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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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는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건물을 둘러봤다.
3층 높이의 건물은 건물이라기보다 거대한 상자를 닮았다.
층 구별을 도와주는 페인트 선이 따로 없었고 1층으로 보이는 높이에 위치한 창문을 제외하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작은 창들이 마치 띠처럼 건물의 위쪽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는 그 불균형의 이유를 건물에 입장한 뒤 깨달았다.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넓게 느껴지는 공간은 시리도록 푸른 녹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창문들이 전부 불투명하고 최소한으로만 존재한 건, 이 공간이 자연광과 친하지 못한 장소이기 때문이리라.
바로 이곳이 ‘협력자들’ 촬영의 핵심 장소, CG 스튜디오였다.
주 무대가 될 장소는 단순히 녹색 벽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부서진 다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녹색의 거대한 오브젝트, 회의실을 입히려는 듯 회색의 긴 테이블이 놓인 공간, 작중 적대 세력인 외계종의 시체 모형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건물 잔해가 적절하게 섞여 쌓인 산까지.
마치 녹색으로 칠한 테마 파크처럼 다양한 소도구와 녹색을 뒤집어쓴 거대 틀들이 그들을 반겼다.
‘이걸 삼 개월 만에 만들었다니······. 안전은 괜찮은 건가.’
감탄을 터뜨리던 태화는 곧 이곳이 중국이란 점을 떠올리고 약간 불안한 눈으로 건물 안을 살폈다.
멀쩡해 보여도 혹시나 촬영 도중 무너지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아니야. 그래도 국가가 끼어든 프로젝트인데 날림 공사를 할 리가.’
그는 망상을 잊기 위해 고개를 털었다.
중국은 공화국의 탈을 쓴 독재 국가였고, 정부의 입김은 그만큼 강력했다.
아무리 철근 대신 대나무를 쓰고 창문을 다는 대신 그림으로 때우는 동네라도, 고위층이 관심을 가지고 성공시키려는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제야 긴장을 푼 태화는 조금 느긋해진 마음으로 각각의 도구와 장애물들이 어떤 장면을 위한 장치인지 천천히 짐작해 봤다.
“안녕하세요! 통역 겸, 한국 팀 총괄을 맡은 김자건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모든 한국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쯤, 준비 중이던 이들과 섞여 있던 한 남자가 잽싸게 그들 앞에 나섰다.
그 서글서글하고 쾌활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총괄’이란 단어로 한국 팀의 속을 긁었다.
“오늘 하루 이들을 ‘통솔’하고 있는 ‘총괄자’ 홍위환입니다.”
자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쪽에 있던 홍위환이 한 걸음 더 나와 일행의 가장 앞에 자리했다.
한국 측을 대표할 사람이 누구냐고 중국, 일본 관계자들에게 묻는다면 열의 여덟은 박현호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로서면 모를까, 인간으로서의 현호는 호불호가 극단적인 갈렸다.
때문에 현재 한국인 무리에서 가장 존중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자라 천대받는 스턴트계의 큰아버지(代父), 홍위환이었다.
‘홍위환 선생님이라면 믿을 수 있지.’
‘감독님이 나서 주셔서 다행이네.’
한 분야의 대종사가 되기 위해선 착하고 악한 것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정치 감각이 필요했고, 위환은 가장 바닥에 깔려 이리저리 치이는 이들을 지켜 가며 조금씩 그들의 권익을 상장시켜 온 인물이었다.
주머니 속 송곳답게 세계를 상대로 액션을 사사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한국의 쟁쟁한 배우들 또한 그에게서 ‘시각적 즐거움을 자극하며’ 움직이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기에 아무런 합의 없이 위환이 앞으로 나섰음에도 그 점에 불만을 가진 이는 없었다.
‘분위기 안 좋네.’
양국의 신경전을 보며 태화는 작게 혀를 찼다.
정식으로 대면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다.
기 싸움이 치열할 것이란 예상은 했으나 만나자마자 칼날이 선 대화를 주고받을 줄은 몰랐다.
‘이래서 이번 만남이 결실을 맺을 수는 있으려나.’
이럴 시간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 CG를 구성할 것이고, 그를 위한 준비는 어디까지 되었으며, 대사는 어떤 상황에서 어느 언어로 할 것인지 논의하면 좋았을 텐데.
태화는 이번 영화를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연습으로 채운 채 생활했었다.
그런 생활에 불만은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영화 외 부분에 더 신경 쓰는 걸 보면 속이 꼬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나서 주신 덕분에 중국이 시비 거는 건 좀 줄어들 것 같······.’
“현호도 아닌 홍 선생님께서 나설 줄이야.”
대치 중인 두 그룹 사이를 힘 있는 미성(美聲)이 갈랐다.
