니까.’
성태가 ‘바로 옆에서 성공했으니 안달이 난 건 이해해도 이런 식으로 매달리는 건 좀 너무 간 게 아니냐’ 생각하던 찰나 독기, 아니 악의를 가득 담은 혜연이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운함을 토로했다.
“너무 속 좋은 상상 아니에요? 아니,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쉬는 시간 뻔히 아는데. 태화 오빠가 우리 연락을 다 무시하는 게 24시간 내내 바빠서는 아닐 거 아니에요?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그녀의 말을 듣고 성태는 무의식적으로 찌푸려지려던 미간을 재빨리 폈다.
태화가 그에게는 예전처럼 연락을 해왔기에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으나 그런 일을 겪었다면 그녀의 태도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단순히 알 것 같은 것뿐이지, 공감하진 못했다.
‘얘 가만 두면 기자라도 찾아갈 기세네. 얼굴 마담이 필요해서 받은 건데 연기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고, 이젠 민하 들어와서 밀렸는데도 여전히 연습은 뒷전이고, 그렇다고 자르자니 이상한 짓 할 것 같고······.’
혜연은 성태에게 폭탄과 같은 단원이었다. 제 외모를 100%활용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눈치를 기가 막히게 살펴 다른 단원들을 이리저리 다뤘고 가끔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을 여론 몰이를 이용해 괴롭혔다.
그렇게 극단 내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그녀였으나 인력 품 부족으로 허덕이는 성태는 함부로 그녀를 자를 수 없었다.
새로운 에이스 민하가 들어온 다음에도 성태는 혜연이 현실을 깨닫고 나가기를 바랐을 뿐 그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못했다.
그런 일을 하면 분명 피해자 행세를 하며 주변에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릴 게 뻔했거니와, 그렇게 되면 하나가 완전히 망할 때까지 집요하게 노릴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거절하면 태화한테 똥을 튀길 텐데······.’
성태는 태화의 행보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극단에서 완전히 개화하지 않고 밖에서 피어버린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으나 훌륭한 배우로 재탄생한 그가 눈부시게 반짝거리며 성태가 보고 싶었던 모습을 아낌없이 뽐냈으니까.
태화를 내적으로 지지하고 있던 그는 혜연이 듣고 싶어 할 말을 내뱉었다.
“내가 한번 만나 볼게.”
“······정말요? 그럼 단장 오빠······!”
“대신 나만 갔다 오마.”
“······알았어요. 대신 오빠한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좀 물어봐 주세요. 그렇게 친하게 지냈는데······. 이건 너무하잖아요.”
마지막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추지 않던 혜연은 몇 번이나 성태에게 당부하며, 태화를 만났을 때 물어봐 주길 바라는 질문을 장문으로 작성해 그에게 넘겼다.
* * *
태화는 진지하게 효신이나 다른 탑급 배우들들을 향해 존경을 표했다.
이렇게 바쁜데도 알아서 술을 찾고 진탕 노는 것들을 보면 그들의 몸은 두 개인 게 분명했다.
“전 상아 선배님과 달리 광고 거의 뺀 스케줄 아닌가요?”
“맞아.”
“예능 쪽도 대부분 거절했고요.”
“그렇지.”
“······그런데 왜 이렇게 빡빡하죠?”
담담하게 따라붙는 긍정적이 말들에 태화는 혼란스러워 하며 물었다.
고등학교 때만큼 많은 수업을 듣지 않는다 하여 대학교 수업이 널널한 것은 아니다.
의무교육 보다 내용이 심화되기 때문에 개인 공부 시간을 늘리라는 의미에서 하루 3시간 정도의 수업 시간을 권장하는 것이다.
태화의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하루 두 가지, 많아봐야 세 가지 일정에 불과한데 이동하고 준비하고 촬영하다보면 그는 피로에 절어 골아 떨어졌다.
“첫째로 너한테 밀려오는 일이 신상아의 4배에 가깝고, 둘째로 그렇다보니 고르고 골라 알짜만 추려도 휴일 없이 꾸준히 작업해야하고, 셋째로 너 요새 집 가서 연습하느라 늦게 자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서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태화는 어설픈 변명을 내뱉었다.
물론 현규와 나래는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사실 엄청난 성공과 다르게 태화는 꽤 조급한 상태였다.
의 대본을 진즉에 받았음에도 아직까지 어려움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100이란 아름다운 숫자를 삐져나가지 못하는 걸 볼 때마다 그는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고민했고 며칠 전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해.’
그의 연기는 회귀 전 남궁현태가 보였던 오민재를 완벽히 따라한 형태였다.
눈빛과 발성, 표정뿐만 아니라 그가 애드리브로 진행했던 부분까지 완벽히 복사했고 덕분에 크랭크인 전 한차례 있던 대본 연습에서도 완성된 오민재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눈속임이 축복에서까지 통용되진 않았다.
‘애드리브까지 완벽히 따라하는데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좀 이상한데······.’
어려움 난이도는 예전부터 예측이 상당히 힘든 난이도였다.
대본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닫아버리질 않나, 너무 많이 한다고 쫒아내고 자원이 고갈됐다며 임시로 닫고······.
