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25
그는 나쁜 의미로 편집될 수 있는 질문들을 확실하게 잘라냈다. 그리고 피할 수 없을 땐 녹음기와 타인을 가까이 뒀다.
한 기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묻자 태화는 ‘효신 선배님께 인터뷰할 땐 본인도 녹음하는 것이라고 배웠다.’라 답하며 아이처럼 뿌듯해 했다고 한다.
너무 해맑은 모습이라 당한 기자들도 그가 정말 자신들을 경계하는 건지 확신을 갖지 못했다.
몇 개월 뒤 도착한 영화 시사회 초대장이 아니었다면 태화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감 좋은 놈’으로 끝났으리라.
그러나 그가 심계에 능한 것을 깨닫고, 해조에 이어 살인마 연기마저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을 보며 태화라는 이가 함부로 건드리기엔 지나치게 큰 먹이임을 느꼈다.
연예계 기자들은 소신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종이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그러하듯 위험에 민감했다.
그들에게 대부분의 연예인은 언제든 루머를 퍼뜨려 흠집 낼 수 있는 딴따라였지만, 그런 딴따라 중 상위에 있는 ‘진짜’들은 대중의 외면 없이는 건드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태화는 그들과 비슷한 냄새가 났고, 당연히 기자들도 슬금슬금 꼬리를 만 채 화친을 요청했다.
대중들이 모르는, 그와 기자들 간의 작은 신경전과 그 결과였다.
‘그리고 진짜 그렇다는 걸 오늘 증명해냈지. 최강원보다도 유력 후보로 꼽히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혼자 생각을 하던 사진기자는 포토존에 선 태화를 몇 번 더 카메라에 담았다.
고급스러운 옷감은 불빛을 부드럽게 반사했고 그 선 또한 정교하게 이어져 그의 실루엣을 아름답게 드러냈다.
너무 과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몸은 옷의 완성은 옷걸이임을 증명했다.
‘해외에서 수상도 여러 번 한 디자이너가 보낸 거라던데, 더럽게 잘 어울리네.’
해외의, 그것도 어느 정도 명성 있는 디자이너의 맞춤복은 고작 1년 반 정도 된 배우에겐 조금 과했다.
아마 5월 시상식에 저런 의상을 입었다면 건방지다는 의견이 은연중 깔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신인상도 아닌 주연상 후보였고, 주요 상 후보인 만큼 그 정도는 흠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양복이 지나칠 정도로 잘 어울려, 욕하는 쪽 꼴이 우스울 수준이었다.
‘무슨 귀족이냐고······.’
살짝 클래식한 상의 디자인은 조끼까지 갖춰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주제에 옷감이 온몸에 휘감기듯 가볍게 달라붙어서, 세련된 느낌도 놓치지 않았다.
진한 쪽빛은 일견 검어 보이면서도 빛 아래에서는 은은한 푸른색을 드러내 검은 정장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이십 대 다운 젊음을 표현했고, 바지 밑단과 구두 사이로 빼꼼히 나타난 복사뼈는 묘하게 하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금욕적이면서도 우아하고 그 싱그러움이 그림에서 막 나온 것 같아, 그의 팬이 아니었던 이들도, 화장빨 뿐이라며 외모를 헐뜯던 이들도 그가 계단 너머로 사라지기 전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재미있네. 딱딱할 줄 알았는데.’
그 권위만큼이나 엄숙하게 진행될 줄 알았던 무대는 생각보다 웃음이 많았다.
그렇다고 진행자가 억지스러운 상황극을 벌여가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차분하면서도 긴장감 적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긴장돼?”
바로 옆 좌석에 앉은 강원이 고개를 돌려 소곤거렸다.
백종 때와 달리 영화관처럼 일렬로 이어진 배치였기에 작은 목소리임에도 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형님은요?”
“뭐 받으면 받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덤덤한 그의 말에 태화는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며 감탄했다.
“역시 몇 번 상 받아보신 분은 여유롭네요.”
“넌?”
“저야 오늘 쩌리죠.”
신인상도 아닌 남우주연 후보라 아주 마음이 편하다고 태화는 배시시 웃었다.
“······.”
사실 강원은 이번엔 이름을 올렸을 뿐, 자신이 상 탈 확률은 희박하다는 걸 알았다.
집에서 대기 중인 딸들이 ‘아빠 상 타와요!’라고 앙증맞은 응원을 건네 기쁜 것관 별개로 말이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인물이 태화라고 생각했다.
‘······얘만 모르고 있을지도. 애가 연기할 땐 안 그러는데 묘하게 맹하단 말이야.’
