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49
미간을 좁힌 채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철진이,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화면 속 남녀를 노려보다가 간신히 컷을 외쳤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곧 퇴근할 수 있다는 기대에 사람들의 손길에 기쁨이 묻어났다.
“선배님 기분이 별로인 것 같네요.”
“아, 티나요?”
“일부러 티내고 있는 거 아니세요?”
“그렇긴 해요.”
‘나 기분 나빠요’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있었던 하라는 제 기분을 부정하지 않으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의 말대로 그녀는 상당히 짜증난 상태였으니까.
“자기만 피곤한 줄 아나. 저 치는 나날이 무례해지네요.”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매니저에게 안마 받는 승혁을 못마땅한 눈으로 응시했다.
아무리 개념 없어도 해도 될 행동과 안 될 행동 정도는 구별해야 하는데 그녀가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아이돌은 그것을 몰랐다.
그렇다고 지적할 마음조차 들지 않아서, 하라는 화면 밖에서 승혁과 사적인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는 것으로 불만을 표했다.
‘······아, 일이 그렇게 된 거였네.’
그녀의 투덜거림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태화도 고운 미간을 살포시 접었다.
태화는 NG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마치 프로그램의 버그나 소설 속 오타와 비슷한 것이라서, 없으면 좋지만 없기 힘든 해프닝이 바로 NG였다.
물론 그 NG가 다섯 번이 되고 열 번이 되면 문제지만, 인간이 자신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그는 그것을 빌미로 상대를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너그러운 생각을 가진 태화이나 그런 그도 참을 수 없는 실수, 아니 태도가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본인의 대사조차 외워오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때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이다.
‘연예계 종사자 중에서 안 피곤한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지.’
잘 알려지지 않은 행사, 광고, 프로그램을 뛰는 것도 모으다 보면 꽤 돈이 된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연예인들에겐 이러한 자잘한 섭외가 상당히 많았고, 그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시기에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조연쯤 되는 배우들은 늘 바쁘고 피곤함을 느꼈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려하다 보니 나온 당연한 결과였다.
태화도 그 부분은 이해했다. 사람이 철인이 아니니 힘들어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장소는 카메라 밖이었다.
‘호감 있는 태도를 연기하는데 피로한 표정이라니.’
연기가 아니라면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피로를 드러내선 안 된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일하는 자세의 문제였다.
그런 사상을 가진 태화였으니 전말을 이해한 그가 하라의 것과 비슷하게 굳은 눈빛으로 한 차례 승혁을 주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저걸 어떻게 내버려 두지······?’
그는 딱히 튈 생각이 없었다.
배우들 대다수가 아이돌을 은근히 따돌리는 것을 좋은 행동으로 보진 않지만, 괜히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남들과 비슷하게 흘려보냈다.
돕는다하여 연기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귀중한 연습 시간을 친하지도 않은 인간과 인간관계 개선을 위해 소모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방치가 작품의 질적 하락을 낳는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래, 한 번 더 참자.’
한소리 할까 고민하던 태화는 들썩이는 속을 다독였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연기하다가 그것을 느낀 것도 아닌데, 다짜고짜 다가가 ‘똑바로 해’라 말하는 것도 우스웠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지적하는 것보다 무시를 택하다니 다른 배우들도 정말 독하네.’
넘기기로 하면서도 태화는 다른 배우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떠올리며 살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부디 누군가를 미워하고 무시하는 일보다 연기에 집중해주길 바랐다.
***
루이는 소파에 누워 어제저녁, 집 앞에서 아리와 했던 이야기를 멍하니 상기했다.
얼굴을 곱게 물들인 채 자신의 상사에 관해 이야기하던 아리.
그는 그 모습을 통해 그녀가 그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파바박 깨달았다.
얄미운 글래스코(Glasgow)의 캐트시와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육촌 누이가, 꼭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연호, 역시 은혜를 갚는 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게 제일 좋겠지?”
“그렇지 않을까?”
크레파스로 열심히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던 연호가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통통한 볼이 탐스러워서, 루이는 팔을 들어 연호의 볼을 꾹꾹 눌렀다.
“간식 줄 테니까 그만해애.”
