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41
“으응? 누, 어, 어? 어! 진짜 태화 씨······?”
“······네.”
“어머, 미안해요. 너무 아이돌 같아서 같이 들어가는 조연인 줄 알았어.”
하라는 과거 만났던 그의 얼굴과 비교하며 ‘남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오민재로 꾸몄던 그가 ‘젊은 나이 성공한 인텔리계 야심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면, 현재의 태화는 ‘몽실몽실하고 반짝이는 실뭉치’였다.
‘아, 머리카락 살랑거리는 것 좀 봐. 쓰다듬고 싶어라. 우리 깐 달걀들도 저리 크면 좋겠네.’
그녀는 연기돌이라며 가수 업계와 배우 업계에 양다리를 걸치는 아이돌을 질색했다.
주변으로부터 들어온 편견도 한 가지 이유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요인보다, 자신이 들어간 작품이 아이돌의 발연기 탓에 망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다 보면 없던 적의도 피어나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 해서 하라가 예쁜 걸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군무를 펼치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을 좋아했다.
또한 연기 잘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후배도 좋아했다.
비록 나이는 동갑일지라도 말이다.
“태화 씨, 우리 말 놓지 않을래요?”
몽글몽글 피어난 호감을 숨기지 않은 채 하라는 살갑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기 외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태화가 그녀의 말을 선선히 들어줄 리 없었다.
하라는 재차 권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예계는 이게 아쉽다니까요. 일찍 데뷔해서 또래라 할 사람들은 다 후배에, 친해지고 싶은 이들은 이리도 올곧으니 말이죠.”
배우 업계는 아이돌 업계보다 나이 서열이 엉망이었다.
아이돌이 평균 만 17세에 정식으로 데뷔하는 것과 달리, 배우에겐 아역 배우라는 게 존재했으니까.
물론 은연중 아역 시절의 경험을 100퍼센트 인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히 아역 티를 벗겨 내지 못한 배우들에게나 붙는 잣대일 뿐, 성공적으로 우화(羽化)한 여배우, 하라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2년의 공백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함없는 진실이었으며, 그녀가 ‘캐트시’를 찍기 전 참여한 작품에서 ‘증명한’ 사실이었다.
“그래도 친구는 될 수 있겠죠. 그러다 보면 야자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사이좋게 감독님께 가 볼까요?”
“네, 선배님.”
살가운 미소로 권유하는 그녀를 보며 태화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또 꽤나······.”
미리 무대 뒤 대기 장소에 도착해 앉아 있던 장철진 PD가 인사 건네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뜬 채 태화를 위아래로 훑었다.
전에도 받아 본 적 있는 시선인 터라 태화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PD님은 한 번에 알아보시네요? 전 다른 배우인 줄 알았는데.”
인사가 무시당했음에도 하라는 불쾌함을 표현하는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람을 드러냈다.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로선 변장 수준의 태화를 알아본 게 신기한가 보다.
“PD가 그 정도 눈썰미 없었으면 나가 뒈져야지.”
과거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탓일까, 하라와 철진 사이의 분위기는 퍽 살가웠다.
하라는 재미있다는 듯 까르르 웃었고 철진은 그녀에게 ‘너도 신수 훤해졌네’란 덕담 같은 말을 남겼다.
‘아, 하라 선배 목소리가 조곤조곤하면서도 정감 있어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네.’
과거 시원하고 자신만만한 연기를 펼치던 하라는 휴식기 이후 둥글둥글하고 능청스러워졌다.
그것은 ‘여유’였으며, 때문인지 그녀는 ‘괴물’ 탈락 이후 들어간 SBC 수목 드라마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주요 조연이었던 그녀가 여주인공보다 더 자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종국엔 ‘네가 이긴 게 아니라 내가 남주를 포기한 거다’란 포스까지 퐁퐁 풍기며 시청자들에게 ‘그래요, 언니. 그런 똥차 버리고 우리 언니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소릴 들었으니 할 말 다했다.
장철진이 여자 주인공 ‘윤아리’역을 하라에게 우선적으로 제안한 것도 변한 그녀의 연기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는 눈이 좋은 그도 태화와 그녀가 인연이 있다고는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신승혁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마친 태화와 하라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려던 찰나, 활기 찬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갈랐다.
요즘 ‘나름’ 연기력 있는 아이돌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Exstar의 안무 담당이자, 입덕 요정 신승혁이었다.
