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59
세잔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프랑스 모델을 사용했다.
정 이미지가 없을 시엔 주변국의 모델들도 고용했으나 메인 시즌엔 반드시 자국의 모델과 작업했다.
아무리 신비주의 콘셉트, 국적 불명으로 간다 해도, 동양인 이미지는 심하면 배신자 소리 듣기 딱 좋았으며 세잔이 허락할 리 없었다.
‘내 국적이나 정보를 기간을 두고 밝히기로 계약한 입장에서 이미 엄청난 손해일 텐데 말이지.’
물론 말이 신비지 태화가 자신의 정체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꼴을 서연은 가만두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기나긴 협상을 통해 시간을 두고 공개하는 방식으로 계약의 방향을 잡았다.
“잠까안······! Arretez!(멈춰!)”
뒤에 서 있던 나래가 허둥지둥 달려와 스텝이 들고 있던 클렌징 티슈를 사납게 빼앗았다.
「이의 있어요!」
「받아들이지 않겠어!」
「······장,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난 뮤즈의 맨얼굴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을 걸세! 흥!」
어느새 다가온 다니엘도 장의 고집에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수많은 계산이 오갔다.
그러나 결국, 다니엘은 장의 스텝이었다.
「······일단, 안나 서. 화장을 지운 상태로 몇 번 찍고 다시 화장할 수 없겠습니까? 장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아주 더러운 일곱 살 악마가 돼서.」
그녀는 살짝 이를 악물며 나래와 태화에게 부탁했다.
「전 상관없지만 세잔은 상관있을 텐데요.」
태화는 마치 자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걱정했다.
그 말 그대로 그는 욕먹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과 싸우는 건 회귀 전부터 자주 있던 일이었다. 단지 그 감정의 축이 인종으로 옮겨간 것뿐이다.
‘사진을 본 순간, 내가 동양인이라 안 된다는 소리는 못하게 막는다. 그거 재미있겠어.’
처음엔 곤란하다 여겼는데 꽤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 태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니엘의 입술을 응시했다.
그래도 계약을 한 이상, 고용주의 의견을 들을 미덕은 갖췄다.
「······찍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잘 찍어도 동양인이 서양인이 되는 것은 아닌데, 다니엘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망할 인간. 진짜 제멋대로야.’
그녀는 좋아하는 장을 보며 속으로 그의 등을 여러 번 때렸다.
「그래 이거야! 왜 몰랐지?」
꼼꼼하게 화장을 지우고 나타난 태화를 보며 장은 환희에 찬 얼굴로 정신없이 모델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그 모습엔 광기가 서려 있어 오랫동안 그를 보조했던 스텝들도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집요하고 섬뜩한 광기에서 도망치지 않은 건 태화가 유일했다.
그는 한층 더 집요해진 시선을 즐겼다.
자신을 알고 싶다 외치는 무형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그 모습은 마치 용과 호랑이의 싸움을 닮아서,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의 시선으로 응시하던 이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샤를로트와 일하던 장이 저랬을까······.’
그들은 미친 듯이 폭주하는 사진작가와, 양보 없이 맞서는 모델의 기백을 보며 은퇴한 선배들에게 들은 일화를 떠올렸다.
끝
ⓒ 마늘소금
–삭제된 대사
태화가 촬영에 집중하고 현규가 그것을 지켜보는 사이, 나래는 슬쩍 뒤쪽 벽으로 빠졌다.
평소라면 차로 돌아갔겠지만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매니저를 장의 스텝들 사이에 홀로 버려두기 그랬다.
그런 그녀의 옆에 다니엘이 다가섰다.
「할 말이라도?」
「그냥 좀 멀리서 보고 싶어 왔습니다.」
겸사겸사 시선 좀 피해 쉬러 온 거라며 다니엘은 살며시 벽에 몸을 기댔다.
두 여성 중 먼저 침묵을 깬 건 침묵에 익숙하지 않은 나래였다.
「……아까 들어보니 꽤 오랫동안 뮤즈가 없었나 봐요? 향수가 꾸준히 나와서 몰랐는데.」
「저흰 장 말고도 여러 사진작가를 고용합니다. 장에게 완전히 기대서야 세잔이란 이름이 울죠.」
다니엘의 자부심을 들으며 나래는 ‘뭐 그럴 수 있지’란 표정으로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였다.
세잔은 일 년에도 몇 번에 걸쳐 새로운 향수를 발표했다.
