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37
철 부분이 뜯겨져, 단순히 종이들을 잡는 역할밖엔 할 수 없는 서류철이었다.
“뭔데?”
“네 매니저도 구하기 힘든 정보.”
그 짤막한 설명에 호기심이 들어, 태화는 안에 든 종이뭉치를 꺼냈다.
기대하게 한 것과 달리 종이 위에는 어딘가의 댓글로 보이는 문자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거 댓글 아니야?”
“회사 익명 게시판 글들이야. 너랑 관련된 것만 추려왔어.”
“설마······?”
댓글을 읽던 태화는 왜 그가 매니저도 못 구할 정보라 떠들었는지 이해했다.
서진 전자의 인트라넷 적힌 내용이니 현규가 알아내는 게 더 문제였다.
‘이거 내부 보안 아닌가?’
“문제 될 만한 건 한번 거른 다음 모아온 거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읽어.”
“······오냐.”
이젠 보지 않고 독심술까지 해내는 친구의 말에, 태화는 안에 적힌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이번 공채 신입들이 미칠 듯이 부럽네요. 나도 신입하고 싶다. 월급은 빼고.] [속보! 항상 프리랜서로 일 받던 오성윤씨가 이번에 입사한다고. 소속되는 대신 신입 교육용 영상을 달라고 딜 걸어서 엄청 고민 중이라 함!] [정보 은근히 샌듯, 지금 경력으로 들어와야 하는 프리 분들 문의가 꽤 많아서 보안 점검 들어간답니다. 자수해서 광명 찾으세요.]인하가 본인의 기준으로 뽑은 탓에 태화가 바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앞뒤 맥락을 보고 대략 유추할 수 있는 정도였다.
대부분은 자신들도 보지 못하는 영상을 보게 된 후배들을 부러워하는 내용과, 그러니 오자마자 굴려주겠다는 치졸한 악의, 마지막으로 신입 연수 도우미에 뽑혀보겠다고 치열하게 다짐하는 글들의 나열이었다.
[이번 부서 간 도우미 지원자들 경쟁이 엄청 치열하네요. ㄷㄷㄷ 옆에 있는 이 대리가 눈 번뜩이며 자원하는 거 보고 소름이······.] [박 대리님 우리 이따가 좀 보죠?]“······이 박대리란 사람 어떻게 됐어?”
“박대리? 글쎄 나도 모르지?”
한창 글을 읽던 태화는 친구의 무정함에 고개를 저으며 잠시 스쳐 간 박대리라는 이의 명복을 빌어줬다.
역시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는 넓고도 좁은 법이라 말을 조심해야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입사한 김하나입니다! 으아아 떨리네요! 잘 부탁드려요! 연수 영상 보고 살아있길 잘했다고 느낀 건 처음입니다 ㅠㅠ] [목소리 진짜 대박이었어요! 무슨 다크 초콜렛인줄!] [신입 사원 분들. 선배 도발하는 솜씨가 서진에 어울리게 수준급이시네요. 환영합니다 하.하.하.]‘아, 그러고 보니 벌써 6월 지나서 상반기 공채도 끝났겠구나.’
다섯 장 중 한장에는 이번에 새로 들어오면서 태화가 촬영한 안내영상을 본 이들의 감상이 나열되어 있었다.
촬영할 때만 해도 거의 1년 뒤에 사용될 영상이라 까마득하다 여겼던 그는, 새삼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꼈다.
‘육 개월 동안 영화 찍다보니 진짜 훌쩍이네.’
일년이 반 이상 지났다는 걸 실감하자, 태화는 내일이라도 현규를 재촉해 차기작 리스트를 받아봐야겠다 결심했다.
일주일 전엔 영 괜찮은 작품이 없어서 보류했지만 슬슬 또 다른 시놉시스와 제의가 쌓였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머지 글들을 읽는 사이 자동차의 진동이 멎었다.
태화는 회색 기둥 너머로 보이는 환한 사인을 보고 눈을 깜빡혔다.
퓨쳐 시네마.
현재 ‘협력자들’의 배급을 맡은 퓨쳐 엔터테인먼트의 영화관이었다.
끝
ⓒ 마늘소금
“안 내려?”
솔직하지 못하고 고집 센 성정 탓에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인하는 상당히 눈치가 빨랐으며 가족이나 친지들이 원하는 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빠르게 잡아내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시사회에서만 영화를 본 걸 알고 같이 보자는 의미겠지.’
태화는 삼국의 시사회를 돌며 각국의 언어로 ‘협력자들’을 관람했다.
