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9
그의 고민이 길어지려던 그 순간, 갑자기 또 다른 문구가 떠올랐다.
엉겁결에 답하자 다른 내용이 지워지고 두어 줄의 문장이 기둥 위에 적혔다.
[로키의 쪽지]의자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겁쟁이 브라기가 후원했다기에 웬 멍청인가 싶었더니 꽤 재밌는 놈이잖아? 힘을 줄 테니 날 모셔라.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너무나 당당하게 받아들이라 요구하는 내용에 태화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브라기보다 인지도가 높은 신이니 쓸 만한 재능을 다수 보유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놓고 모시라 말하는 걸 보아 무언가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
‘요구하는 범위가 문젠데······.’
태화는 기둥 위에 글을 한동안 노려봤다.
재능이 탐나는 건 사실이나 주객전도가 돼선 안 된다.
만능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제약 없이 연기에 빠져 살고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끝을 밟고 싶은 것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알람이 도착했다.
헤스티아에게서 온 쪽지였다.
[헤스티아의 쪽지]고민하는 청년이여, 모든 선택은 당신의 몫. 운명은 그대의 편이니 망설이지 말길. 나 헤스티아는 화롯가에서 당신을 지켜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상냥하단 생각이 들었다.
같은 불 계열의 신이었으나, 자신만만함이 오만한 수준이었던 로키와 달리 헤스티아의 글은 마치 어두운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불꽃 같았다.
‘운명은 내 편이라······.’
태화는 그녀의 쪽지를 되새겼다.
단순히 관용적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눈길이 갔다.
‘······올라운더가 되려면 브라기만으론 부족할 가능성이 커.’
영화에도 여러 장르가 있듯 배우마다 선호하는 성격이나 성향의 역할이 있다.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정해진다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배우의 재능이나 한계에 의해 결정되는 게 현실.
그렇다면 재능을 하나라도 더 얻는 게 맞으리라.
“······둘 다 수락할게.”
결국 태화는 두 신의 후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로키의 후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첫 후원의 선물로 로키가 한 가지 재능을 사사합니다.] [목록]잔꾀Ⅰ, 이간질Ⅰ, 독심술Ⅰ, 방화Ⅰ, 위장Ⅰ, 위기대응Ⅰ, 모함Ⅰ, 독설Ⅰ, 선동Ⅰ······.
[룰렛이 돌아가면 한 가지 재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돌리시겠습니까?] [헤스티아의 후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첫 후원의 선물로 헤스티아가 한 가지 재능을 사사합니다.] [목록]화합Ⅰ, 친화력Ⅰ, 신뢰Ⅰ, 구도Ⅰ, 인내Ⅲ, 굳건한 의지Ⅱ, 신성Ⅰ······.
[룰렛이 돌아가면 한 가지 재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돌리시겠습니까?]기둥에 처음으로 나타난 스크롤 버튼을 보며 태화는 스마트폰을 터치하듯 위아래를 확인했다.
네임드답게 로키의 재능 목록은 헤스티아의 두 배를 넘었다.
‘대부분이 범죄나 비도덕적인 것도 참······.’
잔꾀나 독심술 같은 중립 성향의 재능부터 방화와 같은 중범죄까지.
솔직히 불의 신이나 장난의 신이 아닌 범죄의 신이라 부르는 게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이간질Ⅰ]개인 간의 신뢰 관계가 쉽게 깨지도록 만든다. 들킬 확률이 적다.
[신뢰Ⅰ]사람들의 믿음을 쉽게 얻는다. 같은 일을 해도 더 믿음직해 보인다.
선한 성향의 헤스티아와 비교하자 그의 악함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래도 쓸 만한 게 많아 다행이네.”
예술과 관련 없는 신들이다 보니 직접적으로 관련된 재능은 적었으나 보조적인 면에선 상당히 괜찮았다.
특히 로키의 위장, 위기 대응, 독심술 같은 경우 연기에 써먹을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근데 이간질이랑 신뢰 양쪽에 재능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뭔가 희대의 사기꾼 같은 게 되는 건가?’
잠시 실없는 생각을 하던 태화는 곧 룰렛을 돌려 달라는 문구를 보고 두 개 다 확인을 눌렀다.
문자가 전부 사라지고 두 개의 원형이 기둥 위에 떠올랐다.
‘제발 정상적인 게 나와라.’
쓸모 있는 것이 나오기를 바라며 응시하고 있자 곧 두 원이 멈추며 각각의 바늘이 재능을 가리켰다.
[위기 대응Ⅰ을 습득했습니다.] [굳건한 의지가 Ⅱ단계로 상승합니다.]‘좋았어!’
