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56
술에 취해 슬픔을 드러내고 있던 윤혁이 시선만을 돌려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를 응시했다.
“누······.”
“전에 만났는데 기억 안 나려나······. 으, 써.”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빼앗아 멋대로 할짝거린 루이는 팍, 얼굴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했다.
어린애 입맛인 그에게 증류주는 너무나 어른스러운 맛이었다.
“궁금해서 왔어.”
루이는 파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믿기 어려운 시선이었다.
“왜 아리를 사랑하면서 다른 여자랑 약혼했어?”
그의 물음엔 원망도, 희열도 아닌 순수한 호기심만이 스며 있어서, 심각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점심엔 뭐 먹었어?’ 정도의 질문으로 들렸다.
아리의 이름이 언급되자 윤혁의 얼굴에 다시 한번 괴로움이 떠올랐다.
“······나중에 설명하려고 했어.”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잖아?”
루이는 이해되지 않는 답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캐트시인 그에겐 현재가 가장 중요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고양이 요정들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들이었다.
“······.”
“삶이란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달려갈 줄 알아야 해. 인간들은 그것에 서툰 것 같지만.”
루이는 게슴츠레 뜨인 윤혁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그의 머리를 천천히 바 테이블 위에 눕혔다.
저항할 만한 상황인데도, 윤혁은 고분고분 그 손길을 따랐다.
“은인이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왜 감정과 행동이 달랐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루이가 볼 때 그는 나쁜 짓은 했지만,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아리가 슬퍼하면서도 윤혁을 원망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 그것이리라.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답답하게 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보이는 루이의 얼굴이 너무 맑아서, 그리고 잠들어 있는 윤혁의 얼굴이 너무 절망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들이 있는 공간은 평화로우면서도 서글프게 그려졌다.
***
태화는 반짝이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승혁을 힐끔거렸다.
그 기대에 찬 눈빛을 외면하기 어려워서, 태화는 그가 원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연습 많이 해 온 것 같네요.”
“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어요.”
기대에 차 있던 승혁의 눈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다른 사람이라면 타인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좋은 소리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태화는 심지어 본인의 연기를 평가할 때조차 입바른 소리만 내뱉었다.
따라서 그가 늘었다고 한다면 정말 그런 것이었으며 승혁은 자신의 노력이 통한 것 같아 기뻤다.
‘노력하는 건 좋은데······.’
그런 후배를 보며 태화는 떨떠름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번 크게 나무란 이후, 승혁은 살갑게 다가와 그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처음 대부분은 연기에 관한 것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사적인 영역까지 일부 포함했고, 현재는 호칭만 선후배일 뿐이지 거의 형, 동생처럼 가까워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 변한 것인지라, 태화는 어느새 거리감을 좁힌 후배를 느낄 때마다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내 뺨을 때린 건 네가 처음이야’ 같은 상황이 돼버린 거지······.’
단순히 제대로 하라고 일갈했을 뿐인데 사이가 나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친해졌다.
세상엔 참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많았다.
“선배님! 저 지금 팬클럽 정기 갠방 열어야 하는데 선배님도 잠시만 나와 주시면 안 될까요?”
“······갠방이요?”
“네, 그냥 인사만 한 번 해 주시면 돼요! ······다들 제가 다른 배우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고 걱정해서.”
그는 밝은 얼굴로 어딘가 씁쓸함이 감도는 미소를 지었다.
승혁이 다른 두 여자 조주연들과 데면데면한 것을 알았기에, 태화는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는 인간을, 자신이 사랑하는 연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후배를 쉽사리 외면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허락과 동시에 환하게 핀 승혁은 태화의 어깨를 붙잡고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남자와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가져 본 적 없어, 태화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아이돌들은, 참······. 성격이 살갑다고 해야 하나.’
손은 좀 떼어 달라고 말하려던 찰나, 화면에 글자들이 떠올랐고 태화는 가면을 쓰듯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프로는 관객 앞에서 자신의 고뇌를 드러내지 않는다.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며 태화는 가볍게 ‘안녕하세요’란 인사를 건넸다.
