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55
“상아야 연기 기대할게.”
“어머, 고마워요. 선배님.”
‘정말 끝까지 싸우는 구나.’
태화는 ‘사이 나쁜 배우 사이’라는 게 뭔지 깨닫고 작게 혀를 찼다.
은근슬쩍 하라에게 인사를 빼먹은 상아와 상아에게서 인사 따윈 듣고 싶지 않다고 행동하는 하라.
정말 견원지간이 따로 없었다.
“어휴 저, 쌍······.”
상아가 나가자마자 생글생글 웃던 하라가 확 표정을 굳히며 거친 소리를 짓이겼다.
하라가 휴식기를 가지기 전만 해도 상아의 연기는 처참한 수준이었으며, 당시 드라마의 주연을 맡았던 그녀는 고스란히 그 피해를 보아야 했다.
게다가 그 당시 신상아의 성격은 싸움개에 가까웠다.
당연 마음에 안 든다는 하라의 태도에 빈정거림으로 화답했고 둘 사이는 최악을 달렸다.
“저 발연기가 연기 잘한다고 소문났을 땐 진짜 황당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소름 돋는다며 하라는 곱게 아미(蛾眉)를 찌푸렸다.
“그래도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
“설마 내 앞에서 쟤 편을 드는 거예요?”
하라는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태화를 바라봤다.
약간의 불신이 섞인 시선에도,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덤덤히 말했다.
“전 제 편이에요. 그리고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정확히 해야죠.”
“아 그렇죠······.”
‘그래, 넌 그런 애였지’란 글자가 하라의 얼굴에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태화는 ‘그래도 오늘 촬영은 괜찮은 장면이 찍힐 거 같아 기대된다’는 말을 재잘거렸다.
***
루이는 점심시간, 식사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오는 아리를 한 카페의 2층 창문 너머로 응시했다.
아리를 좋아한다는 자각이 생기고 그는 자신이 윤혁을 잊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거절하던 아리였으나, 간절한 루이의 표정에 마음이 약해진 그녀는 결국 ‘점심을 함께 먹는 정도라면······.’이란 말로 여지를 남겼다.
“저기요.”
아리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그가 주변을 잊은 사이, 한 여성이 뺨을 상기시킨 채 루이에게 다가왔다.
“······?”
“혹시 시간 되세요?”
“아뇨.”
루이는 단칼에 부정했다.
그런 식의 거절을 들어본 적이 없던지 미모의 여성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슬쩍 불쾌함을 내비치다가, 곧 살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쪽이 너무 잘 생겨서 그래요. 그런데 혼혈이세요? 눈 색도 완전 멋지시다.”
마주한 눈빛에 홀려, 그녀는 몽롱한 얼굴로 루이를 바라봤다.
그런 여성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루이는 2층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한 번 튕기는 것이라 생각했던 여성은 곧 자존심 상한 것을 숨기지 않으며 떠나가는 루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봐요! 관심 있다 말하는데 그게 무슨 무례한 태도예요!”
계단을 다 올라온 아리는 2층을 울리는 소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익숙한 남자와 그 옆에 있는 여성을 쳐다봤다.
루이는 가볍게 그녀의 손을 떼버리고 사뿐사뿐 걸어가 아리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잡아 빼꼼히 머리만 내민 채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 걸요. 원래 사랑은 한 줄기예요.”
누가 봐도 ‘지금 어깨를 잡힌 이 여성이 내가 좋아하는 여성이요’라는 게 보여서, 루이에게 접근했던 여성은 얼굴을 붉히며 ‘애인 있으면 있다고 말하면 됐잖아! 흥!’이란 진부한 화풀이를 풀어두곤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어깨를 붙잡힌 아리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슬쩍 뒤쪽으로 시선을 돌려 루이를 살폈다.
타이밍 좋게 시선이 마주치자 루이는 샐쭉, 눈웃음을 치며 기쁨을 드러냈다.
***
“태화씨.”
“네, 상아 선배님.”
두어 번 만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스텝들은 촬영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태화에게 다가온 상아는 주변을 한번 훑곤 입을 열었다.