‘괴물’은 1부에서 조명상을 탔고, 촬영상과 편집상, 최다관객상도 탔다.
감독상에선 안타깝게 시상을 놓쳤지만 다들 이번 주인공이 ‘괴물’이라는 건 눈치 챘다.
그리고 남우주연과 최고 작품상의 영예도 누구의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지난 회 남우주연상의 주인공, 박현호씨가 이번 시상을 도와주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박현호입니다.”
현호의 인사와 함께 비명 같은 환호가 배우들의 뒤편에서 울려 퍼졌다.
1부가 끝나고 아이돌의 축하무대가 있었을 때보다 훨씬 열렬하며 강렬한 울부짖음이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한 것인지 현호는 여유 있게 미소를 짓곤 짧은 멘트를 진행자와 나눴다.
짤막한 영화 장면과 함께 후보들의 소개가 끝나고, 다섯의 얼굴이 무대 뒤편 스크린에 비쳤을 때.
“괴물, 이태화. 축하합니다.”
태화의 얼굴이 떠 있는 화면을 제외한 나머지 화면 속 배우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응?”
“축하한다.”
“어, 형님?”
“축하드려요.”
“진짜요? 진짜 저요?”
“나가봐.”
강원이 어깨를 떠밀자 태화는 약간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 주변인들과 포옹하고 악수를 하며 붉은 카펫 위로 올라섰다.
마침내 무대까지 올라온 그는 한 손에 트로피를 든 채 키보다 짧은 마이크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밤이네요.”
여전히 부유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태화는 얼떨결에 창룡제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말 중 하나를 내뱉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진 것과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 건 거의 동시였다.
끝
ⓒ 마늘소금
11월 창룡영화상의 시상식이 끝나고 태화의 지인들은 그를 ‘아밤이’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밤’의 준말이었다.
태화를 놀린 건 비단 그의 지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시상식이 종료된 후 열린 축하 리셉션에서, 그에게 다가온 이들이 다 한 번씩 웃으며 ‘아름다운 밤이 맞는 것 같네요’와 같은 농이 섞인 인사말을 건넸으니 말이다.
그중 태화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이는 브루투스와 같은 여인, 효신이었다.
그녀는 내년쯤이면 이 놀림이 가라앉을 거라 애써 위안하는 그에게 ‘내년 핸드프린팅에 넌 거의 확정인데?’, ‘너 내년 시상자로 나가면 네 올해 소감을 그 자리에서 생생하게 틀어 줄 텐데?’와 같은 말로 잊고 싶은 사실을 친절하게 되새겼다.
그나마 개인 톡이라면 나았으련만, 효신은 술 모임 단체방에서 대놓고 태화를 놀렸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문자 옆에 붙어 있던 숫자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ㅋㅋㅋㅋ’이란 글자들이 차례차례 효신의 문자 아래를 채웠다.
톡방의 인원 중 일부는 ‘우리 막내 불쌍해서 어떡해?’라는, 모로 봐도 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위로까지 남겼다.
물론 그런 해프닝과 별개로 그의 남우주연상 수상 소식은 상당한 여파를 만들었다.
다음 작품을 함께 해 보고 싶다고 다가오는 감독들.
괜찮은 대본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보내 주고 싶은데 어디로 보내면 되느냐 묻던 작가들.
미소를 띤 채 은근슬쩍 다가와 그를 탐색하던 배우들.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 이태화’의 가치를 평가하고 거리를 조절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일어났을 변화가 순식간에 이뤄진 터라, 태화는 중심을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서 필요한 꽃가지들만 그러모을 수 있는 시간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협력자들’의 미팅은 적절한 시기에 이뤄졌다.
또한 그 장소가 한국의 관계자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중국이라는 게 그를 안도케 했다.
***
「죄송합니다. 이쪽에서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어느새 소수와 다수로 나눠진 일행들 중 태화는 소수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수는, 현재 얌전히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붙잡혀 으슥한 복도를 지났다.
태화는 전과 달리 긴장감마저 흐르는 일행들을 둘러봤다.
딱딱하게 굳은 인물들 사이에서 홀로 태연한 박현호의 얼굴이 하얀 천 위의 잉크 방울처럼 눈에 띄었다.
「밖에 사람 많나요?」
태화는 이어폰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복도는 너무나 조용해 어떠한 소란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경호원들의 이어폰에서 나는 소음뿐.
너무나 조용하다 보니 정말 게이트 바깥쪽에 엄청난 인파가 몰린 것인지 의심됐다.
‘그래도 함부로 이 통로를 내주진 않았을 테니 거짓말은 아닐 거고······. 음, 대충 인기 아이돌들이 방중(訪中)했을 때 모인 인원을 떠올리면 되나?’