도박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 속으로 환호를 터뜨렸다.
목록이 너무 많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유용한 재능들이 나왔다.
[둘 이상의 불의 신에게 후원받았습니다.] [불에 대한 한 가지 재능이 개화합니다.] [방화Ⅰ을 습득했습니다.]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문자가 나타났다.
추가로 재능을 받았음에도 태화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공으로 얻게 된 것은 좋았으나 그 재능이 범죄라니, 솔직히 없는 것만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방화Ⅰ]어디에 불이 잘 붙을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담뱃불을 산불로 키울 수 있다.
“······누구 잡혀갈 일 있나.”
짜게 식은 눈으로 설명을 보던 그는 작은 한숨과 함께 찜찜함을 털어 냈다.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쓰지 않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그냥 묵히면 되리라.
태화는 새로 얻은 재능에 집중했다.
나름 탐내던 부분이라 한 번에 나온 것이 즐거웠다.
‘굳건한 의지와 위기 대응······. 상성이 좋을 거 같네.’
연기를 하다 보면 얼마든지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법이고, 그때마다 침착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그건 배우로서 상당한 어드밴티지였다.
‘특히 한국에서 드라마 찍으려면 거의 필수지.’
나름 쪽대본에 대한 대응책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재능 목록을 확인했다.
첫날 이후 단계가 상승한 재능은 없었지만 숙련도는 순조롭게 올라갔다.
특히 눈빛의 경우 모델 일을 하면서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 어제 오늘 여섯 편의 대본을 통째로 외우면서 암기력도 꽤 상승했다.
“이제 그만 나갈······.”
[로키의 후원을 받아들이며 조건이 생성되었습니다.]“어······?”
막 나가려던 찰나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태화는 멍청한 소리를 흘렸다.
[조건]로키: 하루에 한 번 장난을 치고 해결한다.
*불응 시 악몽을 꿉니다.
참 로키다운 조건을 보며 그는 찡그린 얼굴로 입술을 비틀었다.
스물다섯 먹어 매일 장난을 쳐야 한다니.
조금, 아주 조금 욕심 부린 것이 후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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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냄새가 나
유라에게 소개받은 숍에 들려 머리와 얼굴을 정돈한 태화는 통지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오늘 촬영 장소는 아담한 상가형 빌라로, 아래쪽은 작중 가람의 부모가 하는 미용실이 위쪽은 가람의 집과 바다가 세 들어 사는 주택이 자리 잡은 곳이다.
······라는 건 시청자들이 볼 부분이고, 그가 도착한 장소는 경기의 한 스튜디오였다.
사실 구도의 제약이 많은 관계로 넓은 공간을 제외한 실내의 촬영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제작됐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도넛 좀 사 왔는데 드실래요?”
“감사합니다.”
그가 상자를 열자 후드티를 입은 스텝 하나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도넛을 하나 집었다.
이제 막 크랭크 인 한 드라마인데도 그녀의 눈엔 피로가 감돌았다.
“이태화 씨······ 맞으시죠?”
“네. 전에 뵀던가요?”
“아뇨아뇨, 전 최나영 선생님 밑에 있는 보조 작가 김민혜예요.”
“아.”
그제야 그녀의 피로를 이해한 태화가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새로 쓴다고 난리를 쳤으니 그 밑에 있던 이들도 덩달아 힘든 일정을 소화하게 된 것이리라.
더 줄 것이 없던 그가 ‘도넛 하나 더 드실래요?’라고 묻자 보조 작가는 해맑은 얼굴로 그래도 되냐 물었다.
‘냉큼 답하는 게 안쓰럽네······.’
환심이나 살 마음에 한가득 들고 온 도넛이지만 이리 덥석 무는 것을 보니 이 동네도 참 열악하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냄새 나는 음식이 아닌데도 어느새 좀비처럼 나타난 이들이 그의 앞을 기웃거렸다.
권하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도넛의 모습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당 들어가니까 살 것 같다.”
“이태화 씨라 그랬나요? 고맙습니다.”
“네, 저도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태화의 이름을 듣고 무의식중에 미간을 좁히던 이들도 먹이를 먹은 후엔 보살이 되어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둥글게 풀어지는 분위기를 느끼며 그는 숨을 돌렸다.
‘······역시 미움받고 있었네.’
시청률만 신경 쓰는 위쪽과 달리, 직접 뛰어가며 일정을 조절하고 장소를 섭외하는 이들은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많이 봤을 것이다.
주요 조연인 만큼 그들의 비호감을 샀다고 촬영에 지장될 일은 적었으나, 그래도 두 달 가까이를 함께 해야 하는 이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