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80
어떻게 봐도 카를로스의 연기력은 태화 자신을 넘어서지 못했다.
[조언을 맡았다면 철저하게 주연을 띄운다.]일반적으로 기본에 충실한 그는 오늘 오디션에서도 그 문장을 지킬 생각이었다.
「······가발 쓰는 게 능숙하네?」
「평범하지.」
「립스틱 바르는 솜씨도······.」
너무 능숙하게 가발을 착용하고 립스틱을 바르자 카를로스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남성이 익숙하기 힘든 두 가지 일을, 태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낸 탓이다.
「너도 소극장에 있던 거 아니야? 거기에 널 꾸며줄 아티스트가 있어? 아닐 텐데?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줄 알아야지.」
이 정도도 못하는 게 이상한 거라 말하며 태화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입술을 비췄다.
깔끔하게 발린 붉은색이 하얀 피부와 대조되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회귀 후에 한 번도 제 손으로 화장해본 적이 없으나 그전엔 스스로 화장을 하고 무대에 섰었다.
물론 당시에는 어딘지 어색한 조합과 과한 화장 때문에 본인 얼굴에 화장이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말이다.
‘회귀 초기까지도 다들 겉치레로 그리 말하는 줄 알았지.’
나름의 추억을 회상하며 태화는 마지막으로 입 부분만 열려있는 가면을 뒤집어썼다.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입술만 드러나자 몸을 보지 않고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한 인상이 나타났다.
‘아직 루이를 연기한 여파가 몸에 남아서 다행이야.’
열심히 키우긴 했으나 그의 몸은 여전히 가늘고 긴 편에 속했다.
여자 연기를 하는 덴 괜찮은 체격이었다.
태화는 허리에 천을 둘러 치마를 표현하곤 카를로스를 응시했다.
이제 오늘의 주역을 만들 차례였다.
끝
ⓒ 마늘소금
열성적으로 준비에 임하는 참가자들을 무심히 훑으며 랠프는 종이 위에 숫자들을 표기했다.
다들 연기만 잘하면 끝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심사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젊음이란 좋군. 저렇게 열중하는 걸 보면 연극의 미래가 밝다는 게 느껴져.」
「어떻습니까, 저희 예비 동료들은. 부럽지 않습니까?」
「그렇게 꼬셔도 소용없어. 난 메니와 일하는 게 즐겁거든. 그 친구 작품은 찍을 맛이 나.」
「칫.」
남자, 토니 깁슨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메드닐과 일하는 촬영 감독이었으나 3년 전만 해도 뉴욕 출신의 예술가였다.
당연히 랠프와도 인연이 깊었고, 랠프는 뉴욕이 아닌 LA를 선택한 그를 아쉬워했다.
「메니도 너처럼 도전 정신이 상당한 괴짜라서 재미있지.」
「뭐, 그 사람 작품은 돈 바르는 공장 제품답지 않게 독특한 맛이 있긴 하죠.」
「난 척하기는. 그나저나 저 청년은 대단하군.」
「아, 적색 3번이요.」
‘저 청년’이라 칭해졌음에도 랠프는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열여덟 명의 참가자 중 한 마리 괴물이 섞여있었으니 모르는 게 이상했다.
「그래. 걸음걸이부터가 달라. 다른 여자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 대비되고 있어. 원래 여장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기엔 발성도 상당히 깨끗하군. 여기 있을 만한 실력이 아닌데?」
「청색 3번도 상당히 잘하고 있습니다만······. 유도되고 있는 부분이 없지 않군요.」
랠프는 들고 있던 종이에 ‘+3’과 ‘+1’을 적어 넣었다.
10점이 모이면 합격, 3점을 잃으면 탈락.
참고로 연습에서 얻을 수 있는 점수는 최대 5점이었으며, 감점은 더 많았다.
참가자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랠프는 처음부터 9개의 작품을 모두 구경할 생각이 없었다.
‘포텐이라는 것도 기초가 탄탄해야 터지는 거니.’
연습 시간 동안 어떤 추가점수도 감점도 없이 본편에 들어가 10점을 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연습 때부터 그른 배우를, 본 게임에서 운 좋게 잘했다고 뽑을 생각은 없었다.
「청색 3번은 운이 좋군요. 제 실력을 200퍼센트 끌어올려 주는 파트너라니, 저런 페어를 짜면 연기할 맛 날 텐데요.」
남자 역을 맡은 배우보다 키가 크다.
