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15
“난 오빠 팔에 흐르는 과즙도 핥아 먹을 수 있어.”
“그건 포상이잖아. 나 이거 배경으로 한 장만 찍어줘. 누가 홍보 프린트 만든 건진 몰라도 진짜 완전 천재. 지하철이랑 버스랑 인터넷 광고 사진이 다 달라서 수집 욕구가, 어휴. 나 찍는 족족 칼라로 프린트 한 거 알아? 이거 나중에 버릴 텐데 그냥 팬들한테 나눠주면 안 되나? 역사에 물어볼까?”
침몰해 있던 태화는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움찔하며 슬쩍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힐끗거렸다.
교복을 입은 두 소녀가 재잘거리며 그의 낯부끄러운 홍보 포스터 앞에서 브이를 그린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렇게 섹시한 사과는 먹어야 제 맛이지’라는 괴상한 문구가 적힌 광고지 앞에서 말이다.
‘다른 멀쩡한 말도 많잖아. 그냥 ‘사과가 맛있는 동네 충주로 놀러오세요’ 정도로 괜찮았잖아······.’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갱신한 태화는 멀쩡한 사진 옆에 저런 문구를 실은 담당자를 원망했다.
‘나보다 예쁜 사과는 용서할 수 없어’, ‘과즙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아주마’, ‘내 미모가 어디서 오게?’······.
제정신으로 읽기 힘든 광고 문구는 그의 사진 옆에 붙어 ‘충주 사과 축제’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고는 엄청난 호응과 관심까지 얻었다.
‘말도 안 돼.’
처음부터 알았다면 태화도 이 정도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프로였고 필요에 의해서라면 언제든 망가질 각오가 되어있었으니까.
그러나 태화는 이런 불시의 습격에 약했다. 자신은 부끄러운데 남들은 다 좋아하는 이런 상황에도 약했다.
‘이미지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왜 난 슬픈 거지?’
지하철이 다음 역에 도착하자 힘없이 내린 그는 비치된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주사보라는 남자가 눈을 반짝일 때 스멀스멀 올라온 불안감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고작 5일 전.
슬슬 누적 관객 수도 300만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홍보를 위한 일정도 뜸한 시기였다.
원래라면 상영이 끝난 후 개봉할 영화나 드라마의 캐스팅을 알아봤겠지만, 내년 1월에 바로 잡힌 영화 스케줄 때문에 태화는 강제로 휴식에 들어가야 했다.
그에게 시간을 되돌리거나 두 명이 되는 물건이 있지 않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괴물’은 거대 자본을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로, 흥행에 성공한 만큼 기본적으로 한 달 반은 영화관에서 내려오지 않을 예정이었다.
따라서 그는 9월 이후에 방영되거나 상영하는 작품을 찾아야 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작품들은 이미 주인을 만난 후였다.
가장 빨리 잡아도 10월에 계획된 드라마가 전부.
문제는 10월에 방영하는 드라마일지라도 촬영을 병행하는 탓에 12월 말까지 촬영 일정이 잡힐 것이라는 점이었다.
크랭크인 일정은 1월이지만 ‘수호자(가제)’의 미팅은 12월 중순부터 잡혀있었다.
영화 준비로 크리스마스에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태화는 연기가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작품에 피해가 갈 선택을, 타협이 필요한 선택을 하고 싶진 않았다.
“태화야, 거의 일 년 가까이 영화만 신경 써야 하니까 광고라도 찍을래? 일단 살인마라는 캐릭터가 인상을 남기긴 좋아도 약간의 순화가 필요하잖아. 특히 다음 작품에선 선역으로 나오는데 분위기 환기도 필요하고······.”
“하긴, 바로 전에 살인마가 수호자니 뭐니로 나오면 작품 분위기에 괴리감이 좀 있을 것 같네요.”
이미 태화의 팬들은 그가 해조를 맡고 바로 오민재를 연기한 다음부터 그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가 차기작의 어떤 역을 맡아도 그들은 기꺼이 따라가리라.
그러나 빠질 것을 염려해 팬카페와 공식 계정을 멀리한 태화는 거기까지 알지 못했고, 완충 역할을 할 무언가의 필요성을 느꼈다.
“살인마 이미지를 원하는 광고 업체도 없겠지만······. 좀 공적이고 선해 보이는 쪽이 좋을 것 같네요. 비용에 상관없이요.”