시기에 따라 급이 나뉘었는데 그걸 전부 장에게 맡기는 건 웃긴 일이었다.
「물론 장은 뮤즈가 아닌 다른 피사체도 잘 찍습니다. 뮤즈가 아닌 사람의 향기는 인조향처럼 느껴진다고 질색하지만요.」
다니엘은 징징거리던 장을 떠올리며 설풋 웃음 지었다.
롤라 때도 봤던 모습이나, 결별하고 한 동안은 참 잘 찍는다.
모델의 느낌보다 본인의 분위기가 깊게 묻어나 슬픔과 이별의 향이 맡아지긴 해도……. 그것이 또 대박을 내서 ‘pleur(눈물)’같은 향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근데 베티. 혹시 샤를로트란 모델과 친척이에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다니엘은 슬쩍 눈썹을 꿈틀거리며 나래를 쳐다봤다.
하지만 곧, 원래의 평정을 되찾으며 담담하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좀 닮았거든요. 아, 샤를로트의 얼굴은 당신이 주고 간 사진으로 본 게 다에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우습게보지 마요. 화장 밑의 얼굴을 가장 잘 꿰뚫어 보는 게 우리니까.」
「딱히 무시하진 않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롤, 아닌 샤를로트는 제 고모죠.」
궁금증은 풀렸냐고 묻는 그녀에게 나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촬영에 빠져있는 태화와 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래는 다시금 다니엘에게 말을 걸었다.
「장은 뮤즈에게 어떤 사람이죠?」
「무슨 의민지?」
「저희 매니저가 진짜 사랑이니 뭐니 했던 말로 쓸데없이 겁을 먹은 거 같아서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워낙 많잖아요. 뮤즈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예술가들이 말이죠.」
예술가들의 사랑엔 운명과 낭만이 있으나 그것은 마치 하늘을 부유하는 민들레 씨를 닮아서, 좀처럼 바닥에 닿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저 사람에겐 평생 뮤즈가 셋뿐이었다지만 하나가 아닌 이상 뭐…….’
그러니 태화를 향했던 찬사도 진심이되 진심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다니엘의 신뢰성 있는 답변을 받아 현규를 안심시켜줄 생각이었다.
‘진짜 은근히 손가는 오빠라니까. 그런데도 부인 분껜 믿음직한 가장으로 보인다니 역시 사랑의 위대…….’
「진심일겁니다. 장은 자기 뮤즈에게 온몸으로 표현을 하고 버려지기 전까진 최선을 다하는 남자라서.」
「……네?」
「단지 그 진심이 살짝 어긋나 있다고 제 고모는 그러더군요.」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털어놓고 싶었던 탓일까. 다니엘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오는 진실에 속으로 놀랐다.
은근히 민감한 이야기라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언제나 혼자만의 비밀로 숨겼던 내용이다.
당시 조금씩 부서지고 있던 당사자는 어렸던 조카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조차 모르리라.
‘퍼지면 귀찮아질 텐데. 장이나 롤라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르고.’
하지만 곧, 프랑스어를 할 수 있지만 완전히 방관자로 돌아선 나래가 좋은 고해 대상임을 깨닫고 다니엘은 말을 이었다.
「샤를로트는 싫어했습니다. 장은 모델 속의 향과 사랑에 빠지는 거니까. 자기 속의 무언가를 사랑하는 남자를 고모는 참지 못했거든요.」
열다섯이란 어린 나이에, 장의 뮤즈가 되었던 여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봐주는 남자에게 빠졌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3년 만에 그녀는 사랑하는 이가 보는 여성이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열여덟 소녀의 첫사랑은 끝을 맺었다.
샤를로트는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남자를 밀어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의 청혼을 거절할 때마다 절망했다.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 망설임 없이 은퇴를 선언하고 포로로 날아간 이유였다.
「참고로 지금은 고모부 되시는 분과 아주 행복하게 살면서 장을 한 때의 추억으로 욕하십니다. 그걸 보고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한다는 말을 이해했죠.」
다들 샤를로트가 장을 싫어해서 그랬는줄 안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장을 좋아했고 그래서 죽어갔다.
‘와, 역시 사랑의 나라 프랑스. 러브 스토리가 참 흥미진진하네.’
나래는 프랑스 유명 사진가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며 팝콘이 없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딱, 다니엘이 원하는 정도의 흥미와 관심이었다.