“여전히 연기 잘하네요. 솔직히 해조 분위기가 스며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루이랑 해조는 완전히 다른 걸요.”
그의 말을 듣고 그녀는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이젠 루이가 앞이네.”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저번에 도와주신 게 감사해서······. 오늘도 도움을 받은 것 같고요.”
태화가 혜연을 쫓아줬던 일을 언급하자 신상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도 즐거웠는걸요. 정 걸리면 나중에 밥이나 사요. 아, 저 선배가 괴롭히지 않아요? 완전히 얼굴값하는 사람이라 안 그런 척해도 되게 성격 더러운데.”
상아는 은근슬쩍 하라에 대한 욕을 흘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태화는 둘의 죽이 의외로 잘 맞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끝
ⓒ 마늘소금
현규는 소심한 성격 탓에 연예인 매니저로는 맞지 않았다.
신인들의 경우 그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매니저로서의 유능함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고 정신력도 강한 배우들은 본인의 의견을 말할 때마다 불안해하거나 위를 부여잡는 현규를 못미더워했다.
매니저에겐 배짱이 필요한데, 그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이 바로 그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현규가 괜찮은 신인을 놓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길 원했을 당시 모든 매니지먼트는 그를 거부했다.
능력과 경력은 있어 신입보다 비싼 값을 줘야 함에도, 비용 대비 효율을 뽑아내기 곤란한 인물이었으니까.
결국 바닥을 구르다 BGA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갔던 현규는, 자신을 고용해 준 태화에게 상당한 고마움을 느꼈다.
그가 다른 어떤 매니저보다 자신의 배우를 신경 쓰고 배우의 손해에 민감한 이유였다.
그런 현규에게 태화의 시간 또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당연히 ‘단지 자신이 찍고 싶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필요 없었을 추가 촬영을 진행한 사진작가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작가의 잘못을 파고들며,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전리품들을 요구했다.
작가가 무리하게 찍은 사진들의 일부가 바로 그것이었다.
현규의 요청 겸 항의를 접한 방송국은 잠깐의 회의를 거치더니 ‘드라마 홍보를 덧붙인다면 사진을 공개적으로 사용해도 괜찮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렇게 원하는 바를 이룬 그는 작가가 찍은 사진들 중 마지막 ‘작품’에 주목했다.
태화가 ‘루이의 이미지와 맞지 않은 사진까지 촬영하다니 프로 의식이 부족한 작가 같다’라고 성토하게 만든 사진이었다.
철창에 갇힌 맹수가 먹이를 노려보는 시선이 그러할까.
태화의 분위기는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묵직한 벨벳의 질감을 닮았다.
그러나 동시에, 흉포하고 강렬해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위험한 냄새를 풍겼다.
보고 있는 사람을 피식자(被食者)로 만드는 포식자의 모습.
그것은 해조를 연기했을 때와 전혀 다른 종류의 ‘관능미’였다.
└미친. 아, 매니저님. 밴하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진짜 이 사진은 미쳤잖아요.
└와아, 이건 진짜 역대급.ㄷㄷㄷㄷ └제발 침대로 끌고 가 달라고 빌고 싶은 표정이다······.
└드라마에서 루이가 저런 표정도 짓는 줄 알고 깜놀. 완전 상남자 그 자체네요. 저건.
그 강렬한 분위기의 사진이 태화의 공식 계정에 올라갔을 때,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현규는 사진 아래 달리는 반응들을 확인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태화가 배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배우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기 때문일까.
이태화라는 배우를 돕는 일은 매니저로서 상당히 보람찼고 소위 일할 맛이 났다.
‘일단, 이건 이대로 두고.’
잠시 흐뭇해하던 그는 다음 일정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움직였다.
태화의 스케줄은 인기를 얻기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작품 활동 이외의 연예계 활동을 되도록 지양했으니 당연했다.
그런 배우와 달리, 매니저인 현규의 일정은 상당히 바빠졌다.