90도로 인사를 한 뒤 샐쭉하게 눈웃음을 치던 그는 잠시 태화의 얼굴을 보고 멈칫하더니, 곧 만연에 웃음을 띤 채 PD를 시작으로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의 소개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신승혁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태화입니다.”
이윽고 태화의 앞까지 온 승혁은 작게 허리를 구부리고 악수를 청했다.
‘······되게 붙임성 있네.’
이 정도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는 처음인지라, 태화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떨떠름함을 감추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저 구미호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선배님! 이번에 찍으신 협력자들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완전 멋지셨습니다!”
“······고마워요.”
양손으로 주먹인지 엄지를 들어 올린 건지 알 수 없는 제스처를 취하는 승혁을 보고 그는 왠지 이번 촬영이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끝
ⓒ 마늘소금
아역인 유민후와 여자 주요 조연 송태연까지 도착해 인사를 나눌 때쯤, 앞쪽을 확인하던 경호원이 대기 장소로 들어왔다.
“기자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나갈 준비 해 주세요.”
“나가실 순서 맞춰 드릴게요! 먼저 신승혁 씨부터······.”
스텝이 정해 준 순서로 기다리다가 가장 마지막에 따라붙은 태화는 화사한 배경에서 시선을 돌려 정신없이 찰칵거리는 기자들을 향해 웃었다.
무려 3년 만에 있는 KBC 주말 특별 기획이다 보니 평소보다 많은 수의 기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중국에선 관심에 비해 이런 식의 일정은 적었는데.’
삼국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각각의 영화를 만든 일은 드물게 있었으나, 삼국의 배우들과 제작진이 모여 하나의 영화를 만든 것은 ‘협력자들’이 최초였다.
당연히 데이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중국 정부는 ‘그 어떠한 트러블이 있어도’ 7월에 개봉할 수 있도록 촬영과 관계되지 않은 일정들을 전부 크랭크업 이후로 빼 버렸다.
배우들의 취소할 수 없는 일정과 촬영을 병행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빠듯했던 터라 결과적으로 그들의 결정은 옳았다.
물론 일정 면에서 옳았을 뿐, 막상 크랭크업되었을 땐 ‘아는 사람만 아는 영화’가 되어 있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말이다.
그들은 UTV를 너무 믿었다.
시리즈화도 되지 못한 히어로 영화 주제에 이미 성세를 이룬 미국의 시리즈 히어로 영화처럼 영상만 올리면 저절로 입소문이 퍼질 거라 망상했다.
당연히 망상은 망상에 불과했고, 덕분에 ‘협력자들’의 주연 사인방은 개봉 전날까지 삼국의 주요 도시들을 뱅글뱅글 돌아가며 홍보전을 펼쳐야 했다.
다행히도 노력과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듯 첫 주 삼국 모두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거뒀으니, 해피 엔딩으로 끝난 이야기였다.
“‘캐트시: 고양이 요정’의 크랭크인 기자 간담회를 찾아 주신 기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화가 딴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중앙에 선 장철진은 매끄러운 멘트로 진행을 주도했다.
현장과 대기 장소에서 보였던 괴짜 같은 구석은 하나 보이지 않는 말끔하고 유능한 PD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송국 PD는 확실히 다르네. 아니, 실력 있는 PD는 다르다고 말해야 하나?’
힘 있는 그의 목소리에 정신 차린 태화는, 막힘없이 말하는 철진을 보며 살짝 감탄했다.
PD는 연예인이나 연설가가 아니다. 미리 할 말을 정리해서 외워 왔더라도 저렇게 많은 관심이 단번에 자신을 향하게 되면 위축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철진은 긴장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것은 익숙함에서 나오는 자세였으며 실수가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드라마로 만나 뵙는 건 일 년 반 만이네요. 여우에 이어 두 번째 드라마도 동물이라는 게 묘한 느낌입니다. 물론 이번엔 귀여운 고양이지만요.”
철진의 멘트가 끝나고, 조연들을 거쳐 마이크를 받은 태화는 작은 농과 함께 입을 열었다.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기에 기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또한 이렇게 반짝이는 역할은 처음이라 두근거리고요.”
태화는 ‘캐트시’를 읽었을 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평소라면 싱긋 미소 짓는 것으로 끝냈을 그가 그런 풋풋한 웃음을 흘린 건 반쯤 의도된 행동이었다.
‘캐트시’의 루이는 지금껏 맡아온 역할들과 궤를 달리했다.