태화는 ‘준다는 돈을 거절할 필요도 없지만 돈은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있으면 된다’라는 주의였다. 회귀 전 단칸 방에서 지내면서도 영화나 연극에 열중할 수 있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금은 실질적인 돈벌이인 광고보다 정신을 풍족하게 해주는 연기 쪽을 중시했으며 광고 또한 금액보다 이미지와 작품에 유리할 내용을 위주로 골라왔다.
“BGA를 통해 들어온 광고가 7개인데, 네 조건에 부합할만한 건······. 음, 일단 국방부 광고가······.”
“그건 제외해주세요. 군대는 예비군 가는 것만으로도 질려요.”
태화는 국방부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거절을 표했다.
안 그래도 회귀 전 신경 쓰지 않은 군대, 그것도 동원 예비군 통지가 나와서 심란한데, 앞날이 창창한 이들을 슬픔에 빠트리는 단체의 홍보를 제 손으로 고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충주시에서 관장하는 사과 축제는 어때? 지역 농산물을 홍보하기 위한 건데, 일단 정부 일과 관련된 거고 주는 비용은 적어도 이미지엔 엄청난 플러스지.”
매니저의 설명을 들은 그는 이런 유의 홍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시골, 우리 식품, 지역 발전을 위한 행사, 모든 단어가 긍정적이지만 정부에서 하는 일인 만큼 홍보 모델에게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아쉬울 것 없는 A급들은 붙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정부 일답게 눈이 높아 어중간한 연예인을 외면하다보니 대부분은 행사 관계자 중 외모가 되는 이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노인, 농부, 어린 아이 등이 모델이 되곤 했다.
‘나한텐 나쁘지 않네.’
단순히 급이 되는 연예인들에게 공문 돌리 듯 보낸 제의일지 모르지만 태화는 자신에겐 잘 된 일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못 먹는 감 찔러보기 식으로 넣은 거라 해도 그가 거기까지 배려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태화의 광고 일정이 정해졌으며 그의 현재 이미지에 살짝 곤란해 하던 관계자들은 매니저와의 짧은 면담 후, 계약서를 가져왔다.
그 순조로운 흐름에 문제가 있었다면 담당자가 아주 완벽한 B급 감성의 소유자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이틀 뒤 촬영장에서 태화는 독특한 인물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충주시청 주사보로 근무하고 있는 김시영이라 합니다!”
활발하게 인사를 건넨 남자는 너무나 반갑게 태화를 맞이하며 즐거워했다. 원래 아는 사이였나 싶을 정도로, 시영은 친근하게 그를 대하며 수다를 떨었다.
“사실 이태화 배우님을 사무장님께 강력 추천해드린 게 바로 저거든요! 캬, 우리 서기관님 화끈하게 밀어주시고. 엄청 깨어있는 분 아닙니까!”
“아, 네······.”
시영은 2계급 위인 과장이 오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떠들었다. 대부분 충주에 대한 자랑이었으며 ‘괴물’에 대한 코멘트가 군데군데 끼어 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상사가 왔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과묵해졌을 땐, 태화도 살짝 당황했다.
“저희 과의 아주 유능한 직원이죠. 하하하. 이 친구 덕에 저번 축제도 아주 성황리에 끝나서, 이번에도 기대가 큽니다. 하하하!”
그리고 그 상사가 시영의 유능함을 칭찬했을 땐 더더욱 놀랐다.
‘하긴, 성격과 유능함은 다른 문제지.’
그가 보이는 일상에서의 연기와 처세술에 감탄하며 태화는 오늘 찍을 광고의 콘셉트에 귀를 기울였다.
상큼하게, 그러면서도 이성을 꾀듯 매혹적이게.
정부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광고 콘셉트라 하기엔 조금 독특했으나 태화는 별로 어렵지 않은 요구라 생각하며 진지하게 내용을 새겼다.
곱고 단아하고 감성에만 호소하는 홍보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뭘 말하고 싶은지 알기 힘든 두루뭉술한 분위기나 교과서에서 나온 것 같은 반듯한 느낌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어 모을 수 없다 이야기하는 시영은 아까완 달리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태화를 설득했다.
입가에 가져간 사과가 누구나 탐낼 황금 사과인 것처럼,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엄청난 진미(眞味)인 것처럼.
그리고 그런 사과가 있는 곳이 오로지 충주 사과 축제뿐인 것처럼.
시영은 원하는 바를 확실히 전달했고, 태화는 곧 나래에게 내용을 설명하며 이미지를 잡아갔다.
