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06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결하고 제 주장을 펼치는 하라보다 방관하며 가만히 있는 유진 쪽이 더 다루기 쉬울 것이라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두 남자 주연의 사이는 상당히 괜찮은 편에 속했으며 오히려 기가 약한 여자 주연은 오민재를 연기하는 태화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한 채 버벅이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어떻게 풀어야하는 거지?’
태화는 겁먹은 유진을 보며 난감함을 느꼈다.
상황은 의 초반 신상아가 대사를 잊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적어도 상아는 해조라는 배역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으며 어느 정도 색기에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서아영으로서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오민재, 즉 카메라 앞의 태화 자체에게 겁먹은 유진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고 그것은 본능에 관련된 부분이라 쉽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 미안해요······.”
“유진씨, 제가 많이 무서운가요?”
태화의 걱정과 고민이 섞인 시선을 보며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위축됐던 남궁현태와 비교하면 태화는 상당히 괜찮은 상대였다. 그는 현실과 역할을 구분할 줄 알았고 살인마 연기도 딱히 위압감을 조성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단지 그런 이성적 사고와 다르게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눈을 볼 때마다 유진은 한밤중 침대 밑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보게 된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구건우가 감이 좋아 오민재의 이질감을 알아챘듯, 그녀도 태화의 연기에서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유진에게 자초지정을 들은 태화는 그녀의 상태를 알아 차렸다.
강아지가 생전 처음 보는 호랑이를 보고도 포식자임을 알고 겁을 먹는 것처럼 그녀의 상태 또한 비슷한 것이리라.
무의식적으로 공포에 떨고, 무의식적으로 긴장해버린다.
잠시 어찌해야할지 생각하던 태화는 우리에 갇힌 맹수는 위협이 아닌 구경거리임을 떠올리고 그녀의 사고를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유진씨, 대본은 다 읽어보셨죠?”
“네.”
“오민재는 절대 성유나를 죽이지 못해요. 그건 대본으로 정해진 ‘사실’이고,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죠. 쫓고 쫓기는 추격에서 이기는 쪽은 형사와 피해자인 성유나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카메라 앞의 저를 보면 한 번 더 생각해보세요. 카메라 앞에 있는 전, ‘절대로’ 유진씨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는 존재예요.”
“으음······.”
태화가 차근차근 두 등장인물의 상하를 설명하자 그녀는 모호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한 번에 ‘아! 걱정할 필요 없구나!’라는 기분을 가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는 일단 유진이 둘의 관계를 인지한 것만으로 만족했다.
‘후반에 사냥감이 되는 부분에선 자연스러워 보일 테니까······.’
그녀가 영 나아지지 않는다면 감독에게 후반부를 먼저 찍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살인마가 잡히는 것을 본다면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테니까.
역할 몰입을 생각하면 좋은 방법은 아니기에 태화는 그렇게 되기 전에 그녀가 스스로 깨닫고 의연해지길 바랐다.
“유진씨! 이리 와보세요!”
“네에······.”
둘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감독이 유진을 불렀다.
먹구름 낀 얼굴을 한 그녀는 힘없는 대답을 남긴 채 카메라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스텝들이 반사판을 옮기고 다른 장면부터 찍을지 토론하는 사이 태화는 자신의 의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네.”
“그래도 가속 붙으면 드라마 때보단 빠를 거예요.”
성유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으며 둘이 투샷으로 잡히는 장면도 많지 않다. 또 다른 주인공, 구건우를 맡은 강원이 중심을 잘 잡고 있으니 촬영이 주된 갈등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급물살을 탈게 뻔했다.
“그러려나? 그럼 다행이긴 한데······. 근데 이거 설마 제한 상영가 받는 건 아니겠지······?”
“들어간 자본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하죠. 그리고 최지환 감독님은 그런 쪽으로 딱딱 맞추는 편이라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현규의 걱정 어린 말에 태화는 고개를 저었다.
회귀 전 남궁현태의 잔인한 살인마와 작업하면서도 그는 을 청불로 내보냈다.
성태에게 가위질을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한 큐에 허가를 받았던 것이리라.
물론 그 욕구를 전부 감독판에서 풀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흥행과는 상관없는 부분이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촬영이 너무 순조로워서 겁나네요. 오디션 생각하면 꽤 간섭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 내가 관계자에게 알아봤는데 그 캐스팅 때 일이 있어서 투자자 측에서 감독에게 촬영의 전권을 위임했대. 최지환 감독이 폭주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잘 된 일이지.”
“다행이네요.”
미국처럼 완전히 분업화됐다면 모를까, 한국의 영화 산업 시스템은 감독과 투자자가 전부 사공으로 이뤄진 배였다.
누군가가 브레이크가 되어 제지하는 게 아닌 한명은 왼쪽으로 갔는데 다른 한명이 오른쪽으로 다시 키를 꺾어버리는 구조.
