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57
시끄러웠던 식당 안은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조용해졌다.
“셋, 둘, 하나······! 스타트 26퍼센트로 끊었습니다!”
기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의 함성이 터졌다.
예상한 결과일지라도 기쁜 것은 당연했다.
‘SNS로 이리저리 퍼졌으니 뭐······.’
축하를 받으면서 태화는 느긋하게 화면을 바라봤다.
과거 찍었던 9화의 임시 장면이 포함된 화수다.
그만큼 기대가 높았고, 시청자들은 공개 촬영 후기로 익히 알려진 그 장면에 어떤 대사가 입혀졌을지 고대했다.
‘그나저나 30퍼센트에 공약을 걸었는데, 정말 가능할지도.’
그는 잔에 남은 술을 비우며 화면 속 자신을 꼼꼼히 살폈다.
깔끔한 편집이 화면미를 높여, 표현하고 싶었던 바를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역시 장철진 PD가 성격은 몰라도 솜씨는 정말 좋아.’
지금껏 만나 온 감독들도 대부분 훌륭했지만, 철진의 실력엔 천재성이 돋보였다.
상성도 잘 맞았는데, ‘구미호’의 박형진 PD나 ‘협력자들’의 왕초위 감독보다 생각하는 바가 비슷한 탓에 일하기가 쉬웠다.
-나로 하도록 해.
“······순간 시청률 28퍼센트 나왔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기 무섭게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이 갱신됐다.
내세우기 힘든, 순간의 기록일 뿐이지만 앞으로 8화 이상 남았으니 곧 평균이 될 수치였다.
‘지금 증편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30퍼센트보다 욕심 내보는 것도 괜찮겠네.’
“흠, 오늘도 괜찮게 찍혔네요. 태화 씨, 난 먼저 들어가 볼게요.”
“네, 들어가세요.”
사람들이 흥분에 차 있는 사이, PD와 인사를 나눈 하라가 은근슬쩍 자리를 이탈했다.
완벽한 틈새 공략에 감탄하며 태화는 살짝 손끝을 흔들었다.
“형, 어디 다녀오셨어요? 드라마 끝났는데.”
“······일이 좀 생겨서. 그나저나 오늘 반응도 괜찮던데 확인해 봤어?”
흐린 낯으로 답하던 현규가 말을 돌렸다.
한 번 더 물어볼까 고민하던 태화는 그를 믿고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요.”
“자, 여기.”
매니저가 내민 스마트폰의 화면엔 수십 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윤혁이 똥차는 아닌데 루이가 수퍼카라. 지못미.
└이런 전개 좋습니다ㅋㅋㅋㅋ 암이 나은 기분!
└축! 루이 남주 자리 획★득
“루이가 인기 많은 건 알았지만 다들 3살인 걸 잊은 것 같네요.”
댓글들은 하나같이 루이가 여주인공 아리와 연결된 걸 기뻐했다.
그것이 싫진 않았으나, 루이가 세 살이란 걸 잊어 본 적 없는 태화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조금 떨떠름했다.
‘루이 나이의 진실이 밝혀지면······. 다들 열광하고 있으니 전개상 빠지려나?’
작중 루이의 나이는 세 살. 고양이로 따지면 성묘에 해당하는 나이이다.
하지만 루이는 고양이가 아닌 캐트시였고, 캐트시의 입장에서 3살은 그보다 조금 어린, 미묘한 나이였다.
‘평균 이상의 퀼리티를 뽑아내는 작가니 알아서 잘하겠지.’
곧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깨닫고 태화는 스텝들이 건네는 축하를 즐기며 오랜만에 1차 마지막까지 남아 회식을 즐겼다.
아직 어떤 폭풍이 자신 앞에 다가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던 결정이었다.
끝
ⓒ 마늘소금
태화는 나래가 코코아톡으로 보내온 링크를 오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스콧 TV) 한국드라마[반응]’이라 영문으로 적힌 링크를 과연 눌러봐도 될지 고민됐다.
그러나 그 시간은 무척이나 짧아서, 그의 손가락은 곧 푸른색 글자에 닿았다.
[안녕! 친구들! 이 영상을 구독해줘서 고마워!]화면에 나타난 남자가 거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기 무섭게. 하단에 영어로 된 자막이 새겨졌다.
태화는 유쾌한 표정을 한 채 열심히 떠드는 남자를 보며 그가 설명하는 드라마의 장면을 떠올렸다.
‘캐트시’는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잔잔한 느낌을 내세운 만큼 극의 분위기가 너무 ‘심각하게’ 흘러가는 것을 지양했다.