그렇게 완성된 인물은 살짝 선이 굵었으며 남자다움을 숨기지 않았다.
R&M의 화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녹색의 싱그러움을 닮은 사내는 카메라 앞에서 크게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이거 이따 좀 달라 해도 되려나?’
태화는 가볍게 눈웃음치며 사진 너머로 자신을 볼 이들을 상상했다.
맛을 표현할 순 없어도 누군가를 유혹하며 관능적으로 먹는 건 손 쉬운 일이었다.
* * *
태화가 열심히 일하는 사이 과장 허길수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부하인 시영을 살폈다.
8급이었던 시영은 작년 프로젝트를 크게 성공시키면서 특진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무려 8년간 자금을 들여 열심히 밀었으나 충주 밖 시민들에겐 여전히 유명무실했던 축제를 전국적으로 이름 알린 것.
그는 인터넷 감성이라 하며 어린애가 만든 것 같은 광고를 계급을 다 뛰어 넘어 국장에게 보냈다.
그리고 이런 감성이야 말로 지금 대중에게 먹힌다고 열변을 토했다.
책임이라는 무거운 단어까지 나오자 국장은 퍽 흥미로워하며 그를 밀어줬고, 결과적으로 충주 사과 축제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 건방졌던 서기가 주사보가 된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과장님, 전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건 아는데······. 저 사람 이번에 살인마 역할도 했고······.”
“두고 보십시오. 이번에도 충주 사과 축제는 성황리에 끝날 겁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이번에도 확신에 찬 그를 보며 과장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50이 다 되가는 남성이 볼 때 괴상하기까지 한 문구를 입은 포스터가 전국에 깔렸을 때.
그는 이번에도 또라이 같은 주사보가 옳다는 걸 깨달았다.
끝
ⓒ 마늘소금
‘수호자(가제)’는 극적으로 삼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제작에 돌입한 작품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자국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고, 신뢰도를 올리기 위해 시작한 계획.
그렇다 보니 근본(원작) 없는 히어로물 주제에 처음부터 무턱대고 스케일이 컸으며 그 어떤 국가도 줄이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어떤 이야기든 처음부터 세계관이 너무 장대하고 캐릭터가 많으면 그것을 보는 관객과 독자는 쉽게 피로해지며 흥미를 잃는다.
따라서 작품을 구상할 때, 극 초기 중심이 되는 인물은 둘을 넘지 않는 게 좋았으며 점차 세계와 인물들을 확장해 나가는 게 정도(正道)였다.
그러나 미국을 쫒아갈 생각뿐인 중국에게 그런 인내심이 있을 리 없었다.
다음 대선에 같은 정당을 유지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한국 정부도, 각지에서 시위 행렬이 잇따라 총리 하나 자르고 끝내는 게 불가능해진 일본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타협을 몰랐다.
스케일은 국가를 넘어 세계 단위의 재앙으로 커다랗길 원했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비중이 비등, 하니 본인들이 조금이라도 높길 바랐고, 마지막으로 완벽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배경지식도 없이 관람해야하나 스케일은 커야 한다. 여론을 약간이나마 바꿀 정도로 평과 인기가 좋아야 한다.
처음 찾아온 말단에게 계약서를 건네받은 ‘임시’ 감독 유하연은 차라리 일을 때려치울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공무원이 말을 전달했을 당시 기가 막혔던 그녀는 무슨 새우가 고래 쥐어 패는 소리를 지껄이냐며 역성을 내고 계약서를 집어 던질 생각이었다.
그런 망상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건 다 돈 때문이리라.
‘거대 자본이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실천한 작품은 고작 임시에 불과한 그녀에게도 상당한 금액을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하연은 충성을 맹세했다.
물론 그녀가 계약서에 사인하고 홀로 남았을 때도 그 기분이 그대로 유지된 건 아니었다.
그녀는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후회와 고뇌는 돈의 힘으로도 극복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돈 때문이라도 이런 먹으면 체하는 선택을 덥썩 물다니······! 심지어 본 촬영 들어가면 내가 메가폰 잡을 작품도 아닌데!’
하연이 한 계약서에는 아주 명확하게 ‘임시’라는 호칭이 붙어있었다.
이미 감독은 중국 측에 내정되어 있으며 그녀가 할 일은 주어진 주제에 맞게 시나리오 구성, 개요 잡기, 그리고 연출의 기본 틀을 제작으로 한정되어 있단 의미였다.
