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47
매니저가 바삐 움직이는 사이, 5화의 마지막 장을 읽은 태화는 축복을 실행했다.
끝
ⓒ 마늘소금
차 사고로 부모를 잃고 다리까지 잃은 태화가 멀쩡히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건 회귀 전 이미 차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운전 경험도 있었다.
물론 태화도 처음엔 차를, 심지어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고 몸을 굳혔다.
그러나 태화는 자신을 불쌍하게, 꺼림칙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더 싫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애인 관련 시설은 혐오시설처럼 생각되는 일이 잦았고, 따라서 그가 찾아가야 하는 장소들은 도시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찾아가기 위해선 개인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했다.
‘배우 이태화’가 아닌 ‘장애인 이태화’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기 싫었던 태화는 정신력으로 차에 대한 공포를 억눌렀으며, 결국 이겨냈다.
그렇게 그가 한계가 정해진 꿈과 망가진 인간관계를 가지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의외로 따뜻한 손길들이 태화를 반겼다.
봉사자들을 친절했고, 성태가 감독을 맡은 장애인 극단은 너그러웠으며, 사유만 잘 적으면 정부는 쉽게 자금을 원조했다.
누군가는 그 상냥한 세계에 취할지 모르나 태화는 기뻐하지 않았다.
이미 인간 불신이 깊어졌던 그에게 그 대부분은 위선으로 보였다.
게다가 웃음의 겉면을 흩어내면, 스무 살 이전까지 나름 곱게 자랐던 태화가 경험하지 못했던 밥그릇 싸움과 아귀다툼이 모습을 드러냈다.
5년간 독립했다고는 하나 꿈을 가지고 달리던 청년은 사회의 쓴맛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독립 당시 가장 힘든 것은 돈이었지만 그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연기에 푹 빠져 살아서, 힘든 것도 사회의 치열함도 부분적으로 밖엔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보게 된 사람들의 민낯은 그의 불신을 높이기만 했다.
도태된 그에게 적선 형식으로 다가오는 도움과 보조금은 있었지만, 그것이 정신적 위안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당연히 태화는 점점 현실적인 부분보다 연기에만 몰두해갔다.
사회로 돌아온 그가 점점 비틀린 것과 별개로 정부는 태화를 위해 거의 무상으로 장애인용 특수 차량을 대여해줬으며 관련 편의도 봐줬다.
숙부에게 속아 재산을 거의 다 잃어버린 그가 바람 피할 곳을 구하고 연기로 도피할 수 있던 이유였다.
달갑진 않아도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태화는 자동차 광고를 찍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촬영 당시 무면허였던 것도 어차피 운전석에 앉아 ‘그럴듯하게’ 손을 움직이는 것뿐이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 배우들이 광고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네.’
실제 차량의 움직임을 촬영하기 위한 운전은 전문 레이서가 하는 탓에 태화가 직접 찍은 장면은 10초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인기와 이름값 때문에 받는 돈은 억 단위.
진짜 돈 되는 것은 작품 활동이 아니라 광고 활동이란 선배들의 말은 옳았다.
‘아, 촬영가고 싶다······.’
물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배우로서 대중들을 홀리는 것에 푹 빠진 태화는 돈보다 일주일간 한 번밖에 없던 스케줄이 더 신경 쓰였다.
구미호였던 남주의 비중이 여주보다 살짝 높았던 ‘구미호’와 달리 ‘캐트시’는 여주인 아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녀에게 캐트시 루이는 연호의 친구 겸 애완 고양이였다.
4화 이후 본격적인 연애 이야기가 시작되면 모를까, 아직 잔잔한 일상과 여자 주인공의 직장 생활이 주된 골자인 터라 태화의 스케줄은 평소 촬영 때보다 한가한 축에 속했다.
‘이미 어려움 난이도도 깨버렸고······. 신선한 일이 없네.’
애니메이션을 통해 고양이 루이에게 생동감을 부여하자 꽉 막혀있던 점수는 시원하게 뚫렸다.
확실히 어려움 난이도에 성공했음을 느낀 그는 보상으로 순발력을 Ⅱ단계로 올렸고 추가보상을 획득했다.
‘이번에도 추가 보상은······. 근데 이거 네 개 다 모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소원이라도 이뤄주나?’
태화는 자신의 방구석 깊은 곳에 숨겨둔 물건들을 떠올렸다.
