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70
“어머나.”
싼 티 나는 말투는 얼굴 말고 볼 게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줘서, 그녀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은 한심하단 눈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접근하기 위해 그랬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는데도, 그녀는 즐거워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원래부터 달라붙는 파리는 많으니 그냥 속내를 다 보인 그가 오히려 마음에 든 것이리라.
‘아니 그냥 잘생겨서 마음에 든 걸지도······. 외모가 설득력이라, 대단하네.’
어려움 난이도는 은근히 개연성을 따진다.
미친놈이나 성희롱 소리 듣기 딱 좋은 대사가 제대로 먹혔다는 사실에, 태화는 기뻐해야 할지 고민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땐 색기를 좀 더 드러내서 설득력을 높여야겠어.’
수정해야 할 부분을 표시한 뒤 태화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여성에게 다가갔다.
경호원들이 한 차례 그를 막으려 들었으나, 여인이 손을 들자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이렇게 보니 더 예쁜데? 오늘 화끈하게 꾸몄네? 어디 좋은 데 가나 봐?”
“뭐, 넌 못 갈 곳에 가긴 하지.”
그녀는 노골적으로 태화를 훑으며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그의 턱을 검지로 들어 올려 좌우로 흔들었다.
“물주 하나 잘 무는 거 보니 꽤 보는 눈 있는 멍멍이네. 키워줄까?”
“하루 겪어보고 마음에 들면······?”
“도도한 척하기는.”
그게 또 마음에 들었는지 여성은 코웃음 치며 그의 턱을 간질거렸다.
옆에서 그녀를 지키던 남자들은 또 저런다는 눈으로 그녀를 흩곤, 쓰레기 보듯 태화를 응시했다.
여자한테 빌붙어 호의호식하려 하는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검사씩이나 돼서 미인계라니 캐릭터 진짜 독특해.’
그렇게 모두의 의심에서 멀어진 태화는 자연스럽게 목적지로 침입했다.
***
커다란 방에서 마약 파티가 시작되자, 태화는 여성을 보며 웃었다.
“우리 자기 되게 화끈한 여자였네.”
“풉, 이제 알았어?”
“어. 너무 매력적이라서 좀 더 알고 싶은데······. 오늘 밤에 시간 있어?”
그런 말을 남기며 키스하듯 다가간 그는 은사파 아가씨의 머리를 테이블에 박아버린 뒤, 옆에 있던 술병을 깨트려 그녀의 목에 가져갔다.
“너 이 새끼······!”
“뭐하는 짓이야!”
“손이 묶여서 정체는 밝힐 수 없고. 거기 계신 현성, 태진, 부용 자제분들은 직원들 따라 나가도 좋아. 아, 약이랑 주사는 두고 가라? 봉지도.”
누군가 슬쩍 위험한 증거들을 챙기려 들자 그는 미친 인간처럼 실실 웃으며 아래 깔린 여성의 목에 핏자국을 냈다.
동료의 피를 보고 잠시 겁먹었던 이들이 이내 화를 내며 태화에게 달려들려 들었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 나타난 매니저가 경찰이 급습한 탓에 도망쳐야 한다 말하자, 그들은 그녀를 버려둔 채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한서가 이 여자를 타깃으로 잡은 게 뒤탈이 없어 서지.’
남은 경호 인원과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태화는 설명으로 첨부되었던 인물 관련 내용을 상기했다.
한서는 오늘 트로이의 목마가 될 타깃을 신중하게 골랐다.
머리가 비고 허영심 높으며 협박에 써도 뒤탈이 없을 상대.
앞의 두 개를 만족하는 인물은 넘쳤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마지막 조건을 만족하는 이는 테이블에 깔린 ‘은사파의 고명 딸’ 밖에 없었다.
‘이름 없는 은사파의 고명 딸씨 미안합니다······. 근데 지금은 이렇게 했다 치고, 실제 연기에서도 이렇게 과격하게 가나?’
태화는 그녀의 머리를 좀 더 짓누르며 미래, 이 역을 맡을 단역을 걱정했다.
이곳이야 허구의 세계니 과격하게 갈 수 있다지만, 영화 내에서 이렇게 한다면 십 중 십은 심하게 다친다.
연기를 하고 싶은 것이지 누군가를 다치게 할 마음은 없었기에, 태화는 ‘현실감’과 ‘안전’에 대해 고민했다.
“여기에요!”
“경찰이다! 순순히······!”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인혜와 다른 이들이 들이닥쳤다.