따라서 메인 스토리가 심각한 흐름을 탈 땐, 그에 대한 반작용처럼 그 주변의 이야기를 가볍고 장난스럽게 담아냈다.
7화에 등장한 애가 애를, 즉, 루이가 연호를 돌보는 장면도 그러한 장치 중 하나였다.
루이는 바쁜 아리를 대신해 하교하는 연호를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이는 언제나 홀로 집에 돌아와야 했던 아이를 기쁘게 했으며, 가족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의외로 메인 스토리 라인이 아닌 둘의 케미를 좋아하는 시청자도 많았다. 정신연령이 미묘하게 비슷한 아이와 청년의 대화가 꽤 재미있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둘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뽑아내며 드라마의 독특한 외전을 만들었다.
지금 재생되는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출신의 루이가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을 만나 그에게 길을 알려주는 장면.
문제는 그가 잉글랜드가 아닌, 발음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이걸 스코티쉬들이 볼 줄은 몰랐는데······.’
태화는 세세한 부분에 상당히 공들였다.
루이의 출신을 듣고 스코틀랜드 출신, 그것도 에든버러 토박이를 BGA에게 중개 받아 그의 억양과 독특한 강세를 배웠고 그것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민후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느낀 노래 발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저 애 잘 생겼다.] [한국의 이태화란 배우야. 한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 중 하나지. 연기를 굉장히 잘해.] [리태하? 근데 저 친구 지금 에딘브라(Edinburgh)라고 한 거 같은데? 맞아?]스트리머와 대화하던 여성은 대사 속에 껴있는 단어를 듣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너무나 강력한 태화의 발음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인을 보고 배를 움켜줬다.
[아하하! 쟤 사실 스콧 출신 아냐? 우리 아빠랑 발음이 완전 똑같아! 이거 아빠한테도 보여주고 싶네!]깔깔거리며 영상 좀 달라는 여성의 요구가 끝나기 무섭게, 장소가 바뀌며 남자 둘이 스트리머와 함께 등장했다.
스트리머는 둘을 소개한 후, ‘지금부터 한 영상을 보여줄게. 이 사람이 어디 출신일지 맞춰봐’라는 말과 함께 앞부분이 빠진 영상을 재생시켰다.
[에든버러.] [에든이네. 거기 애들이 꼭 저런 잘난 척하는 발음을 쓰거든. 그 미국식?] [저게 미국 발음이면 내 억양은 런던이다. 멍청아.]글래스고 출신이란 자막이 떠올랐던 청년이 또 다른 글래스고 출신을 비웃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나 태화의 악센트와 국적을 듣고 흥미를 드러냈다.
‘······스코틀랜드는 지역마다 차이가 심하다고 해서 콕 집었던 건데 다행이네.’
어느새 분석적인 시선으로 영상을 응시하던 태화는 타협하지 않은 것에 관한 결과를 확인하고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북방의 아테네라 불리며 대학도시로 성장한 에든버러와 산업혁명과 함께 상업도시로 성장한 글래스고.
차로 한두 시간 거리의 인접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억양 차이는 의외로 선명했다.
그가 지역색을 무시했다면 이런 영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
1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 끝나자 태화는 스크롤을 내려 그 아래 있는 댓글을 확인했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반응인지라 한국어로 적힌 댓글도 종종 눈에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영어였다.
└스트리머 발음도 자막 없으면 알아듣기 힘들어 lollol └와우 진짜 우리 옆집 스콧 친구랑 똑같아. 발음 더러운 게 └나한텐 인도인이랑 비슷하게 들리는데? 우리 교수가 저따위라 수업 안감 : ) └원래 스콧 애들 발음이 그만큼 구림 그건 영어가 아니지 └한국 드라마는 처음 보는데 고증에 이리 철저한 줄 몰랐다. 꽤 흥미롭네.
지역 비하로 인해 싸움이 일어난 댓글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고작 드라마에서 억양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며 놀람을 표했다.
사이사이 어설픈 작문 실력으로 열심히 이태화에 대해 설명하는 한국어 아이디도 눈에 띄었다.
해외 영상의 댓글까지 찾아와 열심히 홍보하는 팬들이 귀여워, 태화는 슬쩍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고생한 보람이 있지?”
“보람을 생각하고 한 건 노력은 아니지만······. 알아봐 주니 기쁘긴 하네요.”
그는 애정이 서린 눈으로 화면의 글들을 응시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주객이 전도된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완성도를 위해 한국인 입장에서 어설픈 영어로 보일 것도 상정했다.
