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45
“어, 그러니까. 은인. 요샌 세상이 바뀌어서 고양이도 함부로 못 돌아다녀. 걸리면 야생고양이 보호시설로 옮겨졌다가 재수 없으면 안락사당하거든.”
아리와 연호의 눈치를 보던 루이는 슬금슬금 자신이 인간으로 돌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고양이의 모습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했다.
인간이 야생고양이로 신고해 버리면 관련 청에서 나와 고양이의 모습을 한 캐트시를 잡아갔고, 수컷의 경우 고자가 되는 일이 흔했다.
그렇다보니 루이가 살던 크레이그밀러 성 남쪽 떡갈나무 구멍 속 왕국의 전대(前代) 왕, 솔로몬은 구멍을 나간 왕국민들이 인간이 되도록 마법을 걸었다.
이 위대한 마법은 캐트시들의 생기를 바탕으로 하는지라 기력이 위험할 정도로 떨어지면 저절로 풀려버렸다.
루이가 빗속에서 고양이의 모습으로 추위에 떨었던 이유였다.
“엄마 저 사람 우리 뿅이야?”
“연호. 뿅이란 이름이 마음에는 들지만 나에겐 부모님께 받은 루이란 이름이 있어. 루이라 불러주면 좋······.”
“뿅아.”
“······응, 그래.”
순진한 모습으로 헤헤거리는 연호를 보고 루이는 자신이 뿅이라 인정했다.
“아들,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지 말랬지.”
“하지만 뿅이는······.”
“저 사람이 어떻게 뿅이야.”
아들이 너무 스스럼없이 낯선 이와 말을 주고받자 아리는 재빨리 연호를 끌어안았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아이였으나 연호는 발달이 조금 늦어 5살 정도의 사고력을 지녔다.
때문에 아이가 자신의 방을 원하며 엄마 품을 벗어나고 싶어 했을 때, 아리는 섭섭하면서도 연호가 제 또래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게 기꺼워 재빨리 이사했다.
그 주변에 살던 아줌마들이 연호를 모자란 아이로 봤던 터라 주거지를 옮기는 덴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 말 들어야지! 그리고 당신. 고양이인지 사람인진 관심 없으니까 이제 내 집에서 나가요.”
“어······. 은인. 도와주는 김에 조금만 더 도와주면 안 돼?”
루이는 풀 죽은 고양이처럼 시무룩하게 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잠시 마음 약해졌던 아리는 곧 품에 있는 아들을 껴안으며 단호하고 서릿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요. 됐으니까 얼른 나가요. 안 나가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연호를 단단히 품에 감싼 채 아리는 몽둥이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혹시나 달려들까 두려워하면서도 아이를 지키겠단 의도가 뚜렷이 보이는 행동이었다.
“은인, 화났어······? 아! 맞다! 내가 은혜를 안 갚아서 화난 거구나!”
그러나 루이는 밖으로 향하는 대신 생뚱맞은 말을 꺼냈다.
그는 잠시 자신의 몸을 뒤적이다가, 곧 이 옷이 아리에게 빌렸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만.”
키 큰 남자가 움직이자 아리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녀는 두려움을 쫓아내듯 더욱 표정을 굳힌 채 아이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줬다.
잠시 엄지와 검지를 마찰시키던 루이가 갑자기 손을 확 그녀에게 뻗었다.
놀란 아리는 질끈 눈을 감으며 연호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후회와 공포가 감돌았다.
“······뭐해 은인?”
“······어?”
너무나 선선한 목소리에 아리는 슬쩍 눈을 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내밀어 진 한 장의 카드를 봤다.
“이거! 내 사돈의 팔촌의 이종 사촌가 준 건데 한국 사람은 돈 되신 다 이걸로 해결한다며!”
“······이거 VT카드 아니에요?”
“그게 뭐야?”
그것은 VIP용으로 개설된 신용카드였다.
사용 한도가 없고, 오히려 월 100만 원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취소된다는 대단한 카드.