외모에 큰 변화가 생겼을 뿐 아니라, 작중 인물의 행동과 사고방식 또한 이전의 역할들과 비교될 정도로 어려졌다.
그런 만큼, 한 달 뒤 ‘캐트시’를 시청할 이들에게 ‘젊다 못해 어리게 느껴지는 이태화’에 대한 이미지와 기대를 미리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농담도 그렇지만······. 연기 아닌 연기를 하는 것도 힘드네.’
아버지 우석보다 나은 수준이긴 하나 태화도 그리 살가운 성격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미지에서 올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순진하게 웃어야 했으니, 어색함을 넘어 잘하고 있는 건 맞는지 걱정됐다.
‘오민재는 충격을 줘도 어차피 그 한 편으로 끝나는 영화고 그게 목적이었으니까 이럴 필요 없었는데······. 역시 드라마가 영화보다 생각할 게 많은 것 같아.’
그래도 그것이 드라마의 묘미라 생각하며 태화는 적당히 멘트를 마무리하고 마이크를 하라에게 건넸다.
***
개개인의 소감 이후 질의까지 끝나자 포토 타임이 찾아왔다.
포토 타임은 회담 전 짧게 갖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작품에 아이돌이 껴 있는 경우엔 이런 식으로 마지막 순서로 미루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 더 오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니까.
“빵야 한 번만 해 주세요!”
어떤 기자의 요청에 하라와 태화는 작게 양손의 검지와 엄지를 들어 올린 채 기자를 바라봤다.
그런 둘과 달리 아역인 민후, 그리고 두 아이돌은 아주 당당하게 포즈를 잡았다.
특히 승혁은 앙증맞은 윙크까지 곁들여 ‘이것이 빵야다!’라는 걸 온몸으로 외쳤다.
아이돌들은 기본적으로 팬 서비스가 아주 좋고, 짓궂은 요청에도 능청을 떨 줄 알아야 하는 직업이다.
여기 온 기자들도 그것을 알았다.
항상 말쑥하고 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배우들과 달리 아이돌들은 훨씬 생동감 넘치는 자세를 곧잘 취해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가 반이나 된다면 배우들에게서도 재미있는 사진을 뽑아 낼 수 있다는 걸, 기자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트도 한 번 해 주세요!”
전에 없던 하트 요청까지 나오자 태화는 잠시 하라를 응시했다.
이런 경험이 없는 건 아닌지,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작게 하트를 만들었다.
잠시 다른 이들도 훑어본 태화는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하트 모양을 만든 채 방긋 웃었다.
태연은 하라와 같은 손 하트, 민후는 팔 하트, 승혁은 손가락 하트를 만든 터라 균형적으로 볼 때 손가락 하트가 전체 구성에 어울렸다.
“저기, 선배님.”
“네?”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던 태화는 기자들이 못 들을 정도로 작게 속삭여진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당당하게 포즈를 취하던 승혁이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눈웃음을 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 하트는 너무 커플 같으니까, 저랑 팔 하트 한 번만 안 하실래요?”
“·········네?”
“팬 서비스 할 때는 제대로 해야죠. 네?”
“······.”
갑작스러운 제안을 접한 태화는 슬쩍 하라를 쳐다봤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도와줘야 할 그녀는 흥미롭다는 시선을 한 채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것을 보며 그는 세상은 역시 홀로서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걸 꼭 해야 할까요?”
완곡히 거절 의사를 밝혀도 승혁은 물러서지 않고 샐그러지게 웃었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그런 포즈를 취하겠어요? 네? 선배님.”
“그래요······.”
태화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오른팔을 왼쪽으로 둥글게 말았다.
왼편에 서 있던 승혁도 희희낙락하며 오른쪽으로 손을 올렸다.
‘진짜 활달한 애네.’
그의 말대로 화보에도 쓸 수 없는 이런 포즈를 취할 대라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괜찮은 이런 드라마 기자회견장 정도다.
물론 그렇다는 것뿐이지, 그걸 실행하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
‘이런 건 연애할 때도 안 해 봤는데.’
학창 시절 짧게 사귀었던 경험을 돌이켜 본 태화는 곧 어색함을 지우고 자연스러운 미소로 카메라를 맞이했다.
어떤 사진이 찍힐지 모르는데, 계속 어설픈 얼굴로 플래시 세례를 받는 건 프로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흐, 잘 어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