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14
“사실 제가 열심히는 하는데 요령이 살-짝 부족하거든요. 선배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시연은 있는 애교 없는 애교를 전부 꺼내 태화에게 선보였다.
남성이라면 살살 녹아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사랑스러움.
단지 그녀가 실수를 한 점이 있다면, 그 애교를 받은 상대가 태화라는 것과 사교용 멘트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리라.
창룡제의 남우주연상을 타고, 대박 행진을 이어 가면서 태화에게 콩고물을 얻어먹으려 하는 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성공하고 있을 땐 간이라도 줄 것처럼 대하지만, 실패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을 이들.
그것은 회귀 전 극단 동료들과 너무나 닮은 모습인지라, 태화는 그런 이들과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가 타인의 연기력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도 어쨌든 친해져야 한다면 연기에 진심이고, 열정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시연은, 태화의 기준에 미달이었다.
때문에, 태화는 담담한 말투로 제 감상을 흘렸다.
“요령 문제가 아니라 기초가 부족한 거 같은데.”
“······네?”
“연습 시간을 네 시간으로 늘려 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아는 배우도 겸업하면서 두세 시간씩 연습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시연 씨는 전업이니 네 시간, 아니, 다섯 시간씩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많이 나아질 것 같네요.”
태화는 ‘캐트시’ 때 함께했던 승혁을 언급하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은 빛을 발해 점차 나은 연기를 선보였고, 태화는 그것을 알아보고 귀찮더라도 승혁의 질문을 받아 줬다.
안타깝지만 태화는 시연에게서 그런 노력을 찾을 수 없었다.
“에이, 선배님도 농담은. 어떻게 다섯 시간이나······.”
“전 하고 있습니다. 두 시간 대본 연습, 두 시간 발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죠. 그 외 연기에 필요한 연습들도 병행하고 있고요.”
축복에서 연습하는 것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하루 10시간 이상을 연기만 하며 보내고 있다.
오히려 더 하고 싶은데도 자신이 세운 기준을 위해 참았다.
“그······.”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입보다 행동에 묻어 나와야 타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시연 씨의 행동은 절 납득시키기 많이 부족하네요.”
“······.”
거침없는 태화의 말에 시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그제야 태화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흥행할 만한 작품만 귀신같이 찍는 배우.
연기에 미쳐서 광고도 돈도 도외시하는 인간.
전자도 후자도 성공한 배우로서 당연한 내용이라 여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돈과 인기를 목적으로 달려드는 연예계에서, 후자는 정말 특이한 경우였다.
“저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시면 우선 딕션부터 다시 연습하고 와 주세요. 감독님이 따로 언급은 안 했지만 가끔 대사가 뭉개지는데, 이러다가 다시 녹음해야 할 것 같네요.”
태화는 그녀가 자신에게 아부한다고 화내지 않았다.
단지 친하지 않은 동료 배우에게, 가감 없는 정론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런 ‘사실’은 가끔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되곤 했다.
시연은 대놓고 ‘네 발음 구리다’라 말하는 그를 보며 숨을 참았다.
여기서 숨을 쉬면 와락 울어 버릴 것 같아서다.
‘아까 연기할 때는 그렇게 상냥하게 웃어 줬으면서.’
사실 그녀가 이리도 뻔뻔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건 호흡을 맞췄을 때의 태화의 태도가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애절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경력이 얼마 안 되는 그녀는 연기는 연기일 뿐이란 말을 제대로 실감한 적이 없었다.
상대에게 일말의 호감도 없이, 단지 연인 역이라는 이유로 그런 눈빛과 표정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몰랐다.
“시연 씨?”
“네, 넵······.”
“그러니까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시연은 태화의 상냥한 말이 ‘주제도 안 되면 꺼져’로 들렸다······.
결국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울먹이듯 내뱉곤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와, 너 진짜······.”
중간부터 태화와 시연의 상황을 구경했던 나래가 환장하겠다는 얼굴로 태화를 바라봤다.
옆에 있던 현규도 어색함이 묻은 미소로 태화를 응시했다.
“······지금 시연 씨 운 거 같은데.”
“너 때문이잖아, 이 나쁜 남자야.”
“전 조언을 했을 뿐인데요?”
“······평범한 조언은 아니었지.”
현규는 상황 판단이 느린 자신의 배우를 곤란하단 시선으로 쳐다봤다.