무기를 내려놓는 이들을 보며 태화는 키스라도 하려는 듯 달콤한 얼굴로 아래 깔린 여성에게 다가갔다.
“이봐, 은사파 아가씨. 날 멍멍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우리 자기뿐이거든? 그래도 그건 오늘 협력한 거로 묻어 줄 테니까. 너무 앙심 품지 마?”
남들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그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남기고 그녀를 형사에게 넘겼다.
***
앞서 언급되었으나 오늘의 작전은 한서의 주도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일이 실패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온 것이었으며, 감자 깎는 데 쓰인 소 잡는 칼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그가 이곳에 온 일은 공식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여기가 높으신 분의 자금줄 중 하나거든. 그 높으신 분이 장인어른 라이벌만 아니면 가만히 있었을 텐데 말이야.”
태화는 의아해하는 인혜에게 오늘 일의 전말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런 일은 자존심에 타격을 주고 높은 분에게 밉보일 수 있는 예민한 부분이기에 직접 하기엔 위험이 크다.
그래서 오한서는 완성한 자료를 반골 기질이 심한 후배 검사의 담당 서류에 끼워 넣었다.
예상대로 후배, 임승지는 기득권자의 불의를 참지 않았고 위쪽에 수사권을 요청했다.
형사부장도 한패였기 때문에 허가가 떨어지는 건 일사천리였다.
“난 서류를 껴 넣고 오늘 도와준 걸 빼면 아무것도 안했어.”
증거가 나온 이상 상대는 장인어른 측에서 수작을 부린 걸 알아도 대놓고 무어라 말하지 못한다.
위험한 자금줄이었던 만큼 주력은 아니었을 것이며 상대도 좋게 좋게 사건을 축소할 것이다.
위쪽에서 바라는 ‘평화로운 해피엔딩’이었다.
“물론 오늘 지휘봉을 잡은 우리 승지는 좀 시달리겠지만······. 어차피 쟨 신념을 꺾지 않는 이상 평생 땅개야.”
언젠가 칠 사고라면 수습 가능한 선이 승지에게도 좋지 않느냐 말하며 태화는 인혜를 향해 싱그럽게 웃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그녀는 쓰레기 보듯 그를 바라봤다.
태화가 보기에도 정말 욕심 많은 악인 그 자체라서, 한서가 주인공에게 호의적인 ‘최악의 스승’이 아니었다면 대차게 욕먹는 인물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욕은 먹을지도. 아, 진짜. 설명만 들었을 땐 정말 이 정도라고 생각 못 했는데.’
그는 상아에게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작게 불만을 표했다.
대본으로 확인한 영화 분위기에 휩쓸리고, 그녀의 설명에 은근이 마음에 동하고, 티켓에 꽂히지만 않았다면 분명 오한서 역을 거절했으리라.
‘······진짜 연기하면 연기할수록 나쁜 놈이야.’
다 떠올려보니 넘어간 자신의 책임이 없지 않아서, 태화는 얌전히 연기에 집중했다.
끝
ⓒ 마늘소금
“······선배가 이리 변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글쎄? 난 원래 이런 인간이었지.”
태화는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실망한 후배에 대한 아쉬움일까, 그의 얼굴엔 잠시 안타까움과 비슷한 감정이 서렸다.
“인혜야 인혜야, 우리 강인한 인혜야.”
“······그렇게 부르지 마요.”
상황에 맞지 않게 놀림 섞인 말에 인혜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썩은 사람처럼 보여? 뭐, 그건 사실이지만.”
“왜 그런 식으로 끔찍하게 사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억눌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힘들 때 의지하려던 이가 이 정도로 부패했다는 사실이 인정하기 힘든 듯 보였다.
“그런 식? 끔찍? 후배의 미래를 망가트리고, 검사답지 않게 외모로 아양 떨고 그런 거?”
그는 직설적으로 오늘 있던 일을 요약했다.
그 음성엔 비웃음이 섞여 있어서, 인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태화를 바라봤다.
“정의로운 강인혜야. 착각하지 마. 세상은 도덕책이 아니야. 네가 정의롭다고 ‘아, 그러세요? 허허, 정의를 위해서 썩은 제가 물러나야겠죠, 암요.’라고 하는 기득권은 아무도 없어.”
이를 드러내고 웃는 그의 얼굴엔 살기와 비슷한 적의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기세와 달리, 그의 손길은 참으로 상냥하게 흐트러진 인혜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나는 참 잘생겼고, 머리도 적당히 비상하지.”