태화는 여러 연예인의 입국 동영상에서 봤던 환영 규모와 숫자를 떠올렸다.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찬 팬들, 함성, 그리고 최선을 다해 공간을 확보하는 경호원들과 유유히 지나가던 연예인들이 상상했으나,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질서 없이 흥분에 찬 인파라는 게, 상당히 추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태양을 품은 바다’ 때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렸을 거란 건 머리로 알아도 모습을 그리긴 힘들었다.
‘음······. 친한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곳도 없고.’
태화는 몇 분 전 생이별해야 했던 제작진과 배우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중국 공항 측이 VIP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언급한 이는 박현호와 태화뿐이었다.
같이 온 배우 중 몇몇은 그 점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 보였으나, 함께 VIP 통로로 이용한다 말하는 대신 스텝들과 함께 일반 통로로 사라졌다.
그렇게 데면데면하기는커녕 냉랭하기까지 한 관계다 보니 그는 ‘밖의 상황이 어떠냐?’라고 물어볼 이가 없었다.
‘따로 비즈니스석을 이용해서 그런가? 하지만 BGA 측에서도 이번엔 안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고 해서······.’
삼국 인물들이 모여 촬영하니 한국 배우들끼리라도 똘똘 뭉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벌써부터 묘한 삐꺽거림이 느껴진다.
잠시 고민하던 태화는 태연하고 긴장 한 톨 없는 현호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쩌겠어.’
촬영에 지장만 안 간다면 미워하고 증오해도 상관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감정이 촬영장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자칫하면 촬영이 지연될 수 있게 표출되어 화를 내는 것이지, 그는 공과 사만 구별한다면 남이 자신을 미워하든 무서워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발목을 잡으려 들지만 않으면야.’
저런 부정적인 감정을 카메라 앞에서 연기로 표현해 준다면 오히려 기껍다.
회귀 후 스물다섯을 넘어 스물여섯이 된 지 반년이 지났음에도, 태화는 여전히 연기를 위주로 생각하는 연기 바보였다.
***
‘으아아······. 일반 입구는 완전······. VIP 통로로 이동해서 다행이네.’
현규는 차게 질린 자신의 손가락을 주물렀다.
과거 안일했던 자신의 태도를 떠올리고 그는 이번 중국행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공항 측에 경호와 특수 출입구를 신청하는 한편, 개인 경호원을 따로 고용하고 호텔도 보안을 가장 우선순위로 신경 쓰며 일정에 맞는 동선을 짰다.
물론 그런 준비의 대부분은 더 급이 높은 스타, 박현호와의 동행 때문에 상당수 무의미해졌지만 말이다.
월드 스타의 등장에 중국 공항 측은 이미 ‘협력자들’의 제작 팀이 들어오는 날 VIP 통로의 사용을 허가해 둔 참이었다.
중국 측은 타국 스타들의 신변에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며 평소보다 많은 경호원을 고용한 상태였고, 빵빵한 자금을 앞세워 주연들에게 최고급 호텔을 제공했다.
그러한 변화를 보며 현규는 이름값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는 슬쩍 시선을 내려 기내에서 친해진 스텝이 보내 준 사진을 바라봤다.
좀비처럼 손을 뻗고 있는 엄청난 인파와 그들을 밀치며 공간을 확보 중인 경호원들, 그리고 한껏 한류 스타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배우들.
동영상이 아닌 고작 사진 한 장인데도, 비명과 환호가 시끄럽게 그의 귓가를 울렸다.
‘진짜 이쪽으로 안 가서 다행이다······.’
“태화야, 떨리지 않아?”
태화의 매니저 생활을 하며 약간의 성장을 거친 현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의연한 척 물었다.
물론 너무 핏기가 없는 터라 긴장한 것이 확연히 티 났지만, 그는 자신이 상당히 침착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믿었다.
“떨릴 게 뭐가 있겠어요. 이쪽으로 가면 바로 차량 탑승 입구라면서요? 오히려 여기까지 찾아오신 팬분들이 많은데, 만나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네요.”
그리고 진심으로 의연한 자신의 배우를 보고 탁 힘이 풀렸다.
“하하하, 담대한 건 좋은 거지······.”
현규는 힘없이 웃었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 긴장한 자신과 달리 두 배우는 아주 느긋해 보였다.
아니, 현호는 당연하다는 듯 보였고, 태화는 그 많은 팬들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며 현규는 긴장한 채 이어폰에 집중하고 있는 경호원을 응시했다.
어느새 입구에 도착했음에도 그는 별말 없이 일행을 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