이동 관리, 팬 관리, 주요 사이트 댓글 관리, 인맥 관리 등 BGA가 관여하지 않는 부분들을 그가 홀로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끔 힘이 부친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현규는 증원을 부탁하는 대신 자신이 좀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 신경 쓰는 사이 일이 터질 때면, 추가 인원이 필요한 게 아닌지 고민됐다.
“잘못 온 메일인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공식 계정에 사진을 올린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한 통의 이메일을 확인했다.
‘세잔(Cezanne)입니다. 귀하가 보내신 사진과 이력을 확인했습니다. 괜찮다면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이 한 페이지에 걸쳐 프랑스어 원문과 영어 번역문으로 적혀 있었다.
문제는 태화와 그의 스텝들, 그 누구도 프랑스의 향수 브랜드 ‘세잔’에 서류를 넣은 일이 없다는 것.
즉, 올 이유가 없는 메일이 연고하나 없는 머나먼 프랑스로부터 태화의 이름 앞에 도착했다는 의미다.
“뭐 하세요?”
“아, 태화야.”
화장을 깔끔하게 지우고 나래와 함께 차로 돌아온 태화는, 슬쩍 미간을 좁히며 고뇌 중인 매니저를 바라봤다.
현규는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녔지만 ‘배우 이태화’라는 기준점을 가지고 움직일 땐 그런 단점을 잊었다.
‘매니저 김현규’와 ‘인간 김현규’ 사이엔 갭이 있었으며, ‘매니저 김현규’는 웬만한 일을 가지고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나한테 문제 생길 일은 없으니 집에 일이라도 생겼······.’
생각을 체 마치기도 전, 그의 앞에 태블릿 한 대가 건네졌다.
“이건······. 형, 제 이름으로 지원서 넣으셨어요?”
내용을 빠르게 훑은 태화는 묘한 표정으로 매니저를 바라봤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으레 있는 확인이었다.
“······아마 어떤 팬분이 네 사진을 가지고 장난쳤나 봐.”
“와, 전 프랑스 국립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활동 중인 혼혈 배우로 본명도 따로 있었군요. 놀라워라.”
영어로 적힌 본문을 읽으며 태화는 헛웃음을 지었다.
한국에 그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부분도 웃겼고, 혼혈이란 말을 그대로 믿고 꿋꿋하게 ‘테이 보나르’란, 본인조차 처음 듣는 이름으로 칭하는 것도 우스웠다.
‘이 바닥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순진한가?’
세잔은 한국 면세점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값비싼 향수 브랜드였다.
프랑스에 가면 반드시 쇼핑해야 한다는 브랜드 중 하나였고, 한정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컬렉터들의 수집욕구를 자극할 줄 아는 회사였다.
그러나 태화에겐 달랑 사진 한 장과 증명할 수 없는 이력서 한 장만 믿고 접속하는 대책 없는 회사로 보였다.
“그냥 ‘미안하다, 이런 서류를 넣은 적이 없으며 테이 보나르가 아닌 이태화가 본명이다. 아래 이력은 전부 거짓이며 우리도 이런 장난 메일을 보낸 이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정도로 답장해 주세요. 제가 모델 일을 하기 위해 프랑스까지 갈 이유가 없잖아요.”
만약 연락 온 곳이 미국이었다면 미국 내 인지도를 높일 기회이니 고민해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송지는 유럽이었고, 그와 일하기를 원하는 곳은 외국인에게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프랑스였다.
태화는 고작 커리어 한 줄 채우기 위해 먼 프랑스까지 날아가 광고를 찍는 것보다, 한국에 남아 작품 활동을 하는 편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대응하고 BGA쪽에도 연락을 넣어 볼게.”
“네, 부탁드릴게요.”
누군가에 의해 일어난 해프닝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
윤혁에게 약혼녀 서유나는 동생에 가까운 존재였다.
연애 대상이 아닌 귀여운 여동생.
그녀가 애정 표현을 할 때 말로는 그만하라 하면서도 정작 행동을 강하게 제지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방관이 땜의 구멍이 되어 쌓아 올린 것을 무너트렸을 때, 윤혁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루이는 사뿐한 걸음걸이로 윤혁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