동기화 또한 대본을 완벽히 지키는 것으로 쉽게 100이 넘기도,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며 99만 줄창 주기도 했다.
아무튼 그러한 난이도다보니 태화는 자연스레 외면하고 있던 부분을 다시 떠올렸다.
회귀 전 결과물을 답습하는 것으로 인간은 속였지만 축복이란 시스템은 속이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말 오민재라는 살인마를 이해하고 뜯어보듯 분석해야했다.
‘크랭크 인이 3일 뒤인데 가능할까······.’
“태화야 핸드폰 울리는데?”
“네, 아.”
한참 어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태화는 현규의 부름에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 봤다.
‘성태 형’이라 찍힌 글자가 빨리 받으라 재촉하고 있었다.
* * *
“오랜만이에요, 형.”
“오랜만이네. ······한창 바쁠 텐데 내가 실수한 건가?”
“아니에요, 슬슬 일정을 줄이려 했거든요.”
태화는 모자와 턱에 쓴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인지라 태화의 팬들은 상당히 용감한 축에 속했다. 개인 일정을 보는데도 사인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였다.
매니저가 이곳이면 괜찮을 거라며 알려준 장소에서 만났으나 태화는 완전히 마음을 놓지 않고 적당히 주변을 살폈다.
“몸은 좋아진 거 같은데 왜 그리 수척해?”
“요새 일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요.”
예약한 방에 들어선 다음에야 태화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벗었다.
완전히 공인이 되어버린 그를 보며 성태는 살짝 혀를 찼다.
“프로그램은 잘 끝났어요? 뭐, 형이 만들었으면 잘 됐겠지만.”
“그리 믿어주니 고맙네. 요새 괜찮은 신입들이 꽤 들어와서 너 나간 자리를 꽉꽉 채워주고 있어.”
“그거 다행이네요.”
미리 불판에 올라갔던 고기를 뒤집으며 태화는 성태를 살폈다.
성태는 상대가 바쁜 걸 뻔히 아는데도 갑자기 약속을 잡을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선택을 한 말 못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오늘 만남의 목적일 것이었다.
‘그게 뭘까.’
딱히 짐작 가는 바가 없어 태화는 그가 먼저 말하기 전까진 묵묵히 고기를 굽기로 결심했다.
알아서 손아랫사람이 할 일을 하는 태화를 보며 성태는 역시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혜연의 주장대로 그가 오만해 진 것이고, 뽑아 먹을 게 있어 극단 인물 중 성태하고만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완전히 뜬 지금은 고기 굽는 일을 성태에게 맡겼을 테니까.
그렇게 오만방자해진 단원을 성태는 몇 번이나 봐 온 성태인지라 그는 태화를 향한 단원들의 말이 전부 중상모략인 걸 깨달았다.
‘그럼 왜 이 정 많던 놈이 연락을 끊었지? 뒤에서 욕하는 거라도 들었나? 아냐, 걔들도 그렇게 멍청한 건 아니라서 콩고물 떨어질 만한 애들은 건물 안에서 욕하진 않을 텐데······.’
설마 그것이 정답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성태는 열심히 고기 자르기에 집중하고 있는 태화를 응시했다.
그리고 고기가 다 익어 가장자리로 옮겨질 무렵, 본론을 꺼냈다.
“네가 요즘 단원들 연락 전부 무시한다고 들어서 너 바쁜 거 아는데도 이리 연락을 잡았어. 일단 내가 극단장이잖냐.”
그의 말에 태화는 안색을 굳혔다.
태화는 과거 극단 창고의 짐을 전부 들고 올 때 극단에 대한 인연도 완전히 정리했다고 믿었다.
가끔 요란하게 폰을 울리긴 했으나 스팸이나 마찬가지였고 보안상의 문제로 번호를 바꾼 다음엔 그런 연락들이 뚝 끊겨 완전히 잊고 지냈다.
“그건······.”
“이유 말하기 힘들어?”
“······네.”
회귀 전 그들의 본심을 들은 것이 상처가 됐다고 어떻게 말할까.
꿈이라도 꿨냐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며 그건 또 다른 상처가 될 것이다.
그가 이유를 말하지 못한 채 시선을 내리고 있자, 그것을 보던 성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형.”
태화는 당황한 얼굴로 일어서려는 성태를 붙잡았다.
회귀 전의 다른 인연들은 쉽게 버릴 수 있어도 그 힘들었던 5년을 지지해준 성태와 이런 식으로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다급해 보이는 태화를 보며 성태는 당황한 얼굴로 손을 떼려했다. 그러나 열심히 운동한 결과는 여기서도 빛을 발했고 성태는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나 화장실 급하니까 이것 좀 놔······!”
“네?”
“화장실 다녀온다고!”
“아, 네. 미안해요. 다녀오세요.”
후다닥 사라지는 그를 맹한 눈으로 바라보던 태화는 다 구워진 고기들을 양 그릇에 옮긴 뒤 새 고기를 올렸다.
그 사이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한 성태가 방으로 돌아왔다.
“너 때문에 죽을 뻔 했다.”
“죄송해요. 형. 근데 그렇게 말하고 가면 오해할 수밖에 없잖아요.”
“뭐가?”
“······아니에요.”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