태화는 배우로서, 아니, 인간으로서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성격도 괜찮고 연기도 정말 잘했으며 역할 감정도 완벽히 해석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옥에 티는 존재했다.
이태화. 그는 유독 인간관계에서 눈치라는 게 부족했다.
끝
ⓒ 마늘소금
중년 남성과 젊은 남자가 복도 구석에 서서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서세현이 맞아. 그런데 동기가 없어.”
300원짜리 커피를 들고 있던 중년 남자, 아니, 형사가 남아 있던 커피를 입에 털어 넣고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서류를 들고 있던 젊은 형사가 장례식에서 찍은 서세현의 사진을 응시했다.
슬퍼하고 있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얼굴이었다.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을까요?”
“우발적이었다면 그냥 묻거나 자수했겠지. 그런데 시체의 자상은 원한이 뚜렷해.”
날카로운 무언가로 그어진 크고 작은 상처가 23개.
사인은 출혈 과다.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 보기엔 괴롭히다 죽이려던 의도가 너무 선명하다.
부검의의 소견도 선영의 사망 원인은 원한 살인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서세현에게 빚이나 문제는?”
“깨끗합니다. 돈을 주고받은 일이 없고 평판도 아주 좋아요. 물론 그를 싫어하는 인물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단순 성격 문제였습니다.”
젊은 형사는 가지고 있던 종이 뭉치를 뒤적여 서세현에 대한 자료를 찾아 그것을 중년 남자에게 건넸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저 행복한 연인이었다더군요. ······서세현이 정말 이선영을 죽였을까요?”
“그건 우리가 알아봐야 할 일이지.”
범인을 잡아 달라던 서세현의 태도는 처절했다.
누가 봐도 피해자의 가족으로 보였지, 범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이선영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서세현이었고,
그녀가 실종되기 전날, 같이 있던 사람도 서세현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CCTV에 찍힌 게 없어? 입구에 있던데?”
“그······. 오피스텔 부녀회에서 겉만 남겨 두고 선을 끊었다고 합니다.”
“망할 인간들. 안전보다 제 이권이 우선이지. 일단 좀 범위를 확대해 봐.”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젊은 형사는 작게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벗어났다.
***
태화가 시연에게 한 말을 들은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다들 그날 일을 모른 척했는데, 본인들의 일이 아니었거니와 그것이 촬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한 소리 들은 시연은 눈에 띄게 소침해졌다.
돌려서 빈정거린 거라 생각한 그녀는 태화에게 다가가려는 기색을 지웠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몸을 낮췄다.
그것은 촬영에도 나타났는데, 시청 허가가 떨어져 외부 데이트 장면을 찍으러 갔을 때도 시연은 간단한 대사를 잊거나 어색한 표정으로 태화를 대했다.
그녀가 두어 번 실수하자 감독은 아예 그 장면을 들어내려 했다.
주인공과 약혼자의 데이트 장면은 둘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는지 알려 주는 장치일 뿐 중요한 의미를 담지는 않았으니까.
차라리 다른 장면에 신경 쓰는 편이 낫다 여긴 기석은 주연과 문제 일으킨 배우의 비중을 확 줄인 후, 다른 촬영을 이어 가려 들었다.
그 순간 태화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기석의 의도대로 됐으리라.
태화는 자신에게 편집이나 장면을 분배하는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
딱히 그런 재능을 바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유수의 감독들과 여러 흥행작을 만들어 내면서, 그도 작품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연기만 중시하던 시야가 조금 확장된 것이다.
태화가 봤을 때 선영과 데이트하는 장면은 중요하진 않아도 필요한 장면이었다.
주인공 서세현이 살인범을 직접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건 세 명이 희생당한 후.
그러나 앞서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성의 죽음이 있었기에 세현은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자신을 위로해 주던 직장 동료의 죽음이나 아끼던 후배의 죽음뿐이었다면 세현은 직접 움직이려 들지 않았으리라.
게임으로 설명하면 대미지의 80퍼센트를 선영의 죽음이 채우고 나머지 둘은 막타만 친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태화는 선영의 서사가 이런 식으로 생략돼선 안 된다고 믿었다.
감독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받아 낸 그는 이선영 역을 맡은 시연의 감정을 나서서 조종했다.
꼭두각시 인형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을 조종할 수 있겠냐 말하겠으나, 태화는 시연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퍼지도록 이끌었다.
그녀를 웃게 만들었고 화나게 했으며, 시연이 ‘야누스’의 이선영, 그 자체가 돼 ‘서세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도록 바꿔 놨다.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더할 나위 없이 귀애해, 그녀가 과거의 어색함을 잊게 만들었다.