개봉하는 영화와 차이가 없는 만큼 더빙과 CG가 입혀지고, 화려해진 영상이 즐겁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를 영화로 온전히 즐겼냐 묻는다면, 답은 애매했다.
시사회의 목적은 관람이 아닌 홍보에 있었고, 일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이다.
풀어진 얼굴로 무방비하게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태화로선, 혹시라도 영화에 빠져 너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긴장해야 했다.
그런 그의 성격을 인하가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가타부타 말없이 태화를 영화관으로 끌고 온 것이리라.
표현방식이 제멋대로인 게 딱 인하다웠다.
‘하지만 좀 곤란한데.’
시동을 끈 채 내리라 재촉하는 인하를 보며 태화는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그라고 자신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맘 편히 보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주연으로 참여한 작품들이 소위 대박을 연달아 친 덕에 태화의 이름값만큼이나 인기도 올라갔다.
당연히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으며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효신 누님이나 강원 형님 말로는 그것도 1, 2년이면 안정돼서 영화관 가고 밥 먹으러 가는 정돈 괜찮을 거라 했지만······.’
물론 그 1, 2년이 지나고도 인기가 여전하다면 효신과 강원처럼 단골인 장소만 찾거나 방으로 이뤄져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놀아야 하는 건 같다.
달라지는 건 대중의 태도.
이미 그들이 오랜 시간 시달렸다고 생각해, 제 욕심 채우기 바쁜 대중들도 그때쯤이면 연예인을 배려할 줄 알게 됐다.
보고도 신경 안 쓰는 척해준다거나.
사인을 요구하더라도 남들이 주목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부탁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것들 말이다.
현재 뜨거운 감자인 태화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그가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면 누군가는 분명 소리를 지를 것이다.
곧 지나가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고, 일부는 그에게 다가올 것이다.
한둘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들은 곧 무리가 될 것이며, 그러다 보면 누군가 다치거나 사고를 당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태화는 어디에 가고 싶어도 규중처녀만큼이나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영화관 같은 사람 많은 장소를 준비 없이 덜컥 가는 건 무리였다.
거절의 뜻을 비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인하는 코웃음을 쳤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꼴 값 떠네’정도로 해석될 재수 없는 얼굴이었다.
“네 매니저 유능하더라.”
물론 그가 실제 그런 의미로 웃은 건 아니었다.
“내 매니저? 현규 형?”
“너랑 영화 볼 수 있냐고 물으니까 30분 뒤에 연락 준다더니, 진짜 30분 뒤에 연락해선 영화관하고 교섭을 끝냈다던데?”
태화에게 연락하기 전 먼저 현규와 연락을 했던 인하는 ‘오늘 어떤 어떤 일을 태화와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느냐?’라는 질문을 건넸다.
아무리 연예계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인기 있는 배우가 함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엔 애로사항이 있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하가 태화와 친한 사이임을 알고, 또 태화가 너무 갇혀있지 않길 바란 현규는 최선을 다해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교섭?”
“어. 이쪽으로 가서 직원 통로 이용하면 일반 관객들하고 만나지 않아서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더라.”
이곳은 얼마 전 태화와 다른 배우들이 시사회를 위해 방문했던 영화관이었다.
그때도 배우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직원 통로를 이용했었는데, 당시 영화관의 매니저가 태화의 팬임을 알아차린 현규는 태화의 취미를 떠올리곤 그에게서 따로 연락처를 받아뒀었다.
영화관 매니저 또한 좋아하는 배우의 매니저와 연락처를 교환해서 나쁠 건 없다 생각한 것인지 흔쾌히 자신의 번호를 건넸다.
소심하고 기가 약한 걸 빼면 우수한, 현규다운 대처였다.
“좋은 사람이랑 일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다들 잘 도와줘서 고맙지.”
“그러니 이제 가자. 좌석 예약도 끝나서 어두울 때 들어가면 돼.”
“그래요. 가요.”
보조석에 앉아있던 민영이 작게 추임새를 넣자 태화는 인하가 건넨 모자를 눌러 쓰곤 손잡이에 손을 걸었다.
***
-하, 이게 도대체······.
호영이 환장하겠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류와 외계종과의 전투는 인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지휘관급 되는 외계종들은 수호자들의 손에 썰렸고, 삼국 연합군의 활약에 남은 소형 외계종도 맥을 못 췄다.
유럽 쪽도 성공적으로 외계종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덕에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던 외계종은 대부분 섬멸됐다.