하지만 뒤꿈치를 살짝 들고 움직이는 사뿐한 걸음걸이, 부드럽고 우아한 몸짓, 살짝 높은 목소리가 섞여, 빨간색 3번, 태화는 여성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오필리아가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상대인 카를로스도 여자 역이 섞인 다른 남남 팀들과 달리 위화감 없이 자신의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본인 키가 더 큰 것을 생각하고 일부러 거리에 신경 쓰고 있어. 다가서서 애원해야 할 땐 허리가 아니라 무릎을 굽히고 있고······. 저거 정말 신인인가?」
태화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가며 카를로스의 심리와 연기를 ‘조정’하고 있었다.
당사자인 카를로스는 눈치채지 못했어도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에겐 그것이 보였다.
‘소름 돋는군. 저건 절대 애송이가 아니야······.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블라인드 심사를 한다고 우기지 않았을 텐데.’
당장이라도 다가가 가면을 벗기고 ‘넌 합격이다!’를 외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종이를 본 랠프는 잠시 고민을 하고 3번 라인에 추가로 ‘+3’와 ‘+2’을 기록했다.
평균 이상이지만 아주 뛰어난 편도 아닌 카를로스는, 여러 번 비춰진 덕에 다른 비슷한 실력의 참가자들보다 상당한 추가 점수를 획득했다.
누군간 불공평하다 할지 모르지만, 운도 실력이었다.
***
「1번 팀 탈락. 2번 팀 탈락. 6번 팀 탈락. 지금 호명된 여섯은 돌아가.」
연습 시간 30분이 끝나고 랠프는 냉정하게 탈락자들을 호명했다.
한쪽만 탈락한 팀도 있었으나 그는 홀로 남을 참가자를 위해 그런 팀은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소란이 일었으나 곧 12명의 남녀만이 강당 한가운데에 남았다.
「그럼 3번이 먼저군.」
‘진짜 까다롭네.’
태화는 번호가 호명되자마자 다시 몸을 굳히는 카를로스를 보고 마리아를 떠올렸다.
카를로스는 엄마를 잘 뒀다.
합격하면 그녀에게 진짜 잘해야 했다.
「봐줄 만 했으니까 연습 때처럼만 해.」
「그, 그래.」
「······정 긴장되면 날 ‘에이미 피어스’라 생각하라고.」
「잠깐······! 그 이름을 네가 어떻게 알아?」
‘네 엄마가 말해줬지.’
카를로스에 대해 회상하면서, 마리아는 그의 학창시절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에이미도 거기에 등장한 인물로 양다리를 걸치다 카를로스를 뻥 차버린 소녀였다.
마리아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카를로스의 첫사랑이었다고 한다.
‘먹혔네. 대사 외우는 걸 보면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좀 생각이 짧은 것 같아.’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긴장도 잊은 카를로스를 앞에 두고 태화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안타까움을 담아 대사를 읊었다.
「나의 님이시여, 정말 오랫동안 이 정표들을 간직해왔습니다. 부디 이를 받아주시길.」
자신 앞에 내밀어 진 손을 보고 카를로스는 정신을 차렸다.
시작하기 바로 전 ‘에밀리’에 대해 들었기 때문일까. 눈앞에서 애절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가 그녀와 겹쳐졌다.
「······난 이런 걸 준 적이 없소.」
카를로스는 거짓말쟁이였던 자신의 첫 여자 친구를 떠올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
주변에선 양다리로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겐 남자가 무려 넷이나 더 있었다.
당연히 받은 선물도 많았고 누가 뭘 준 건지 헷갈린 적도 적지 않았다.
욕심이 장대했던 것에 비해 그녀는 머리가 좀 나빴다.
「오! 영예로운 임이여, 그렇지 않아요. 이것들은 당신께서 주신 것인 걸요. 저는 그날 느꼈던 당신의 숨결, 낭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에밀리의 실수에도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던 건 그만큼 빠져있던 탓도 있으나, 그녀의 임기응변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수할 때마다 아름다웠던 추억을 언급했다.
둘이 나눴던 감정, 온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카를로스를 다독였다.
모든 남자 친구와 똑같은 코스를 간 건지 그 부분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향을 잃었죠. 주었던 이의 마음이 변했다면 물건의 가치도 초라해지는 법이랍니다. 다시 가져가 주세요.」
그리고 남 탓도 잘했다.