그 탓에 촬영이 끝난 후 시연은 마음 속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스러워했지만, 태화는 거기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구멍이 생겨도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메워 준다.
태화는 그 일로, 자신이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든든한 기둥임을 알렸다.
그런 기둥이 다른 배우에게 쓴소리를 했다고 해서, 그것을 트집거리로 삼거나 질 낮은 소문을 양산하는 인간은 적어도 현장엔 없었다.
“태화야, 근데 이거 꼭 필요할까?”
“신체 능력의 차이는 쉽게 눈에 보이니까요.”
현규가 건넨 물건을 팔목과 발목에 착용한 태화는 축 처지려는 팔다리에 힘을 줘 움직여 봤다.
도합 40킬로그램의 납덩어리가 태화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런 거 초심자가 함부로 착용하면 근육 다친다고 그러잖아. 정말 괜찮은 거야?”
“트레이너도 각각 10킬로라면 제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했어요. 꾸준히 운동하고 있는 데다 착용하고 달릴 뿐이니까요.”
태화는 몸 관리를 철저히 했다.
체력이 있어야 연습도 하고 마라톤과 같은 긴 촬영 일정을 문제없이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처럼 몸을 드러내야 한다면 모를까, 서세현은 가냘픈 느낌이 나는 인물로 묘사되긴 해도 탈의 장면은 따로 없었다.
게다가 작중 계절은 긴 팔이 어울리는 가을과 겨울의 사이.
긴소매와 재킷으로 건장한 몸을 가리기 용이했다.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다 보니 태화는 고작 사람 한 명 따라가는 것으로 지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따라가야 할 사람보다 체력이 더 좋았다.
그가 피로도를 강제로 올리기 위해 납주머니를 차게 된 이유였다.
“차라리 한 번 달려서 몸을 지치게한 후에 들어가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오빠, 그만해. 태화가 생각이······ 가끔 없긴 해도 자기 몸 망가질 수 있는 일은 끔찍이 확인하잖아. 트레이너하고도 이미 상담했다는데 비전문가인 오빠가 계속 말해서 뭐 해?”
우려를 놓지 못하는 현규에게 나래가 한 마디 쏘아붙였다.
연기에 빠져 태화의 생활이 연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는 촬영에 무리 갈 행동이나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을 최대한 피했다.
이미 장애를 얻어 꿈이 좌절된 적 있었기에 태화는 열정적인 배우들이 흔히 좌시하는 안전 문제에 조금 민감한 편이었다.
물론 그것이 몸을 사리는 방향이 아닌 최대의 연습으로 표현되는 터라, 표면만 보는 사람들은 태화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여겼다.
“걱정 마세요. 위험하다 느끼면 NG 나더라도 멈출 테니까요.”
거기까지 듣자 현규도 더 이상 태화를 말릴 수 없었다.
***
└타미님들, 공계에 올라간 영상 보셨어요?
└저 봤어요! 와, 우리 배우님 몸짱인 건 알았지만 납주머니 끼니까 포스가ㅎㅎ
└그 상태로 달렸는데도 상대 배우가 붙잡혀서 NGㅋㅋㅋ 이름도 듣보던데 제발 우리 배우님 발목 좀 안 잡았으면.
└그러게요. 리얼리티를 위해서 열심히 달리는 배우님에 비해 상대 배우 체력이 참ㅋㅋ 근데 우리 배우님 하나도 안 여려 보여요;;
└222솔직히 그 장면만 봤을 땐 분위기 쩔었는데 이번에 공계 올라온 분장 셀카 보셨죠? 완전 여리여리ㅠ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엄청 궁금하네요ㅠㅠ 제목이 야누스의 시선인데 짐작이 안 가ㅠ
촬영이 끝나고 현규는 오늘 있던 추격전 장면을 공식 계정에 올렸다.
서세현이 도망치는 용의자 후보를 잡기 위해 골목을 뛰어다니는 신으로, 육체적으로 연약한 인간이 정신력으로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부분이었다.
긴박한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감독은 롱 테이크로 둘의 모습을 담았고 두 배우는 정말 술래잡기하듯 예행 없이 달렸다.
쫓아가는 태화가 연기를 잊지 않았기에 박진감이 넘칠 장면.
안타까운 사실은 두 남자의 체력 차이가 상당했다는 점이다.