끝
ⓒ 마늘소금
승혁과 헤어진 태화는 작게 숨을 내쉬며 미간을 문질렀다.
홍보 차 팬미팅에 참여한 적은 꽤 있었지만 그를 찾은 대부분의 팬들은 수줍거나 점잖은 편이었다.
그러나 승혁의 방송을 찾은 시청자들은 젊다 못해 어렸고, 화면이란 얇은 막을 믿으며 원색적인 이야기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검은 머리, 흰 피부, 붉은 입술’을 언급하며 그가 열심히 지우려 한 ‘스노우 화이트’를 밖으로 꺼냈을 땐, 평정을 잃을 뻔했다.
‘대중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관심을 받기는 해도······. 힘들게 사네.’
태화는 ‘손키스 날려 주세요’라는 요청에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입술에 댄 승혁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연예계 직군 중 가장 적극적이고 과격한 팬들을 거느린 직업.
그 만큼 많은 관심을 받으나, 관심을 가장한 ‘간섭’에도 심하게 노출된 이들.
오늘 있던 일로 그는 왜 아이돌을 ‘만능 엔터테이너’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특기는 하나만 파고드는 게 좋아.’
태화는 연기만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했다.
만능이란 단어는 일견 좋게 들린다.
하지만 대단한 천재가 아닌 이상 전부를 잘하기란 요원한 일이었고,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은 즐겁지 않은 부분까지 해 보여야만 했다.
게다가 오늘 승혁이 보인 것과 같이 살갑게 행동해야하니, 친해지지 않는 한 타인과 거리를 두는 태화에겐 불가능한 직업이었다.
‘내 팬이 아니라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는, 어차피 단발성으로 그칠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을 깨닫고 현규와 나래가 기다리고 있을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헐. 혹시 Exstar 오늘자 개인 방송 보신 분?
태화가 별생각 없이 참여한 개인 방송은 의외의 파문을 만들었다.
그것은 상당히 작았지만, 깨끗한 물에 떨어진 검은 잉크처럼 자극적이었다.
└Exstar면 배우님과 작업하는 아이돌 소속 그룹 아닌가요?
└오늘 신승혁이랑 같이 갠방 찍으셨네요······.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ㅠ 잔잔하게 ‘캐트시’ 이야기로 가득 찼던 마레드에 ‘신승혁 개인 방송’이란 엄청난 돌덩이가 던져졌다.
그들은 ‘루이의 모습을 했지만 루이를 연기하지 않고 있는 이태화’에 집중하며 웅성거림을 키웠다.
└그거 아이돌이 인기 높이려고 배우님 이용한 거 같던데.
일부는 이제 최고의 배우 중 하나로 자리 잡은 태화에게 빌붙은 게 아니냐며 성토했고.
└요새 신승혁과 좀 친하게 지내시는 거 같더라고요. 그쪽이 달라붙는 느낌이 나긴 하지만······. 하긴 우리 배우님 매력은 장난 없죠.
일부는 태화에게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중립을 유지했다.
└중요한 건 저희가 아닌 Exstar 팬들이 실시간으로 배우님을 뵈었다는 거.
└분하네요. 편집 없는 영상은 정말 희귀한 건데.
스케줄이 없을 땐 위장을 펼친 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터라 태화의 일상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정말로 희귀했다.
가장 최근에 찍힌 사진이 ‘캐트시’에 참여하기 전이었으니 그 희소성을 따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마레드가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캐트시 스텝 분들은 구미호 스텝 분처럼 뭐 안 뿌리시나요? 목소리라든가 방긋 사진이라든가. 괴물 개봉 때는 공계에서 그런 거 많이 뿌렸는데 캐트시는 영 공적인 것만 올라오네요.
└그런 거 없어도 워낙 잘나가셔서······. 그리고 그 부분은 일주일에 하나씩 공개되는 사진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 두 개씩 해 주시면 좋겠지만ㅠ 현규는 ‘인상적이지만 드라마 홍보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 뻔한 사진들’도 함께 받아 냈다.