어제 루이를 줍기 전 직장 동료가 인터넷 서핑에 빠져 ‘아! 나도 저런 카드 한번 보고 싶다!’라고 장하게 떠들 때 언뜻 봤던 색과 로고, 그리고 무늬였다.
“······설마 필요 없어? 하긴, 이거론 빵 냄새나는 물고기도 못 사더라고.”
아리의 떨떠름함을 거절로 받아들인 그는 한층 더 시무룩해진 얼굴로 카드를 내렸다.
아니, 내리려 했다.
“자, 잠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루이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식탁 위에 올려 두었던 세금 고지서들을 향했다.
잠시 갈등하며 입술을 달싹이던 아리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은혜 갚는다면서요.”
“응!”
“그럼······. 아, 아니에요! 그냥 나가요!”
잠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던 아리는 반짝이는 그의 눈을 보고 이내 정신을 차리며 루이의 손을 내팽개쳤다.
쌀쌀맞게 쳐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한없이 슬픈 표정을 지은 채 시선을 내렸다.
“은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다니. 난 쓸모없는 캐트신가봐.”
“······갑자기 자기 비하는 왜.”
“이대로 가게 되면 난 어마마마에게 궁디 팡팡 당할 텐데.”
“······.”
루이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퐁퐁 솟았다. 그는 눈을 훔치지 않은 채 코를 훌쩍거렸다.
아이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한 루이는 곧 몸이 작아지더니 아리가 준 옷만 남기고 사라졌다.
“뿅아!”
놀란 연호는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옷 무더기를 파헤쳤다.
갑자기 일어난 비일상에 놀라, 아리는 아이를 잡아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엄마! 뿅이 아픈가 봐! 자면서도 계속 울어!”
“뭐······?”
남자가 사라진 줄 알고 있던 그녀는 연호의 말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들의 양손에는 머그잔에 쏙 들어갈 만한 작고 까만 고양이가 몸을 웅크린 채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분명 그녀가 어제 주워왔던 새끼 고양이 뿅이였다.
“진짜라고······?”
“엄마! 엄마! 어떡해! 뿅이가 눈물을 안 그쳐!”
“어, 어······. 일단 토닥여 줘보자.”
사람에서 고양이가 된 생물을 수의사에게 보일 순 없어서, 그녀는 멍청하게 그런 말을 뱉곤 부산떠는 아이를 바라봤다.
그녀의 대범한 아들은 사람이 고양이가 된 것에 어떠한 의문도 표현하지 않았다.
“······저기, 안녕하세요. 저 비서실의 윤아리인데, 오늘 몸이 안 좋아서 결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네, 헛것이 보이는 게 지금 바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감사합니다······.”
멍하니, 그러나 본능적으로 회사에 전화한 그녀는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고양이를 토닥이고 있는 아들과 이제야 눈물을 그친 고양이를 응시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남과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평범했던 삶에 고양이 한 마리가 끼어든 순간이었다.
***
“좋아, 오케이! 이제 1화 마지막 장면 준비하자고!”
컷을 외친 장철진이 오케이 사인을 내자 스텝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다음 장면을 준비했다.
“민후야, 너 연기 잘하던데?”
“······고맙습니다.”
“어머, 진짜야 누나 어릴 적인 이런 CG가 없었지만 그래도 공 하나 주고 그걸 동물처럼 귀여워하라 했으면 못했을걸?”
세트장 밖으로 나와 눈을 식히던 태화는 태연스런 하라의 목소리를 듣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루이가 고양이로 변한 장면부터는 태화가 아닌 작고 부드러운 타원의 공이 그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후 CG를 통해 고양이로 변할 물건이었다.
아까 긴장하다 못해 눈물을 흘렸던 민후는 그것을 정말 고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하며 잔망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그래도 한 번에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잘 하네.’
“눈은 괜찮아요? 저, 태화씨가 그렇게 확 울 줄은 몰라서 순간 대사를 잊은 거 알아요?”