“······.”
“하지만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건 열흘뿐이고(花無十日紅) 머리는 수석이 될 정도로 뛰어나지 않아.”
“그건.”
“내가 가진 강점을 이용해 원하는 걸 이루려 하는 게 뭐가 나쁘지?”
대사를 뱉으며 태화는 하승우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외형을 지녔지만 실력을 키우기보다 동료들을 끌어내려 위에 서려 했던 배우.
오한서는 많은 부분에서 하승우를 닮아있었다.
‘뭐가 걸리나 했더니 이거였네. 직접 말하기 전엔 떠올리지 못했다는 게······.’
그렇기 때문일까.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는 과거 그가 태화에게 하지 못한 진심처럼 들렸으며, 어쩐지 용납할 수 없는 인간상을 제 입으로 변호하는 것 같아 불편해졌다.
‘역할엔 죄가 없지만 이건 좀 다른데. 음······. 다음 연습에선 약간 비틀어 볼까. 아니, 약간 더 근본적인 변화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태화는 착실하게 대사를 뱉었다.
“너보고 나처럼 변하라는 건 아니야. 난 네가 정의로운 게 꽤 마음에 드니까. ······변호사에겐 그런 게 필요하지.”
[너는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었음에도 가장 밑에서 불의와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영화 속 한서는 인혜를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갈 수 없는 길을 택한 그녀를 응원했다.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준 것도 그런 존중에서 이뤄진 선택이었으리라.
물론 그 결과 경멸과 실망을 얻었지만 말이다.
“날 닮으라는 의미가 아니야. 단지 대나무처럼 유연해지라는 뜻으로 이곳에 데려온 거야. 나 같은 인간도 있고, 표면이 사건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그녀가 맞서야 하는 이들은 한서처럼, 아니 한서보다 더 더럽고 잔혹한 인간들이 많다.
그들은 편법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승리를 위해선 과격한 방법도 사용했다.
고난의 길을 가려 하는 인혜는 그것을 깨달아야 했다.
“서민 편에 서고 싶다며. 적의 방식을 모르고서야 갈 수 없는 길이지.”
있어 보이는 대사에 숙연해졌던 인혜는 곧 태화가 오늘 했던 행동들을 상기하고 얼굴을 구겼다.
아무리 잘 포장해도 후배에게 음료값을 넘기고, 검사란 직업에 맞지 않게 미인계를 사용하고, 검사 후배를 방패막이로 쓰는 것은 절대 제대로 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승지 검사에게 사건을 일임한 건 선배가 썩어서 그렇다 쳐도 미인계 써서 잠입한 건 전혀 이해 안 되는데요? 저한테 음료숫값 떠넘긴 것도요.”
“이 외모를 썩히기 아깝잖아. 그리고 너랑 비슷하게 꼿꼿해서 허탕 칠 게 뻔히 보이는 불쌍한 승지도 겸사겸사 도와주고. 음료는 오늘 수업 값.”
가벼운 말투로 말한 태화는 손등에 살포시 턱을 올려 자신의 외모가 통하지 않을 리 없다는 도도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끔찍하다는 듯 인상을 쓰는 인혜를 향해 그는 환하게 웃었다.
“너도 좀 웃고 그래. 법조계가 아닌 척하면서도 외모 꽤 밝힌다? 여자 검사나 변호사들이 여자로 보이는 게 싫다면서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데, 꾸미는 여자 동료를 비웃는 놈들은 대부분 그러지 못하는 패배자들이야.”
그는 ‘지들이 하질 못하니 상대를 깎아내리는 거다’라고 다른 동료들은 비웃었다.
“어차피 우리에게 남는 건 승소율뿐이잖아? 자기 강점을 버리는 미련한 짓이지.”
자신은 배심원에게 더 잘 어필하기 위해 전날 팩도 한다는 말로 태화는 외모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기승전외모로 흐르는 이야기에 인혜는 눈을 흐렸다.
“아······. 그래서 약혼자도 계신 분이······.”
“우리 자기는 관대해서 이 정돈 봐줘. 내가 은사파 아가씨한테 키스한 것도 아니잖아.”
“참 관대한 분이시네요······.”
“어, 돈과 가진 권력만큼이나 관대한 사람이지.”
그게 아주 사랑스러운 부분이라며 태화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알게 된 그녀는 정말로 할 말을 잃었다.
***
제단을 대충 넘기고 현실로 돌아온 태화는 바로 연습한 부분을 펼쳤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