「하! 그러는 넌 얼마나 순결해서!」
연기 도중 과거에 과몰입한 카를로스는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 질렀다.
다른 남자의 존재를 들켜 헤어지자 말하던 에밀리는 마지막까지 당당했다.
오히려 카를로스를 탓했고, 온갖 찌질함을 보이는 그에게 ‘알리면 너한테 실망할 거야’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그가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차며 ‘그때 응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라 절규하게 한 최악의 기억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배신은 어린 카를로스에게 큰 상처를 줬다.
배우가 되겠다고 집을 뛰쳐나갔지만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에밀리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좋아. 3번 팀. 둘 다 합격.」
「······네? 저희, 아직 다 하지 못했습니다만······?」
합격이란 말에 정신을 차린 카를로스는 의아하다는 눈으로 랠프를 바라봤다.
아직 몇 줄밖에 읽지 않았는데, 흡족해하는 단장의 얼굴엔 어떠한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다.
「대사에 실린 감정이 훌륭했어. 저쪽에서 대기. 다음! 4번 팀!」
서둘러 다음 팀을 호명하는 랠프를 보고 카를로스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을 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합격 소식이 마치 꿈만 같았다.
「흠, 축하해.」
「나, 나 정말 붙은 거야?」
「그래.」
태화는 흡족한 얼굴로 카를로스를 바라봤다.
본 무대에 오르자마자 긴장해서 굳어버린 카를로스를 보고, 그는 마리아가 말했던 에밀리를 언급했다.
그리고 그녀가 설명해준 에밀리의 말투, 습관들을 은근히 흉내 냈다.
오필리아의 어조가 과거에 대한 서글픔을 담기보다 남 탓에 가까워진 건 그 때문이었다.
‘기본은 하는 편이라 다행이었지.’
들어간 것으로 끝이 아닌,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생각보다 기초가 탄탄한 것으로 보아 잘해낼 것 같다.
부족하나마 티켓 값을 했다는 생각에, 태화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 고마워.」
정신을 차린 카를로스는 태화에게 감사를 건넸다.
성격이 나빠 보였으나 태화는 그의 연기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합격으로 완전히 긴장이 풀린 카를로스는 모든 게 끝나고서야 태화의 도움을 눈치챘다.
「됐어. 난 루즈 지우러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응.」
「그리고 이제 집에 들어가. 마리아가 걱정하고 있으니까.」
「······엄말 알아?」
의아해하는 카를로스에게 답하는 대신, 태화는 휘적휘적 손을 흔들곤 자리를 벗어났다.
스텝에게 화장실 위치를 묻는 것은 덤이었다.
***
‘이런 것도 은근히 즐거운데? 근데 볼 일만 마치고 바로 퇴장이라······. 12시가 되면 땡하고 사리지는 신데렐라도 아니고.’
오디션장을 벗어난 태화는 마리아와 필립을 찾았다.
정 안되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 극장을 나갈 생각이었다.
“누나. 저 다 끝났어요. 네, 알렉산더에게 그쪽에서 대기해달라고······. 네. 고마워요.”
미련을 전부 털어버렸기에 그는 느긋한 마음으로 나래에게 전화를 걸고 천천히 복도를 거닐었다.
「태하! 여기 있었구나! 한참을 찾았잖아!」
「봐, 마리아. 무사하잖아. 그냥 오디션 구경했으면 좀 좋아?」
「그래도 걱정됐는 걸. 다행이다. 아직 끝날 시간 안 됐으니까 이제라도 구경하러 가자.」
약간의 땀이 맺힌 마리아를 보고 태화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마리아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선의는 태화가 정말 필요했던 것을 이뤄줬고 즐거운 경험도 시사했다.
「마리아. 제 동료들이 올 때가 돼서 전 이만 가봐야 해요.」
「어머, 어떡해.」
「그리고 마리아를 찾다가 우연히 봤는데 카를로스는 합격한 거 같아요.」
「정말?!」
태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합격 여부는 거짓이 아니다.
그렇기에 태화는 당당했다.
입을 가린 채 기뻐하던 마리아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필립을 바라봤다.
아들의 연기를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이미 끝났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오디션을 구경하러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럼 같이 나가자. 필립.」
「······어떤 의미에선 다행이네.」
큰 사고 없이 몰래 움직이는 것에 성공했다며 필립은 안도한 얼굴로 둘을 출구까지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