‘괴물’을 클리어한 후 그는 추가 보상으로 ‘새가 가지고 있던 붉은 구슬 조각’이란 이상한 물건을 받았다.
‘협력자들’을 통해 호랑이의 하얀, 그리고 이번 ‘캐트시’를 완료하면서 용이 가지고 있던 푸른 조각을 획득했다.
누가 봐도 사방신을 의미하는 조각들이었고 이제 한 조각만 모으면 하나의 구슬로 합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껏 추가보상들이 나름 유용했던 걸 생각하면 이번 것도 그럴 텐데······.’
사과는 평생 별 관리하지 않은 남자의 피부를 하루 만에 바꿔주었고, 임원 목록은 걸러야 할 후원자들을 속속들이 알려주고 있었으며, 처음에 꺼림칙했던 몽환초의 환약 또한 태화의 연기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다.
미래시 또한 그가 다시 인간과 인연을 맺고 한 걸음 나아갈 계기를 만들어 줬으니 정말 허투루 쓰인 보상이 없었다.
‘근데 용도를 모르겠네. 사방신이니까 설마 날씨라도 조절 가능해지나?’
그렇게 된다면 우천 연기가 필요할 땐 비를 내리고, 해가 쨍쨍해야 할 땐 구름을 걷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그가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이 책상 위에 재생 중이던 음성이 끝났다.
그리고 맞추기라도 한 듯 모퉁이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여보세요?”
-태화야 공부 중인데 미안, 장철진 PD가 오늘 현장 올 수 있냐고 물어서. 이후에 일정 있어?
태화의 자유 시간은 정말 자유롭게 운용됐다.
물론 중독자답게 여가 대부분을 국내 상영하지 않은 외화를 감상하거나 시기를 놓쳐 영화관에서 만나지 못했던 작품들에 빠져 지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었고 매니저인 현규는 일과 관련되지 않으면 태화의 개인 시간을 최대한 존중했기에 그의 온전한 일과를 몰랐다.
“무슨 일인데요?”
-오늘 유민후가 열이 올라서 촬영을 할 수 없대. 그래서 빈 시간을 네가 채워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
“그래요? 큰 일이 아니면 좋겠네요. 저야 지금 공부도 끝났겠다, 오늘 할 일도 평소랑 별반 다를 것 없어요.”
태화는 선선히 괜찮다는 말을 꺼냈다.
아이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열이 오른다. 그것은 10살도 안 된 민후 또한 마찬가지라서, 아이는 종종 이런 식으로 아팠다.
‘보통은 내가 아니라 조연들 촬영분량을 찍었는데······. 둘다 바쁜가?’
거의 NG가 없는 태화와 달리 다른 배우들은 적당히 평균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당연히 그런 NG는 촬영 시간 연장으로 이어졌고, 찍지 못한 분량은 다른 날 촬영해야 했다.
하라의 경우 실수가 있더라도 주연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전부 해결을 봤다.
물론 그녀가 재촬영하는 만큼 조연들의 대기시간은 길어진다.
그러나 원래 연예계는 아주 적나라하게 그런 ‘대우의 차이’를 실감 나게 만드는 동네였다.
촬영이 시작하면 갑이었던 배우들은 대부분 을로 전락하며 그것은 본진이 따로 있는 아이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따라서 그들은 PD가 와서 찍으라면 스케줄이 없는 한 당연히 촬영장으로 와 전에 찍지 못한 장면이나 그 뒷부분을 촬영해야 했다.
‘잘나가는 모범생’ 태화는 말로만 들어본 상황이었다.
-곧 갈게. 기다리고 있어.
“네.”
짧게 답한 태화는 전화를 끊고 촬영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
‘아, 오늘은 둘 다 있네.’
촬영장에 도착한 태화의 눈에 띤 사람은 주연인 하라도 아니요, PD도 아니었다.
신승혁과 송태연.
그 둘이었다.
‘······싸우나?’
그들이 태화의 눈에 띤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촬영과 벗어난 외곽 쪽에 있었으며, 한쪽이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사과를 건네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해요? 안쪽으로 안 오고.”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느새 뒤에 도착한 하라가 태화를 툭툭 치며 자신이 옆에 있음을 알렸다.
그녀는 잠시 그의 시선 방향을 돌아보더니 곧 왜 그러는지 알겠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신경 쓰지 마요.”
“네?”
“저 둘이요. 아이돌들끼리 서열 정리 한다고 저러는 건데. 껴봤자 피곤해지기만 해요.”