루이가 자신의 볼에 빠져들어 꾹꾹이에 열중하자 연호는 울먹이며 항복을 선언했다.
간식을 외쳤음에도 루이는 여전히 아이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난 간식으로 꼬실 수 없는 시크한 고······ 뭐줄 건데?”
“육포 줄게.”
“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답변이 나오고서야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한 자세와 반짝이는 눈으로 연호를 응시했다.
잡티 하나 없는 파란 눈이, 높이를 모르는 가을 하늘을 닮아 순수한 기쁨을 내비쳤다.
잠시 눈싸움을 하던 연호는 자신의 양 볼을 문지르며 작은 몸을 일으켰다.
“가져올게. 기다려.”
“어.”
루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순진한 눈망울로 아이를 압박했다.
“으음 어디 있더라―?”
연호는 얼마 전 아리가 숨겨뒀던 육포를 찾아 부엌을 뒤졌다.
거실 소파에 누워 그 모습을 구경하는 루이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지우지 않았다.
“연호 재워 놓고 그 인간을 만나봐야겠다.”
계속 이어지던 생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뒤, 그는 재빨리 연호에게 다가가 넘어지려는 아이를 붙잡았다.
그에게 연호는 작은 친구인 동시에 지켜야 할 어리고 여린 인간이었다.
***
“형, 형 진짜 굉장해요.”
함께 호흡을 맞췄던 민후가 발그랗게 상기된 얼굴로 몸을 배배꼬며 수줍게 말했다.
하라가 부담감을 줄여주는 연기를 펼쳤다면 태화는 아이에게 마음 편한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여러 어른과 호흡을 맞출 때마다 항상 ‘대사를 틀리면 안 돼. 또박또박하게 잘해야 해’와 같은 압박에 시달렸던 민후에게 둘과의 연기는 신세계였다.
“고마워.”
민후의 반짝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어서, 태화는 사르르 웃으며 곱게 눈을 접었다.
긴장이 풀린 탓에 제어에서 벗어난 색기들이 그의 주변을 나풀나풀 날아다녔다.
어른의 매력이란 걸 처음 접한 민후는 그것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빨갛게 얼굴을 익힌 채 고개를 숙였다.
“형은 얼굴도 하얗고 눈도 파래서 되게 예쁜 거 같아요······.”
“아 그래······. 고마워······.”
아이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줄 몰랐던지라 그는 떨떠름해지려는 얼굴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래도 민후가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여웠던 탓에 태화는 곧 평정을 되찾으며 아이의 연기를 칭찬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오늘은 늦지 않았네.’
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뽐내는 사이, 준비를 마친 승혁이 다가와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주연인 하라뿐 아니라 기타 배우들마저 은근히 따돌리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텐데도 그의 인사는 언제나 기운찼다.
“그래요. 잘 부탁해요.”
태화는 그런 승혁을 딱히 신경 쓰지 않지만 대놓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꺼리는 기색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조금 더 환하게 웃으며 태화에게 다가섰다.
“말 편하게 하세요!”
“난 이게 편해요.”
딱 잘라 말한 태화는 완벽한 미소로 응대했다.
그 웃음에는 참 빈틈이 없어서, 승혁은 결국 인사를 한 번 더 건네고 세트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대사를 다 외워왔겠지? 문제 없도록 나도 힘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카메라 앞으로 향했던 태화는,
“적당히 하지그래?”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인내의 끈을 놓았다.
끝
ⓒ 마늘소금
앞서 말했듯 태화는 아주 기초적인 두 가지를 제외하면 배우들의 태도를 대부분 넘겼다.
배우들 간의 관계도 그것이 작품에 악영향을 끼친 수준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연기 이외엔 관심을 두지 않는 괴짜로 여겨지기 쉬운 성격이었지만 다행히도 태화는 동료운이 좋았다.
그가 참여하던 작품들은 남녀 주연에게 완전히 초점을 맞춰 조연들이 공기에 가까운 존재였거나, 다른 쟁쟁한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으니까.
그들 대부분이 연기를 한가락 하는, 배움을 줄 수 있는 ‘선배’들이었기에 태화는 ‘착실하고 착한 후배’로 남을 수 있었다.