그는 첫 사진을 업로드한 이후 매 주말마다 획득한 사진들을 한 장씩 공식 계정에 올렸으며, 그것은 목마른 팬들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진짜 활동을 좀 더 늘려 주셨으면 좋겠어요ㅠ 물론 우리 배우님 하고 싶은 거 하시는 게 제일이지만 그래도ㅠㅠ 마레드의 팬텀들은 연기에 집중하는 태화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기에, 더 많이 볼 수 있길 원했다.
***
현규에겐 요즘 고민이 있었다.
그는 사진작가로부터 여러 장의 사진을 받아 냈고, 그것을 배우의 홍보에 이용했다.
문제는 그 홍보가 ‘너무’ 잘됐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찍었다고 보기엔 굉장히 다양한 분위기.
그것이 배우, 아니, 모델의 역량을 너무나 명백히 드러내 줘서,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모텔로서’의 태화의 가치를 단박에 끌어 올렸다.
덕분에 BGA와 현규를 통해 들어오는 화보 제의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들은 태화의 의사를 재차 확인한 뒤 최선을 다해 거절했다.
‘전부 거절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는 메일함에 도착한 익숙한 주소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잔은 태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순수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안타까움을 표하긴 했지만 제의는 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 싶어 한국을 떠날 수 없다는 말에 그럼 자신들의 메인 포토그래퍼가 가면 된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아니, 중세부터 이어진 전통 있는 회사라며! 왜 그런 곳이 이러는 건데!’
행동력은 또 얼마나 빠른지, 그래도 배우가 원치 않는다며 정중하고 긴 문장으로 에둘러 거절하자, ‘이미 촬영 팀이 출발해서 내일 안에 정식으로 요청이 갈 것이니 장소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라는 딴소리가 돌아왔다.
현규는 위가 아팠다.
자유와 평등의 사회에서 태화가 기업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진짜 그러면 좋지.’
그러나 태화가 결국 6개월에 한 번 광고를 찍게 되었듯, 인간은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들을 거절하는 건 그림이 너무······.’
그렇기에 현규는 걱정됐다.
명품 브랜드가, 그것도 장인 정신으로 무장해 프랑스가 아니라면 전 세계 면세점에서나 간신히 만날 수 있는 브랜드가 이 정도까지 굽히는데 과연 거절해도 되는 것일까.
유비를 돌려보내야 하는 공명의 제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그는 그냥 울고 싶어졌다.
***
주변이 울건, 슬퍼하건, 안타까워하건 태화는 평온했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회식이 잦아진 것은 불만이었지만, 매번 1차 중간에 벗어나는지라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바빠질 연말 스케줄이 걱정됐다.
다른 이들에겐 한해의 성과를 확인하는 성적표겠으나 태화에겐 애매한 휴식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겠어?’
태화와 친한 배우들은 대부분 괜찮은 연기력과 경력으로 무장했고, 시상식의 단골손님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시상식의 리셉션은 바빠서 만나기 힘들었던 지인들과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태화 씨! 한 잔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들뜬 스텝이 건넨 술을 태화는 거절하지 않았다.
드라마는 중반에 치달아 10화의 방영을 앞두고 있었다.
평균 시청률 23퍼센트. 9화 시청률 24.7퍼센트.
캐트시뿐만 아니라 8시 드라마 ‘오 솔레 미오’도 순항하고 있어. 주말 저녁 시청률은 KBC에 점령당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동시간의 어떤 프로그램도 적수가 되지 못했으며, ‘캐트시’는 5화 이후부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 갔다.
오늘 회식이 잡힌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다들 25퍼센트 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구석에서 이뤄지는 내기를 보며 태화는 남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25퍼센트를 넘는다’는 내기거리가 되지 못해 다들 26, 27, 심지어 30퍼센트를 불러 가며 시청률 내기에 판돈을 걸었다.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