중국의 총아, 태생부터 완벽한 배우 쑨다오밍이었다.
“······오랜만이군요.”
“그 더운 LA에서 본 게 2년 전이었으니 참 오랜만이네요.”
그는 능숙한 한국어로 위환과 인사를 나눴다.
한국 측은 시종일관 웃는 다오밍을 보며 드디어 이런 지지부진한 신경전이 마무리되고 적당한 선에서 분위기를 누그러트린 뒤, 본제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오로지 감 좋은 몇몇만이, 그의 미소가 조금 섬뜩하다 느끼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께 배운 동작이 관객들에게 참 호평을 받았죠.”
“쑨다오밍 씨가 잘 따라와 준 덕분입니다.”
“둘의 합작이라고 하죠. 선생님의 도움이 컸으니까요.”
그런 불안을 비웃듯 다오밍은 위환의 공로를 강조했다.
그가 없었다면 그런 액션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확언하고, 겸손할 필요 없다며 위환의 대단함을 떠들었다.
그런 화기애애함이 지속되자 긴장했던 이들도 자신들이 과민했다 생각하며 마음을 놓았다.
아니, 놓을 뻔했다.
“그런데 선생님, 중국도 홍콩을 중심으로 한 저명한 무술 감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요.”
악수를 나누던 다오밍은 돌연 분위기를 바꿨다.
변검(??)을 선보이듯 너무나 순식간에 변한지라, 둘을 응시하던 한국인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그냥 선생님 명성을 생각해서 저희도 대접해 준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서는 건 몹시 보기 안 좋다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네 이름값을 생각해서 친히 불러 주고 후학을 데려오는 것까지 봐줬는데 건방지게 어디까지 하려 드는 것이냐.
쑨다오밍의 칼날은 매서웠다.
끝
ⓒ 마늘소금
쑨다오밍은 대놓고 한국 측이 인정한 대표를 찍어 눌렀다.
그리고 중국의 스텝들은 그런 그의 행동을 곤란해 하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심적으로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그 행동의 뜻을 이해 못 할 한국이 아니었고 분위기는 상당히 냉랭해졌다.
“글쎄요. 필요하니 절 부른 것이고 저 또한 필요하니 다른 이들을 요청한 것이겠지요.”
“이런 실례 했군요. 아시다시피 중국의 액션은 그 역사가 남다르지 않습니까?”
전혀 실례하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다오밍은 위환의 말을 받았다.
그가 말한 ‘중국의 액션’은 홍콩을 말하는 것으로, 그 말 그대로 홍콩의 스턴트 계는 인프라 자체가 한국과 달랐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홍위환이 해외에 연고가 없는 무술감독들을 굳이 스턴트맨이란 딱지까지 붙여가면서 데려온 이유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영화 제작사와 여러 번 합을 맞춘 위환은 그 말에 콧방귀를 꼈다.
“역사가 길어봤자 지금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인간은 거의 없는 데다 이럴 때 아니면 본토랑 친하지도 않은데 끌어들이기는.”
그는 작게, 그러나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을 크기로 중얼거렸다.
중국은 홍콩 영화와 중국 영화, 그리고 대만 영화를 한데 묶어 ‘중화권 영화’라 부르며 ‘하나의 중국’, 모두가 ‘같은’ 중국 영화이며 공동의 시장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본사와 지사, 영업 1팀과 3팀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특히 본토의 영화 산업이 커지고 일부에 한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자 홍콩의 배우들은 먹고살기 위해 본토로 전향하거나 국적을 바꿨다.
물론 양쪽에서 활동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명해졌을 때, 그들은 어느 쪽에 남을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홍콩 영화계가 볼 때 중국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자신들의 시장 침체가 가속화되고 관에 못까지 박혔다. 좋아하는 게 더 이상했다.
중국 시장의 규모가 커져 돈벌이가 되는 곳이 아니었다면, 홍콩 영화계는 애증이 아니라 대놓고 중국을 미워했으리라.
중국도 중국 나름대로 몰락한 주제에 콧대 세우는 변두리의 홍콩 영화계를 그다지 달가워하진 않았으나, 그들의 선진 스턴트 시스템만은 존중했다.
아니, 존중했다기보다 좀 괜찮게 완성된 액션 배우가 있으면 쏙쏙 빼먹었다.
위환이 꼬집은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었으며 다오밍은 뻔한 사실을 부정할 길이 없어 입술을 비틀었다.
“이들을 데려온 것은 나에게도 수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쑨다오밍에게 한 방 먹인 위환은 담담하게 다른 스턴트맨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잠시 할 말을 고르던 다오밍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긴, 선생님도 연세가 있으셨죠.”