물론 이상적인 투자자는 감독이 멋대로 폭주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자금’과 ‘자신의 이득’에 따라 움직였고, 그것이 영화에 있어서 좋은 방향이 된 역사는 적었다.
태화는 자신이 캐스팅된 일화에도 그러한 ‘사정’이 껴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흉내 내는 것에 불과했던 그가 남궁현태를 이기는 일은 요원했을 테니까.
물론 지금 다시 경쟁한다면 태화는 자신이 완성한 오민재로 현태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아, 다시 촬영 재개하려나 보네요. 저 다녀올게요.”
“어, 그래. 그리고 오늘 이따가 다른 스케줄 있는 거 알지?”
“물론이죠.”
두 시간 뒤에 있는 약속을 떠올리고 태화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다시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 * *
「하하, 보통화에 능숙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태화는 와인 잔에서 시선을 때고 가볍게 웃었다.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 팬서비스가 선택이 아닌 필수이듯, 배우 또한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광고, 홍보, 팬들을 위한 콘텐츠 등에 참여해야했다.
투자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그런 일의 일환이었다.
누군가는 접대가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비즈니스를 할 때 일적으로 얽힐 상대를 만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특히 다른 시장에 진출할 땐 말이다.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라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한중일 합작으로 이뤄질 대규모 프로젝트지요.」
미국을 이기기 위해 언제나 발버둥치는 중국은 그들의 영화 산업 또한 이기고 싶어 했다.
그 중 가장 탐내는 것은 미국이 영화 속에 깔아둔 ‘미국은 최후의 순간 지구와 세계를 구할 존재이다’라는 메시지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도 비슷한 주제를 깔아 영화를 만들길 원했다.
물론 혼자 해먹기엔 채하기 딱 좋은 주제였기에 그들은 한국과 일본을 꾀었다.
그리하여 계획된 것이 ‘수호자 프로젝트.’
아시아를 중심으로 써나가는 히어로물이었다.
‘그런데 회귀 전에도 이런 게 있던가?’
이 정도의 대규모 사업이라면 성태를 통해 들어본 적 있을 법도 했는데, 태화가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런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사기가 아닐까 고민도 되었으나, 투자자 중 한명이 중국의 유명 재벌이며 총대를 멘 이들 또한 그런 장난을 칠만한 인물들이 아니었기에 태화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늘 식사 자리에 응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상당 기간 잠자고 있었습니다. 세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해선 그 만한 존재감이 있는 배우가 필요한데 유명한 배우들이 다들 자국 내에서만 유명하다보니 윗분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죠.」
「그렇군요.」
「그러던 차에 두이화 선생이 나타난 겁니다!」
‘나?’
커다란 스케일 속에서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태화는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손을 멈칫하며 정면의 남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 소위 한류스타라 불릴 배우는 참 많았다.
아주 적은 수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찍는 배우도 있었고, 중국에서 수천억을 벌어드린 배우, 일본에서 ‘사마’소리 들으며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는 배우도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 주연 데뷔 일 년차에 가까워지는 태화는 작은 등불에 불과했다.
아무리 중국에서 박가람과 해조로 떴어도, 아무리 일본에서 오현수로 주목받았어도, A를 넘어 S와 그 위급 배우들과 비교하면 태화의 위치는 연못 속의 구렁이었다.
‘꽤 큰 프로젝트라고 해서 기대 좀 했는데······. 이거 사기였네.’
그렇기에 태화는 확신했다.
오늘 이야기는 자신을 낚기 위한 사기가 분명했다.
끝
ⓒ 마늘소금
연예인은 사기에 쉽게 노출되는 직업이다.
인기가 있다면 자연 거액의 출연료도 따라오고, 그러면서 학벌들이 그리 높지 않아 똑똑해 보이지 않고, 거기에 돈도 쉽게 버는 것처럼 보여 ‘성공하고 쉽게 돈 버는데 도움 좀 받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온갖 날파리들이 끼어든다.
겉으론 연예인을 띄워주면서 속으로는 ATM이라 생각하는 주변인간들에 의해 그들의 세계는 거짓으로 채워지기 쉬우며 나이가 어리고 빠르게 성공할수록 그런 현상은 가속화됐다.
그런 의미에서 태화는 뒤의 두 가지를 전부 충족하는 배우였다.
20대 중반이라는, 성인으로 치면 어리다 말할 수 있는 나이와 일 년도 안 돼 공중파의 주연을 맡고 주요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는 인기와 실력.
사기꾼들 입장에선 구슬려보기 딱 좋은 먹이이리라.
······라고 태화는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호구처럼 보이나?’
회귀 전 사고로 인간관계에 크게 대인 후, 태화는 어른들의 사교 방식을 배웠다.