「이게 아니야! 그래, 그 화장도, 렌즈도 다 벗어 보게. 어서!」
날카로운 외침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이들 사이를 갈랐다.
나래와 다니엘은 동시에 현장을 바라봤다.
머리를 한껏 헝클어트린 장, 그리고 곤란한 얼굴을 한 태화가 그녀들의 시선에 들어왔다.
촬영이 일단락났을 때, 태화는 자신이 땀을 흘리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진짜 힘드네.’
창일과 장시간 촬영했을 당시엔 피로를 몸으로 느꼈다. 장시간 촬영이 익숙하지 않아 몸을 좀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촬영은 태화의 정신을 마모시켰다.
‘직접 보는 것도 아니라 카메라 너머로 보는 건데······. 진짜 무시무시해.’
태화의 무대 장악능력은 극에 다다라 마지막 벽만을 남겨두고 있었으며, 눈빛과 시선처리 또한 웬만한 제작자는 끌려다닐 수준의 경지였다.
그렇기에 그는 쭉 자신과의, 역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얼마나 잘 역할을 표현하고 보는 이들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각을 전이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랬던 것이 오늘은 달랐다.
장의 카메라는 태화의 목에 줄을 걸어 끌고 가려들었고, 태화는 온몸으로 사투를 벌였다.
‘그래도 저항이 어느 정도 통한 거 같으니······, 비긴 것 같아.’
처음 만난 ‘진짜’ 거장의 힘은 대단했다.
카메라의 시선은 태화를 액자에 가둬 원하는 형태로 박제하려 들었다.
언제나 찍는 이들의 원하던 걸 ‘표현한’ 것과 달리, 장은 태화가 ‘표현하게’ 조종했다.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건 좀 분하네.’
끄는 힘과 당기는 힘이 팽팽했다 자축하며 태화는 천천히 스크린을 벗어났다.
“태화야 이거 걸쳐.”
그가 환한 배경을 벗어나기 무섭게 대기 중이던 현규가 다가와 겉옷을 어깨에 올렸다.
안 그래도 땀 때문에 달라붙은 옷이 거슬렸던 태화는 더해진 무게감이 답답해 슬쩍 옷의 끝자락을 밀었다.
슬쩍 이는 바람에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더운데요?”
“너 지금 바로 옷 갈아입으러 갈 거 아니잖아. 몸이 급격하게 식으면 감기 걸려.”
매니저는 단호하게 옷을 고정시켰다. 절대 벗을 수 없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그는 거절하려던 옷을 여몄다.
비록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어도 몸이 자산인 직업을 가졌으니 이런 조언은 받아들이는 게 맞았다.
‘시간이······. 고작 한 시간? 하, 적어도 반나절은 드잡이했다고 생각했는데.’
겉옷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태화는 헛웃음을 지었다.
화장을 지우고 촬영에 임한 시간은 고작 한 시간.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았다.
「정말 오랜만에 만족스러웠어! 역시 나의 뮤즈! 나와 평생을 함께 해줘!」
「죄송합니다. 전 한국이 좋아서요. 그리고 본업은 배우거든요.」
피어올랐던 존경심과 호감이 파스스 식는 것을 느끼며 태화는 적당히 그의 손을 떼어냈다.
작품활동과 관련해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이런 태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곤란했다.
「장. 저희 전속 계약 못 했습니다.」
「어째서!」
‘괜찮아 조금씩 친해지면 돼’라 말하는 장을 보고 다니엘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태도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충격과 배신감이 서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리스크가 크지 않습니까.」
「······.」
자유와 사랑의 나라라곤 하지만 유럽 전역엔 여전히 백인 이외의 인종에겐 은근한 차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예술 분야, 발레리나, 모델, 배우처럼 누군가에게 외모를 선보여야 하는 예술인의 경우 거의 대놓고 차별이 이뤄졌다.
이미 한국의 톱급 배우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태화가 할리우드도 아닌, 클레식의 본고장 유럽으로 가서 수모를 당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장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술만 삐죽거렸다.
「그러니 장. 실력으로 꼬셔봅시다.」
「역시 데니!」
이래야 자신의 스텝이라는 둥 엄지를 치켜세우던 장은 곧 의기양양한 얼굴로 카메라를 랩톱에 연결했다.
곧 파일이 열리고 그 안에 비슷한 사진들이 주르륵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