그 뿐이라면 그냥 작가들 몇 명을 고용해 하연을 끼지 않은 채 해도 되려만, 정부는 ‘그래도 조타를 잡는 인간이 구상 초기부터 참여해 도우면 때깔이 다를 것이다’란 생각으로 하연을 집어넣었다.
일단 자금 문제로 촬영부터 감독까지 중국에게 많은 것을 맡기는 것은 사실이나, 시나리오와 기틀 마련을 한국이 맡은 이상, 전문가 총괄을 둬 그 안에서 뽐낼 건 뽐내고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최대한 챙겨보겠단 심사였다.
‘버려질 지도 모르는 기초 작업에 최선을 다해야한다니······. 왜 이런 이상한 짓을 국가 단위로 진행하는 건데······!’
감독의 정체성과 분위기는 연출 방식과 편집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같은 시나리오라도 감독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미묘하게 다르고, 그 방식 또한 천차만별이었으니까.
따라서 한국에 시나리오‘만’ 요구한 중국이 하연의 냄새가 묻어난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은 정말 적었다.
‘아니지. 정말 중요한 건 이딴 거지같은 개요를 스토리로 바꿔야 한다는 거지! 그것도 대중에게 먹힐 내용으로!’
잠시 과시용으로 쓰이고 아스러질 자신의 결과물을 떠올리며 씁쓸해 하던 하연은 진짜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저것 책임지기도 싫고 관리하기도 귀찮았던 정부는 임시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질 인물을 돈 주고 만들었다. 바로 하연, 그녀였다.
중국에게 시나리오가 트집 잡히면 책임져야 할 인물.
그 거대한 계약금이 한 사람의 영화 인생을 산 값이라는 걸, 그녀는 너무 늦게 이해했다.
‘엄마가 너무 조건이 좋으면 꼼꼼히 따지고 발 뺄 준비 먼저 하랬는데! 엄마 말 좀 들을 걸!’
한국만 관여한 사업이면 ‘김치 전사’ 같은 작품이나 덜렁 만들고 기름칠 좀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도 되었으리라.
어차피 홍보라는 건 금전에 비례하지 않는 법이고 용돈 덕에 너그러워진 높으신 분들은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넘어갈 테니까.
그러나 돈으로 결과를 사길 원하는 중국이 낀 이상 그런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아니 왜 졸부가 재벌을 이기려 드냐고! 그걸 한국은 왜 또 곁다리로 껴서······!’
중국이 미국 영화 시장을, 나아가 ‘세계 경찰’이란 타이틀을 이겨보겠다고 벼르며 시작한 사업이니 제대로 된 결과물을 주지 않는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콘크리트 신발을 신게 될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으나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그녀는 자신이 만든 데드 엔딩을 믿었다.
하연은 분수에 맞지 않는 큰돈을 욕심내다 망했다고 엉엉 울었고 어머니를 외쳤다.
그렇게 절규하던 차, 그녀는 어느 순간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외주엔 외주. 본인이 하기 힘들면 다른 사람을 갈아 넣으면 된다!
그래서 그녀는 급이 애매한 작가 다섯을 고용해 문자 그대로 쥐어짰다.
개연성을 만들어 내라 채찍질 하고, 국가 선호 사상을 확실하게 박으라 윽박지르고, 그러면서도 재밌어야 한다는 후안무치한 코멘트를 남겼다.
그렇게 완성되어 태화의 손에 들린 작품이 바로 ‘수호자(가제)’였다.
‘꽤 괜찮은데······?’
찬찬히 내용을 살핀 태화는 축복을 실행하겠냐는 말을 거절하고 마지막 장이 펼쳐진 대본을 응시했다.
1차 초안인 만큼 대본을 연습하기보단 스토리를 음미하는 게 맞았다.
아직 정식 제목이 정해지지 못한 ‘수호자(가제)’는 한 외계 종족이 태평양에 정찰 요새를 박으면서 시작됐다.
남의 동네를 침략하는 이들답게, 그들은 무력으로 첫 대화를 시도했다. 아주 가벼운 레이저 포로, 대화 한 번에 홋카이도, 북한, 중국 산동성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작품에 북한과 미국이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장치이리라.
인류는 그 가공할 위력에 놀라 공포에 떨었으나,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요새는 이후 활동을 최소화 하며 미국과 아시아의 길을 막았다.
어떠한 요구도, 목적도 이야기 하지 않은 채 그저 태평양을 점령한 외계 건물을 보며 인류가 적응해가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