스턴트맨은 강직한 몸이 곧 밑천이다. 늙었다는 것은 이제 한물갔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렇죠, 그러니 내가 지시한 대로 시범을 보여줄 이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위환은 그 말을 반박하는 대신 다른 이들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데 써먹었다.
자신의 위신까지 일부 깎아 먹으면서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는지 다오밍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당황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감정이 정리되기 전, 위환은 쐐기 박기를 시도했다.
“해영아.”
“네! 감독님!”
발랄하게 대답한 20대 후반의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무술팀의 홍일점이자 홍위환 감독의 첫째 딸인 홍해영이었다.
그녀는 무술 계열 학과를 나오는 대신 컴퓨터학과에서 CG와 그와 관련된 기술을 전공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제작되는지, 어떤 움직임이 어울리는지, 어떤 효과와 동작의 상성이 좋은지 등을 심층적으로 공부했다.
무술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특이했지만 위환은 그것이 ‘미래’의 액션 영화 시장에선 무시 못 할 부분이라 예상하며 딸을 훈육했다.
그 결과, 해영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액션 검수를 맡는 몇 안 되는 무술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위환이 ‘혹시나 필요할지 모를’ 과시용 카드로 데려온 인물이었다.
“잠시 컴퓨터 좀 빌려도 괜찮을까요?”
해영은 당당하게 중국 인사들을 밀어내고 지금껏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놨다.
멀뚱히 국가 간의 신경전을 지켜보고 있던 태화는 검은 가방 안에서 나온 장비에 할 말을 잃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휴대용보다 크고 아름다운 랩톱, 성인 남성의 주먹 두 개를 이어붙인 크기의 상자들, 가정용 전자 기기에서 쓸법한 굵은 선, 병원에서 무언가를 검사할 때 본 것 같은 작은 패치들까지······.
그녀는 능숙하게 장비들을 본 컴퓨터에 연동하고 조작한 뒤 자신의 얼굴과 몸 일부를 패치로 덮었다.
“원래 CG라는 것은 화면미가 중요하니까요. 다들 저보다 이쪽을 봐주세요.”
해영이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연동한 모니터를 가리키자 사람들의 시선이 화면으로 옮겨졌다.
바로 말을 통역한 자건 덕분에 중국인들도 묘한 눈초리로 화면을 응시했다.
“제가 카메라 앞으로 가면 이대로 조작 좀 해주시겠어요? 네, 그렇게요.”
준비를 마친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서서 몇 가지 동작을 선보였다.
무술을 전문으로 한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어딘지 맥아리가 부족한 미묘한 행동들이었다.
「저런 것도 지시가······.」
약간 비웃음을 띠며 해영의 행동을 바라보던 중국의 스텝이 화면에 뜬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CG 작업은 리얼리티를 위해 여러 레이어를 사용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기에 실시간으로 CG 입힌 상태를 화면에 띄우는 것은 작업 전, 기본적인 형태만 확인하기 위한 데모에 가까웠다.
그러나 데모의 특성상 미완의 형태일지라도 완성본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현재 해영이 짜온 프로그램은 시범만을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화면에 떠오른 그럴듯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보며 침묵했다.
CG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자신하던 중국도 CG를 위한 액션이 이 정도로 다를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초능력이나 초자연적인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에서 준비한 특수촬영은 대부분 배경에 치중하고 있더군요. 그 부분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 준비해 봤습니다.”
“그렇······군요.”
“할리우드에서 작업했던 쑨다오밍씨라면 알겠지만, 그쪽은 중국과 같은 화려한 무술이 부족한 대신 이런 쪽으로 발달했죠. 어설픈 부분을 보완하기 좋으니까요.”
“······.”
다오밍은 위환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이해했다.
중국은 대인원이 나와야 하는 장면을 실제 사람들을 동원하여 찍는다.
그들의 대다수는 일용직이었고, 그렇다 보니 질적인 면에서 애매한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약간의 동작을 지시받는다면, 그 후 그래픽의 도움을 더한다면 역동적이면서도 화려한 전쟁 신이 만들어질지 몰랐다.
“물론 이건 엑스트라 쪽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입니다. 주연들의 경우 입장이 다르죠.”
1차 적으로 중국 액션에 부족한, 아니, 생각하지 못한 점을 꼬집은 위환은 슬쩍 시선을 돌려 태화를 힐끔거렸다.
사실 그의 원래 계획은 해영뿐이었다.
그럴 일은 적어도 중국이 한국의 스턴트들에 대해 왈가왈부할 경우를 대비한 적당한 보여주기.
하지만 대표할 이가 참석하지 않고 얼떨결에 그가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나까지 공격당했으니 내 가치도 증명해야 하지······. 일이 더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