태화는 그 말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저둘의 정체성이 아이돌이라곤 하나 이곳에는 배우로서 참여하는 것이었다.
함께 연기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이상, 그들은 배우였다.
“왜요? 아이돌이라고 말하니까 이상해요?”
“······조금. 둘의 연기력이 아이돌 소리 들을 만큼 떨어진다곤 생각되지 않아서.”
태화가 볼 때 부족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배우로서 1년차라 생각할 때, 둘의 연기력은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갓 데뷔한 것으로 친다면, 카메라를 어색해하는 초년 배우들보다 나았다.
“태화씨에게 관례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나 보네요.”
“관례요?”
태화의 되물음에 하라는 모호한 웃음을 흘렸다.
“그 부분은 매니저한테 들어요.”
“말하기 곤란한 건가요?”
“그렇진 않은데,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무안해서요.”
‘그것도 태화씨 같은 사람에게는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녀는 재차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기 껴봤자 정말 좋은 소리 못 들을 거예요. 촬영에는 큰 지장이 없을 테니까 타인의 일로 놔둬요.”
어서 촬영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물은 하라는 몸을 돌려 촬영장 안쪽으로 향했다.
잠시 두 남녀를 응시했던 태화도, 촬영에 지장갈 수준이 아니라면 굳이 타인의 일에 참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
“아 그거······. 원래 배우들은 아이돌들을 동료로 잘 인정 안하잖아. 그래서 걔들끼리 싸우거나 따로 있을 땐 전혀 관여하지 않아.”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태화는 아까 하라가 해준 말을 상기하고 현규에게 물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살짝 곤란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는 그녀와 달리 술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다.
“둘은 초년 배우들보다 연기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태화가 알기로 배우들이 아이돌을 싫어하는 이유는 노력하지 않은 채 돈과 연예계 수명을 위해 배우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을 바닥을 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모르나 두 조연은 두 번째 상황에 해당하진 않았다.
‘아주 잘 하는 건 아니라도 아주 못하지도 않았지.’
그는 유라를 통해 인기 아이돌들이 얼마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지 익히 알았다.
그런 와중에 대사를 외우고 연기를 연습한다는 건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게 연기력과는 상관없이 그러는 부분도 없잖아 있어.”
현규는 이런 방면으로 순백에 가까운 배우에게 어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건 어두운 쪽으로 치우칠 때가 많아서,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상대를 마냥 좋아하지 않았다.
배우들이 아이돌을 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역시 이래서 아이돌은 안 돼’를 중얼거렸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그래 봤자 근본은 노래 부르고 비위 맞추는 게 일인 것들이’라며 그들의 실력을 폄하했다.
누구는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데도 그 수준인데, 누구는 두 가지 일을 다 잘하니 생기는 질투였다.
물론 하라처럼 편견이 완전히 굳어 아이돌이 끼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배우들도 은근히 있었다.
“그것 참······.”
현규가 머리 굴려가며 한 설명을 이해한 후, 태화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 자신은 연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다른 사람들은 참 많은 것에 눈길을 돌렸다.
‘하긴 나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나 일단 그들이 은근히 따돌림당하고 있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뾰족해진 것은 이해했다.
그러나 태화는 촬영에 지장 가는 게 아니라면, 친하지도 않은 이들에게 그 이상 다가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적당히 하면 좋겠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태화는 둘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끝
ⓒ 마늘소금
8월의 끝 무렵.
이제 곧 드라마가 방영되기 때문일까? 촬영장의 분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열기를 더했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망가지지 않도록 설정에 주의했고, 제작진은 이미 편집이 완료된 1, 2화를 재차 확인했으며, 방송국 내부에는 ‘KBC 주말 특별 기획 캐트시: 고양이 요정’이라 적힌 포스터가 내걸렸다.
3년 만에 편성된 프로그램인 만큼 이것이 단발로 그칠지, 아니면 SBC와 NBC의 10시 드라마들을 잡아먹고 괴물로 성장할지 다들 귀추를 주목했다.
그런 와중에 제작과정에서 몇 가지 트러블이 있었다.
대체로 소소했지만 심각한 축에 속하는 것도 없지는 않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위질.
일반적인 가위질은 완성된 영상에서 심의에 걸리는 부분이나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은 부분을 잘라내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캐트시’에서 일어난 가위질 사건은 궤를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