아이를 한껏 칭찬해준 하라는 어느새 태화에게 다가와 그의 눈의 안부를 물었다.
수건에 감싸진 얼음팩이 그의 얼굴에서 떨어지자 하라는 살짝 웃었다.
“다행이다. 괜찮네요.”
“그리 많이 운 건 아니니까요.”
눈물 연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서러움과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이다.
눈시울이라는 것은 슬픈 생각만으로도 쉽게 붉어지고 눈물은 안약이나 CG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태화는 두 도구 없이도 훌륭하게 연기를 소화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펑펑 운 것은 아니었다.
“태화씨는 정말 연기를 잘하고, 민후도 이제 기운을 차린 거 같아서 아주 든든해요.”
“칭찬 감사합니다.”
오늘 일정은 사실 1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고 현재 완료한 부분을 찍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후가 ‘너무나’ 긴장했다는 것을 눈치챈 철진은 쉬운 부분부터 가자며 2화의 첫 부분을 우선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퍽 성공적이라서, 어느새 기운을 차린 민후는 성인 연기자들만큼이나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태화씨는 이번 촬영이 오늘 마지막이죠?”
“네. 아, 선배님은 이후 회사 장면이 있다고······.”
“네에. 지금처럼 빨리만 끝나주면 좋을 텐데.”
다음 촬영으로 오늘 분량이 끝나는 태화와 달리 하라에겐 한 파트가 더 남아있었다.
드라마의 페이크 남자 주인공이자 아리의 상사 역인 공윤혁과의 호흡이 바로 그것이었다.
공윤혁 역을 맡은 승혁이 못 미더운 탓일까, 이후를 생각하는 하라의 얼굴은 흐렸다.
“지금은 다음 장면부터 생각해주세요.”
“아참, 미안해요. 태화씨랑 호흡을 맞추는 부분은 걱정되지 않아서.”
하라는 미안하다 사과했다. 아무리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어도 바로 다음 장면에서 호흡을 맞출 배우를 두고 그 이후를 먼저 걱정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딱히 기분이 상해 한 말은 아니었던 터라 태화는 가볍게 웃었다.
“걱정하시는 게 좋을 텐데.”
“네?”
“저 준비를 참 많이 해왔거든요.”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하라는 눈을 깜빡이며 태화를 응시했다.
***
빗속에서 고양이를 주워온 아리는 곧이라도 죽을 것처럼 헐떡이는 작은 생물을 자신의 이불 속에 넣었다.
“엄마, 진짜같이 자면 안 돼? 나 진짜 얌전히 잘게!”
“안 돼. 내일 아침이 되면 뿅이도 기운을 차릴 테니까, 그때 보도록 해.”
“흐엥······,”
연호가 엄마와 자고 싶어서 저런 투정을 부린 것이라면 그녀도 기껍게 아들과 잤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목표는 곧 죽어가는 고양이였고 그녀는 두 사람과 한 마리가 함께 자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시무룩한 아들을 침대에 눕히고 돌아온 아리는 밥을 먹고도 여전히 힘이 없는 고양이를 바라봤다.
“아주 애기는 아닌 것 같고······. 한 3개월쯤 됐으려나? 근데 되게 작네.”
새끼만큼이나 작은 크기지만 고양이는 털이 보송보송하고 귀가 활짝 열려있었으며 이는 꽤나 날카로웠다.
추운 것인지 여전히 떠는 고양이를 손으로 쓸어주며 그녀는 자신의 이불을 고양이와 공유했다.
아침이 되었을 때, 루이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상체를 일으킨 뒤, 입을 쩍 벌려 하품을 뱉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가 햇볕 아래 눈부셨다.
아리가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낯선 인기척에 눈을 비비다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교환하던 파란 눈의 남자는 곧 아리를 향해 배시시 눈웃음을 보냈다.
그리곤 다시 발라당 누워 그녀의 품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