선배라고까지 느껴지지 않은 이들 또한 연기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던지라 대체로 무난한 관계를 이어갔다.
연기력이 되면서도 묘하게 건성이고, 상냥한 가면을 쓴 채 상대의 발목을 잡는 일에 더 비중을 두었던 하승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캐트시`는 그가 맡아온 전작들과 여러모로 달랐다.
데뷔작인 ‘태양을 품은 바다’ 때와 마찬가지로 ‘4명’의 조주연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인데, 그중 둘이 태화의 기준에서 ‘후배’였기 때문이다.
이제 3년 차가 된 태화가 작품에서 주요한 역할로 접한 첫 후배.
물론 인간적인 면모보다 연기와 작품에 더 신경 쓰는 인물답게 그의 머릿속엔 ‘내가 선배니 잘 이끌어줘야지!’라는 생각보다,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제 몫만큼은 해주면 좋겠다’라는 감상이 앞섰다.
하지만 동시에 ‘나아지려는 노력이 보인다면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보여도 넘어가야지’란 관대함도 마음의 한구석을 차지했다.
지금껏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비교해 어설픈 연기력을 선보이는 둘을 모자라다 느끼면서도 나름 존중한 건 그래서였다.
그랬던 태화의 태도는, 촬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인내의 고비를 맞이했다.
여자 아이돌 출신 송태연은 무난한 연기력을 지녔으나 그 이상 발전시키려는 기색이 없었다.
발연기 소리는 듣지 않겠지만, 명배우와도 거리가 상당한 수준에서 그대로 안주한 것이다.
태화는 그녀를 보며 ‘어떻게 그걸로 만족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최우선으로 하는 가치가 자신과 같을 순 없다는 걸 알기에, 그는 그러한 선택에 간섭하지 않았다.
신승혁의 경우 모자람은 있었어도 노력의 흔적이 보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하라에게 거의 없는 인간 취급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가 ‘프로답다’고 여겨졌다.
물론 나쁘지 않게 보는 것과 별개로 에너지가 ‘너무’ 넘치는 인물인지라 친해지고 싶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성격은 남궁현태와 비슷했지만, 그에겐 태화의 이목을 끌만한 연기력이 없었다.
당연히 태화는 ‘같이 촬영하는 동료’ 이상으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도 이젠 옛말이지.’
그렇게 호불호가, 어찌 보면 호에 가까웠던 감정이 불호로 돌아선 건 최근 승혁의 태도 때문이었다.
본업의 스케줄이 바빠졌다곤 해도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진 그의 행보, 그리고 퇴보하는 연기력.
누군가는 ‘노력할 땐 봐주지 않더니 나빠지니까 마음에 안 든다고 표현한다.’라 태화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태화는 자신에게 그런 점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에게 최선의 가치는 연기였고 승혁의 연기력은 노력하는 순간에도 마음에 차는 수준이 못 됐던 것뿐이다.
유라처럼 동질감을 느낀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가 승혁에게 보일 수 있던 태도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못마땅해졌어도 태화는 참았다.
거슬리다 못해 짜증 날 수준이었어도 지적하지 않았고, 조금 쌀쌀맞아지긴 했지만 손바닥 뒤집듯 무시하지도 않았다.
“밤도 늦었는데 애는 집에 가라.”
‘······국어책 읽나?’
정면에서 연습부족을 체감하기 전까진 말이다.
마음을 정한 루이는 산책 다녀온다고 말을 남긴 채 부하 직원도 안 하는 야근을 홀로 하는 열성적인 리더, 공윤혁을 찾아간다.
아리와 이어주기 전에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입맛이 저렴한 본부장은 야근 도중 잠시 나와 오뎅 국물과 닭꼬치로 잠시 허기를 달랜다.
루이가 접촉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대놓고 홀로 앉아 있는 윤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빤히 그를 쳐다봤다.
이상한 외국인의 등장에 윤혁이 신경 쓰는 건 당연했고, 둘 사이에선 선문답 같은, 맞지 않은 대화가 이어졌다.
공윤혁의 대사는 낭창 하게 이어지는 루이의 대사와 다르게 짧게 짧게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