모든 인간을 가식으로 대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일정 위치를 고수하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선’을 만들고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게 됐다는 의미였다.
연예계라는 곳이 워낙 중상모략이 판치고 어제의 절친이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는 동네다보니 그의 그런 태도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딱히 별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좋다며 효신에게 칭찬까지 들었다.
-난 극 초기 데뷔 동기한테 거하게 통수 맞았거든. 덕분에 신고식 제대로 치렀는데······. 그런 경험은 되도록 안 겪는 게 좋지.
그렇게 질소포장보다 예비군에게 입힌 전투복 핏을 유지하다보니 태화는 자신의 인기나 따라오는 찬사에도 박했다.
친하지 않은 이에게 달콤한 말을 들으면 기분 좋다고 여기기보다 무슨 의도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였으며 누군가 과장되게 연기를 칭찬하면 잘 한 건 맞지만 참 호들갑 떠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네가 있어서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가 성사됐다’라 말하는 자우펑의 이야기는 태화에게 과장을 넘어 배우의 땀 묻은 돈을 갈취하려는 사기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 떠볼까.’
그럼에도 그는 꽤 신선한 경험이라 생각하며 허리를 곧게 피고 턱을 당겼다.
여유가 묻어나는 자세는 원래 위치와 상관없이 ‘갑’처럼 느끼게 만든다.
또한 애가 탄 상대가 자신의 패를 보다 빨리 열도록 재촉한다.
백로를 사냥하는 흑로처럼,
모 미드의 살인마를 타깃으로 삼는 부두 살인마처럼, 태화는 자신을 상대로 사기 치는 자우펑의 계획을 읽고 역으로 이용해보려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경험을 그냥 날리긴 아깝잖아.’
사기를 미리 눈치 채고 효신과 선배 배우들에게 배운 것을 써먹을 기회가 왔다 느낀 그는 한껏 여유를 가장한 채 입을 열었다.
「높게 평가해주시니 기분 좋네요.」
「하하, 리두이화 선생이 워낙 유명하셔서 그런 것이지요. 창지앙(박가람)도 그렇고 찌에(해조) 또한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중국 팬분들은 언제나 제 진가를 알아봐주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그는 중국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한편 프로젝트에 대해선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적극성을 보이되 직접 묻지 않는 것으로 상대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시야를 좁게 해라.
투자사기만 4번 당했다던 여배우 A씨의 조언이었다.
그 밖에도 태화는 조금만 더 당기면 넘어갈 것 같은 척, 현재는 전혀 마음에 차는 작품이 없는 척, 아주 관대한 척을 하며 열심히 자우펑을 현혹했다.
그러나 그가 몇 달 간 술자리에서 들은 푸념을 내공삼아 공사를 쳐도, 자우펑은 그저 흐뭇해하며 기뻐할 뿐, 작업 걸 기색이 없었다.
태화가 자신이 한 행동의 효과에 의문을 가지던 찰나, 메인 디시를 끝내고 디저트를 받아든 자우펑이 감격과 신뢰가 듬뿍 담긴 눈빛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역시 어르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군요. 리두이화 선생이 이리도 중국을 사랑하고 아낄 줄이야······! 중국에 애정을 가진 선생에게라면 진실을 알려도 괜찮겠죠.」
‘······이게 아닌데?’
그의 태도를 보며 태화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라는 미묘한 불안을 슬금슬금 느꼈다.
그는 배우였고 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사기꾼이라 해도 전문 연기자인 태화를 이 정도로 감쪽같이 속이는 일은 요원했다.
‘남궁현태처럼 완전히 선역(善役)에 몰입해버렸거나······. 아니면 진심이거나.’
자우펑의 모습은 아무리 새겨도 후자로밖엔 보이지 않았기에 태화의 머릿속은 더할 나위 없이 혼란스러웠다.
「사실······.」
자우펑이 천천히 꺼낸 이야기는 처음에 했던 말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중국은 다른 국가가 다 아는 검열의 나라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대다수의 작품이 ‘불온한 사상’을 자른 채 들어왔고 가끔 그 ‘불온한 사상’이 중요한 포인트일 때, 작품의 완성도는 졸작으로 변하거나 시리즈의 빠진 이가 돼버렸다.
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문화적 교류를 받아드리며 개인 재산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자, 정부의 그런 태도는 국민들의 애국심 위에 ‘반항’이라는 위험한 씨앗을 남겼다.
어떻게든 자라려하는 씨앗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는 열심히 고민했고, 높은 애국심과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미국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세뇌시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이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중국은 거대한 차이나 머니를 바탕으로 인민들을 세뇌시킬 마약 같은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보려 했으나 언제나 검열을 신경 쓰고 재단 당했던 중국의 극작가들은 정부가 원하는 작품을 뽑아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