그들이 노리고 있던 기폭장치 또한 단신으로 둥지를 침입한 인간, 한상일에 의해 해체당했다.
그 동안 인류를 두렵게 만들었던 적들의 대패(大敗).
아직도 태평양에는 일본, 중국의 일부 지역과 북한을 날려버리고 미국에도 피해를 끼친 외계종의 무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중앙의 적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류는 자신감과 반격의 서막을 열었다.
물론 그런 좋은 결과가 모두의 행복을 의미하진 못했다.
호영은 시체가 되어 나타난 한상일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클로즈업된 그녀의 얼굴엔 절망과 슬픔, 그리고 원망이 서려 있었다.
외계종은 기폭 장치에 또 다른 함정을 설치해뒀다.
누군가 그들의 계획을 방해한다면, 그 존재만큼은 동귀어진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상일은 그 함정을 장치를 해체한 직후에야 눈치챘다.
당연 그의 앞에선 환한 빛이 터졌고, 그 순간 기지에서 기다리던 호영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기분이 들어 상일이 떠난 방향을 응시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 후, 자축하는 수호자들과 상일을 걱정하면서도 그들을 축하하던 호영이 모였을 때 도착한 그의 부고.
수호자들도 죽을 것 같지 않았던 브로커의 죽음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으며 한상일의 시체를 마주하고서야 그의 죽음을 인정했다.
-빌어먹을. 돌아와서 고백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평소에도 조곤조곤 욕을 하던 호영이 창백한 그의 뺨에 떨리는 손을 가져가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언제나 상일을 밀어냈던 그녀였으나 사실 그라는 가랑비에 젖은 마음은 차가운 동토에 새싹을 틔울 수 있을만큼 물러졌다.
그것을, 호영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입술을 깨물어 울음을 죽인 그녀는 눈에 흐르는 슬픔까진 막지 못해 희게 질린 그의 얼굴에 빗방울을 흘렸다.
-‘눈을 뜨지 않는 순간이 오면 키스해 달라’······. 하, 설마 그때 남긴 건 오늘의 유언이었습니까?
그녀는 과거 장면을 언급하며 상일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따로 화면이 페이드인 되진 않았으나 보고 있던 관객들은 그게 어떤 장면인지 바로 떠올렸다.
평소처럼 호영의 집무실에서 투닥거리던 그가 돌연 진지한 모습으로 무게를 잡으며 그녀에게 부탁했던 말이었다.
-······그래요. 멍청한 당신을 위해 그 정도는 해줘야겠죠.
화난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린 호영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죽은 이의 입술에 짧은 도장을 찍었다.
-잘 가······!
-그게 다야? 좀 섭섭한데.
그녀의 입술이 떨어지고 얼마 뒤, 아무 일 없었더는 듯 눈을 뜬 상일이 샐쭉 눈웃음을 치며 호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잡아끌어 갈증에 허덕이던 자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에 집착하듯 집요하게 호영의 입을 헤집었다.
‘······친구랑 보기 되게 부적절한 장면이네.’
태화는 스크린 속에 펼쳐진 지원과 자신의 열렬한 키스를 보곤 옆에 앉은 인하를 힐끔거렸다.
12세 이상 관람가를 목표로 했던 영화가 15세까지 올라가게 된 이유를 친구가, 그것도 커플로 와서 보고 있자 얼굴이 화끈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키스신을 촬영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겨울나기’에서 고백에 성공한 뒤 풋풋하면서도 머뭇거림이 섞인 키스를 나눴고, ‘구미호’에서도 도장과 같은 입술의 맞댐이 있으니까.
사실 이번 키스신도 호영이 먼저 보였던 짧은 입맞춤이 전부였다.
높으신 분들의 어깃장이 없었다면, ‘영화에 남녀가 나오면 당연히 끈적한 로맨스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란 말이 없었다면 참 산뜻하고 감동적인 장면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아니, 뭐. 저건 또 저거대로 좋다는 관객이 많지만······.’
관능적인 키스는 정사를 닮아, 보고 있던 이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태화는 앞좌석에서 들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상일의 정염(情炎)이 전염이라도 된 듯한 연인이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는데 시작이 시작인 만큼 기분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그러나 그 열정에 화를 당한 장본인은 상대의 뺨을 세게 밀어 불한당을 바닥에 뒹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곧, 한상일이 살아났다는 것을 깨닫고 놀람과 기쁨,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난 이제 너도 날 좋아하겠다, 키스도 했겠다 결혼 날짜만 잡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너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