미련하고 상업적이지 못한 선택이었지만, 루이의 고향이 작품 속에서 드러난 이상 허투루 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실제 7화가 방영되었을 땐 ‘연기 말고 영어도 좀 연습하지ㅋㅋ 얼마나 안 되면 저런 식으로 수습함?’과 같은 댓글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욕심부린 감이 없지 않아서 실수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점점 무대를 키워나가고 싶었기에, 태화는 상업적 성공에 상당히 신경 썼다.
‘오식이’를 거절했던 것도, 흥미가 돋아도 흥행이나 완성도가 낮게 상정된 작품들을 애써 외면한 것도 그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발음이 엉망이었다는 말은 들어가겠지만······.’
이런 영상이 나왔으니 마레드와 BGA가 은근히 영상들을 뿌리며 여론을 뒤집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운이 좋아 나온 결과임을 잊어선 안 됐다.
“역시, 연기는 보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되네요.”
“갑자기 왜?”
“제가 놓치고 있었던 게 보여서요.”
자기만족을 원했다면 대본들만 열심히 받아 축복으로 다양한 역할을 연습하면 됐다.
그러나 더 많은 작품을 접하는 대신 큰 무대를 열망했던 것은 그곳에 더 많은 관객이 있어서였다.
‘이런 걸 잊으면 안 되는데. 참······. 누나 덕에 타이밍 좋게 상기했네.’
더 어긋나기 전에 깨달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태화는 스마트폰을 끄고 다음주 대본을 펼쳤다.
7화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들었던 그를 생각해 영상 찾는 수고까지 더해가며 보여줬던 나래는 영 기복이 없는 고용주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담담한 모습은 정말 귀엽지 않았다.
***
둘이 차 안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사이, BGA로부터 세잔에 대한 연락을 받은 현규는 허옇게 뜬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세잔의 메인 포토그래퍼 장 피엔이 프랑스에서 날아왔다.
그들은 이미 스튜디오까지 섭외가 끝났으니 부디 거절하지 말라며 끈질기게 매달렸다.
세잔이 포기한 줄만 알았던 BGA는 그들이 한국까지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이번만큼은 태화를 설득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현규는 배우의 의견을 우선시하는 매니저답게 에이전시의 은근한 제의를 단칼에 쳐냈지만, 이게 BGA만 막아서 될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거절이야 할 수 있지. 근데 문제는 태화가 유럽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거야.’
태화가 그곳에서 활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길 원한다면 프랑스의 명망 있는 브랜드와 척을 져서 좋을 게 없다는 의미였다.
세잔은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향수 제조사였다.
다른 글로벌 브랜드들처럼 외국에 지점을 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음에도, 프랑스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세점에 있는 양조차 턱없이 적고 세잔의 메인 라인은 되지 못해서, 세잔은 향수 마니아들이 프랑스를 찾는 이유가 되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일부 프랑스인들은 세잔보다 잘 나가는 프랑스계 향수회사가 있음에도, 세잔이야말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향수 브랜드라 생각했다.
그런 곳이 한국까지 찾아와서 태화와 작업을 하고 싶다고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은 그림이 안 좋았다.
‘최악의 경우, 태화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흘려놓을 수도 있고······.’
세잔이 동방의 작은 나라 배우를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을 신경 쓸 이는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태화는 할리우드를 생각하는 배우였고, 그가 세계를 상대로 연기를 펼치려 할 때, 세잔의 명성은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일단 태화에게 말해봐야지······.”
너무나 무겁고 중요해진 내용에, 그는 불편한 마음을 굳힌 채 결심을 내렸다.
***
현규의 설명을 전해 들은 태화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미 메일을 보냈을 때 다 끝난 일인 줄 알았거늘, 설마 한국까지 날아올 줄은 예상치 못한 탓이다.
‘아니 왜?’
태화는 자신이 모델로서 꽤 괜찮다는 걸 알았다.
세잔에게 갔을 사진이 역할과는 맞지 않지만 사진만 봤을 땐, 상당히 인상적이고 강렬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통 있는 향수 브랜드를 매혹시킬 수준이라곤 자만하지 않았다.
‘단체로 약이라도 먹어서 뭔가 잘 못 본 거 아닌가?’
그는 험악한 생각을 하며 세잔의 안목을 의심했다.
유럽에는 수많은 모델이 있으며 그들은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수준 높았다.
세계 최고 모델은 미국인이라도 그 아래는 전부 유럽 출신이었으니 세잔 정도의 회사가 모델을 못 구하는 건 말이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